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counts gone crazy RAW novel - Chapter 87
087화
주문의 위력은 확실해 보였다.
아렌의 저항을 용납하지 않겠다는 듯, 아렌의 이마에서 빛을 발하고 있는 주문은 끊임없이 불길한 빛을 내뿜고 있었지만, 미간을 찌푸린 아렌이 먼지를 털 듯 가볍게 이마를 쓸었다.
텅!
“큭!”
그 순간 서로 공명하던 큐빅들이 커다랗게 진동하더니 이내 그 빛을 잃어가기 시작했고, 지휘자의 몸이 크게 흔들렸다.
제 아무리 큐빅을 매개체로 주문을 전개했다지만 주문이 강제로 파훼되는 것에 대한 반동이 전달 된 것이다.
“······ 어떻게 그럴 수가 있지?”
지휘자의 입에서 허탈한 목소리가 흘러나왔고, 그것은 이곳에 모인 모든 이들이 느끼는 감정이었지만 아렌은 심드렁한 표정을 지었다.
“무인은 심기체의 조화를 이루고 확고한 심상을 이룬 자를 말한다.”
아렌의 무저갱 같은 눈에서 붉은 빛이 떠올랐다.
“고작 외물 따위에 흔들릴 정도의 심상이라면 수련의 의미가 없지.”
모두가 아득한 표정을 지었지만, 몇몇의 얼굴에는 묘한 표정이 떠올랐고, 그 중에는 드웨인도 있었다.
‘심기체의 조화와 심상이라 ······. 도련님이 큰 가르침을 주셨구나.’
마스터를 목전에 두고 있는 드웨인은 말 그대로 한 발자국을 남겨놓은 상황이다.
그런 와중에 마스터를 넘어서는 무인이 확실해 보이는 아렌의 한 마디는 드웨인의 가슴에 커다란 파문을 주었던 것이다.
“······ 믿을 수 없다! 마스터는 물론이고 대마법사도 견딜 수 없는 일격이었는데!”
쥐어짜내는 것 같은 비명에 부르바스가 절로 고개를 끄덕였다.
주문의 파편만으로도 정신이 몽롱해진 부르바스이기에 지휘자의 말에 그 누구보다도 공감을 했지만, 드러난 결과가 이러니 어떠한 말을 할 수 있겠나.
그저 경이에 찬 눈으로 아렌을 바라볼 뿐이었다.
“그게 중요한 게 아니지.”
아렌이 천천히 손을 들어올렸다.
“큭!”
지휘자가 흠칫 놀라며 손을 어지럽게 놀리니 큐빅들이 진동을 하며 지휘자의 전신을 둘러쌌다.
파지지지직!
대응이 늦지는 않았는지 큐빅들이 전류를 흘리며 지휘자의 몸을 옥죄어오는 힘을 막아내었다.
“장난감도 숫자가 모이니 쓸 만하군.”
의외라는 표정을 지으며 말한 아렌의 한 마디에 부르바스와 마일리가 어이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큐빅은 마도공학의 결정체라고 할 수 있었다.
마법을 쓸 수 없는 자에게 마법을 쓸 수 있게 해주고, 마법사에게는 경지 이상의 마법을 쓸 수 있게 해주는 큐빅은 세기의 발명이라고 해도 이상하지 않았다.
그런 큐빅을 장난감 취급하는 아렌의 광오함에 기가 질린 것이다.
“하지만 결국 장난감이지.”
나직이 중얼거린 아렌이 손을 앞으로 내밀자 붉은 기가 감도는 커다란 짐승의 손이 나타났다.
“흡!”
“헉!”
“······ 저게 뭐야.”
“오러의 유형화! 그렇다고 해도 저런 것이 가능한 것인가?!”
대부분의 관객들이 비명을 질렀고, 일정이상의 경지에 있는 기사들은 말도 안 되는 오러의 운용에 대경실색했다.
“······ 괴물.”
그것은 지휘자도 마찬가지였고, 자기도 모르게 억눌린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사람을 괴물이라고 부르다니 너무하는구나.”
자그마한 아렌의 손을 따라 일렁이는 괴수의 손.
그 비현실적인 광경에 모두가 숨을 죽였다.
“장난감은 조금만 험하게 다루어도 망가지지.”
아렌의 손이 허공을 가로질렀다.
“어디까지 버티는지 보자꾸나.”
붉은 괴수의 손이 지휘자를 덮쳤다.
* * *
파지지지지직!
괴수의 손이 지휘자를 감싸 안을 듯 떨어져 내렸지만, 큐빅으로 이루어진 보호막도 만만치 않았다.
촘촘히 형성된 방호 마법과 각종 보조 마법들은 끊임없이 적층되어서 생성과 소멸을 반복하고 있었고, 허공의 한 지점에서 멈춘 아렌의 손과 격렬하게 대치하기 시작한 것이다.
정신을 추스른 일행들은 경이에 찬 시선으로 그 광경을 바라보았다.
“저 손이 막히는 건 처음 보네요.”
“큐빅이 대단하긴 대단하군.”
레티시아와 네이던의 말에 일행이 고개를 끄덕이며 동의를 표했다.
꽤 가까이서 아렌의 싸우는 모습을 관찰한 그들에게 있어서 저 괴수의 손은 무적의 상징이나 다름없었다.
그 상대가 누구이든지간에 철저하게 분쇄하는 힘의 결정체.
심지어 마룡봉인체마저도 저 손앞에서는 무사하지 못했었는데, 그 힘에 저항하고 있는 큐빅의 대단함이 새삼스럽게 다가온 것이다.
“하지만 얼마 못 가겠군.”
도리안의 심드렁한 말에 모두가 고개를 끄덕였고, 엘레나가 주먹을 꽉 쥐었다.
피렌사는 끊임없는 혈족 개량을 통해서 완성을 향해 나아가는 일족이다.
그런 도리안과 엘레나에게 있어서 큐빅이라는 외물은 편리한 도구 그 이상이하도 아니었고, 그런 것에 의지하는 것이 좋아 보이지 않았던 것이다.
콰지지직!
그리고 도리안의 말대로 힘겹게 버티던 큐빅이 흔들리기 시작하더니 이내 몇몇의 표면에 금이가는 것이 보였다.
터터텅!
수십 개의 큐빅 중에 힘을 잃은 것들이 하나둘씩 바닥으로 떨어졌고, 남아있는 것들이 간격을 좁히며 더욱 촘촘하게 지휘자를 둘러쌌지만 그 힘은 처음보다 현저히 약해져 있었다.
마지막 힘을 끌어올리려는 듯, 큐빅이 내는 빛이 더욱 환해졌지만, 그것도 잠시 뿐.
괴수의 손이 방호마법을 꽉 쥐었고, 이내 커다란 소리가 울렸다.
콰창!
수십 겹의 방호마법이 깨지면서 빛의 파편으로 흩날리는 모습은 긴장에 차 있던 중인들의 시선을 한순간 모을 정도로 아름다웠다.
터터터터텅!
공중에 떠 있던 수십 개의 큐빅들이 땅으로 떨어지는 소리가 들렸고, 그 순간 지휘자가 재빠르게 마나를 끌어올렸다.
큐빅의 힘과 아렌의 손이 상쇄되어 한 순간이나마 힘의 공백이 생긴 이때야말로 지휘자가 노리던 틈이었다.
훙!
지휘자가 차고 있는 팔찌가 휘황하게 빛나며 주문을 짜 올리기 시작했다.
“공간이동 아티펙트!”
마일리가 경악에 찬 목소리로 외쳤다.
마법진을 구성하고 전담 마법사가 심혈을 기울여야만 하는 공간이동을 하나의 아티펙트에 담는 다는 것은 아득할 정도의 난이도를 가지고 있었고, 그런 아티펙트는 제국의 보물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 아티펙트가 지금 이 자리에서 나타난 것이니 마일리의 경악은 당연한 것이다.
‘역시!’
그리고 부르바스는 그 모습에 확신에 찬 표정을 지었다.
방계 황족이며 대마법사인 부르바스는 제국 보물고에 있는 대부분의 아티펙트에 정통해 있었고, 공간이동의 팔찌는 그의 기억 속에 있는 물건이었다.
이 사단의 흑막이 누구인지를 확신한 것이다.
지휘자의 마나에 호응한 것은 공간이동 팔찌뿐만이 아니었다.
몸의 곳곳에서 빛이 피어오르며 지휘자의 모습이 사방에서 나타나기 시작했고, 자욱한 안개가 깔렸으며, 인식을 방해하는 기운이 사방을 잠식해 들었다.
“다음에 보도록 하지.”
지휘자의 입에서 득의양양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단 한 번의 기회를 노리기 위해서 틈을 노렸고, 아티펙트가 가동된 이상 그의 탈출을 막는 것은 불가능하니 미래를 노릴 수 있게 된 것이다.
슬그머니 흐려지는 그의 모습에 모두들 다급한 표정을 지은 그때였다.
“장난감은 장난감이라고 말하지 않았더냐.”
쫘악!
아렌의 나른한 목소리와 함께 비단을 찢는 것 같은 소리가 들렸다.
“크아아아악!”
허공에 그어진 선이 지휘자의 사지를 가로질렀다.
* * *
푸확!
마나의 유동 때문에 허공에 떠있는 지휘자의 몸에서 피분수가 터져 나왔다.
“아아악!”
아티펙트로 이어지는 마나가 멈춘 탓인지, 안개와 환영, 인식방해의 기운이 서서히 사라져갔지만 공간이동의 주문은 완성되어 버렸고, 덕분에 팔 한쪽이 알 수 없는 곳으로 사라져 버렸다.
쿵!
“크억!”
사지가 사라져버린 몸뚱이가 땅으로 떨어졌고, 결손 된 신체에서 오는 고통과 주문의 취소로 인한 반동, 땅에 떨어진 고통이 복합적으로 어우러져 지휘자를 괴롭혔다.
“으어어어어 ······.”
복면 너머로도 확연히 알 수 있는 거품을 물고서 괴로워하는 지휘자를 보며 아렌이 한 발자국 다가섰다.
“······ 정말로 단순하게 문제를 처리하는군. 아티펙트가 문제라면 신체에서 배제하면 된 다라 ······. 하지만 누가 저런 발상을 하고 실제로 실행에 옮기겠는가.”
마일리의 탄식을 뒤로 하고 지휘자에게 다가선 아렌이 바닥에서 꿈틀거리는 지휘자를 가만히 바라보다 발을 들어올렸다.
쿵!
“크억!”
자그마한 발이 명치에 살포시 닿았을 뿐이지만, 커다란 충격음과 함께 지휘자의 신체가 단단하기 그지없는 바닥으로 움푹 파고들었다.
우드득.
뼈가 갈리는 살벌한 소리에 부르바스가 황급히 다가섰다.
“멈춰주게.”
드드드득!
“커어억!”
발이 가하는 압력에 전신의 뼈가 분쇄되기 시작하는 지휘자를 무심한 눈길로 바라보던 아렌의 시선이 부르바스에게로 향했다.
“큭!”
무저갱 같은 시선에 자신도 모르게 신음을 흘린 부르바스를 보면서 아렌이 입을 열었다.
“왜?”
까드드득.
“꺼, 꺽!”
절단된 사지와 몸의 구멍이란 구멍에서 온통 선혈을 흘리고 있는 지휘자의 몸통에 발을 올리고 있는 모습은 형언할 수 없는 공포를 가져다주었지만 부르바스는 최대한의 용기를 끌어올렸다.
“죽을 짓을 했으면 죽어야지.”
아렌의 나직한 말소리에 모두가 고개를 끄덕였다.
귀족의 명예는 소중한 법이고, 은원을 분명히 하는 제국의 관습상 아렌의 말은 정명한 것이었다.
거기에 어쩌면 오늘 삶을 끝낼 수도 있는 상황에서 아렌이 이들의 목숨을 구한 것이나 마찬가지이니 중인들은 아렌의 권리를 침해할 생각이 없었다.
“······ 자네에게 했던 부탁을 기억하는가. 그 부탁을 완수하기 위해서는 저자가 죽어서는 안 되네.”
난처한 표정으로 머리를 굴린 부르바스가 힘겹게 이야기를 꺼냈다.
부르바스의 이야기에 아렌이 눈을 빛냈다.
안타이오스에 입장하기 전 부르바스는 혹시 모를 상황에 대한 대비를 아렌에게 부탁했었고, 결과적으로 아렌은 부르바스의 부탁을 들어준 것이 되었다.
그리고 그 부탁의 완성을 위해서 지휘자의 목숨이 필요하다는 것은 억지스럽기는 하지만 이치에 맞는다고 아렌은 생각했다.
“흠.”
잠시 생각한 아렌이 고개를 끄덕이며 발을 떼었다.
“······ 고맙네.”
“약속했던 대가는 제대로 지불해야 할 거야.”
“······ 당연히.”
진심이 어린 부르바스의 말에 아렌이 몸을 돌리려던 그때였다.
“큭! 쿨럭! 두, 두고 보자 ······. 이 괴물 녀석 ······.”
흐릿하던 지휘자의 눈가에 악독한 빛이 떠오르고 저주의 말이 흘러나왔다.
“멈춰라!”
“호오?”
부르바스가 다급하게 지휘자의 입을 막으려 했지만, 이미 뱉은 말을 돌이킬 수는 없었다.
아렌이 흥미롭다는 표정을 지으며 지휘자를 내려 보았고, 부르바스가 황급히 시선을 가리려 했지만, 이미 늦었다.
“제법 독기가 있구나.”
“크흐 ······ . 뭐?”
예상외의 반응에 지휘자가 당황한 사이 아렌이 말을 이어나갔다.
“여기서는 너를 죽이는 게 후환이 없겠지만, 일이 이렇게 되었으니 죽이지는 못하겠군.”
아렌의 입가에 미소가 떠올랐다.
“그러니 차라리 죽는 게 낳겠다는 생각을 하게 만들어주겠다.”
“뭐?!”
아렌의 손가락이 허공을 격하고 그 순간 붉은 빛이 지휘자의 몸에 틀어박혔다.
“크헉!”
지휘자의 입에서 다시금 선혈이 터져 나오고 지휘자의 온 몸 근육이 뒤틀리기 시작했다.
뿌지지직!
“크! 크아아아악!”
상리를 벗어난 근육의 움직임이 피부 위로도 보일정도였고, 제 멋대로 움직인 근육의 움직임이 끔찍한 고통을 안겨 주었다.
“하루의 절반을 고통 속에서 살게 될 것이다.”
아렌이 엄숙한 목소리로 말했다.
“마나를 사용할 수 없을 것이고, 상처의 회복은 더뎌질 것이다.”
지휘자의 몸이 크게 흔들거렸다.
“외부의 간섭을 쉬이 받을 수 없을 것이니, 그 고통을 감내하는 것은 오로지 자기 자신뿐일 것이다.”
형언할 수 없는 기운이 아렌의 말과 함께 지휘자의 몸으로 파고들었다.
“이것도 이겨내고 다시 내 앞에 선다면 감탄해주마.”
몸을 돌리는 아렌의 태도에는 일말의 미련도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