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Count's Youngest Son Is a Player RAW novel - Chapter 104
제104화
퍼스트 길드 아카데미는 오래전부터 라울이 기획해 온 것이었다.
자유 도시 시장들을 동업자로 만들고, 그들을 설득해 플레이어들을 위한 지원책을 마련한다.
플레이어들은 당연히 대우가 좋은 루벤 왕국의 자유 도시로 몰려들 거고, 그때 퍼스트 길드를 움직여 초창기의 잠재력 높은 플레이어들을 선점한다.
이것이 대략적인 계획의 얼개였고, 세세한 부분은 지금도 버나드와 참모진이 다듬고 있었다.
이 계획을 통해 라울이 얻고자 하는 것은 크게 세 가지.
첫째는 대성할 가능성이 높은 잠재 랭커들의 영입 및 회유.
이미 랭커들의 정보와 대략적인 성향은 알고 있었다.
그래서 영입이 가능한 이들은 퍼스트 길드에 흡수하고, 영입이 불가능한 이들은 좋은 인상을 남겨 추후 동맹 길드로 만들거나 용병 형태로 고용할 생각이었다.
그리고 여러 가지 이유로 게임을 접거나 재능을 만개하지 못한 숨은 인재를 찾아내는 것도 목표 중 하나였다.
두 번째는 길드의 이미지 및 브랜드 효과를 선점하는 것이다.
지금의 플레이어들은 때 묻지 않고 순수했다. 다른 의미가 아니라 커넥트에 대한 선입견이 없다는 뜻이었다.
그들이 보고 듣고 경험하는 모든 것들은 차후에 접속할 플레이어들의 지침이 되어줄 것이다.
아직은 라울을 제외하면 그 누구도 플레이어에게 큰 관심을 보이지 않고 있었다.
거창하게 구원자라는 신탁이 내려왔지만, 실제로 등장한 플레이어들은 제대로 싸울 줄도 모르는 민간인에 불과했다.
혹시나 하고 사람을 보내놨던 귀족 가문도 역시나 하고는 관심을 끊어버린 상태.
이럴 때 아낌없이 지원해주고 아카데미까지 열어 플레이어들의 호감을 산다면 그 효과는 이루 말 할 수 없이 클 것이다.
플레이어들에게 최초로 호의를 베푼 길드, 최초로 아카데미를 개설한 길드, 자유 도시에서 가장 큰 영향력을 가진 길드로 기억될 것이니까.
그리고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플레이어들에게 ‘같은 편’이라는 인상을 남길 수 있다.
플레이어들이 자유 도시를 벗어나고 시나리오가 진행되면 본격적으로 영지 간, 세력 간, 국가 간 분쟁이 시작될 것이다.
그때 과연 플레이어들이 누구의 손을 들어주겠는가?
‘게다가 지금은 비용도 훨씬 덜 들고 말이지.’
기껏해야 1만 명도 안 되는 숫자였다. 전원에게 지원금을 지급해도 충분히 감당할 수 있는 수준이었다.
하지만 6개월만 지나도 10만 명, 몇 년 후에는 1억 이상까지 그 수가 늘어날 것이다.
신규 유저 전원에 대한 지원책은 초장기가 아니면 시행할 수조차 없는 정책이니까.
나중에 경쟁 길드나 세력이 이런 정책으로 플레이어의 선심을 사려면 지금의 수십 배는 비용이 더 들게 분명했다.
마지막으로 이런 자체적인 이벤트가 커넥트에 어떤 영향을 주는지 확인할 필요가 있었다.
원래 이벤트라 함은 운영진이 준비하고 시행하는 게 일반적이다.
하지만 커넥트는 자유로운 플레이를 지향하는 또 하나의 세상.
운영진이 아닌 NPC가 자체적으로 이벤트와 퀘스트를 만들어 내는 것이 가능한지, 그리고 그에 따른 제약은 없는지 알고 싶었다.
‘지금까지로 봐선 아무런 문제도 없어.’
플레이어를 루벤왕국 자유 도시로 모으는 일도, 아카데미 생도 모집도 아무런 견제가 들어오지 않았다.
운영진은 뒤늦게 플레이어들의 불만을 수습하려 할 뿐, 라울이나 퍼스트 길드의 움직임을 막지 못했다.
이건 라울에게 있어서 매우 중요한 사실이었다.
전생에서 게임 중반을 넘어선 시기. 커넥트 운영진은 초심을 잃고 권력자들의 하수인이 되어버렸다.
공평해야 할 이벤트는 기업이 후원하는 길드에게 유리하도록 조작되었고, 국가 후원 길드를 밀어주기 위한 급조 이벤트까지 남발했다.
물론 운영진의 직접적인 개입에는 한계가 있었다. 커넥트를 유지하는 인공지능이 과다한 개입을 차단할 테니까.
그럼에도 운영진의 영향력을 무시할 수 없는 건, 플레이어들의 특정 행동을 유도하는 게 가능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번엔 다를 거다.’
커넥트 내부에서 플레이어에게 영향을 주는 이벤트나 퀘스트를 주최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이상, 놈들이 원하는 대로 흘러가게 놔두지 않을 것이다.
아니 어쩌면 이쪽에서 플레이어들을 쥐고 흔드는 것도 가능할지 몰랐다.
‘고고하게 위에서 플레이어들을 조정하겠다고? 네놈들 생각대론 안 될 거야.’
라울은 아무것도 할 수 없어 망연자실한 운영진의 모습을 상상하며 새어 나오는 웃음을 집어삼켰다.
* * *
“아이고, 어서 오세요. 라울 자작님.”
업무를 보던 레이날도 시장이 호들갑을 떨며 라울을 반겼다.
플레이어가 등장하고 나서 고개가 빳빳해졌다는 소문이 있었는데, 다행히 라울을 대하는 태도엔 변화가 없어 보였다.
“바쁘실 텐데 약속도 없이 실례했습니다.”
“아니, 그게 무슨 섭섭한 소리예요. 우리 사이에 그런 격식 따위는 필요 없다는 거 잘 알면서, 하하하.”
‘기분이 많이 좋아 보이는군.’
하긴 그럴 만도 했다.
불과 1년 전까지만 해도 한적한 시골 도시에 불과했던 미라가, 이제는 미래가 약속된 플레이어의 중심도시로 변해가고 있으니 말이다.
플레이어가 먹고 자고 쓰는 모든 것들은 세금이 되어 레이날도 시장의 배를 불릴 것이고, 미라의 영향력은 귀족들의 머리도 수그리게 만들 테니까.
어쨌든 레이날도 시장에게 있어서 라울은 훌륭한 동업자인 동시에 은인 같은 존재였다.
라울이 투자하지 않았다면 지금 수준의 도시를 만드는데 적어도 몇 년의 시간은 필요했을 것이다.
실제로 미라와 다른 왕국 자유 도시를 비교하면 엄청난 격차가 벌어진 상태고 앞으로도 더 벌어질 테니까.
빈익빈 부익부의 원리는 비단 개인에게만 적용되는 것이 아니라 자유 도시 사이에도 적용되니 말이다.
“그래서 오늘은 무슨 일로 찾아온 겁니까? 라울 자작님의 부탁이라면 뭐든 들어줄 수 있으니, 어려워 말고 말해 봐요.”
뭐, 말은 저렇게 해도 정말 어려운 부탁을 하면 쉽게 들어주진 않을 거다. 가벼워 보이긴 해도 시장 또한 사업가이니까.
다행히 오늘 라울의 용건은 부탁이라고 할 만한 것도 아니었다.
“실은 오늘 시장님께 사람 한 명을 소개해 드리려고 왔습니다.”
“오호? 이거 궁금한데요. 라울 자작이 아무나 소개해 줄 분이 아닌데 말이지요.”
지금까지 라울이 레이날도 시장에게 소개한 인물은 퍼스트 길드의 간부들이 전부였다.
그래서 레이날도는 새로 충원된 길드의 간부가 아닐까 생각하고 있었는데….
“들어와.”
라울의 부름에 모습을 드러낸 것은 검은 머리에 검은 눈동자, 거기에 전형적인 모험자용 복색을 갖춘 이방인이었다.
키는 178cm 정도. 이곳에선 평균에 가까운 신장이었고, 얼굴은 미남 축에 속한다고 할 만했다.
다만 눈꼬리가 살짝 올라가 날카로워 보였고, 굳게 다문 입술과 다부진 표정이 인상적이었다.
“소개하겠습니다. 앞으로 저와 함께 일하게 된 플레이어 배도현입니다.”
“배도현입니다. 앞으로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허리 숙여 인사하는 이방인을 보며 잠시 움찔했던 시장이 이내 환한 미소를 지으며 배도현에게 악수를 청했다.
“반가워요. 부탁은 내가 더 잘 부탁해야죠. 우리 도시의 중요한 고객이 되실 분인데, 하하하.”
천성이 시장이자 정치가였는지 얼굴이 전혀 가식적으로 보이지 않았다.
잠시 가벼운 담소를 나누었고 시장은 웃으며 배도현을 배웅했다.
“어려운 일이 있으면 언제든지 찾아와요. 내가 라울 자작님의 얼굴을 봐서라도 꼭 도와줄 테니까.”
“말씀만이라도 감사합니다. 그럼, 다음에 또 찾아뵙겠습니다.”
그렇게 배도현이 시장실을 나가자 레이날도가 감탄했다는 표정을 지으며 라울을 바라봤다.
“역시 자작님에겐 당할 수가 없네요. 언제 또 이방인을 구워삶은 겁니까?”
시장은 라울이 이방인을 소개할 줄은 생각지도 못했던 모양이었다.
“어쩌다 보니 인연이 닿게 된 친굽니다. 이방인치고는 실력도 뛰어나고 재능도 출중해서 앞으로가 기대되는 인재지요. 알아두시면 시장님께도 도움이 될 것 같아 소개해 드렸습니다.”
“하하, 자작님이 추천하신다면 두말할 필요 없는 인재겠지요. 앞으로 눈여겨보도록 하겠습니다.”
그렇게 이야기를 마무리 짓고 시장 관사를 나와 마차에 오르자 배도현이 기다리고 있었다.
“시장의 반응은 어때?”
“나쁘지는 않았습니다. 완전히 믿지는 않아도, 두고 보겠다는 생각인 듯합니다.”
놀랍게도 배도현이 라울의 상관인 것처럼 그에게 하대하고 있었다.
“혹시 시장이 눈치챈 것 같지는 않고?”
“그런 기색은 없었습니다. 이게 꼭 제 자랑 같긴 하지만, 여태까지 제 변장을 눈치챈 이는 스승님을 제외하곤 아무도 없었지요.”
그러면서 살짝 윙크를 하자, 한순간 라울의 얼굴에서 케인의 모습이 보였다가 사라졌다.
“그래도 조심하도록 해. 정말 눈썰미가 좋은 이들은 눈치챌지도 모르니 말이야. 특히 이방인들 가운데는 상식을 벗어나는 능력자들이 많으니 더 주의하도록 하고.”
“알겠습니다, 마스터. 실수 없도록 하겠습니다.”
시장과 만난 라울은 바로 케인이 변장한 모습이었다. 그는 ‘페이스리스’라는 자신의 아명처럼 완벽하게 라울의 모습을 흉내내는 데 성공했다.
그렇다면 배도현은 누구인가?
바로 라울이었다.
라울에게는 현자 그레이에게서 선물 받은 [그레이의 폴리모프 반지]가 있었다.
라울은 그것을 이용해 과거 자신, 배도현으로 변신한 것이다.
그리고 또 하나.
[세컨드 아이디]라는 소모성 아이템이 그의 변신을 완벽하게 만들어주었다. [세컨드 아이디(두 번째 신분)]등급 : 유니크
효과 : 사용자에게 아무 때나 변경할 수 있는 두 번째 아이디를 제공한다. 랭킹 산정, 파티 플레이, 퀘스트 수주 등에도 사용할 수 있다.
제한 : 사용자의 실적과 공적치 계산은 해당 아이디 별로 별도 계산된다.
주의사항 : 특정한 스킬이나, 레벨 차이가 많이 나는 상대에게 간파당할 수 있다.
가격 : 10,000 코인
이는 이번 업데이트를 통해 잠금 해제된 [플레이어 전용 상점]에서 구매한 아이템이었다.
플레이어 전용 상점은 플레이어라면 누구나 커넥트 시스템을 통해 시간 장소 상관없이 물건을 살 수 있도록 준비된 상점이었다.
편리한 접근성과 플레이어 상점에서만 구할 수 있는 희귀한 아이템이 장점이라면, 그 악랄한 가격은 플레이어들이 이곳을 기피하게 만드는 가장 큰 단점이었다.
간단한 예를 들어, 현실의 물약 상점에서 최하급 포션의 가격이 1골드라면 플레이어 상점의 가격은 20코인이었다.
일반적으로 코인과 골드의 가치는 동일하다고 보기 때문에 똑같은 물건임에도 20배의 가격 차이가 난다는 얘기였다.
그래서 ‘소모품은 현실에서, 유니크템은 플레이어 상점에서’라는 말이 공공연히 사용되곤 했다.
어쨌든 모습과 아이디까지 바꿔버린 라울은 이제 배도현이라는 새로운 신분을 얻게 되었다.
앞으로 그는 NPC로서 라울, 플레이어로서는 배도현으로 활동할 생각이었다.
케인이 그의 대역으로서 빈자리를 메꿔줄 것이고, 중요한 사항은 길드 통신을 통해 보고받을 수 있으니 크게 문제 될 것은 없었다.
‘자, 그럼 본업으로 돌아가 볼까나.’
커넥트 세상에 잊혀진 플레이어 배도현이 다시 활동을 시작했다.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