The counts gone crazy RAW novel - Chapter 86
086화
– 수련을 거듭하여 인간의 태를 벗어날 정도의 경지에 이른 무인들의 시간은 길다.
수명의 연장도 있겠지만, 일반인보다 느끼는 시간의 길이가 다르다고 할 수 있는 것인데, 그렇기에 종사들 간의 대결은 찰나의 순간에 생사가 갈리기 마련.
때문에 뇌를 가속하여 사상의 지평을 넓히고 동시에 여러 가지 생각을 할 수 있도록 단련하게 되니 이는 경지에 이른 무인에게 있어 자연스러운 현상이라고 할 수 있다.
생각을 분할하여 사고한다는 것은 일반인보다 두 배의 시간을 살 수 있다고도 말 할 수 있는 것이고, 이러한 점에 주목한 몇몇 문파에서는 전문적인 양심공을 창안하기에 이르렀다.
대표적으로는 무당의 양의심공을 들 수 있으며 ······.
* * *
전투가 멈추고 모두의 시선이 아렌에게로 모였다.
태연하게 일어난 소년은 주변을 돌아보더니 뭔가 마음에 안 든다는 표정을 지었고, 충실한 하녀가 급히 다가와 옷매무세를 정돈하니 그제야 감정 없는 표정이 되었다.
베로아와 벡스터가 아렌의 등 뒤에 설 때까지 아무런 움직임이 없던 중인들 사이에서 믿을 수 없다는 감정이 듬뿍 담긴 목소리가 들렸다.
“어떻게?”
마일리가 앞으로 한발자국 나서며 아렌과 화면을 번갈아 보았다.
“어떻게 안타이오스와 현실에 동시에 있을 수 있는 거지?”
그렇다.
아렌이 자력으로 안타이오스에서 벗어나 자신의 몸을 움직이는 것도 놀라운데, 안타이오스에는 여전히 아렌이 서 있었던 것이다.
“알려줄 의무는 없지.”
나른한 목소리로 대답한 아렌을 보며 모두가 헛숨을 들이켰다.
“······ 사고분할인가? 아니야. 안타이오스는 그렇게 허술하지 않아. 그럼 뭐지?”
혼이 빠진 것 같은 표정으로 중얼거리기 시작하는 마일리를 일변한 아렌이 습격자들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무저갱 같은 눈빛이 그들을 스치자 알 수 없는 오한에 몸이 움찔하는 것도 잠시, 이내 습격자들이 각자 가지고고 있는 큐빅이 번뜩이기 시작하더니 첨예한 기세를 뿜어내기 시작한다.
“흠.”
습격자들의 기세에 반응한 교수들과 경비들도 무기를 고쳐 잡았고, 다시금 전투가 이어지려는 그 때, 아렌의 시선이 부르바스에게로 향했다.
“총장.”
“······ 말하게.”
세 개의 큐빅에 둘러싸여 봉인되다시피 한 부르바스가 침중한 목소리로 답했다.
“나는 지금까지 꽤 아카데미의 편의를 봐줬다고 생각한다.”
“······ 그렇지.”
뜬금없는 이야기에 모두가 어리둥절했지만 부르바스를 비롯한 몇몇은 아렌의 이야기에 고개를 끄덕였다.
장애인과 불구를 양산해낸 아렌이었지만, 지금까지 아카데미에서 누군가를 죽인 일은 없었고, 그것은 아렌이 나름대로 아카데미의 체면을 세워줬다고 볼 수도 있는 것이다.
“이런 광대 짓에도 어울려줬지.”
이 와중에도 콜로세움의 중앙에서 커다란 화면을 비추고 있는 안타이오스를 바라본 아렌이 말을 이었다.
“그런데 그것도 끝이군.”
“잠깐! 그래도 이곳은 아카데미네! 다시 한 번 생각을 ······.”
“됐다.”
다급히 말하는 부르바스의 말을 끊으며 아렌이 말했다.
“아카데미 놀이와는 다르지. 명백히 살의를 가진 공격이었어.”
전신이 공처럼 말려서 한쪽 구석에 박혀버린 습격자의 모습에 모두의 시선이 쏠렸다.
“베로아.”
“예. 도련님.”
두 손을 공손히 모은 베로아가 고개를 숙이며 답했다.
“이런 분쟁에서 어디까지 허용이 되지?”
너무나도 평온한 음성이었지만 소름이 돋았다.
“도련님의 뜻대로 하시면 됩니다.”
쿵.
드웨인이 한쪽 무릎을 꿇으며 말했고, 7기사단의 전원이 동조한다는 듯이 발을 굴렸다.
“드웨인 경의 말이 맞습니다.”
베로아의 단호한 대답과 고개를 끄덕이는 벡스터의 모습을 일변한 아렌이 습격자들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그렇다는 구나.”
어느새 지휘자를 중심으로 한데 뭉친 습격자들의 몸에서 휘황한 빛과 함께 각자의 큐빅이 빛나는 모습을 본 아렌이 천천히 손을 들어올렸다.
“죽일 생각을 했으면 죽을 각오도 됐겠지.”
“피해라!”
다급한 말과 함께 지휘자가 몸을 날렸고, 그의 말에 습격자들이 대부분 몸을 피했지만, 반응이 느린 몇몇이 있었다.
콰드드득!
“크아아악!”
“컥!”
습격자들을 수호하던 큐빅이 빛을 발하며 저항을 시도했지만, 그것도 잠시 뿐, 이내 끔찍한 소리와 함께 공간에 고정된 흡력에 습격자들이 빨려들기 시작했고, 팔 다리가 꺾여서는 안 될 방향으로 꺾이기 시작했다.
우지직.
탱.
빛을 잃은 큐빅이 바닥에 떨어지고 나선을 그리기 시작한 힘이 세 명의 몸뚱이를 하나로 엮기 시작했다.
콰지지지직!
“아아아악!”
허리가 뒤틀리고 팔 다리가 부러지며, 늑골이 열렸다.
피부 아래에서 꿈틀거리는 뼈들의 모습은 보는 것만으로 구토를 일으킬 끔찍한 모습이었지만, 습격자들이 당한 일에 비하면 끔찍하다고 말 할 수는 없었다.
쿵!
하나의 커다란 덩어리가 땅에 떨어졌다.
거의 완벽한 원형을 이룬 구체의 표면에는 흐르는 선혈로 반들반들했고, 강제로 으스러트린 뼈와 거죽에서는 더 이상 사람이었던 흔적을 찾기가 힘들었다.
커다란 거인이 양손으로 정성스레 반죽해서 만들어놓은 경단 같은 모습에 몇몇이 고개를 돌려 토악질을 시작했다.
“우에웩!”
“······ 히이이!”
“······ 맙소사.”
참혹한 광경에 부르바스는 눈을 감았다.
신관의 힘과 위대한 마법의 힘도 엄연히 한계가 있다.
지금까지 아렌이 생산해낸 장애인들을 무수히 고쳐낸 경험이 있는 아카데미이지만 눈앞의 저것은 어떻게 손을 쓸 수 없음을 직감한 것이다.
드웨인과 벡스터, 베로아, 7기사단의 표정이 창백해졌지만 눈을 돌리지는 않았고, 그 모습에 아렌은 만족한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강단이 있어 보이는 하인들의 모습에 만족한 아렌이 각기 흩어져서 어깨를 들썩이는 습격자들을 바라보았다.
쩍!
“아악!”
허공에서 갑자기 나타난 선에 습격자의 상체가 사선으로 분리되었다.
보나마나 즉사.
쩌저저저적!
동시에 무수한 선이 허공에서 생겨나더니 습격자들을 가로질렀고, 대부분의 습격자들이 재앙을 맞이하게 되었다.
허리가 갈려서 몸이 위아래로 나뉘어서 사망.
정수리에서 사타구니까지 가로지른 선이 몸을 반으로 나뉘어서 사망.
상체를 가로지른 선이 심장을 비롯한 장기들을 가로질러서 사망.
목이 잘려서 사망.
그 외에 무수한 참격으로 인한 죽음의 형태가 콜로세움에 펼쳐졌고, 자욱하게 피어오르기 시작한 피내음은 지옥의 한 가운데를 방불케 했다.
“히이이익!”
“도. 도망쳐!”
아무런 감정 없이 묵묵히 교수들을 상대하던 습격자들에게서 동요가 일어나더니 이내 그것은 공포로 변했다.
몸을 돌려 달아나기 시작한 습격자들이 나오기 시작했고, 소지하고 있는 큐빅의 힘을 이용해서 도주하는 그들의 행동은 신속하기 그지없었지만, 아렌은 여상하게 손을 들어 올릴 뿐 이었다.
손가락이 아무렇지도 않게 허공을 찍었고, 그 순간 공간을 격한 힘이 도주하는 습격자들에게 작렬했다.
뻐버버버벙!
공성추가 허공을 가르는 것 같은 소리와 함께 등을 보인 습격자들이 터져 나갔다.
누군가는 상체가 완전히 사라져버렸고, 누구는 하체가 없어졌으며, 재수 없는 누군가는 어중간하게 맞은 탓에 반신이 남아버렸다.
“키이이이이 ······.”
차라리 즉사했다면 고통은 없었을 것인데, 오러 사용자의 강인한 육체가 끈질기게 생명줄을 붙여놓았고, 한쪽 팔다리와 골반, 폐 한쪽이 사라져버린 습격자는 꿈틀거리며 피바다 속에서 고통스러워하고 있었다.
잠깐 사이에 이루어진 대 살육에 모두의 정신이 아늑해졌다.
그나마 익숙한 벡스터와 베로아도 이를 악물고 있을 뿐이니 나머지 사람들의 상태는 안 봐도 뻔한 일이다.
기절하는 관객과 학생들이 속출하고 차후에 이 일이 트라우마가 되어서 고생을 하겠지만 아렌이 알 바는 아니었다.
“자, 잠깐! 나, 나는 글로틴 자작가의 ······.”
습격자 하나가 다급히 복면을 벗어던지더니만 양손을 앞으로 내밀며 아렌을 향해 외쳤다.
자신의 신분을 밝히고 목숨을 부지하려는 행위였지만, 아렌에게는 통하지 않았다.
콰직!
“컥!”
목이 옆으로 꺾이더니 뺨이 어깨에 닿았다.
우지직!
척추가 옆으로 접혀서 어깨뼈가 골반에 닿았다.
와드득!
허벅지와 정강이가 가동할 수 없는 방향으로 꺾이면서 상체와 하체를 둥글게 말더니만 이내 사람이었던 습격자의 모습은 하나의 둥근 구체가 되었다.
탱.
빛을 잃은 큐빅이 바닥에 떨어지고, 그 순간 공포가 극대화 되었다.
“히이이익!”
“아아악!”
메뚜기처럼 사방으로 도망치기 시작한 습격자들의 모습을 바라보는 아렌은 전혀 서두르는 기색이 아니었다.
그저 묵묵히 손을 놀려 허공을 격해 하나둘씩 격살하는 모습은 권태로움마저 느껴질 정도였다.
* * *
쿵!
전신의 뼈란 뼈는 모조리 분쇄되어서 형태를 유지 못하는 시체가 바닥에 떨어졌다.
그리고 그 소리는 이곳에 있는 모두에게 울리는 조종과도 같았다.
“자.”
순식간에 살육을 마친 아렌이 느릿하게 고개를 돌려 지휘자를 바라보았다.
“이제 너 하나 남았구나.”
“······ 쉽지는 않을 거다.”
자신만만한 태도는 사라지고 긴장이 가득한 목소리로 지휘자가 손을 들었다.
우우웅!
그러자 놀랍게도 사방에 떨어져 빛을 잃은 큐빅들이 다시금 가동하며 지휘자에게로 몰려들었다.
수십 개의 큐빅들이 빛을 내며 허공에서 지휘자를 감싸는 모습은 일순간 감탄을 내뱉기에 충분했고, 상상도 못해 볼 충만한 힘이 지휘자에게 스며들었지만, 지휘자는 긴장을 놓지 못했다.
아렌이 손을 쓰기 시작한 시점에서 지휘자가 도주를 생각하지 않은 것이 아니었지만, 도주하지 못했다.
수십의 습격자들을 살육하면서도 아렌의 시선은 지휘자를 지켜보고 있었고, 사방을 둘러싼 압력에 지휘자는 감히 움직이지 못한 것이다.
우우우우웅!
큐빅들이 연동하며 막강한 마력이 장내를 휘감기 시작했고, 공간이 일렁이는 모습에 교수들과 관객들의 안색이 창백하게 변하며 몸을 피했다.
“말도 안 돼는!”
“결계를 펼쳐라! 잘 못하면 이 일대가 다 날아가 버린다!”
정신을 차린 마일리가 교수들을 독촉했고, 분분히 자리를 잡은 교수들의 손에서 뻗어 나온 빛이 주변을 감쌌다.
보는 것만으로도 정신이 아득해지는 마력의 파동이었지만, 정작 아렌은 태연했고, 지휘자는 긴장을 놓지 못했다.
“······ 죽이면 안 되네.”
“왜?”
지친 표정의 부르바스가 아렌에게로 다가와 말했지만, 아렌의 대답은 심드렁하기 그지없었다.
“······ 부탁하네.”
침중한 음성으로 정중하게 고개를 숙이는 부르바스의 모습을 잠시 바라본 아렌이 휘황한 빛에 감싸여있는 지휘자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준비는 되었느냐?”
“······ 그 오만을 후회하게 될 거다.”
나직한 아렌의 말에 흠칫한 지휘자가 으르렁거렸고, 동시에 큐빅의 모든 빛이 한 점에 집중되기 시작하더니만 아렌에게로 쏘아져 나갔다.
갑작스럽게 뻗어나간 빛이 아렌의 이마에 작렬했고, 지휘자의 입에서 환희에 찬 목소리가 울렸다.
“방심했구나!”
“마인드 브레이크!”
부르바스가 경악한 표정으로 아렌을 바라보았다.
제 아무리 강한 초인이라고 할지라도 정신이 죽으면 몸이 죽는 법이다.
물론 경지에 이른 오러나 마나 사용자쯤 되면 정신 방호력이 만만치 않아서 어지간한 정신 공격쯤은 무시하기 마련이지만, 수십 개의 큐빅을 집결시킨 공격이라는 것을 생각하면 그저 그런 정신 공격이 아닐 것이기 때문이다.
근처에 있던 부르바스가 그 빛의 파편에 스친 것만으로도 아득해질 정도의 일격이었으니 제 아무리 괴물 같은 아렌이라도 절대 무사하지 못할 것이라는 데에 지휘자는 내기라도 걸 수 있었다.
하지만.
“따끔하군.”
나른한 아렌의 목소리가 모든 희망을 뺏어 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