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Count's Youngest Son Is a Player RAW novel - Chapter 109
제109화
예선이 치러지는 장소는 커다란 규모의 실내 체육관이었다.
좌석 수만 해도 5천 석이었고, 농구나 배구 시합을 해도 충분할 만한 넓이를 확보하고 있었다.
하지만 체육관에 들어선 플레이어들은 의아할 수밖에 없었다.
‘설마 여기서 예선을 치른다고? 너무 좁은데?’
‘사전 행사 같은 게 아직 남아 있나?’
객관적으로 봐도 200명이 서바이벌 시합을 치르기엔 너무 작았다.
어쨌든 플레이어들은 국가별로 똘똘 뭉쳐서 체육관 중간에 도열했다.
그 모습을 한가운데 있는 특별석에서 내려다보고 있는 라울은 피식 웃었다.
‘어떻게 예상한 거랑 하나도 다르지 않게 행동할까.’
그리고 플레이어들의 모습을 유심히 지켜보던 레이날도 시장이 물었다.
“듣기로 이방인들도 국가가 다 다르다는데, 혹시 지금 국가별로 모여 있는 걸까요?”
“네, 혼자보다는 뭉쳐 다니는 게 낫다고 생각하는 거겠죠.”
“아니, 그럼 불공평한 것 아닙니까? 저래서야 인원이 많은 쪽이 훨씬 유리할 텐데요.”
그는 조금 불편하다는 듯 얘기했다.
왕국의 눈치를 보며 도시를 유지해 온 레이날도 시장 입장에선 다수가 소수를 핍박하는 그림이 별로 맘에 들지 않는 게 당연할지도 몰랐다.
“물론 저대로 뭉쳐 다닌다면 그렇게 되겠죠. 하지만 그래서야 서바이벌이라는 시험의 의미가 퇴색하지 않겠습니까? 걱정 말고 지켜보시면 재밌는 장면이 연출될 겁니다.”
“하하하, 제가 괜한 걱정을 했군요. 라울 자작님이 직접 설계한 시험인데 말입니다. 그럼 혹시 누가 우승할 것 같은지 내기라도 해볼까요?”
기분이 좋아진 레이날도가 주변 시장들까지 끌어들이며 우승자 맞추기 내기판을 벌였다.
물론 금액은 소소했고, 그저 재미삼아 하는 것이라 라울도 적당히 분위기를 맞춰주었다.
‘우승이라. 솔직히 예상이 잘 안 되는데…. 하필 네가 이곳에 나타날 줄이야.’
라울이 조금은 걱정스런 눈빛으로 참가자 중 한 사람을 바라보고 있었다.
* * *
“모두 준비해 주세요. 마법 스크린의 시간이 0이 되는 순간 바로 시험이 시작됩니다.”
60초의 카운트다운이 시작되었다. 주변 플레이어들의 긴장된 떨림이 피부로 느껴진다.
일우는 굳어진 근육을 천천히 풀어주며 전투에 대비했다.
무슨 생각으로 이런 좁은 공간에서 시험을 치르는지 모르겠지만, 이래서야 정말 단체전이 될 수밖에 없어보였다.
그리고 마침내 스크린의 숫자가 0으로 바뀌는 순간.
파밧.
발밑에서 무슨 빛이 번쩍이더니 순식간에 새로운 장소에 도착해 있었다.
‘…뭐지?’
놀랄 새도 없이 일우는 반사적으로 엄폐물을 찾으며 자세를 낮췄다.
하지만 주변에는 고요함이 감돌 뿐, 방금까지 근처에 있던 플레이어들의 흔적은 찾아볼 수 없었다.
동작을 완전히 멈춘 채 눈알만 굴리며 주변을 살펴보던 일우가 겨우 나지막한 숨을 내쉬며 약간의 긴장을 털어냈다.
그가 현재 있는 곳은 작은 오두막집 안이었다.
세간살이도 별로 없이 그저 통나무로 벽과 천장을 막아 놓기만 해서, 집이라기 보단 임시 피난처 정도라고 할까?
주변에 인기척이 느껴지지 않는 건 플레이어가 없거나, 자신처럼 기척을 죽이고 있기 때문이리라.
‘어쨌든 중요한 건 다들 뿔뿔이 흩어졌단 얘기잖아?’
확실하게 확인한 건 아니지만 정황상 분명했다.
그렇다는 얘긴 박선호의 계획은 무용지물이 되었다는 것이고, 일우는 자유롭게 행동할 수 있게 되었다는 뜻이기도 했다.
‘음?’
그때 일우의 눈에 뭔가 이질적인 것이 포착되었다. 통나무 벽과 천장의 틈 사이에 작은 무언가가 끼어 있었던 것이다.
슬쩍 움직여서 툭하고 뽑아봤더니 지부장이 얘기했던 바로 그 매 조각상이었다.
‘럭키! 왠지 오늘 일이 잘 풀릴 것 같은데?’
그때 시야 한쪽에서 뭔가 깜빡이는 것을 발견하고 터치하자 딱 봐도 지도처럼 생긴 화면이 나타났다.
원형으로 생긴 지도는 검은 안개로 뒤덮여 있었고, 우측 아래에 파란 점 하나가 깜빡거리고 있었다.
‘미니맵이구나. 근데 구역이 11개?’
맵의 정중앙에는 1이라는 숫자와 함께 커다란 나무 그림이 새겨져 있었다.
그리고 그걸 중심으로 일정 범위마다 선이 그어져 있고 숫자가 매겨져 있었다.
현재 일우가 있는 곳은 남동쪽 4번 구역이었다.
‘이것만 봐선 잘 모르겠어. 일단 정찰을 좀 해야 할 것 같은데.’
작은 들창이 나 있긴 한데, 딱 봐도 경첩이 낡아서 소리가 심하게 날 것 같았다.
차라리 문을 열고 나가는 편이 나을 것 같단 생각이 들었지만, 쉽게 손이 가지 않는 건 주변을 감싸고 도는 적막 때문일 것이다.
먼저 이쪽의 기척을 드러내는 게 옳은지 확신이 가지 않았다.
그리고 그런 고민에 빠진 것은 대부분의 플레이어들 또한 마찬가지였다.
시험은 시작되었지만, 아직까지 전장은 적막에 잠겨 있을 뿐이었다.
* * *
한편, 특별석에서 예선전을 관람하는 귀빈들은 놀라움을 감추지 못하고 있었다.
“허헛, 저것도 전부 라울 자작님이 생각해내신 거라고요?”
“맙소사. 이런 게 가능할 거라곤 생각도 하지 못했습니다.”
“역시 젊은 사람은 생각하는 것도 다른가 봅니다. 이거 참, 너무 신기하군요.”
“라울 자작님은 정말 사람을 놀라게 하는 재주가 있으십니다.”
평균 연령 50세의 시장들이 자리에서 모두 일어나 체육관을 내려다보며 연신 라울을 칭찬했다.
“하하, 저는 그저 구상만 했을 뿐인데요. 그레이님이 없었다면 절대 완성할 수 없었을 겁니다.”
라울이 겸손하게 그레이에게 공을 돌렸다. 그리고 실제로 그레이가 없었다면 절대 등장할 수 없는 장치이기도 했다.
체육관 중앙.
플레이어들이 사라지고 나타난 것은 거대한 세트장이었다.
마치 지형을 통째로 뜯어다가 미니어처로 표현한 것처럼 입체적이고 현실적인 전장의 모형이 체육관 중앙에 떡하니 자리 잡고 있었던 것이다.
중요한 것은 그것이 단순한 모형이 아니라 움직이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바람이라도 부는 것처럼 나뭇잎이 흔들렸고, 시냇물처럼 보이는 강도 힘차게 흘러내렸다.
강물 위로 튀어 오르는 물고기와 하늘을 날아가는 새까지 완벽하게 구현된 완벽한 미니어처 세상.
그리고 바로 그 안에서 플레이어들이 움직이고 있었다.
증강현실처럼 플레이어들의 머리 위에는 간단한 프로필이 표시되어 있었고, 그들의 일거수일투족이 완벽하게 재현되고 있었다.
특별석의 귀빈들뿐만 아니라 관람 혹은 참관을 위해 객석을 가득 채운 플레이어 및 길드원들도 입을 쩍 벌리고 그 비현실적인 광경을 지켜보고 있었다.
그런 거대한 미니어처 세트장 위쪽, 체육관의 천장 아래쪽에는 커다란 네 개의 마법 스크린과 자그마한 마법 스크린 수십 개가 설치되어 전장의 중요 장면과 플레이어들의 모습을 확대해 비추고 있었다.
라울은 흐뭇한 표정으로 시장들과 관중들의 모습을 바라봤다.
‘그래, 이 정도 반응은 보여줘야지.’
그래야 이곳을 완공하기 위해 쏟아 부은 천문학적인 금액이 아깝지 않을 테니까.
그리고 이곳은 앞으로 퍼스트 길드와 기사단의 단체 훈련을 책임질 중요한 장소인 동시에, 퍼스트 길드의 위상을 보여주는 특별한 랜드마크로 자리 잡을 것이다.
과시욕과 체면을 중시하는 수많은 귀족가와 앞으로 등장할 기업계 길드들은 이곳을 대관하기 위해 퍼스트 길드의 문을 두드릴 것이 분명했으니까.
한동안 지상을 굽어보는 신이라도 된 것처럼 황홀한 표정으로 세트장을 내려다보던 레이날도 시장이 문득 라울에게 물었다.
“참가자들을 뿔뿔이 흩어놓은 건 참 좋은 생각이었습니다. 그런데 다들 자기 자리를 벗어날 생각을 하지 않는 것 같은데, 이래서야 시합이 제대로 진행되겠습니까?”
무리에서 떨어져 나가 혼자가 된 플레이어들은 잔뜩 움츠러든 채 움직일 생각이 없어 보였다.
라울이 레이날도 시장을 바라보며 약간은 짓궂은 웃음을 지어 보였다.
“물론 이대로라면 재미가 없겠죠. 그래서 특별한 장치를 준비해 뒀습니다. 어디 보자, 대충 시간이 된 거 같네요.”
그리고 라울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미니어처 세트에서 빨간 불빛이 곳곳에서 반짝거리기 시작했다.
* * *
‘이런, X발.’
입으로 터져 나오려는 걸 겨우 참아낸 일우가 거침없이 오두막의 문을 걷어차고는 텀블링을 하며 밖으로 나갔다.
푸슉!
“크헉!”
조금도 지체하지 않고 들고 있던 석궁을 발사해 어정쩡하게 나무 뒤에 숨어 있던 플레이어의 어깨를 꿰뚫었다.
그리고 석궁을 내던지며 인벤토리에서 칼과 방패를 꺼내든 일우가 황소처럼 돌진하며 방패로 놈의 턱주가리를 후려쳤다.
뻑 소리와 함께 뒤로 나뒹구는 남자는 검은 머리의 동양인이었다.
“ㅈ, 자…”
핏물을 내뱉으며 뭐라고 말을 하려 했지만, 일우는 거침없이 검을 휘둘러 남자의 목을 베어버렸다.
쉬이익.
등 뒤쪽에서 화살이 날아오는 소리가 들려오자 일우는 속으로 ‘제길’ 욕을 내뱉으며 앞으로 몸을 던졌다.
화려한 전방 낙법으로 두 바퀴를 내리구르고 나무 뒤에 엄폐하고 나서야 잠시 숨을 고른 일우가 재빨리 고개를 돌려 무언가를 탐색했다.
‘활 쏜 놈이 열두시 방향. 세시 방향에도 한 놈 숨어 있고, 여섯시 방향은 좀 거리가 있나?’
일우는 빨간빛이 일렁이는 자신의 손을 내려다보며 재빨리 시스템 메시지를 확인했다.
-같은 장소에 5분간 머물러 있었기에 페널티가 부여됩니다. 30초간 모든 플레이어에게 당신의 위치를 노출 시키는 ‘노출 광선’이 몸에 깃들게 됩니다.
‘이런 중요한 페널티는 미리 알려줘야지!’
뭔가 골탕 먹은 느낌이라 속으로 투덜거리긴 했지만, 덕분에 뭔가 갑갑했던 상황에서 벗어난 것 같기도 해서 기분이 오묘했다.
위치가 드러난 것이 일우뿐만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일우는 숲과 오두막 너머 반짝이는 사람 형체의 빨간빛을 바라보며 입꼬리를 끌어올렸다.
‘일단 활잡이부터.’
방패를 앞세우며 일우가 잰걸음으로 나무 사이를 달려 나가기 시작했다.
잠시 후.
방패와 엄폐물을 활용해 거리를 좁힌 일우는 손쉽게 궁수를 처리했고, 노출 광선이 사라지기 전에 확인해 뒀던 또 하나의 플레이어를 추적해 잡아내고야 말았다.
“후우, 후우.”
5분도 안 되는 짧은 시간 안에 3명을 상대하느라 심장이 터질 것처럼 쿵쾅거렸다.
얼떨결에 쓰러뜨리긴 했지만, 진짜 사람을 죽인 것은 이게 처음이었다.
그는 마지막 상대가 숨어 있던 오두막에 기대어 피에 젖은 자신의 손을 내려다 봤다.
‘내가 이상한 건가?’
사람을 죽였는데 아무런 위화감도 들지 않았다. 아무리 되살아난다고 해도 분명 사람일 텐데….
일우는 모르고 있었지만, 그것 또한 캡슐의 기능 중 하나였다. 사용자의 정신을 안정시켜 PTSD(외상후 스트레스 장애)에 빠져들지 않도록 하는 것.
그렇지 않았다면 평생 칼 한번 잡아보지 않았던 현대인들이 아무리 몬스터라 해도 쉽게 죽일 수 있었겠는가?
괜한 감상에 젖어 들려는 일우를 일깨운 건 전장 전체를 가로지르는 커다란 벨소리였다.
딩동댕동~.
‘뭐야? 또 무슨 일이 일어나려는 거지?’
날이 바짝 선 일우의 눈앞에 공지 사항이 팝업되었다.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