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Count's Youngest Son Is a Player RAW novel - Chapter 162
제162화
둥둥둥둥둥.
게리엇 남작의 성을 앞에 두고 애쉬튼 백작가의 대병력이 북소리와 함께 서서히 전진해 나갔다.
그 병력은 3만 이상.
제이든 남작이 보고받은 2만은 선발대에 불과했다.
서서히 행군하고 있는 지금도 본대의 후방에서는 쉬지 않고 병력이 추가되고 있었다.
“클리프톤 남작가에서 소식을 듣고 병력 2,000을 이끌고 왔습니다.”
“백작님의 명을 받고 병력 1,500과 기사 20명을 데려왔습니다.”
“애드리안 남작가에서….”
제이든 남작이 예상하지 못했던 것.
그것은 바로 멜빈 백작이 영주들에게 종군 명령을 내렸다는 사실이다.
모든 준비를 마친 멜빈 백작이 몸소 명령장과 전령으로 주변 영주들을 소환하자, 가까운 백작령의 영주들이 부리나케 합류하기 시작한 것이다.
덕분에 따로 추가 징집 없이 중앙군과 경비군 일부만 차출했음에도, 게리엇 남작성에 당도할 때 즈음엔 이미 3만이 넘는 병력이 꾸려진 것이었다.
“저, 저게 대체 어떻게 된 겁니까? 저 많은 병력이 어디서!”
“맙소사, 백작가 본대뿐만 아니라 주변 영주들까지 합류했단 말인가?”
성벽 위에 오른 제이든 측 영주와 귀족들은 놀라서 입을 다물지 못했다.
현재 게리엇 남작성에 모여 있는 병력은 기껏해야 1만 5천정도.
그들 세력의 전체 병력을 따지면 그보다는 훨씬 많겠지만, 후방의 두 성에 배치된 병력과 영주들 본 영지에 남겨둔 병사들은 지금 당장 도움이 되지 않았다.
애초에 진짜 전투가 벌어질 거라고 생각하고 병력을 끌고 온 이들은 거의 없었다.
그저 호위 겸 세를 자랑할 겸 데려온 것뿐이었는데, 이런 상황을 맞이하게 되었으니 당황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그리고 당혹스러운 건 제이든 자작도 마찬가지였다.
‘이게 도대체 무슨 일이란 말인가!’
아무리 딜런이 후계자라지만, 아직 작위 계승이 끝나지도 않은 상황에서 저렇게 많은 영주들을 동원한다는 건 말이 안 되었다.
얼핏 봐도 열다섯은 넘는 영주의 깃발이 평원 곳곳에서 펄럭이고 있었다.
하지만 아직 포기하기엔 일렀다.
상황을 파악한 즉시 후방에 있는 두 성에서 구원군을 출발시켰고, 후원자들과 수도에도 소식을 전해 두었다.
아직 상황을 반전시킬 기회가 충분하다고 그는 생각하고 있었다.
* * *
얼마후.
애쉬튼 백작군의 포진이 끝나고, 일단의 기마대가 성의 정문을 향해 다가왔다.
그 가운데서도 특출하게 건장한 육체를 자랑하는 거구의 인물이 나서며 소리쳤다.
“나는 딜런 드 애쉬튼. 애쉬튼 백작가의 후계자이자 백작 대리이다! 반란군의 수괴 제이든 자작 놈은 어디에 있는가!”
딜런이 부릅뜬 눈으로 성루 위의 인물들을 노려보자, 그곳에 있던 영주와 귀족들이 슬그머니 시선을 피했다.
“반란군이라니! 어디서 싹퉁머리 없는 어린 녀석이 가문의 어른에게 욕지거리를 내뱉느냐? 그래, 이렇게 병력을 이끌고 선량한 영주들을 핍박하는 이유가 뭔지 들어나 보자!”
만만치 않은 덩치를 자랑하는 제이든 자작이 화려한 검은빛 갑주를 차려입고 성루에 나타나 외쳤다.
“내가 말하지 않아도 당신이 더 잘 알고 있을 텐데? 굳이 원한다면 알려주마!”
딜런이 오른손을 들어 올리자 백작군 본진에서 마치 폭죽이라도 쏘아 올린 것처럼 빛줄기가 하늘로 날아올랐다.
그리고 파앗 하는 섬광과 함께 허공에 마법의 글자가 아주 커다랗게 새겨졌다.
-애쉬튼 백작가의 가주인 멜빈 백작을 음독하여 암살하려 한 죄!
-일부 귀족들과 작당하여 콘포드 성을 전복하려 한 죄!
-영주들을 현혹하여 백작령에서 내전을 일으키려 한 죄!
-이상의 이유로 제이든 자작 및 그 동조자들에게 반역의 죄를 묻는다.
하늘에 새겨진 글을 읽은 이들의 얼굴이 새파래졌다.
“암살이라고?”
“백작성 얘기는 뭐지?”
“반역이라니! 나는 그런 얘기 들은 적도 없다고!”
그저 차기 백작 승계 과정에서 콩고물이나 주워 먹으려고 합류했던 영주들은 소스라치게 놀라 제이든 자작을 찾았다.
“조용! 모두 진정하시오! 저건 모두 백작가의 모략이오!”
억지로 주변 귀족들의 소란을 눌러버린 제이든 자작이 딜런을 향해 소리쳤다.
“하! 이런다고 우리가 눈 하나 깜빡할 것 같으냐? 아무런 근거도 없이 저런 말도 안 되는 소리를 지껄인다고 이들이 속아 넘어갈 것 같은가! 네놈이 마음이 급해지더니 아주 얕은수를 쓰는구나, 크하하!”
“글쎄, 과연 이걸 보고도 그렇게 웃을 수 있을까?”
딜런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허공에 커다란 마법 영상이 재생되기 시작했다.
– 본인은 마법사 협회 루벤 왕국 부지부장인 카리사입니다. 이번 애쉬튼가의….
– 제논 교단의 오스발도 대주교….
– 연금술사 협회의….
각 협회의 권위자들이 등장하여 멜빈 백작이 쓰러지게 된 원인에 대하여 다 같이 증언을 이어갔다.
뒤이어 콘포드 성에서 생포된 반역자들이 제이든 자작의 지시를 받았음을 시인하는 영상이 이어졌고….
“모함이다! 모두 거짓말이야!”
“테이트! 빨리 저 영상을 멈춰라! 적들의 계략에 계속 놀아날 생각인가!”
제이든 자작이 악을 쓰며 외쳐댔지만, 아무 소용없었다.
성에 제대로 된 마법사가 없는 이상, 멀리 떨어진 허공의 마법 영상을 멈출 방법 따윈 없었으니까.
게다가 아주 귀에 쏙쏙 들어가라고 사방에서 음성 증폭기를 틀어 성벽 위에 들려주니, 성안의 주민까지 누구 하나 듣지 못한 이가 없었다.
“속지 마라! 모두 날조다!”
“적의 계략에 불과하다!”
“동요하지 마라!”
뒤늦게 기사들이 병사들을 단속하며 외치고 다녔지만, 이미 영상은 종료되었다.
게다가 하늘 위의 마법 글자는 여전히 위압적인 자태를 뽐내며 그들을 압박하고 있었다.
“딜런, 네 이놈! 어디서 이런 더럽고 지저분한 짓거리를 벌이고 있는 것이냐! 돈에 매수되어 거짓 증언을 씨부린 저 더러운 연놈들과 네놈까지 싸그리 붙잡아다가 왕실 법정에 세워버리겠다!”
목과 얼굴에 핏대를 세워가며 외치는 제이든의 모습에 혀를 찬 딜런.
“끝까지 어리석구나, 제이든 자작. 어차피 당신이 인정하든 그렇지 않든 나는, 아니 백작가는 당신의 죄를 물을 것이다!”
딜런이 검을 뽑아 겨누며 외치자 제이든 자작이 코웃음을 쳤다.
“하! 백작령의 질서가 땅바닥에 떨어졌구나. 영주라는 작자들이 고작 애송이 후계자의 감언이설에 속아 이렇게 병력을 몰고 왔단 말인가? 딜런, 네놈이 도대체 무슨 자격으로 나를 심판하겠다는 것이냐? 알량한 후계자, 대리 백작의 직위를 내세우겠다면, 나도 과거 백작가의 후계자로서 너의 웃기지도 않는 장난질에 어울려주마!”
마지막까지도 죄를 인정하기는커녕 뻔뻔하게 딜런을 훈계하려는 모습에 백작가의 인물들이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딜런이 다시 뭐라고 말하려는 그때.
그의 뒤쪽에 후드를 뒤집어쓰고 있던 누군가가 앞으로 나서며 입을 열었다.
“여전하시군요, 그 뻔뻔함은.”
“……? 누구냐?”
“허허, 고향이 그리웠으면 그냥 조용히 연락하시지 그랬소, 형님.”
“……!”
후드를 벗자 살이 빠져 인상이 날카로워진 멜빈 백작의 얼굴이 드러났다.
“너, 너! 어떻게…?”
경악한 표정의 제이든 자작을 멜빈 백작이 지긋이 바라봤다.
과거의 망령이자 잊고자 했던 가문의 배덕자.
정 때문에 정리하지 못했던 자신의 업보가 저렇게 다시 돌아왔다는 사실에 백작의 표정은 씁쓸해 보였다.
“후우. 타국에서나마 부유하게 부족함 없이 잘 살고 계시다고 들었는데, 뭐가 그리 아쉬워서 이렇게 일을 벌인 것이오?”
백작은 담담하게 말했지만, 받아들이는 제이든 자작에겐 그렇게 들리지 않았다.
마치 자신을 꾸짖는 듯한 동생의 목소리에 발끈한 그가 소리 질렀다.
“그래, 바로 그 눈! 그 목소리! 마치 네가 제일 잘난 양 위에서 내려다보는 듯한 그 태도! 몇십 년이 지났지만, 결코 잊지 못했다! 당연하다는 듯 네가 차지한 그 모든 것들은 원래 내 것이다! 너만 아니었어도, 다 내 것이었단 말이다!”
광인처럼 침을 튀겨가며 외치는 그 모습은 철부지 어린아이가 떼쓰는 모습과도 다르지 않았다.
차마 그 모습을 계속 봐주기 힘들었던 멜빈 백작이 표정을 굳히고는 외쳤다.
“형님 대접은 여기까지요. 제이든 자작! 당신에게 백작령을 어지럽힌 반역의 죄를 묻겠다! 지금이라도 항복한다면, 당신을 제외한 혈족들에겐 선처를 베풀도록 하지. 항복하겠는가!”
“웃기지 마라! 네가 뭔데 감히! 감히!”
제이든 자작은 더 이상 떠오르는 말도 없는지 씩씩거리며 욕을 내뱉을 뿐이었다.
상대할 가치를 느끼지 못한 백작이 마지막으로 성루와 성벽을 천천히 바라보며 말했다.
“이틀의 시간을 주겠다. 원치 않게 반역에 휘말린 자들, 이제라도 죄를 뉘우치고 항복하고 싶은 자들은 그때까지 성 밖으로 나오도록. 죄의 경중에 따라 선처하도록 하겠다. 하지만.”
백작이 손을 들어 올리자, 성을 포위하고 있는 수백 기사들의 검에서 마나 블레이드가 솟구쳐 올랐다.
“이틀이 지나고 성에 남아 있는 자들은 참형을 면치 못할 것이다.”
휘릭. 콰과광!!
백작이 손을 내리긋자, 기사들이 내지른 마나 블레이드가 남작 성 앞의 평원을 뒤흔들었다.
미련 없이 몸을 돌린 백작이 본진으로 향했고, 성벽 위에 남겨진 이들의 동공은 혼란과 불안 속에 사정없이 흔들리고 있었다.
* * *
이틀 뒤.
“아트로 남작이 기사 열 명과 함께 투항했습니다.”
지휘 막사에 들어선 전령이 보고했다.
“절차에 따라 수용하도록.”
“네, 백작님.”
전령이 나가고 상황판에 수치가 갱신되었다.
“이로써 투항한 영주가 여덟에, 귀족이 스물둘, 기사가 백오십여 명이군요.”
“남은 건 영주 셋과 제이든 자작이 데려온 이들뿐입니다. 이제 빠질 놈들은 다 빠진 거겠지요.”
기사단장들이 성의 상황을 얘기하며 작전 계획을 검토했다.
귀족들뿐만 아니라 병사들도 탈주한 이들이 많아, 성에 남은 건 겨우 오천도 되지 않았다.
기사의 수도 제이든 자작이 데려온 이들과 남은 영주들의 기사까지 합쳐 이백여 명.
제이든 자작이 데려온 이들 중에서도 항복한 이들이 상당했으니, 상황이 얼마나 기울었는지를 알 수 있었다.
“그럼 슬슬 이 지저분한 전쟁을 끝내도록 하지. 다들 준비하도록.”
“네, 각하!”
이미 승패는 결정된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자칫 방심해서 피해가 커진다거나 제이든 자작을 놓친다면, 또 다른 위협이 다가올지도 몰랐다.
멜빈 백작은 마지막으로 막사를 나서려는 라울을 불러 세웠다.
“라울아.”
“네, 아버지.”
어떻게 보면 이번 백작가의 위기는 라울이 혼자서 해결한 것이었다.
백작이 쓰러졌을 때 콘포드 성과 저택을 지킨 것.
성 내부의 숨겨진 적들을 소탕한 것.
제이든 자작의 기사단을 물리친 것.
백작의 병을 고친 것.
제이든 자작의 퇴로를 막아버린 것까지.
겨우 열여섯에 불과한 라울이 이 커다란 백작가를 지켜낸 것이었다.
“미안하구나. 그리고 고맙다.”
짧은 말이었지만 많은 감정을 담고 있었다.
“당연히 해야 할 일을 했을 뿐인걸요. 그리고 제가 아니었어도 형이 충분히 해결했을 건데요 뭘.”
백작은 그저 이 대견한 아들의 머리를 쓰다듬어 줄 수밖에 없었다.
“그래. 고생 많았다. 이번 전투는 아버지 옆에서 함께 마지막을 지켜봐 줬으면 좋겠구나.”
“물론이에요, 아버지.”
아직 백작의 몸 상태는 정상이 아니었다. 제이든 자작이 죽음을 각오하고 본진으로 달려든다면, 라울이 가장 앞에서 막아낼 생각이었다.
* * *
마지막 전투가 시작되었다.
준비할 시간이 충분했던 만큼, 마법사 협회를 통해 고용한 마법 전력이 성의 방어 마법진을 무력화시켰다.
뿌우우!
“기사들 앞으로!”
성벽에 올라있는 아머 유저 200명에게 병사들을 밀어 넣는 것은 멍청한 짓이었다.
신호와 함께 대열 앞쪽으로 각 기사단이 위풍당당하게 모습을 드러냈다.
최정예 기사단인 골든베어 기사단 80명.
실버베어 기사단 40명.
아이언베어 기사단 70명.
체인 기사단 150명.
퍼스트 기사단 50명.
기타 영주들이 대동한 기사 300여 명까지 총 700명에 가까운 기사들이었다.
“모두 돌격 앞으로!”
“와아아!”
말에서 내린 기사들이 방패를 앞세워 성벽을 향해 달려나갔다.
아머 유저들은 파워아머를 발동한 채 커다란 말뚝을 들고 달려가다 성벽을 향해 투척했다.
쾅! 꽈광!
마법 처리된 말뚝은 방어막이 깨진 성벽 중간중간에 박혀 들어갔고, 뒤이어 도착한 기사들이 말뚝을 발판삼아 성벽 위로 뛰어 올라갔다.
챙, 채쟁!
쾅! 서걱!
“죽어랏!”
“하앗!”
마나 블레이드를 뽑아 든 기사들의 전투에 일반병사들은 속절없이 쓸려나갔고, 성벽 위는 온통 기사들로 가득 찼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승부의 추가 기울었다.
애초에 아머 유저의 수도 이쪽이 많았고, 기본적인 기사들의 수준도, 전체적인 머릿수도 압도하고 있었다.
제이든 자작 측의 기사들이 하나둘 쓰러져 갔고, 성벽 위는 백작가의 기사들이 득실거리고 있었다.
그때 끼리릭 소리와 함께 정면의 성문이 열렸다.
“모두 돌격! 다 죽여버려!”
제이든 자작이 삼십여 명의 아머 유저와 함께 달려 나오고 있었다.
하지만 그 앞을 가로막은 이가 있었으니.
“기다리고 있었다.”
딜런이 주먹을 불끈 쥐고는 그들을 향해 달려들었다.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