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Count's Youngest Son Is a Player RAW novel - Chapter 110
제110화
구구구구궁.
전장 전체가 지진이라도 일어난 것처럼 진동했다.
그리고 특별석에서 관람하던 라울과 귀빈들은 그 변화를 훨씬 자세히 알아차릴 수 있었다.
미니어처 세트장이 부르르 흔들리며 플레이어들이 휘청거리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어어? 무슨 일이지?”
사람들이 깜짝 놀라고 있을 때 전장의 플레이어와 관중들에게 동시에 공지 사항이 전달되었다.
-전장 개시 후 10분이 경과하였습니다. 현재 가장 많은 플레이어가 생존해 있는 구역이 소멸합니다. 제한 시간은 1분입니다. 해당 구역 플레이어들은 제한 시간 내에 다른 구역으로 탈출해 주십시오.
-해당 구역 : 7구역
공지가 전달됨과 동시에 남서쪽 7구역의 경계에서 새빨간 오로라가 하늘로 솟구쳐 올랐다.
“이런 젠장!”
상황 판단이 빠른 7구역의 몇몇 참가자가 미친 듯이 오로라가 있는 방향으로 내달리기 시작했고, 뒤늦게 다른 참가자들도 살길을 찾아 달려 나갔다.
마치 메뚜기떼가 사방으로 흩어지듯 달려 나가 7구역을 벗어난 플레이어들은 숨 고를 틈도 없이 전투상황에 직면했다.
마찬가지로 눈치가 빠른 6구역과 8구역의 플레이어들이 경계 근처에 잠복해 있다가 기습을 해왔기 때문이다.
피융, 퍽!
챙! 채쟁!
7구역의 경계 부근은 순식간에 전쟁터로 바뀌어 버렸다.
그리고 제한 시간 1분은 눈 깜빡할 사이에 흘러갔다.
“제기랄, 안 돼!”
하필이면 건물 깊숙한 곳이나 동굴, 나무 덤불 같은 곳에 숨어 있었던 운 없는 몇 플레이어들은 시간 내에 구역을 벗어나지 못했다.
파밧!
그리고 7구역은 새빨간 오로라에 휩싸인 채 순식간에 전장에서 삭제되어 버렸다.
7구역이 사라진 자리는 말 그대로 무(無), 아무것도 없는 새까만 어둠만이 가득 차 있었다.
경계 부근에서 전투 중이던 플레이어들은 그 비현실적인 공간에 두려움을 느낀 듯 자신도 모르게 뒷걸음질을 쳤다.
바로 그때.
다시 한번 전장이 구르르릉 진동하며 그들이 서 있던 땅이 통째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쾅!
7구역과 경계를 마주하던 6구역, 8구역이 맞닿으며 소멸된 공간을 메꿔버렸다.
그리고 남겨진 것은 7구역의 생존자들과 6구역, 8구역의 하이에나들.
“죽어!”
“뒈져라!”
그들은 정신을 차리기 무섭게 서로에게 무기를 휘두르기 시작했다.
* * *
박선호는 짜증이 머리끝까지 솟구치는 기분이었다.
‘도대체 어떤 새끼가 이딴 식으로 시험을 설계한 거야?’
그는 어느 오두막집 목책 앞에서 몸을 바짝 숙인 채 쥐 죽은 듯이 숨죽이고 있었다.
‘X발, 어디서부터 꼬인 거지?’
한국 플레이어들을 팀으로 엮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조국이니 민족이니 하는 핑계를 대면 찍소리도 못 하는 희한한 종특(종족 특성)을 가지고 있는 놈들이니 말이다.
쪽수도 많고 하이랭커도 포함되어 있으니 계획대로 흘러갔다면 괜찮은 그림이 그려졌을 거다.
하지만 예상이라도 했다는 듯, 설계자는 시작부터 플레이어들을 뿔뿔이 흩어놓았다.
‘그래, 그때부터 조짐이 좋지 않았지. 하지만 예상하지 못했던 것도 아니야.’
혼자가 되었지만, 박선호의 계획은 달라지지 않았다.
일단 다수가 되어야 한다는 것. 힘 있는 그룹에 속해 있어야 선택의 가짓수가 늘어가기 때문이다.
그래서 5분이 지나 플레이어들의 위치가 노출되었을 때 그는 적을 쓰러뜨리는 것이 아닌 다른 선택을 했다.
“여러분, 싸우지 말고 협력합시다!”
그는 특기인 유려한 말발을 살려가며 주변의 플레이어들을 팀으로 끌어들이기로 한 것이다.
굳이 팀원이 한국인이어야 한다는 법은 없었다. 이 미친 게임은 모든 언어가 저절로 통역되니 말이다.
팀이 필요하다고 생각한 건 박선호뿐만이 아니었기에 순식간에 7명의 팀원이 모여들었다.
하지만 그때 울려 퍼진 웃기지도 않는 벨소리.
그리고 7구역이 선정된 순간 박선호의 표정이 썩어 들어갔다.
‘하필이면 재수 없게!’
급히 팀원들과 함께 구역을 벗어났지만, 지독한 난전에 휩쓸려 버렸다.
급조된 팀은 팀이라 부르기도 민망할 정도로 따로 놀았고, 상황이 종료되었을 때는 박선호를 포함해 셋만 살아남아 전장에서 도주하고 있었다.
운이 나빴을 뿐 팀플레이를 해야 한다는 생각에는 변화가 없었고, 이후 박선호는 다시 팀원을 끌어 모으기 시작했다.
결국 그는 다시 여섯 명의 팀원을 모았고, 이제는 수확을 시작해야 한다고 판단을 내렸다.
그가 팀원을 모으는 사이 몇몇 플레이어들의 킬 수가 급격히 오르고 있었기 때문이다.
1위 – 브렌트(미국), 7킬
2위 – 김일우(한국), 5킬
2위 – 방조윤(중국), 5킬
……
‘김일우…!’
박선호는 김일우가 싫었다.
운 좋게 첫 기수로 뽑히는 바람에 랭킹 순위에 이름을 올린 놈.
만약 자신이 첫 기수에 뽑혔다면 놈이 아닌 자신이 저 자리에 올라 있을 터였다.
‘잠시 즐기고 있어라. 이제 곧 내 밑에 깔아뭉개 줄 테니까.’
부려먹기 좋은 방패막이도 다섯이나 생겼고, 사기나 다름없는 자신의 특성을 생각한다면 3킬 정도 따라잡는 건 문제도 아니었다.
아예 빨리 만나서 놈을 직접 처리하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고 생각하며 팀원들을 이끌고 걸음을 옮기던 그 순간, 또다시 그의 발목을 붙잡는 일이 벌어졌다.
지이잉.
이번에는 미리 경고도 없었다. 박선호와 팀원들의 발밑에 불길해 보이는 붉은 마법진이 생겨났다.
“피해!”
박선호가 반사적으로 몸을 날리며 소리쳤지만, 쓸데없는 짓이었다.
자석처럼 그들의 발밑에 달라붙은 마법진은 순식간에 그들의 몸을 집어삼켰다.
그리고 박선호는 또다시 알 수 없는 어느 곳에 홀로 떨어져 내렸다.
-불공정 플레이(티밍)가 감지되었습니다. 페널티로 해당 플레이어들을 각각 임의의 장소로 강제이동 시킵니다.
‘X발, X같네!’
생각하면 할수록 화가 차올랐다. 처음부터 하지 말라고 공지를 하든가. 시험 도중에 이딴 식으로 뒤통수를 치면 어쩌란 말인가?
어떤 놈이 설계했는지는 모르겠지만, 성격이 더럽게 꼬인 놈일 게 분명했다. 아마도 지금쯤 자신의 모습을 비웃고 있을지도 몰랐다.
‘아니 분명 그럴 거야, 더러운 새끼.’
박선호는 불만을 잠시 접어두고 다시 머리를 굴리기 시작했다.
이제부터 다시 팀원을 모은다는 건 거의 불가능했다. 아니 모은다 해도 킬 수를 따라잡는 건 쉽지 않았다.
‘그렇다면…’
“거기서 뭐 합니까?”
“……!”
너무 생각에 잠겼는지 누가 다가오는 걸 눈치채지 못했다. 박선호는 반사적으로 무기를 겨누며 소리가 들려온 곳을 바라봤다.
‘제길, 하필이면.’
만나고 싶지 않은 녀석을 최악의 타이밍에 만나고 말았다.
“아, 일우 씨! 무사하셨군요? 정말 다행입니다.”
박선호는 어느새 환한 미소를 지으며 무기를 거두고 일우에게 다가서고 있었다.
누가 보면 전쟁 중 헤어졌던 형제라도 만난 것처럼 기뻐하는 모습이었다.
그리고 그 와중에 일우가 무언가를 품속에 넣는 장면을 놓치지 않은 박선호였다.
“잠깐. 그 이상 다가오지 마시죠.”
일우가 검을 내밀어 박선호를 멈춰 세웠다.
“이런, 경계하실 필요 없습니다. 같은 한국 사람끼리 싸울 이유가 없지 않습니까?”
박선호는 무기까지 내려놓고 양팔을 벌려 싸울 의사가 없다는 걸 표시했다.
“이렇게 다시 만난 것도 운명 아니겠습니까? 아까 얘기했던 것처럼 협력하는 것은 어떨까요?”
아까 그런 협잡질을 해놓고 뻔뻔하게 다시 제안하는 박선호를 보며 일우가 질렸다는 듯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생각 없으니 각자 갈 길 갑시다.”
일우는 마음 같아선 아까 생각했던 것처럼 박선호의 목을 따버리고 싶었지만, 방송 중계 중이라는 사실이 맘에 걸렸다.
“그러지 말고 한 번 더 생각을… 어엇! 뒤쪽에!”
끈질기게 달라붙으려던 박선호가 깜짝 놀란 표정으로 일우의 뒤쪽을 가리켰다.
쿠르릉.
‘이런…!’
굉음과 함께 어마어마한 기운이 자신을 덮쳐온다는 사실을 깨달은 일우가 황급히 몸을 돌리며 방패를 치켜들었다.
그리고 그런 일우의 눈앞으로 커다란 화염룡이 입을 쩍 벌리고 날아들고 있었다.
‘이게 무슨!’
도저히 20레벨대의 플레이어가 막아낼 수 있는 상대가 아니었다.
일우는 그저 입술을 꽉 깨물고 방패를 쥔 손에 힘을 줄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화염룡이 그의 몸을 집어삼켰다.
‘……?’
그리고 바로 그 순간, 박선호가 소매에 숨겨두었던 단검으로 일우의 등 뒤를 찔러가고 있었다.
‘크크크, 멍청한 놈. 잘 가라!’
화염룡은 박선호의 작품이었다. 그의 특성은 ‘트릭스터’. 변설(辯舌)과 환술(幻術)을 통해 사람을 속이는 A급의 희귀한 재능이었다.
당연하게도 화염룡은 환상에 불과했고, 진짜 공격은 박선호의 뒤치기였다.
‘해냈다!’
이대로 일우를 쓰러뜨린다면 선호는 확실하게 합격할 자신이 있었다.
조금 전 일우가 품속에 숨긴 것은 분명 황금 매의 조각이었다. 그것도 여러 개.
그리고 그의 품에도 조각이 세 개나 있었다. 난전 도중 쓰러진 플레이어들의 품속에서 훔쳐온 것들이었다.
조각을 모으기만 한다면 그의 특성을 사용해 다른 플레이어들의 눈을 피하는 것은 문제도 아니었다.
그렇게 눈앞으로 다가온 합격의 영광을 꿈꾸며 일우의 등으로 힘차게 단검을 찔러 넣은 박선호.
꾸드득.
하지만 그건 그가 기대하던 감촉이 아니었다.
‘뭐, 뭐야?’
놀랍게도 일우의 등 뒤에서 방패를 쥔 손이 솟아나 단검을 막아낸 것이다.
그리고 다음 순간 박선호는 차갑게 불타오르는 일우의 눈동자를 마주 보게 되었고, 그게 그의 마지막이었다.
써컹.
일우의 검이 시원하게 박선호의 목을 잘라낸 것이다.
일우는 무기를 갈무리하고 박선호의 품을 뒤져 조각들을 꺼내 들었다. 고개를 숙이고 있는 그의 입꼬리가 아주 살짝 올라가 있었다.
* * *
A조 예선이 마무리되었다.
*최후의 1일 – 브렌트(미국) 11킬.
*조각 완성자 – 김일우(한국) 7킬, 양위룡(중국) 4킬.
*최다킬(기존 합격자 제외, 킬 수가 같으면 생존시간이 긴 순서)
1위, 방조윤(중국) 8킬
2위, 사토시(일본) 7킬
3위, 매닝거(독일) 6킬
4위, 바실리(러시아) 5킬
5위, 마르코스(멕시코) 5킬
합격자 명단을 확인한 라울이 뜻 모를 한숨을 내쉬었다.
‘일우. 어째서 네가….’
A조에서 가장 먼저 조각을 모았고, 킬도 7개나 올린 실력자. 그리고 예선을 통과한 유일한 한국인.
하지만 본래라면 여기에 있어서는 안 되는 인물이었다.
김일우.
그는 전생에서 배도현이 믿고 의지했던 유일한 친구였다. 그리고 배도현이 기억하는 한 단 한 번도 커넥트에 접속하지 않았던 이였다.
‘나 때문에 일우의 삶이 뒤틀어진 건가?’
일우는 배도현의 고아원 동기였다. 어렸을 때부터 형제처럼 자랐고, 사회생활을 시작하고 나서도 종종 만나서 편하게 술을 마시던 사이였다.
일우는 비록 큰 회사는 아니었지만 건실한 기업에서 평범한 직장 생활을 이어갔고, 그곳에서 인연을 만나 가정도 이뤘다.
커넥트라는 게임에 인생을 담가버린 그와 달리 정상적인 삶을 살던 일우는 배도현에게 있어 세상과 소통하는 창인 동시에 든든한 버팀목이기도 했다.
‘지구와의 인연은 완전히 끊어졌다고 생각했는데, 여기서 일우를 다시 만나게 될 줄이야.’
라울은 이 사실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곤혹스러웠다.
지금이라도 일우가 원래의 인생을 살아가도록 어떻게든 방법을 찾아야 할지, 그게 아니라면 지금의 일우를 적극적으로 도와야 할지.
어느 것이 진정 일우를 위한 길인지 라울의 고민이 깊어져 갔다.
(다음 편에서 계속)
^직^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