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Count's Youngest Son Is a Player RAW novel - Chapter 138
제138화
“소식이 왔습니다.”
“좋아. 바로 출진한다!”
어느 한적해 보이는 남작성.
하지만 영주관저 아래 모여 있는 병력을 보면 이곳이 그저 그런 시골 영지라는 생각은 전혀 할 수 없었다.
통일되지는 않았지만, 기사를 상징하는 풀플레이트 메일을 입은 기사가 무려 200여 기.
거기에 마찬가지로 각종 갑옷을 걸쳐 입고 말 위에 올라있는 기마병이 1,300여 기.
총합 1,500의 기마대가 흉흉한 기색으로 광장에 모여 있었다.
그리고 성벽 밖의 평원에는 적어도 십여 개의 임시 병영이 널찍하게 떨어져 설치되어 있었는데, 그 수를 합하면 적어도 5천은 되어 보였다.
이곳은 백작령의 수도인 콘포드 성에서 빠르게 말을 달리면 이틀이면 도착할 수 있는 작은 남작성이었다.
그런 곳에 정체불명의 병력이 이만큼 모여 있다는 건 평소라면 절대 있을 수 없는 군율 위반이었다.
하지만 이미 이곳에 모인 이들은 그런 것 따위는 신경도 쓰지 않는 듯 유유히 성 밖에서 훈련까지 진행하고 있었다.
뿌우우!
진군나팔이 울려 퍼지고 마침내 병력들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성문이 열리고 질서정연하게 1,500여 기의 기병이 콘포드 성 방면으로 진군을 시작했고, 그 중심에는 제이든 드 애쉬튼 자작이 있었다.
“현재 적들의 위치는?”
“백작대리 딜런과 골든베어 기사단 및 병력은 이제 막 던전에서 복귀한 모양입니다. 포탈을 이용할 수 없으니 돌아오는데 적어도 일주일은 걸릴 겁니다.”
책사인 테이트 남작이 커다란 마차 내부에 마련된 테이블 위에 백작령의 지도를 펼쳐놓은 채 말했다.
황금빛 곰의 깃발이 백작령 북동쪽 가장 먼 곳에 꽂혀 있었다.
“총사령관과 골든베어 기사단 일부, 아이언 베어 기사단이 포함된 1만의 백작령 중앙군은 백작령 서부, 금역의 경계인 키에른 요새로 향하다 황급히 회군을 시작했습니다. 기마병과 기사단만 이끌고 회군한다 해도 5일은 걸릴 겁니다.”
강철 곰의 깃발이 백작령 서부에 꽂혔다.
“현재 우리의 위치는 콘포드 성의 동쪽 베네트 남작영지입니다. 기마병만 이끌고 간다면 이틀이면 도착할 수 있는 곳이지요.”
검은 곰의 깃발이 콘포드 성 동쪽에 꽂혔다. 단순히 봐도 앞선 두 부대보다 훨씬 가까운 거리였다.
“좋아, 우리가 일찍 도착하는 건 기정사실이군. 현재 콘포드 성의 병력 상황은?”
“콘포드 성의 규모가 규모인 만큼 병력의 수는 여전히 만만치 않습니다. 백작가 직속 중앙군 1천이 내성과 제1외성의 병영에 대기 중이고, 치안과 상시 경비를 맡은 콘포드 경비대 병력 5천이 남아 있습니다. 기사단의 경우 골든베어 기사단 15명, 실버베어 기사단 50명, 체인 기사단 100여 명이 확인되었습니다.”
현재 그들이 이끌고 가는 병력은 기사 200에 기병 1,300.
보병 5천은 대기하고 있다가 콘포드 성의 장악이 끝나면, 그때 동원할 예정이었다.
그럼 실제 병력은 1,500에 불과하고 아무리 정예병이라 한들 6천의 병력과 150의 기사가 있는 콘포드 성을 함락시키는 건 거의 불가능에 가까웠다.
그럼에도 그들의 표정에는 전혀 긴장하는 기색을 찾아볼 수 없었으니, 어찌 된 일일까?
“만약의 경우가 생긴다 해도 우리가 잡고 있는 볼모가 도움이 될 겁니다. 콘포드 성을 장악하기 전에 중요 인질들을 먼저 확보한 건 정말 훌륭한 성과입니다. 역시 자작님의 수완에는 감탄할 수밖에 없습니다.”
제안한 것은 테이트 남작이었지만, 그걸 실현한 것은 전적으로 제이든 자작의 능력이었다.
백작가의 안마당에서 중요 인물들을 확보할 수 있을 정도로 굉장한 협력자들이 있는 이상, 이번 거사는 분명 성공하리란 확신이 들었다.
“그리 어려운 일도 아니지. 분수에 맞지 않는 놈이 백작의 자리를 차고앉았으니 불만이 쌓일 수밖에. 애초에 고지식한 그놈에게 가주의 자리가 넘어가선 안 되는 일이었어. 불과 십오 년 만에 백작가의 이름이 땅바닥으로 떨어져 내리지 않았나! 건국 초부터 명문으로 자리 잡아 온 우리 가문의 이름을 수도의 백성들이 모르다니, 이게 무슨 말도 안 되는 상황이란 말인가! 무식하게 변방에서 몬스터나 쳐 잡는다고 가문의 명성이 올라가는 게 아니라는 사실도 모르는 멍청한 놈 같으니.”
물론 최근 라울의 활약으로 다시 가문의 이름이 왕국 전역에 퍼져나가고 있었지만, 그건 일시적인 눈속임에 불과했다.
그렇게 애써 라울의 공적을 무시한 제이든 자작이 지도를 쾅 내려치며 말했다.
“백작가는 변화가 필요하다. 난세가 다가오고 있건만, 이런 시골에 박혀서 몬스터와 씨름할 상황이 아니란 말이지. 기사단을 장악하면 우리도 중앙으로 진출해 본격적으로 세력을 키워야 해. 힘을 가지고 있으면 써먹어야지, 안 그런가?”
“지당하신 말씀이십니다. 현 백작은 너무 보수적이지요. 이런 혼란한 상황이야말로 영지를 넓히고 봉신들에게 영토를 하사할 수 있는 최적의 시기 아니겠습니까?”
“그래. 그 자식놈들도 마찬가지고. 라울, 그 어리석은 녀석이 벌인 짓을 보게. 하, 돈을 주고 영지를 산다고? 그냥 병력으로 밀고 들어가 영유권을 주장해도 되는 걸 되도 않는 정의심에 사정을 봐주니 지금의 꼴이 나지 않는가?”
테이트 남작이 동의한다는 듯 의미심장한 웃음을 지었다.
“덕분에 저희 일이 더 편해지기도 했지요. 하여튼 낭만주의자들도 아니고 현 백작과 그 자식들은 너무 무릅니다. 지금이야말로 제이든 자작님의 결단력과 추진력이 백작가를 위해 필요한 때입니다.”
그렇게 백작가를 노리는 커다란 위협이 콘포드 성을 향하고 있었다.
* * *
다그닥, 다그닥.
천여 기의 기마대가 뻥 뚫린 관도를 따라 흙먼지를 흩날리며 미친 듯이 내달리고 있었다.
거대한 진동에 호기심을 느낀 동물들과 일부 몬스터들이 숲 밖으로 잠시 모습을 드러냈다 화들짝 놀라 다시 도망쳐 들어갔다.
기마대의 선두에서 달리고 있는 것은 바로 황금색 곰이 새겨진 흑색 갑옷의 기사들.
바로 골든베어 기사단이었다.
그중에서도 가장 눈에 띄는 이가 있었으니, 남들보다 머리 하나는 커다란 말 위에서 몸에 쫙 달라붙는 얇은 갑옷을 입고 있는 거대한 체구의 사나이 딜런이었다.
평소의 호탕하고 유들유들하던 분위기는 어디 가고 인상을 찌푸린 그의 얼굴에는 미미한 살기와 함께 가공할 만한 위압감이 뿜어나오고 있었다.
그 흉흉한 기세가 뒤의 기사들까지 전파되었는지, 기마대의 앞에는 보이지 않는 기파가 형성되어 바람마저 갈라내고 있었다.
그런 광란의 질주가 이어지길 한 시간. 마침내 질주가 끝나고 말들은 거친 숨을 내쉬며 잰걸음을 걸었다.
“이제 속이 좀 풀리셨습니까?”
머리부터 수염까지 모조리 새하얀 노인이 딜런의 옆으로 말을 붙이며 물었다.
“아, 단장님. 좀 나아졌으면 좋겠지만, 여전히 속이 답답합니다. 제가 좀 더 신중하게 판단했어야 했는데….”
노인의 정체는 바로 골든베어 기사단장인 트레버 드 헤세 자작이었다.
바로 조금 전에 백작과 영주성에서 벌어진 일에 대한 소식을 전해 들었음에도 트레버 자작의 표정은 침착해 보였다.
마음껏 감정을 표출하고 있는 딜런과 달리 분노를 감출 줄 아는 연륜의 힘이었다.
“공자님의 잘못이 아닙니다. 누가 책임자였든 이번 일은 당할 수밖에 없었을 겁니다. 이렇게 제대로 속아 넘어간 게 얼마 만인지, 허허.”
특이 던전의 등장, 실종된 병력 및 기사들에 대한 보고.
정식적인 절차와 확인 과정을 거쳐서 전달된 이상 영주 대리인 딜런과 제1기사단이 움직일 수밖에 없는 사안이었다.
무려 ‘마족’과 관련된 흔적이 발견되었다는 보고였으니 말이다.
하지만 실제 던전에 들어가 샅샅이 조사했음에도 성과는 없었다.
던전 탐색대를 해친 흉수는 물론 마족에 대한 것도 전혀 찾아낼 수 없었다.
철저히 속아 넘어간 것이다.
꾸드득.
말고삐가 딜런의 주먹 안에서 우그러들며 비명을 내질렀다.
“이번 일이 정리되면 보고 체계와 지방군에 대한 감사도 진행해야겠습니다. 아무리 노렸다고 해도 이렇게 철저하게 당하다니….”
“그렇게 하시지요. 손봐야 할 것이 한두 개가 아닐 테니, 이 늙은이도 손을 보태겠습니다.”
그때 뒷 열에 있던 당번병이 손에 말고삐를 쥐고 다가왔다.
“교체하실 기마입니다.”
빠른 행군을 위해 기마병의 절반을 남겨두고 말만 챙겨왔다.
지친 말을 갈아타고 나면 다시 달려 나갈 생각이었다.
당번병이 돌아가자 트레버 자작이 물었다.
“그래서 어디로 향하실 생각이십니까?”
조금만 더 달려 나가면 관도가 양쪽으로 갈라진다.
콘포드 성으로 향하는 길과, 또 다른 방향.
딜런이 던전을 빠져나온 순간 그는 길드 통신을 통해 라울에게 그간의 사정을 전해들을 수 있었다.
그리고 마법 영상구를 통해 진행된 임시 회의에서 라울은 두 가지 제안을 해왔다.
하나는 일단 최대한 빠르게 콘포드 성으로 복귀하여 분산된 병력을 수습하고 다음 계획을 세우는 것.
그리고 또 하나는….
“단장님이 보시기에 라울은 어떻습니까?”
“흠. 가주님이 수련에 들어가기 전에 라울 공자에 관해 얘기를 나눈 적이 있었죠. 가주님은 라울 공자의 진면목을 일찌감치 눈치채지 못한 자신을 탓하시며 말씀하시더군요.”
“뭐라시던가요?”
딜런이 흥미로운 눈빛으로 물었다.
“평생 품에 두고 보살펴야 할 아이라고 생각했는데, 알고 보니 백작가가 품기에는 너무나 뛰어난 아이였다고 하시더군요. 조금 더 자랄 때까진 곁에 두고 싶은데 그럴 수 없는 게 너무나 아쉽다고….”
딜런이 피식 웃었다.
“그래서 단장님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만약 적당히 뛰어났다면 딜런 공자님께 아무리 동생분이라도 주의하셔야 한다고 조언했겠지요. 하지만 뭐, 저도 가주님의 말에 동의합니다. 라울 공자는 결코 백작가를 탐낼 인물이 못되지요. 조금 위험한 말일지는 모르지만, 그는 능히 일국을 일으켜 세울 재능이 있습니다. 백작가에 결코 해가 될 이가 아니지요.”
‘라울 이 녀석, 언제 단장님까지 구워삶은 거냐?’
얼마 전에 라울이 단장과 함께 연무장으로 가는 모습을 봤다는 소릴 들었는데, 아무래도 그때가 아니었을까 싶었다.
어쨌든 그런 건 아무런 상관없었다. 어차피 딜런은 그의 막냇동생을 의심할 생각 따윈 조금도 없었으니 말이다.
“그럼 서둘러 보지요. 감히 백작가를 배신한 놈들에게 자신들이 무슨 짓을 저지른 것인지 깨닫게 해줘야 하니까요.”
트레버 자작이 그럴 줄 알았다는 듯 고개를 돌려 외쳤다.
“다시 출발! 뒤처지는 놈들은 놓고 간다. 정신 똑바로 차리고 따라와!”
그리고 그들은 콘포드 성이 아닌 다른 곳으로 향하는 관도로 말을 내달렸다.
* * *
작은 마법 등이 줄줄이 설치된 흙벽으로 된 통로.
그 길을 성큼성큼 걸어가는 일단의 무리가 있었으니 바로 6호와 그의 부하들이었다.
끼리릭.
통로 끝에 있는 철문이 열리자 넓은 테라스 같은 공간이 나타났다.
휘이잉.
테라스 아래로 커다랗고 어두운 공동 벽을 따라 차가운 바람이 스쳐 지나갔다.
플랭크 자작 저택 지하에 있던 수도 지부의 규모에 비하면 1/5밖에 되지 않는 지하 공동이었지만,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커다란 공간이었다.
그르르르.
테라스 아래의 광장에는 당연하게도 제국의 역작이라 불리는 마병들이 관리자들의 지시에 따라 움직이고 있었고, 그 수가 적어도 수백은 되는 것 같았다.
6호는 광장을 내려다보며 부하에게 물었다.
“그래서 엊그제 작전에서 돌아오지 못한 이가 얼마나 된다고?”
“200명 중에 150이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끼릭.
테라스 난간을 거칠게 움켜쥔 6호의 입가가 일그러졌다.
‘생각보다 피해가 너무 컸어.’
목표를 확보하긴 했지만, 씁쓸했다.
마병과 달리 인간 요원들은 충원하기도 어렵고 키워내는 데 시간이 많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마병을 동원했더라면….’
하지만 이내 고개를 저었다.
아직 저것들은 모습을 드러내선 안 된다.
멍청한 애쉬튼 놈들이 서로 제 살을 깎아 먹다가 최후의 승자가 정해지는 순간, 그 숨통을 끊어버릴 비밀 병기였으니까.
‘제이든 자작의 계획이 성공할 수 있을까?’
솔직히 이틀 전만 해도 충분히 성공할 것이라 생각했지만, 지금은 살짝 생각이 바뀌었다.
라울이라는 변수가 생각 이상으로 장애물이 될 것이란 직감이 들었기 때문이다.
‘뭐 상관없지. 어느 쪽이 살아남든 결과는 변하지 않을 테니까.’
콘포드 성에서 전투가 시작되면, 요원들을 통해 성의 마법 방어를 무력화시킬 것이다.
그러면 지하 공동에 설치될 포탈을 통해 제국 기사를 포함한 지원군이 도착할 테고, 백작가는 그걸로 끝이었다.
하지만 그는 몰랐다. 이미 라울의 숨겨진 비수가 그의 턱밑까지 다가와 있다는 사실을.
타타탓.
“대장님, 큰일 났습니다! 포로들이 탈출했습니다!”
“뭐라고? 간수들은 뭘 하고? 바보 같은 놈들이 그깟 애송이들조차 지키지 못했단 말이냐!”
“애송이라서 미안하군.”
써컥.
6호의 앞섶이 길게 잘려나갔다.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