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counts gone crazy RAW novel - Chapter 92
092화
안타이오스를 유지하던 장치를 모두 먹어치우고 나타난 블랙박스의 모습에 사람들은 눈을 떼지 못했다.
“······ 아름답군.”
누군가의 중얼거림이 들렸고, 사람들은 그 말에 반박하지 못했다.
요요한 빛을 발하며 허공에 떠있는 검은색의 정육면체는 무한한 마력으로 사람을 홀리고 있었던 것이다.
“내, 내거다!”
순간 교수들 중 누군가가 큰 소리로 외치며 블랙박스를 향해 달려들었다.
“이봐!”
“홀렸나!”
정상이라고는 보기 어려운 표정과 광기가 빛나는 눈동자, 탐욕에 가득한 입술까지.
철저한 이성이 가득했어야 할 얼굴에는 끝이 없는 탐욕만이 남아있었다.
마법사라고는 믿기지 않을 정도의 신체능력으로 다가간 교수가 침을 흘리며 블랙박스에 그 손을 뻗었고, 그 손이 블랙박스에 닿으려던 그 순간.
치지지직.
블랙박스의 표면에 스파크가 튀기 시작하더니 교수의 손에 닿았다.
“아아아악!”
스파크가 닿은 손이 사라져갔다.
“뭐야?”
“······ 힘의 총량이 너무 강해. 태우는 것도 아니고 그냥 소멸시켜 버린 거야.”
반딧불만한 스파크가 교수의 몸에 달라붙었고, 잠깐 빛이 번쩍이는가 싶더니 스파크에 닿은 교수의 몸이 사라져갔다.
치직.
거짓말처럼 한 인간의 몸을 소멸시켜버린 작은 스파크가 너울거리더니 이내 공기 중으로 사라져버렸고, 그 광경을 지켜보던 모두는 말을 잊지 못했다.
잠시지만 블랙박스의 마력에 홀렸던 모든 이들의 가슴속에 공포가 자리 잡은 것이다.
“······ 저거 어떻게 합니까?”
“······ 일단 봉인하고 힘을 빼야겠지요. 지금으로서는 그 수밖에 안 보이는군요.”
마일리의 대답에 모두의 안색이 어두워졌다.
티끌만한 파편만으로 사람 하나를 간단히 소멸시켜 버리는 힘인데, 이것이 본격적으로 풀려나거나 한다면 그 여파가 어디까지 미칠지 계산이 안 되는 것이다.
단순히 에너지 총량만 많은 물건이라면 어떻게든 안정화시킨 다음 연구를 하거나 마력 배터리로 쓰겠지만, 블랙박스는 그 안에 무엇이 있는 지 파악이 안 되는 물건이니, 함부로 건드릴 수도 없다.
“······ 그게 최선이겠군. 그럼 결계를 준비하지.”
“······ 당분간 마력 배터리 걱정은 없겠군요.”
부르바스가 긴장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고, 누군가 농담을 했지만, 그에 호응하는 자들은 없었다.
연구만 할 수 있다면 획기적인 주제가 되겠지만, 일대를 날려버릴 것이 확실한 물건을 가지고 불확실성에 도전할만한 마법사는 최소한 이 자리에는 없었다.
“혹시 모르니 자네도 힘을 보태주게나.”
“그러지.”
부르바스의 부탁에 아렌이 고개를 끄덕였다.
아렌의 용안으로 보이는 블랙박스의 모습 역시 불안정하기 그지없었던 터라 그냥 놔둘 수는 없었던 것이다.
교수들이 부산하게 움직이며 결계의 범위를 조정하고 주문을 계산하며 준비하던 그때였다.
파지지직.
요요한 빛을 뿜어내고 있던 블랙박스의 표면에 스파크가 돌아다니기 시작하더니 이내 덜덜 떨리기 시작했다.
“······ 이런 젠장!”
“서둘러!”
지성 가득한 교수의 입에서 나오지 않아야 할 쌍소리가 터져나왔고, 다급한 기색의 교수들이 급히 수인을 맺자, 거대한 문자로 이루어진 결계가 블랙박스를 감쌌다.
우우웅.
블랙박스를 중심으로 전개된 3차원의 결계가 휘황한 빛을 발하며 블랙박스를 감싸고 억제하기 시작했지만, 뭐가 잘못된 것인지 블랙박스의 표면에 흐르는 스파크는 더욱 거세어져만 갔다.
짜자자작!
이제는 스파크 수준이 아니라 벼락이라고 해도 믿을 정도의 기세가 블랙박스 표면을 타고 흐르기 시작했고, 그렇게 날뛰던 빛줄기가 결계의 표면에 닿았다.
콰직!
“헛!”
“버텨!”
빛줄기를 통해 상상도 못할 힘이 결계에 밀려들기 시작했다.
교수들의 얼굴이 일그러지고, 복잡하게 움직이는 손과 다급하게 입에서 튀어나온 주문이 결계에 힘을 보태었지만, 그를 비웃듯 빛줄기에서 밀려나오는 힘은 점점 더 강해져만 갔다.
결계가 마치 태양처럼 빛나고 이대로라면 폭발할 것이 분명해 보이는 상황.
쩍.
그 순간 허공에 나타난 괴수의 손이 결계를 감싸 안았다.
흐릿한 형태지만 분명한 물리력을 가진 손이 결계를 감쌌고, 그제야 교수들은 압력이 조금 줄어드는 것을 느끼며 시선을 돌렸다.
자그마한 손.
그 손에서 시작된 괴수의 손이 결계를 압축하고 있었다.
“······ 고맙군.”
부르바스가 힘겹게 입을 열었다.
마일리와 함께 결계의 축을 담당하고 있던 그에게 가해지던 압력은 상상이상이었으니, 그의 입에서 감사의 말이 나오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감사는 이른 거 같다.”
전혀 힘들어하지 않는 표정의 아렌이 아무런 감정 없이 내뱉은 말이지만, 부르바스는 인상을 구길 수밖에 없었고, 블랙박스로 급히 시선을 돌렸다.
끼리리릭.
사방으로 번개를 내뿜으며 빛을 발하던 블랙박스가 기묘한 소리와 함께 변화하고 있었다.
블랙박스의 표면에 금이 가는가 싶더니 견고하기 짝이 없던 몸체가 벌어지기 시작했다.
“마력 총량 측정 불능!”
관측을 하던 교수의 입에서 비명이 터져 나왔고, 모두의 안색이 거무칙칙해졌다.
“결계에 힘을 더해!”
교수들이 필사적인 각오로 마력을 쏟아 부었지만, 전혀 아랑곳하지 않다는 듯이 벌어지기 시작한 블랙박스의 몸체는 각 면이 천천히 분리가 되더니 그 내용물을 세상을 공개했다.
“아!”
“······ 세계인가.”
휘황한 빛을 내뿜고 있는 하나의 구체.
놀랍게도 아름다운 그 구체는 온갖 색이 교차하며 그 아름다움을 세상에 과시하고 있었다.
마법의 관측으로 그들이 살고 있는 별이 둥글다는 것은 이미 상식이 되어버린 상황이다.
그런 그들의 눈에 저 구체는 별을 연상시키고 있었으니, 하나의 세계라고 봐도 무방해 보인 것이다.
“······ 결국 해냈군.”
부르바스의 허탈한 목소리가 들렸다.
크기는 중요하지 않았다.
작고 연약해 보이지만, 저 작은 구체는 한없이 세계에 가까웠고, 그것은 지식과 이해를 떠난 강렬한 느낌이었다.
이 자리의 그 누구도 저 구체가 세계라는 것을 의심하지 않는 것이 그 증거가 될 것이고, 그것을 만들어낸 이가 황제라는 점이 부르바스의 마음을 부글부글 끓게 만들었다.
위대한 마법의 결과물에 모두가 넋을 잃고 있었던 그 때.
쩍.
한없이 작지만 천둥 같은 소리와 함께 구체의 표면에 금이 가는 것이 보였다.
* * *
세계의 파멸이라는 것은 어떤 느낌일까?
절대로 좋은 것이 아니라는 것 만은 장담할 수 있을 것이다.
“결계를 더 압축해!”
“막아야 한다!”
“안정화 시켜봐!”
한없이 작은 실금이었지만, 세계를 모방한 것에 금이 갔다는 것의 의미를 알아차린 교수들이 대경실색해 비명을 질렀다.
쩌적.
여기저기서 균열을 일으키기 시작한 구체를 보면서 필사의 각오로 결계를 압축했다.
아무리 작아도 세계이고, 하나의 별이다.
무한한 힘과 가능성을 가진 별이 이 자리에서 폭발한다면 그 여파가 어디까지 미칠지 상상하는 것 만으로 아찔해지는 것이다.
아렌 역시 인상을 구기며 힘을 끌어올렸지만, 그것을 비웃듯이 균열은 구체를 다 뒤덮을 수준이 되었다.
모두가 참담한 안색이 되었고, 표정에는 절망이 떠올랐다.
그들이 죽는 것은 물론이고, 아카데미를 포함해서 유피테르가 소멸하는 것은 기정사실이나 다름없었다.
아니 차라리 그 정도면 다행이라고 할 정도의 피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아렌의 미간이 찡그려지더니 작은 머리에서 김이 세어나왔다.
초고속으로 사고하는 뇌의 열기에 체내 수분이 증발하는 현상이었지만, 구체에 정신이 팔린 그 누구도 아렌에게 시선을 주지 않았다.
“쯧.”
이윽고 결론을 내린 아렌이 혀를 차며 한걸음 앞으로 나섰다.
“아렌 공자!”
“······ 방법이 있는 건가?”
마일리가 놀란 얼굴로 아렌을 멈춰 세웠고, 부르바스가 지친 얼굴로 물었다.
“나 하나 몸을 빼는 것은 어렵지 않지만.”
아렌의 중얼거림에 모두의 시선이 쏠렸다.
평소와는 다르게 짜증이 서린 표정에 모두가 흠칫거렸다.
“그랬다가는 하인들의 목숨을 장담할 수 없겠지.”
짜증이 서린 아렌의 목소리를 들으며 부르바스는 아렌이 자기 자신을 설득하고 있는 거라는 느낌을 받았지만, 입을 열지는 않았다.
“무릇 주인이라 하면 하인의 목숨을 챙겨야 하는 법이니 안 나설 수가 없구나.”
느릿하게 걸어간 아렌의 몸이 결계의 앞에 섰다.
“도박은 좋아하지 않지만 할 때는 해야겠지.”
“흡!”
“······ 말도 안 돼.”
내외부의 모든 것을 막아 세워야 할 결계를 아무런 저항도 없이 통과한 아렌이 번개가 난무하는 공간속을 아무런 피해 없이 통과했다.
마치 번개가 그의 몸 주변에는 오지 않겠다는 것 같은 움직임에 모두의 눈이 부릅떠졌다.
어느덧 구체 앞에 선 아렌이 양손을 가만히 내밀었다.
온통 금이 가서 언제 부숴져도 이상하지 않을 것 같은 모양의 구체를 양손으로 감싸 쥐는 모양을 취한 아렌이 나직한 목소리로 말했다.
“최대한 결계를 유지해라.”
아렌의 목소리에 뭐라고 말하고 싶은 표정의 부르바스였지만, 이내 무거운 얼굴로 고개를 끄덕이고 힘을 끌어올렸다.
그에 호응하듯 교수들이 결계에 힘을 불어넣었고, 일순간이지만 결계가 끝없이 외부로 힘을 투사하려는 구체의 힘을 억제한 그 순간.
콰직!
아렌의 두 손이 결계를 붙잡더니 이내 부숴버렸다.
* * *
한때 무진장의 힘을 사역했었던 아렌으로서도 처음 접해보는 막강한 힘이었지만, 아렌은 능숙하게 힘을 유도하기 시작했다.
쿠르르릉!
거칠게 꿈틀거리며 밖으로 뛰쳐나가려는 힘을 그의 양손에 가두고 이내 온 몸의 기맥을 활짝 열었다.
탈출구를 찾던 힘이 아렌의 양손으로 스며들더니 이내 전신의 기맥을 달렸다.
찌지지직.
인간의 한계를 벗어나 용에 가깝게 변해버린 아렌의 기맥이었지만, 막강한 힘의 흐름에는 얼마 버티지 못했다.
전신의 기맥이 찢어발겨지고, 날뛰기 시작한 힘이 아렌의 전신을 파괴하듯 뻗어나갔지만, 아렌의 표정은 변하지 않았다.
붕괴되어가는 몸의 고통이라는 것은 이루 상상할 수 없는 것이었지만, 반개한 아렌의 눈동자에 떠오른 빛은 냉정하기 그지없었다.
“먹겠다.”
형언할 수 없는 힘이 담긴 한 마디가 아렌의 입에서 흘러나왔고, 세상의 법칙에 간섭했다.
와드드드득.
붕괴되어가던 신체에 의지가 깃들고, 자신을 파괴하던 힘과 맞서기 시작하더니 이내 먹어치우기 시작했다.
구체의 힘이 아렌의 신체를 붕괴시키고, 붕괴된 신체가 구체의 힘을 먹어치우며 재생하는 지옥 같은 순환이 시작되었다.
금성철벽과도 같은 의지가 부룡기공을 일으키고, 이제 막 기지개를 켜기 시작한 용이 눈을 떴다.
콰드드드득.
용의 의지가 전신에 미치기 시작하니 붕괴와 재생의 싸움의 양상이 변했다.
우득, 우드득.
붕괴의 속도가 점점 느려지고 재생과 동시에 성장이 이뤄졌다.
온 몸의 털이란 털이 모두 빠지고, 피부가 쩍 갈라져 떨어져나가니 근육이 외부로 노출되었다.
괴사한 장기가 이내 불타올라 사라져버리고, 새로운 장기가 생성되어 자리를 채웠다.
터져 나간 안구가 재생되고, 늘어난 골격에 따라 근육이 달렸다.
피부가 솟아나고, 백금발의 체모가 솟아나더니만 이내, 잘려져 나갔다.
백회가 열리고 검붉은 기운이 하늘로 빠져나가니, 마치 땅과 하늘 사이를 잇고 있는 기둥처럼 보였다.
한없이 작아진 구체가 겨자씨만한 크기로 변했고, 압축될 대로 압축되어져서 세상 그 무엇보다도 단단하게 변했다.
불순물이 모두 빠져버린 세상의 결정체를 가만히 바라보던 아렌이 이내 입 안으로 삼켰다.
격렬한 힘의 흐름에 이미 결계는 무너지기 일보 직전이었고, 그런 빛과 어둠이 혼재된 결계를 가로지르며 아렌이 발걸음을 내딛었다.
“······ 맙소사.”
누군가의 입에서 탄식이 흘러나왔고, 모두의 시선은 아렌에게서 떨어질 줄 몰랐다.
“······ 바디체인지.”
소년의 모습에서 훌쩍 성장한 청년의 모습이 된 아렌이 그곳에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