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Count's Youngest Son Is a Player RAW novel - Chapter 115
제115화
4인 파티 하나를 가볍게 전멸시켰지만 배도현의 표정은 그다지 밝지 않았다.
‘아무리 게임 초반이라지만 너무 약해.’
예상보다 플레이어들이 너무 약했다.
이건 레벨이니 스킬이니 하는 게임상의 문제가 아닌 좀 더 근본적인 부분의 문제였다.
싸움과 전투에 대한 기본적인 이해와 경험이 너무나도 부족했다.
‘다른 귀족들이나 기사들이 플레이어들을 보고 콧방귀를 뀐 이유가 이해가 가네.’
플레이어가 아닌 NPC의 입장에서 봤을 때, 저들은 힘만 센 어린아이에 불과했다.
플레이어의 잠재력을 이미 알고 있는 그조차도 문득 ‘정말 저들이 도움이 될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으니.
‘하아, 진정하자. 전생의 이맘때 내가 어땠는지 돌이켜 보자고.’
잠시 눈을 감고 20레벨 언저리였을 때 배도현의 과거를 머릿속에 소환해 보았다.
“푸흡.”
생각이 났다.
그때 배도현은 염동력이 특성으로 나온 걸 욕하면서 근본 없는 플레이를 일삼고 있었다.
파티를 구하지 못하자 죽어도 상관없다는 생각으로 무작정 사냥터를 헤집고 다녔다.
그러다가 이대론 안 되겠다 싶어서 관련 특성도 없는 주제에 무기를 다루겠다며 무턱대고 검사 협회에 찾아갔다.
그러고는 보이는 사람마다 붙잡고 검을 가르쳐 달라고 요구했다.
미친놈 취급을 당하긴 했지만, 그를 불쌍하게 생각한 교관 하나가 기본적인 공용 무기술 스킬을 전수해 주었으니 헛된 고생은 아니었다.
덕분에 어떻게든 사냥은 가능해졌고, 수없이 죽어가며 동화율의 비밀을 깨닫고 스킬 체득에 도전할 수 있었으니까.
솔직히 말해서 게임 초반의 배도현은 낙오자나 다름없었다.
‘남들 욕할 상황이 아니었네. 하긴 제대로 된 싸움조차 별로 경험해보지 못한 사람이 많으니까.’
플레이어들이 약하게 느껴지는 건 상대적으로 그가 지나치게 강해진 탓일지도 몰랐다.
그리고 현대인들과 다르게 어려서부터 체계적인 검술 훈련을 받아온 라울의 기억 때문일지도.
어쨌든 플레이어들을 좀 더 제대로 써먹으려면 지금 상태론 좀 곤란했다.
‘나와 함께 일하려면, 적어도 스킬에만 의존하는 반쪽짜리 신세는 면해야 하지 않겠어?’
아카데미는 그걸 위해 준비해둔 것이고.
하지만 아무리 교육 과정이 좋아도 배울 사람이 의욕이 없어서야 아무 쓸모도 없었다.
솔직히 플레이어들 중에는 아카데미에서 뭔가를 배우고 싶다기보다는, 혜택이나 보상에 눈먼 이들이 더 많을 것이다.
‘그러니까 더 제대로 보여줘야겠어. 스킬이나 레벨을 뛰어넘는 무언가가 있다는 사실을.’
그러면 분명 저들도 아카데미의 의미를 다시 깨닫게 되리라.
‘이번에는 뭘로 할까?’
인벤토리에 있는 무기 중 뭐를 사용할지 고민하며 배도현이 다시 움직이기 시작했다.
* * *
1위 – 배도현(한국), 33킬
2위 – 쇼이치로(일본), 5킬
3위 – 고가량(중국), 5킬
……
생존자 수 : 97명
‘이런 제길. 정말 괴물이냐?’
쇼이치로가 신경질적으로 자신의 검날에 묻은 피를 소매로 닦아냈다.
자신이 겨우 한 파티를 상대하며 2킬을 올리는 동안 배도현은 무려 12킬을 올렸다.
최소한 세 파티다. 어떻게 10분 만에 저런 성적이 가능한지 쇼이치로의 상식에선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었다.
딩동댕동~.
또다시 소멸구역이 지정되고 있었다.
십 분에 한 번씩 사라지는 구역은 플레이어들이 자주 부딪치며 전투를 하도록 유도하는 장치.
하지만 이번 예선전에선 그럴 필요가 있을까 싶을 정도로 생존자의 수가 가파르게 줄어들고 있었다.
‘이제 20분 지났을 뿐인데, 절반이 넘게 탈락했어.’
배도현이란 놈이 날뛰는 바람에 상황이 묘하게 변해버렸다.
‘5킬… 애매한데?’
순위는 2위였지만, 1, 2킬 차이로 스무 명 가까운 플레이어들이 늘어서 있었다.
생존자가 줄어든 만큼 킬 수를 뒤집기 어려워진 것도 사실이지만, 자칫 몰아주기로 뜻하지 않은 낭패를 당할 수도 있었다.
일단 킬 수를 더 늘려놓는 것이 확실한 방법이었다.
‘정찰 나간 녀석이 빨리 돌아와야 할 텐데.’
다행히 같은 파티의 켄타라는 녀석은 정찰에 특화된 특성을 가지고 있었다.
이쪽이 먼저 기습을 하면 그만큼 유리한 게 당연한 만큼 조바심이 나더라도 녀석이 돌아오길 기다려야 했다.
“쇼이치로 님, 찾아냈습니다!”
때마침 켄타가 돌아와서 상기된 표정으로 말했다.
“왜 호들갑이야? …설마?”
“배도현, 그놈을 찾았습니다!”
“……!”
쇼이치로가 자신의 단검 두 자루를 검집에 탁 집어넣으며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
“어디야?”
천운이다. 놈이 이쪽을 발견하기 전에 이쪽에서 먼저 찾아내다니!
“두 블록 떨어진 병영 근처에서 다른 파티와 전투 중이었습니다.”
“그래? 놈의 파티는 몇 명이야? 혹시 두 파티 이상을 끌고 다니던가?”
드디어 놈의 킬이 미친 듯이 올라간 이유를 찾을 수 있을 거라 생각한 쇼이치로의 두 눈이 번뜩였다.
“저, 그게….”
“왜? 한국 놈들이 모두 모여 있기라도 해?”
“혼자였습니다.”
“…뭐?”
“혹시 몰라서 주변까지 훑어봤는데, 다른 이는 아무도 없었습니다. 그리고 혼자서 네 명과 싸우는 걸 제 두 눈으로 똑똑히 봤습니다.”
“……!”
쇼이치로는 충격을 받은 듯 잠시 눈만 깜빡이며 아무런 말도 하지 못했다.
‘정말로 혼자 저 킬을 다 올렸다고? 아니, 그럴 리 없지. 아무리 레벨이 높다고 해도 그 정도로 차이가 날 리가 없어.’
‘혹시 그간 뒤를 봐주던 파티가 전투를 겪으며 소모된 것인가? 그래, 그럴 가능성이 크지. 하지만 그렇다면 왜 네 명에게 덤벼든 거지?’
그의 머릿속으로 수많은 생각이 오가며 복잡한 심경이 그대로 표정에 드러났다.
“큿. 일단 내 눈으로 확인해 봐야겠다. 다들 준비해. 전투가 끝나기 전에 놈의 뒤를 덮친다.”
놈의 비밀이 뭐든 상관없었다. 놈이 혼자이고 이쪽이 먼저 발견한 이상 결과는 바뀌지 않을 테니까.
여기서 놈을 쓰러뜨리고 자신이 스포트라이트를 받는다.
‘33킬 적립하느라 고생 많았다. 하지만 대중은 결국 최후의 승자만을 기억하는 법.’
쇼이치로는 자신의 승리를 믿어 의심치 않았다.
* * *
화르르륵.
새빨간 화염구가 대기를 불태우며 날아온다.
어린아이 머리통만 한 화염구는 굉장히 위협적이었다.
‘…는 개뿔. 한숨이 나오네.’
배도현은 피할 생각도 없다는 듯 제자리에 서서 3m 길이의 창을 정면으로 찔러 넣었다.
피릿.
창날에 적중된 화염구가 순간 흔들렸다. 창이 밀어낸 공기가 화염구의 기세를 약화시켰다.
타닥, 타닥.
하지만 화염구는 소멸하지 않고 창대를 따라 배도현을 향해 움직이고 있었다.
부우웅.
그때 배도현의 창대가 맹렬한 기세로 회전했다. 리베라 창술의 회전격을 응용해서 펼친 작은 기예였다.
푸드드득, 피잇.
하지만 그 작은 기예는 화염구를 소멸시키기엔 충분하고도 넘쳤던 모양이었다.
‘속도, 위력, 안정성 다 기준 미달이군,’
몬스터가 상대였다면 몰라도 플레이어에겐 통하기 어려워 보였다. 하지만 그건 배도현의 생각이었을 뿐이었다.
“어, 어떻게? 늑대도 한 방에 보내버리는 내 ‘파이어 봄’을!”
“제길, 더 강력한 건 없어?”
“이, 이거 이상 더 큰 기술이 어딨다고?”
마법사가 주문을 외울 시간을 벌기 위해 파티원 둘이 전사하는 동안에도 꿋꿋이 마법사를 지키던 방패 전사가 한숨을 내뱉었다.
“X발. 기대한 내가 바보지. 법사님 알아서 살아남으쇼. 으랴!”
방패 전사는 더 이상 미련이 없다는 듯 방패를 앞세우고는 우직하게 배도현을 향해 돌진해 들어갔다.
‘장병기인 창을 들고 있으니 거리를 좁히면 내게도 승산이 있을 거야.’
쾅, 쾅!
창이 방패를 찌를 때마다 강력한 충격과 함께 몸이 살짝 멈칫거렸지만, 그는 이를 악물고 다리에 힘을 줬다.
배도현이 뒷걸음질 치며 창을 내지르고 있었지만, 분명 거리가 좁혀지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마침내 찌르기의 위력이 거의 없을 정도로 간격을 좁힌 방패 전사의 눈이 번뜩였다.
‘좋았어. 쉴드 차지(방패 돌격) 거리를 확보했다!’
그는 라울이 창을 회수하는 타이밍에 맞춰 땅을 박차면서 마음속으로 ‘쉴드 차지’ 스킬을 발동했다.
파앗!
발자국이 땅을 파고들 정도로 강력한 힘으로 땅을 박찬 그의 몸이 방패를 앞세워 배도현에게 날아들었다.
‘웃어?’
그 찰나의 순간, 방패 전사는 배도현의 입꼬리가 슬쩍 올라가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그리고.
꽈당! 쿠당탕!
땅과 하늘이 왔다 갔다 하는 어지러움을 느끼며 방패 전사는 바닥에 나뒹굴었다.
“괜찮은 플레이였어. 다음에는 상대방이 무기를 회수할 때 손동작을 더 세심히 살펴보는 게 좋을 거야.”
배도현은 바닥 깊숙이 박혔던 창을 뽑아 방패 전사의 가슴에 박아 넣었다.
‘차지 스킬은 앞에 장애물이 생기면 험한 꼴을 볼 수도 있지.’
배도현은 창을 회수하는 척하면서 방패 전사가 차지를 발동하는 순간 창날을 그 앞의 바닥에 꽂아 넣고, 창대를 들어 올렸다.
방패는 창대에 가로막히며 균형을 잃었고, 라울이 창대를 살짝 비틀어주자 주인과 함께 대차게 바닥을 굴러버린 것이다.
‘창대가 조금 상했네. 아무리 비껴 막았다지만 방패 돌격을 받아냈으니 어쩔 수 없지.’
배도현은 약한 휘어버린 창을 인벤토리에 집어넣고 석궁을 꺼내 들어 가볍게 발사했다.
푸슝, 퍽!
“끄헉!”
방패 전사를 버려두고 헐레벌떡 도망치던 마법사 플레이어가 석궁에 심장을 꿰뚫려 바닥에 쓰러졌다.
생각 같아선 마법사까지 창으로 마무리하고 싶었지만, 다음 손님을 받아야 했기에 망설이지 않았다.
‘타이밍 괜찮네.’
전투를 시작할 무렵 쥐새끼 같은 기척을 느낀 배도현은 일부러 시간을 약간 끌고 있었다.
직접 찾으러 다니는 것도 좋지만, 적들이 찾아오는 것도 환영이었다.
‘오호, 이 녀석들 생각보다 본격적인데?’
놈들은 배도현을 중심으로 동서남북 네 방향에서 포위하듯 다가오고 있었다.
일부러 편하게 찾아오라고 병영 건물들 사이에 있는 공터를 전장으로 잡은 게 잘 먹힌 듯했다.
흠칫.
그런데 갑자기 배도현의 표정이 살짝 굳었다.
‘이 낯익은 기척은?’
병영 지붕 쪽에서 특이한 리듬으로 걸음을 옮기는 인형이 느껴졌다.
그냥 걸어도 될 상황에서도 굳이 기척을 죽이겠다며 깨금발을 하고 잔발을 치던 일본의 플레이어가 머릿속에 박혀 들었다.
‘너로구나, 쇼이치로!’
배도현의 얼굴에 환한 미소가 피어올랐다. 하지만 그 검은 눈동자엔 숨길 수 없는 감정이 소용돌이치고 있었다.
‘옛 친구를 맞이하는데 이러고 있을 수는 없지.’
배도현의 모습이 그림자처럼 그 자리에서 사라져 버렸다.
* * *
푸슉. 털썩.
멀리서 마법사 하나가 등을 석궁볼트에 꿰뚫린 채 쓰러지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제길, 조금 늦었나?’
쇼이치로는 아쉬운 마음에 살짝 혀를 찼다. 하지만 상황은 여전히 나쁘지 않았다.
놈의 위치는 대략적으로 파악하고 있었고, 팀원들은 그곳을 포위하며 차근차근 거리를 좁히고 있었기 때문이다.
쇼이치로의 손에는 독특한 형태의 석궁이 들려 있었다.
한 발을 쏘고 나면 재장전을 해야 하는 일반 석궁과 달리, 미리 세 발을 장전해둘 수 있는 3연발 석궁이었다.
굉장히 비싼 물건이었지만, 이번 대회를 위해 일본 플레이어들이 개발새발 모금하여 공용으로 장만한 것을 그가 챙겨온 것이다.
‘크크크, 아무리 놈이 대단하다 해도 쏟아지는 원거리 공격을 모두 막아내진 못하겠지.’
애초에 그는 정면대결을 생각하지 않고 있었다.
굳이 위험을 무릅쓰고 근접 전투를 펼칠 이유가 어디에 있단 말인가?
여태까지 얻은 5킬도 원거리 무기로 적들에게 상처를 입힌 뒤에 마무리하는 확실한 방식으로 얻은 것이었다.
배도현이라고 해도 크게 다를 것은 없었다.
이미 사방을 포위한 그는 화살과 볼트를 피하려 볼썽사납게 땅바닥을 구르다가 그의 소검에 마무리당할 게 분명했다.
스륵, 스륵.
오늘따라 특유의 보법인 ‘닌보(忍步)’가 더 잘 밟히는 느낌이었다. 주무기인 ‘수리검’을 구하지 못한 게 아쉽긴 하지만, 골드와 명성을 얻고 나서 직접 제작하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이다.
‘내가 이 커넥트 안에서 새로운 닌(忍)의 기치를 세우리라.’
그런 쓸데없는 망상을 하며 병영 지붕 끝자락에 도달한 쇼이치로.
이제 고개만 살짝 내밀면 놈의 모습이 보이리라.
숨을 가다듬은 쇼이치로는 다른 지붕에 자리 잡은 팀원들과 눈을 맞추고 재빨리 공터를 향해 연발석궁을 겨눴다.
그런데.
‘…없어?’
묘한 불안감이 쇼이치로를 사로잡았다.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