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Count's Youngest Son Is a Player RAW novel - Chapter 136
제136화
안 좋은 소식이 연이어 들어왔지만, 라울은 냉정함을 유지했다.
이미 상황이 발생하면 이런 흐름이 될 것을 예상하고 있었고, 충분히 막아낼 수 있다는 자신이 있었기 때문이다.
“각 영지의 사령관들에게 주변 영지의 동태에 대해 전달하고, 일절 대응하지 말도록 해. 어차피 놈들이 당장 쳐들어올 것도 아니니까.”
영지전은 그렇게 쉽게 일어나지 않는다.
만약 영주들이 자기 마음대로 주변 영지들을 공격할 수 있었다면, 지금의 왕국 체제가 유지될 수 없었을 것이다.
영지전을 신청하려면 타당한 이유와 더불어 정당한 절차를 밟은 선전포고가 필요했다.
그리고 대부분의 경우 왕실의 허가가 떨어진 이후에나 영지전이 시작된다.
물론 아주 정당한 이유와 힘이 있다면 그런 절차를 무시하고 사후 보고로 대체하는 경우도 있지만, 그건 어지간한 명문가가 아닌 이상 해당사항이 없다.
‘놈들이 움직이고 싶어도 아직 여러 절차가 남아 있으니 시간은 충분해.’
이런 상황을 대비하여 수도에 백작가의 저택이 있고, 퍼스트 길드 지부를 운용하고 있는 것이다.
아직까지 영지전에 대한 보고가 없다는 얘긴 왕실에선 논의조차 되지 않았단 얘기.
그럼에도 병력을 전진배치 한다는 건 라울의 정신을 영지에 팔리도록 만들겠다는 작전일 것이다.
‘그리고 빈틈이 보인다면 정말로 영지전을 걸어오겠지.’
하지만 놈들은 지금 아주 잘못 생각하고 있었다.
만약 게이트 사태가 없었다면 영지 경계를 지키기 위해 부랴부랴 마주 병력을 파견했겠지만, 지금은 전혀 그럴 필요도 없고 그럴 생각도 없었다.
몬스터가 휩쓸고 지나간 영지의 재건은 영주성을 중심으로 차근차근 이뤄지고 있었기에, 멀리 떨어진 영지 경계는 중요도가 떨어졌다.
애초에 멜빈 백작이 쓰러지고 주민들을 소개하라는 명령을 내린 것도, 당장 외부 마을에서 얻을 수익은 없어도 상관없기 때문에 내린 전략적 판단이었다.
‘인구도 줄었고, 게이트 사태 이후로 농업생산량도 늘었으니 영주성 근처에서만 경작해도 식량은 충분하단 말이지.’
게다가 라울의 수익은 영지 세금이 아닌 던전에서 나오는 부산물과 자유 도시의 임대 수입 위주였기에 영지에 목매지 않아도 상관없었다.
“정찰병과 요원들에게는 놈들의 동태를 철저히 살피라고 해. 그리고 가급적이면 무서워서 도망가는 흉내라도 내라고 하고. 놈들이 착각해서 덤벼들 수 있도록 말이야.”
라울의 심중을 파악한 케인이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었다.
“연기를 잘하는 녀석들 위주로 파견하겠습니다.”
영지전을 신청해 준다면 라울로선 나쁠 것이 전혀 없었다.
아무리 배후세력의 지원을 등에 업고 도전한다 해도, 라울과 퍼스트 길드의 전력은 일개 남작령 여섯 곳이 모두 뭉친다고 해서 감당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니었으니까.
‘안 그래도 영지들이 띄엄띄엄 있어서 조금 불편했는데, 이번 기회에 시원하게 길 좀 뚫어놓으면 되겠네.’
* * *
값비싼 장식품으로 치장된 작은 성의 응접실.
상석에 자리 잡은 커다란 덩치의 인물을 중심으로 수십 명의 귀족들과 기사들이 그곳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누추한 곳에 모시게 되어 죄송합니다. 아무래도 적당한 곳을 찾기가 쉽지 않아서….”
“입바른 말은 됐고. 상황은 어떻게 진행되는 중인가?”
걸걸한 목소리로 묻는 상석의 인물은 바로 라울의 큰아버지이자 멜빈 백작의 형인 제이든 드 애쉬튼 자작이었다.
“첩자의 말에 따르면 멜빈 백작은 현재 사경을 헤매고 있습니다. 그리고 백작 대리 딜런과 골든베어 기사단장 트레버 자작은 현재 던전 토벌을 위해 자리를 비운 상태입니다.”
“클클, 아주 꼴좋구나. 그러게 제 주제를 알아야지, 분수에 안 맞게 쓸데없는 짓을 하니 그 사단이 나는 거지. 안 그런가?”
모여 있는 귀족들이 제이든의 말에 동의하며 멜빈 백작의 무모한 도전을 비웃었다.
“그래서 어떻게 놈의 숨통을 끊었는지 파악은 했나?”
이미 멜빈을 죽은 사람이라 생각한 제이든이 그렇게 묻자, 책사를 맡고 있는 테이트 남작이 아쉬운 표정으로 고개를 저었다.
“사람을 붙여놓긴 했습니다만, 무슨 수를 쓴 건지는 도저히 알아챌 수 없었다고 합니다.”
“아쉽군. 방법만 빼온다면 써먹을 곳이 많을 텐데.”
제이든은 협력자들의 수완에 만족하면서도 탐욕을 감추지 못했다.
“딜런 놈도 미끼를 물고 자리를 비웠고, 또 신경 써야 할 게 있을까?”
“백작대리, 기사단장, 총사령관이 모두 콘포드 성을 비워서 구심점이 될 만한 이는 없을 겁니다. 다만 조금 전에 전달받았는데 어떻게 알았는지 라울 공자가 저택에 와 있다고 합니다.”
“라울 녀석이?”
제이든의 미간이 찌푸려졌다. 수도에서의 일도 있고 영 맘에 들지 않는 녀석이었다.
‘어린 녀석이 너무 설치고 다닌단 말이지.’
겨우 16살짜리가 뭘 어쩌겠냐는 생각이 들면서도 서임식 때 마나 블레이드를 뽑아 들던 놈의 모습이 눈에 아른거려 심기가 불편했다.
“놈이 있으면 계획에 차질이 생길 텐데. 어째서 벌써 본가에 돌아가 있는 거지?”
“아무래도 우리가 파악하지 못한 정보 전달 수단이 있는 모양입니다. 하지만 너무 걱정하지 마십시오. 녀석은 조만간 제 영지로 돌아가야 할 테니 말입니다.”
“그래야지. 그러라고 비싼 돈을 들여가며 하찮은 것들을 움직였으니까. 녀석의 동태를 철저히 감시해서 보고하도록 해.”
“알겠습니다.”
쾅.
발을 디디며 벌떡 일어선 제이든 자작이 목소리를 높였다.
“드디어 대업이 시작되었다. 이는 우리 애쉬튼 일족의 뿌리를 바로잡는 아주 중요한 일이다. 비열한 수단으로 본가의 질서를 흐트러뜨린 저 저열한 놈들을 몰아내자! 그리고 새로운 애쉬튼 가의 역사를 우리의 손으로 써내려 가는 것이다. 동지들! 모두 나를 따르라!”
“와!!”
귀족들과 기사들이 모두 목소리를 높여 함성을 질렀다.
탐욕과 광기로 물든 기이한 열기가 그들을 둘러싸고 있었다.
하지만 그들은 그런 자신들의 모습을 누군가가 훔쳐보고 있다는 사실을 미처 알아채지 못하고 있었다.
* * *
“그럼 잘 부탁할게요.”
“맡겨주십시오, 자작님.”
라울은 골든베어 기사단 정복을 입은 기사의 어깨를 두드려 주었다.
그의 이름은 웨이론.
골든베어 기사단의 상급기사였고, 단장과 부단장이 자리를 비운 지금 가장 최선임 기사이기도 했다.
백작이 쓰러지고 하루가 지난 지금, 백작령의 수도인 콘포드 성과 근처에 파견 나가있던 골든베어 기사단원들이 저택으로 돌아왔다.
원래 경비를 맡고 있던 6명의 단원에 추가인원까지 총 15명의 기사가 저택의 경비에 추가된 것이다.
라울이 분석안으로 살펴본 결과 그 15명의 기사들은 믿을 만한 이들이었고, 그 대표인 웨이론에게 특별히 백작의 호위를 부탁한 것이다.
당연히 기존에 호위를 담당한 실버베어 기사단장 카를로 남작은 불만을 표시했다.
“제가 있는데 호위를 추가한다는 건 저를 비롯한 실버베어 기사단을 믿지 못한다는 뜻입니까?”
하지만 라울은 표정하나 변하지 않고 담담하게 대답했다.
“아니요. 남작을 믿지 못하는 게 아니라 아무도 믿지 않을 생각입니다. 백작님이 정신을 차리실 때까지, 그리고 형님이 돌아올 때까지는 저 이외에 아무도 백작님을 독대할 수 없습니다.”
카를로 남작은 불만스런 표정을 감추지 않았지만, 그렇다고 라울의 결정에 반대할 근거는 없었다.
라울은 호위를 추가했을 뿐, 실버베어 기사단의 임무에 간섭하거나 명령을 내리지는 않았기 때문이다.
결국 백작의 침실이 있는 저택 5층에는 골든베어 기사단 5명이 삼교대로 호위 임무에 추가되었고, 라울의 허락 없이는 아무도 침실에 들어갈 수 없게 되었다.
딸칵.
기사들의 목례를 받고 침실 안으로 들어가자 제논 교단의 알론소 주교와 백작가 전속 치료사인 조엘, 두 사람만이 방 안에서 백작의 상세를 살피고 있었다.
“차도가 있습니까?”
라울이 물었지만 땀투성이인 두 사람의 안색은 그리 좋아 보이지 않았다.
“죄송합니다. 저희로선 백작님의 상태를 유지하는 것만으로도 벅차군요.”
물론 라울은 두 사람을 탓할 생각이 없었다. 둘의 고생이 아니었다면 아버지의 병세는 더욱 나빠졌을 테니.
“고생하셨습니다. 그럼 잠시만 자리를 비켜 주시겠습니까?”
라울의 요청에 두 사람이 고개를 끄덕이고는 방을 나가자, 라울의 곁에 서 있던 나키아가 백작의 상세를 살피기 시작했다.
“어때 보여?”
나키아는 차분한 손길로 백작의 몸 이곳저곳을 진맥하고 마나를 퍼뜨려 상태를 확인하고는 조심스럽게 말했다.
“마스터의 생각이 맞는 것 같습니다. 이건 ‘마나 필라리아’의 증상이 확실해요.”
‘후유, 정말 다행이야.’
라울은 나키아의 확신에 찬 목소리를 듣고 나서야 속을 쓸어내렸다.
전생에 ‘마나 필라리아’를 사용해 왕국 주요 인물들이 암살당한 사실이 뒤늦게 밝혀졌다.
그래서 라울로 환생하고 애쉬튼 백작가의 멸문 과정을 살피면서 백작의 죽음 또한 그렇지 않을까 추정을 했던 것이지, 완벽하게 확신을 하지는 못하고 있었던 것이다.
“치료는 가능할까?”
“마스터가 전해주신 자료와 니키를 치료하며 얻은 임상 결과로 치료제 개발은 마친 상태입니다. 마나 필라리아 자체를 치료하는 것은 전혀 문제가 없어요. 하지만 치료 이후 백작님의 상태에 대해서는 저도 자신할 수가 없네요. 최선을 다해 보겠습니다.”
“부탁할게. 나키아라면 해낼 수 있을 거라고 믿어. 그리고 만약 도움이 필요하다면 언제라도 얘기해줘.”
“맡겨주세요.”
나키아의 말에도 불구하고 라울은 조금도 불안하지 않았다.
이미 그녀가 개발한 치료제가 전생에 개발된 것과 다르지 않다는 걸 확인했고, 그 치료제로 비슷한 상태의 환자들이 치료되었다는 사실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백작의 침실을 나선 라울은 알론소 주교와 조엘 치료사와 독대하며 나키아의 치료를 도와줄 것과 백작의 몸 상태에 대한 비밀을 지켜줄 것을 부탁했다.
어차피 당분간 저택에 머물며 백작을 치료할 예정이었던 그들은 흔쾌히 라울의 부탁을 받아들였다.
‘아버지의 치료는 해결되었으니 이제 놈들의 꼬리를 잡아볼까?’
라울은 3층에 남아 있는 자신의 집무실에서 집사 이반과 이야기를 나눴다.
“여기, 부탁하신 자료입니다.”
라울의 책상 위에 두툼한 서류들이 한가득 쌓였다.
그것은 두 달 전, 멜빈 백작이 집중수련을 들어가면서부터 그에게 제공된 먹고 마시는 모든 음식에 대한 정보, 그동안 저택을 찾은 모든 이들의 명부, 저택에 일하는 사용인들의 행적에 관한 자료들이었다.
“정말 이것들이 도움이 될까요? 그리고 누군가가 백작님을 음해했다는 것이 정말 사실입니까?”
초췌해진 이반이 눈에 불을 켜며 열띤 목소리로 물었다.
백작이 쓰러진 것이 자신의 책임이라 생각했던 그로서는 범인이 따로 있다는 라울의 말을 반신반의하면서도 재차 확인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누군가가 아버지께 손을 쓴 것은 분명해. ‘마나 필라리아’는 경지에 오른 기사들에겐 절대 자연 발병 살 수 없는 병이니까. 아직은 어떤 방식인지 밝혀내지 못했지만, 이 자료가 있다면 나키아가 그걸 알아내는 건 시간문제겠지.”
아무런 자료도 없이 마나 필라리아 치료제를 개발한 나키아다. 백작이 섭취한 것들에 대한 자료가 있다면 발병 원인을 밝혀내는 게 불가능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렇다면 앞으로 발생할 암살 사건들을 사전에 막아내는 것도 불가능하지는 않겠지.’
치료제가 있다 해도 적시에 복용하지 못한다면 소용없었다.
제국이 죽이고 싶어 할 정도의 인물들을 보호하는 것만으로도 추후 전쟁에서 큰 힘이 되리라.
“일단 티 내지 말고 내가 얘기하는 사용인들을 중점적으로 감시해 줬으면 좋겠어.”
이미 분석안으로 저택의 사용인 중에서 정체가 불분명한 몇몇 이들을 체크해 둔 상태였다.
그들과 접촉하는 이들을 확인하며 이 음모의 뿌리를 찾아가는 방법도 시도해 볼 만했다.
“맡겨주십시오. 사용인들의 관리는 제 책임입니다. 제가 무슨 수를 써서라도 그들을 철저하게 감시하겠습니다.”
이반이 붉어진 눈동자로 라울에게 다짐하고는 자리를 떠났다.
‘자, 그럼 나도 이제 자리를 피해줘야겠지.’
라울은 인벤토리 안에 자료 더미를 챙겨 넣은 후 필립과 기사들을 이끌고 저택을 벗어나 포털로 향했다.
그는 마치 방금 영지의 소식을 전해들은 것처럼 긴박한 표정과 당황한 기색을 보이며 황급히 말을 달렸다.
음지에 숨어 있는 배신자들을 양지로 끌어내려면 그들이 던진 미끼를 물어주는 척이라도 해야 했기 때문이다.
과연 누가 누구의 미끼를 물게 될지, 저택을 감시하던 수많은 이들이 어둠 속에서 움직이기 시작했다.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