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counts gone crazy RAW novel - Chapter 99
099화
원래 성격이 소심하고 아기자기한 것을 좋아하는 콜레트의 쿠키 굽는 솜씨는 정평이 나 있었다.
그런 와중에 아렌에게 매일같이 쿠키를 구워 주다보니 그 솜씨는 더욱 발전, 이제는 어지간한 대가의 경지에 다다라 있었다.
맛은 물론이고 적당한 단단함까지 겸비해서 식감도 일품인 콜레트의 쿠키는 아렌에게 몇 번 얻어먹어 본 기사들도 호평하는 일품이다.
그러나.
제아무리 콜레트의 쿠키가 명품의 반열에 들어섰다고 하더라도 사람의 머리를 날려 버리는 것은 완전히 다른 이야기다.
경지에 이른 기사가 물체에 오러를 불어넣어서 내구도를 올리는 것은 그렇게 어렵지 않은 이야기지만 그것을 쿠키로 해냈다는 것을 믿을 수 가 없는 것이다.
거기에 머리가 날아가 버린 상대가 마스터이다 보니 더욱 더 지금의 상황이 믿어지지 않았다.
하지만 상황은 일어났고, 눈앞의 현실에 눈을 돌릴 만큼 어리석은 자들은 이 자리에 몇 없었다.
“······누구냐?”
기세등등한 미소와 좌중을 압도하던 기세는 간곳없이 사라져 버린 중년인이 잔뜩 긴장한 얼굴로 물었다.
오득.
그렇지만 아렌은 그 말을 듣지 못했다는 듯이 쿠키를 베어 물었다.
오득.
사방에 침묵이 깔린 상황에서 쿠키를 씹는 소리만이 울리는 기묘한 시간이 흘렀지만, 그 누구도 아렌에게 뭐라고 하는 사람은 없었다.
아렌이 쿠키를 씹는 소리가 그들의 심령을 자극하며 공포를 끌어올리고 있었던 것이다.
당당하기 짝이 없는 마스터가 한낮 쿠키소리에 공포를 느꼈다면 질 나쁜 농담이라고 치부하겠지만, 현실이 이러하니 거기서 오는 괴리감에 공포심은 배가 되었다.
“무례한 놈이구나.”
천천히 쿠키를 씹던 아렌이 손수건으로 입가를 훔치더니 나직하게 중얼거렸다.
동작 하나하나가 우아하기 그지없어서 지금 이 자리가 어느 귀족가의 식사자리 같은 착각을 불러일으킬 정도였지만, 거기에 감탄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라인드 백작가의 적자. 아렌 드 그라인드 님이십니다. 예의를 갖추세요.”
하인의 위세는 주인에게서 나오는 법이다.
어느덧 아렌의 곁에 서서 시중을 들던 베로아가 앞으로 한발 나서서 호통을 쳤지만, 도적들은 잠시 움찔할 뿐, 아무런 반응도 보이지 않았다.
아렌의 눈.
반쯤 감겨있어서 귀찮아하는 빛이 역력한 그 눈이 그들을 주시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라인드의 괴물이셨군.”
“언행에 주의하시기 바랍니다.”
중년인의 중얼거림에 베로아가 발끈했고, 아렌의 일행들에게서 날카로운 기세가 풍기기 시작했다.
괴물이라는 것을 부정하는 이들은 아무도 없지만, 그것을 면전에 대고 말하는 것은 또 다른 일이었고, 그들의 주인을 모욕하는 행위라고 판단한 것이다.
“건방지군.”
드웨인이 굳은 얼굴로 앞으로 나서 검을 겨눴다.
이제 막 마스터에 다다른 드웨인이 중년인과 싸운다면 승산이 높지 않겠지만, 주인이 모욕당했다고 생각하면 그런 것 따위는 상관없는 것이다.
당장이라도 뛰쳐나가려는 듯, 드웨인의 전신에서 살벌한 기세가 피어올랐고, 그에 호응한 기사단 역시 제 각기 무기를 고쳐 잡았다.
제 아무리 아렌에게 기선을 제압당하고 있지만 직접적인 위협에 도적들 역시 반응했고, 지금 당장이라도 칼부림이 일어나려는 순간이었다.
“잠깐. 잠깐.”
중년인이 양 팔을 앞으로 내밀며 한 발자국 물러섰고, 극단으로 향하던 드웨인의 기세가 멈칫거렸다.
절묘한 타이밍에 한발 물러난 중년인의 움직임은 최고점에 오르려던 기세를 비켜가게 만들었으니, 중년인의 경험이 보통이 아님을 알 수 있게 해주는 대목이었고, 드웨인의 눈빛이 깊어졌다.
“공자님을 모욕하려는 의도는 아니었다. 사과하지.”
눈앞에 있는 검들은 보이지도 않는 다는 양, 고개를 숙이는 대범한 모습에 기사들이 감탄하는 표정을 지었다.
제 아무리 적이지만 마스터에 이른 위대한 검사가 예의를 차리는 모습은 기사들의 마음을 울리는 무엇인가가 있었다.
“우리 쪽 인원도 한 명 죽었고 ······. 공자님에 대한 모욕의 대가는 치렀으니 이쯤에서 물러나고 싶은데 어떤가?”
“으음!”
“······틀린 말은 아니군.”
입을 잘못 놀리기는 했지만, 마스터의 목숨을 명예의 대가로 내놓았으니 체면을 차려 줄대로 차려준 셈이라, 드웨인을 비롯한 기사들의 기세가 누그러들기 시작했다.
힘을 제일의 가치로 두고 있는 제국의 정서 상 극상의 대우를 받은 것이니 기사들의 마음속에 있는 불만도 사그라들은 것이다.
그런 기사들의 모습에 회심의 미소를 지은 중년인이 상황을 마무리 지으려 말을 이으려는 그때였다.
콰지직!
“크아악!”
밤이라서 유난히 커다랗게 들리는 소리가 모두의 귓가에 파고들었고, 그 순간 등줄기에 소름이 시퍼렇게 솟아올랐다.
“어, 어어억!”
양 정강이가 두 동강이 나서 강제로 바닥에 꿇려진 중년인이 괴로워하는 모습에 모두가 경악해 있는 그 순간 아렌이 한 발자국 앞으로 나섰다.
“가관이군.”
평소와 다를 바 없는 목소리였지만, 알게 모르게 스며들어 있는 냉기에 모두의 머리카락이 쭈뼛 서는 것 같았다.
* * *
아렌은 기분이 좋지 않았다.
겁도 없이 자신의 일행마저 해치운다고 하는 녀석을 죽인 것도 잠시, 상대측에 있는 녀석의 입담에 넘어가 상황이 마무리되려 하지 않았던가.
하인들의 능숙한 대응은 마음에 들었지만, 상대방의 사탕발림에 너무나도 쉽게 넘어가는 하인들의 모습이 아렌의 기분을 상하게 한 것이다.
“드웨인.”
“옛! 도련님!”
아무런 감정도 실리지 않은 여상한 목소리였지만, 드웨인은 세상 누구보다 빠르게 아렌을 향하여 한쪽 무릎을 꿇었다.
미세한 감정의 유동에도 세상이 반응하는 것이 초인의 경지이고, 실제로 아렌의 기분이 가라앉음에 따라서 주변의 온도가 미세하게나마 내려갔다.
너무나도 미세해서 기사들도 잘 느끼지 못할 정도이지만, 드웨인은 그 변화를 감지하기에 충분했고, 납작 엎드린 것이다.
“너희들의 주인이 누구냐.”
“도련님이십니다!”
쿵!
아렌의 물음과 함께 7기사단의 전원이 한쪽 무릎을 꿇으며 외쳤다.
비록 적의 마스터가 심각한 부상을 당한 상황이었지만, 아직까지 도적들의 병력이 시퍼렇게 살아있는 상황에서 앞뒤 가리지 않고 아렌에게 무릎을 꿇는 기사들을 바라보며 로랑 자작가의 인원들은 감탄한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아렌이 휘하의 기사들에게 절대적인 지지를 받고 있다는 증거였기 때문이다.
“그렇게 생각하느냐?”
“물론입니다!”
나른한 아렌의 말에 드웨인과 기사들이 피가 끓는 것 같은 심정으로 외쳤다.
그들도 정신이 번쩍 들은 것이다.
위대하기 짝이 없는 마스터가 그들의 체면을 살려주는 모습에 취해서 아렌의 의사를 묻지 않았으니 입이 열 개라도 변명할 여지가 없었다.
“한번 나온 말은 되돌릴 수 없다.”
아렌의 시선이 도적들에게로 향했고, 그 순간 무형의 압력이 도적들을 짓눌렀다.
“헙!”
“큭!”
별다른 힘을 쓰지는 않았지만, 무거워진 대기가 도적들을 옥죈 것이다.
드드득.
“크악!”
겨우겨우 응급처치를 한 중년인의 입에서 다시금 비명이 터져 나왔다.
마스터라도 쉬이 볼 수 없는 중상인데 거기에 압력이 가해지니 짓눌러진 신경이 강력한 통증을 유발한 것이다.
“입을 막겠다고 나선 놈들과 타협 할 생각을 하다니 제 정신이냐?”
“······뭐라 드릴 말이 없습니다.”
아렌의 빈정거림에 드웨인이 침통한 음성으로 답했다.
“사람은 실수를 할 수 있다.”
끼기긱.
“크아아아악!”
뼈가 어긋나는 소리와 함께 중년인의 비명소리가 커졌지만, 드웨인과 기사들은 그런 것에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
“사람이라면 어쩔 수 없지. 완벽한 것은 없으니까. 하지만 놀아나지는 말아야 해.”
“도련님의 말씀이 옳습니다!”
바닥에 고개를 처박은 드웨인이 절절한 목소리로 외쳤고, 기사들 역시 땅바닥에 머리를 박았다.
완전 무방비 상태인 일행에게 도적들이 덮쳐올만도 하건만 이 자리의 그 누구도 움직이지 않았다.
마치 아렌이 허락하지 않았다면 숨조차 쉴 수 없을 것 같은 분위기가 장내를 지배하고 있었다.
“일어서라.”
처처척!
그런 모습을 잠시 동안 바라보던 아렌의 입에서 나직한 한 마디가 흘러나왔고, 드웨인과 기사들이 번개처럼 자리에서 일어섰다.
굳어진 얼굴과 무시무시한 눈빛을 발하고 있는 그들의 표정을 본 아렌이 고개를 끄덕였다.
“이제야 쓸 만한 표정이 됐구나.”
아렌이 시선을 드웨인에게로 돌렸다.
“드웨인.”
“옛! 도련님!”
마치 신입기사 시절로 돌아간 것 같은 자세의 드웨인이 크게 대답했다.
“잡아와라.”
“하나도 놓치지 않겠습니다!”
결연한 의지가 가득담긴 드웨인의 대답과 함께 7기사단의 시선이 도적들에게로 향했다.
방금전 과는 완전히 다른 표정과 결사의 기세가 피어오르는 기사들의 모습에 무형의 압력을 받고 있던 도적들의 표정이 창백하게 변했다.
“다 죽이지는 마라. 알아낼 게 있으니까.”
바닥에 널브러진 마스터에게 살벌한 기세를 풍기며 다가가는 드웨인의 뒤로 하일의 살기어린 목소리가 전달되었고, 그 순간 7기사단 전원이 도적들에게로 뛰쳐나갔다.
“죽여라!”
“한 놈도 놓치지 마!”
생존 본능은 모든 것에 우선한다.
짓쳐오는 칼날에 무형의 압력을 떨쳐낸 도적들이 검을 뽑아들고 기사들을 맞았지만, 이미 기세가 일어난 기사들을 막아내기는 힘들어 보였다.
차차차차창!
“으아악!”
“커억!”
살벌한 예광과 오러의 비산, 무기가 부딪치는 소리와 비명과 고함으로 점철된 전장으로 변해버린 현장을 보면서 아렌은 손을 까딱였다.
“여기 있습니다. 도련님.”
어느덧 다가온 로렌스가 의자를 대령했고, 유나와 센드가 창백한 얼굴로 찻잔을 내밀며 시중을 들었다.
“크아아아악!”
“어억!”
여기저기서 선혈이 난무하고 처절한 비명소리가 울려 퍼졌지만, 아렌은 아무렇지도 않은 표정으로 찻잔을 입으로 가져다 대었다.
가만히 눈을 감고 향을 음미하는 모습은 마치 비명을 즐기는 것처럼 보였다.
로랑 자작가 일행들의 얼굴이 공포에 질렸다.
마치 이 세상에 있어서는 안 될 것을 바라보는 것 같은 표정이었지만, 아렌은 물론 아렌의 일행들은 전혀 상관하지 않았다.
피와 죽음, 비명과 고통은 어느덧 일상이 되어 버렸으니, 이 정도에 놀라서는 아렌을 수행하지 못한다.
유나와 센드도 어느덧 강단이 생겨서 표정 관리를 하고 있었고, 벡스터가 부리부리한 눈으로 로랑 자작가의 일행들을 견제하고 있었다.
주인의 말 몇 마디에 완전히 바뀌어 버린 일행들의 모습에 앨버트는 침을 꼴깍 삼켰다.
상황이 다급한지라 생각이 미치지 못했지만, 이제야 아렌의 이름을 기억해 낸 것이다.
‘잔혹하기 그지없는 괴물이라더니······. 소문이 반도 못 표현하구 있구나.’
잔학하기만 한 주인이라면 수하들을 휘어잡지는 못한다.
여차하면 아렌의 일행을 이용하고 자리를 모면하려고 한 앨버트는 그런 생각을 버렸다.
쿵!
“시간이 걸려서 죄송합니다. 도련님.”
드웨인이 깊숙이 허리를 숙이며 피투성이의 인영을 아렌의 앞에 내려놓았다.
“커, 컥!”
허벅지 아래로 잘려 나간 두 다리와 완전히 짓이겨진 오른팔, 그나마 남아 있는 왼팔도 주요 힘줄이 끊어져 있어서 힘을 제대로 주지 못할 것처럼 보이는 처참한 인영은 도적들의 리더인 중년인이었다.
“제법 저항을 하더군요. 벌을 내려주십시오.”
송구하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숙이는 드웨인을 일변한 아렌이 손을 휘저었다.
“괜찮다. 능력 이상의 것을 원한다면 좋은 주인이 아니지. 수고했다.”
“감사합니다!”
깊숙이 고개를 숙이는 드웨인을 일변하고 아렌이 피투성이가 된 사내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과다 출혈로 안색이 창백해진 중년인이었지만 마스터라는 경지가 어디로 간 것은 아니어서 그럭저럭 숨을 부지하고 있었다.
“자.”
“크헉!”
고통에 신음하던 중년인의 귀로 아렌의 목소리가 박혀들었고, 심령을 자극하는 목소리에 중년인이 신음을 내뱉으며 아렌에게로 고개를 들었다.
“이제 이야기를 나눌 자세가 된 것 같구나.”
싸늘한 미소를 피어 올리는 아렌의 모습에 중년인의 전신이 격렬하게 떨리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