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Count's Youngest Son Is a Player RAW novel - Chapter 108
제108화
거창한 식순 같은 건 과감하게 생략했다.
축사는 프로모션 영상으로 대체되었고, 귀빈석의 손님들만 간단하게 소개하는 걸로 퉁쳤다.
물론 라울이 등장했을 때는 함성이 터져 나오기도 했다. 누가 뭐라 해도 당장은 커넥트에서 가장 인기 있는 캐릭터로 등극했기 때문이다.
이어진 것은 시험 내용에 관한 안내 및 조 편성 발표였다.
기다리고 있던 시간인 만큼 플레이어들도 집중하며 귀를 기울였다.
단상에 모습을 드러낸 것은 바로 미라의 지부장인 팔머였다.
그는 커다란 대형 마법 스크린을 통해 ‘쟁투’ 예선전 방식을 소개했다.
“1,600여 명의 지원자는 총 8개 조로 나뉩니다. 한 조 200명의 플레이어들은 동시에 전장에 투입되며 최후의 1인이 남을 때까지 무제한 서바이벌 전투를 벌이게 됩니다.”
웅성웅성.
“예상은 했지만 정말 서바이벌이라고?”
“그러면 합격 인원은 어떻게 뽑는 거지?”
플레이어들이 궁금해 하는 것도 잠시. 스크린에 합격자 선정 방법이 떠올랐다.
“한 조에 합격자는 단 8명. 최후의 생존자 1인과 다른 플레이어를 가장 많이 쓰러뜨린 5인이 합격하게 됩니다. 그리고 남은 2자리는 특별한 룰이 적용됩니다.”
스크린에 퍼스트 길드의 문양인 황금 매의 조각이 비쳤다.
“여러분이 투입될 전장에는 저렇게 생긴 작은 조각들이 곳곳에 숨겨져 있습니다. 그 조각상 다섯 개를 가장 먼저 모은 두 명이 합격하게 됩니다. 하지만.”
화면 속에 조각상 다섯 개가 모였다. 그러자 환한 빛의 기둥이 하늘 높이 치솟았다.
“보신 것처럼 다섯 개가 모이는 순간 그 자리에서 5초간 빛의 기둥이 나타나 여러분의 위치를 알려줍니다. 그때부터 1분간 조각상을 무사히 지켜낸다면 합격입니다. 만일 조각상을 빼앗기거나 죽게 된다면 그 조각상은 소멸합니다.”
그리고는 화면에 숫자가 나타났다.
“타임 리밋은 100분입니다. 그때까지 최후의 1인과 조각상의 주인이 결정되지 않는다면 킬 순위로 합격자가 정해집니다.”
숫자가 사라지고 화면에 팔머가 나타났다.
“마지막으로 당부 드리자면, 공정한 시험을 위해 몇 가지 숨겨진 룰이 존재합니다. 그건 몸소 체험해 보시길 바라며 설명을 마칩니다.”
화면이 전환되고 이제 화면을 채운 것은 사람들의 명단이었다.
“조를 발표하겠습니다. 조 편성은 플레이어들의 출신 국가, 레벨, 접속 기수를 고려하여 공정하게 편성하였습니다. A조에 소속된 플레이어분들은 안내에 따라 시험장으로 이동해 주시기 바랍니다.”
그렇게 공식 행사는 마무리되었고, 라울은 귀빈들과 함께 쟁투를 편하게 관람할 수 있는 특별석으로 이동했다.
* * *
일우는 떨리는 가슴을 진정시키려 크게 심호흡했다.
‘하필이면 A조라니….’
나름 최선을 다해 사냥하고 레벨을 올리면서 준비해왔다.
월급이 제때 나오지도 않던 작은 회사는 사표를 제출했다.
미래가 보이지 않는 곳에서 시간을 낭비하느니 도박이라 할지라도 커넥트에 모든 걸 걸어보기로 결심했기 때문이다.
캡슐 전용 에너지 보충제를 한 달 치 구매하고 집에 틀어박혀서 아바타의 수면 시간을 제외하곤 계속해서 접속을 이어왔다.
다행히 현실과 다르게 노력은 그를 배신하지 않았고, 나름 만족스런 결과를 얻은 채 시험에 임할 수 있게 되었다.
그래도 하필이면 A조일 게 뭐란 말인가?
‘적어도 다른 조가 경기를 치르는 모습을 지켜보고 작전을 세우고 싶었는데.’
하지만 이미 결정된 일. 불만을 계속 털어놓을 시간은 없었다.
일우는 시험장으로 이동하는 사이 같은 조에 소속된 이들을 서둘러 검색했다.
‘아무래도 신경 쓰이는 건 100위권 내의 플레이어들이겠지.’
레벨이 그 플레이어의 강함을 대변한다고 생각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분명 그 지표 중 하나임에는 틀림없었다.
목록을 살펴보던 일우가 애매한 표정을 지었다.
현재 최고 레벨은 25LV. 2위가 24LV이고, 3위인 23LV부터는 30명 정도가 동랩이었다.
1, 2위를 피한 것은 좋았는데, 생각보다 상위권 플레이어가 많이 포함되었다.
7위, 13위, 16위, 25위, 31위.
23LV 플레이어가 다섯이나 포함된 것이다.
‘신경 쓸 녀석들이 많네.’
다행히 지부장의 말처럼 동일 국적 플레이어는 거의 없었다. 백위권으로 따져도 중국과 한국이 두 명씩인 것을 제외하면 모두 다른 국적이었다.
일단 편성으로 손해 볼 일은 크게 없을 것 같았다.
그렇게 속으로 이런저런 계산을 해가며 걸음을 옮기고 있을 때, 누군가가 말을 걸어왔다.
“저기, 혹시 한국 사람입니까?”
시스템 창을 잠시 접어두고 말을 걸어온 이를 바라보며 대답했다.
“그런데요?”
그러자 20대 후반으로 보이는 그 남자가 밝은 미소를 지었다.
“잘됐네요. 잠시 이쪽으로 오시지 않겠어요?”
말을 꺼내며 남자가 한쪽으로 눈짓을 하자, 네댓 명의 플레이어가 조금 떨어진 곳에서 그들을 바라보고 있었다.
“무슨 일인데요?”
일우가 약간의 경계심을 가지고 묻자 그가 슬쩍 다가서서 작게 말했다.
“같은 한국 사람들끼리 협력해야죠. 들어봐서 나쁠 얘기는 아닙니다. 자, 어서요.”
남자가 그의 팔을 당기자 일우는 잠시 고민하다가 마지못해 그를 따라갔다.
주변을 둘러보니 이미 사람들이 끼리끼리 뭉쳐 있었기 때문이다.
‘분위기가 영….’
솔직히 완전히 공정한 대결이 될 것이라고 생각하진 않았지만, 시작 전부터 이렇게 대놓고 모일 줄은 예상하지 못했다.
200명의 A조 인원 중 한국인의 수는 20명. 국가별 인원으로 치면 중국, 미국 다음으로 3위였다.
일우를 시작으로 한국 플레이어들이 모두 한자리에 모였다.
사람들을 모으는데 가장 앞장섰던 인상 좋은 남자가 제일 먼저 입을 열었다.
“다들 반갑습니다. 저는 박선호라고 합니다. 이렇게 한국 분들과 함께 모여 있으니 든든하네요.”
‘박선호라.’
일우가 재빨리 검색을 해보니 레벨은 19로 2기 접속자 중에서는 최고 레벨에 속했다.
전체 순위 357위, 한국 27위, 그리고 A조 한국인들 중에는 4위였다.
레벨 순위로만 봐선 예선을 통과할 가능성이 애매해 보였지만, 실제로 어떨지는 알 수 없었다.
순위가 낮다 해도 실제 레벨 차이는 몇 개 되지 않았고, 저렙 때 레벨 몇 차이는 생각보다 별 의미가 없었다.
‘특히나 이런 풀 다이브 가상현실에서는 말이지.’
“다들 눈치채셨겠지만, 이번 예선전은 단체전이 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서바이벌을 표방하고 있지만, 글쎄요. 정말 혼자 돌아다닐 이가 얼마나 되겠습니까?”
그가 말하지 않아도 주변의 분위기는 이미 그렇게 흘러가고 있었다.
“그래서 어떻게 하자는 거죠?”
여성 플레이어 하나가 재촉하듯 물었다.
“당연히, 우리도 뭉쳐서 행동해야겠지요. 협력하자는 얘깁니다. 다행히 우리는 인원수도 충분하니 초반에 중국과 미국을 만나지 않으면 충분히 승산이 있습니다.”
“글쎄. 승산이라고 말하는데 솔직히 이게 무슨 의미가 있는지 모르겠군. 어차피 통과 인원은 8명밖에 안 되는데 사이좋게 뭉쳐 다니자고? 그렇게 살아남아서 무슨 의미가 있지?”
누군가가 납득하기 어렵다는 듯 불만스럽게 말했다. 느낌상 상위 랭커인 듯했다.
“어차피 전부 이런 식으로 뭉쳐 다닌다면, 초반 킬 수는 중요하지 않을 겁니다. 혼자서 다수를 상대로 이기기는 어려울 거고, 다수 대 다수가 붙게 되면 킬도 분산되니까요. 결국, 누가 오래 살아남아서 꾸준히 킬을 챙기느냔데, 단체에 속하는 편이 확률이 높지 않겠습니까?”
솔직히 모두가 납득한 것 같아 보이지는 않았다. 하지만 선택권이 많지 않았다.
박선호의 말처럼 대부분이 집단을 이뤄 돌아다닌다면, 혼자 돌아다니는 플레이어는 할 수 있는 것이 거의 없다시피 하니까.
일우도 딱히 대세를 거스를 생각은 없었다. 이곳은 현실과 거의 유사한 풀 다이브 가상현실이었다.
다른 게임처럼 템빨, 렙빨로 무쌍을 찍을 수 있는 곳이 아니었다. 적어도 일우가 생각하기에는 그랬다.
“다들 동의하시는 거라고 믿겠습니다. 그러면 한 가지만 더 제안 드렸으면 합니다. 혹시 김일우 님이 누구십니까?”
갑작스레 자신을 찾는 박선호의 의도가 왠지 의심되었지만, 협력하기로 한 상황에 정체를 숨길 수는 없었다.
“접니다만. 무슨 일이죠?”
“아, 그쪽 분이셨군요. 일단 모두들 박수 한번 칩시다. 이분이 바로 전체 랭킹 16위를 찍으신 대한민국의 자랑, 김일우 플레이어입니다!”
짝짝짝.
뭔가 오묘한 분위기였지만, 사람들은 적당히 박선호의 장단에 맞춰 박수를 쳐줬다.
‘무슨 속셈이지?’
어쩔 수 없이 고개를 숙이며 감사를 표했지만, 일우는 찜찜한 기분을 감출 수 없었다.
그리고 그의 예상은 틀리지 않았다.
“일우 님께서도 잘 알고 계시겠지만, 이번 시험은 국가 대항전의 성격도 띠고 있습니다. 가능하면 우리 한국 사람들 중에서 합격자가 많이 나오는 게 좋지 않겠습니까?”
“…그래서요?”
“실례가 되지 않는다면 킬을 다른 분들에게 조금 양보하는 건 어떻겠습니까? 어차피 단체 행동을 하는데 한 분에게 킬이 몰리면 합격자의 수가 줄어들 가능성이 크니까요. 적당히 킬을 분산한 뒤에 마지막에 전체적인 킬 수를 확인하고 우리끼리 결착을 내는 게 좋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저도 제 킬을 다른 분께 양보할 용의가 있습니다. 다들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물어볼 것도 없었다. 애초에 대부분은 합격권에서 먼 순위에 있는 이들. 공평하게 킬을 나누자는데 누가 싫다고 하겠는가?
“찬성이요. 단체로 다니는데 분배는 공평해야죠.”
“저도 좋습니다. 전 세계에 방송도 타는데 한국인의 단결된 모습을 보여줘야 하지 않겠습니까?”
일우는 뭔가 울컥해서 한 마디 쏟아내려다가 겨우 참았다.
다수가 좋다고 그렇게 하자는데, 화를 내봤자 자신만 속 좁은 사람이 되고 만다는 걸 알고 있기 때문이다.
“일우 씨,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아, 물론 강요하는 건 절대 아닙니다.”
싱글거리며 묻는 박선호의 얼굴이 너무 얄미워서 한 대 패주고 싶었다.
놈의 얄팍한 생각이 선명하게 읽혔다.
애초에 한국인 합격자를 늘리려면 킬을 분산시키는 게 아니고 오히려 한두 명에게 몰아주는 편이 더 확실했다.
하지만 누가 시험을 포기하고 남 좋은 일을 하려고 하겠는가? 처음부터 놈은 그럴 생각이 없던 게 분명했다.
‘앞선 이유는 다 핑계에 불과하고, 유력한 합격 후보인 나를 견제하겠다는 거겠지. 여차하면 마지막에 나를 제칠 자신 있다는 건가? 그리고 가능하면 나를 그룹에서 제외하겠다는 속셈일 거고.’
일우는 끌어 오르는 화를 참으며 확인 차 물었다.
“내가 싫다면 어쩔 겁니까?”
“이런, 모두 좋다고 하는데 설마 거절하실 생각이십니까? 하아, 그럼 어쩔 수 없지요. 단체 행동을 하는데 개인플레이를 하겠다는 분과 함께 할 수는 없지 않겠습니까? 안 그렇습니까, 여러분.”
사람들이 당연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며 박선호의 의견에 동조했다.
어느새 박선호가 암묵적인 리더라도 된 듯한 모습이었다.
일우는 날카로운 눈초리로 그를 노려보는 플레이어들의 모습이 기가 막히는 한편 가소로웠다.
‘저들은 정말 이런 방식으로 합격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걸까?’
“알았습니다. 의견에 따르도록 하죠.”
일단은 저들 무리에 남기로 했다. 물론 진심으로 협력할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어차피 모두가 경쟁자. 이용할 수 있는 데까지 이용하고 기회를 봐서 손절하면 될 것이다.
그렇게 상황은 정리되었고, 어느새 플레이어들은 시험장 입구에 도착해 있었다.
‘하아, 본 게임은 시작도 안 했는데 정치질 당해서 기분 더럽네.’
그런데 문득 어떤 의문이 떠올랐다.
박선호는 자기 생각이 틀림없다는 전제하에 이런 계획 같지도 않은 계획을 세웠다. 그런데 만약 전제부터가 틀려먹었다면?
단체전 형태가 아닌 정말 개인전으로 진행된다면?
‘새끼, 무슨 표정을 지을지 궁금한데?’
그리고 만약 그렇게 된다면 놈의 모가지는 자신의 손으로 직접 따주리라.
일우는 그렇게 이를 갈면서 시험장 안으로 들어섰다. 본격적인 A조 예선전이 코앞으로 다가왔다.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