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Count's Youngest Son Is a Player RAW novel - Chapter 235
제235화
끼야아악.
검은 매가 울음소리와 함께 한서현의 어깨 위로 내려앉았다.
환수라서 그런지 주인의 어깨에 앉을 때는 발톱을 접는 모양이었다.
“그래, 그래. 수고했어, 묵아.”
서현이 매의 머리를 손가락으로 쓰다듬어줬고, 일행들의 앞에 놓인 휴대용 마법 지도엔 레이선 시 근처의 지형이 홀로그램화 되어 떠올랐다.
지도에는 현재 양쪽 진형의 위치와 인원수, 마력포의 배치 등 세밀한 정보가 모두 표시되어 있었다.
“이거, 인공위성 사진보다 훨씬 좋은데? 입체적이기도 하고.”
일우가 손으로 홀로그램 화면을 이리저리 돌려보며 감탄했다.
확대 기능까지 있어서 화면을 키우니 사람 얼굴까지 구별할 수 있었다.
“일단 공격 측의 병력은 대략 4천. 개중에 1천이 리플 협회가 동원한 플레이어야. 그리고 기사들의 숫자는 대략 20여 명, 마법사가 열 명 정도.”
병력 동원 규모를 보면 대략 루벤 왕국의 남작가와 자작가 사이 정도로 보였다.
병력규모에 비해 기사나 마법사의 수가 적은 것은 브레넌 공화국의 특징이었다.
‘기사나 마법사를 고용하는 비용으로 아티팩트나 마법 무기를 확보하는 게 낫다고 생각하니까.’
실제로 브레넌 공화국에선 아머 유저까지 무력화할 수 있는 아티팩트로 무장한 특수부대를 운용하는 경우도 많았다.
물론 이런 작은 전장에 등장하는 일은 별로 없었지만 말이다.
“그에 반해 레이선 시의 정규 병력은 대략 1천 5백 정도. 징집병과 용병으로 보이는 이들을 포함하면 3천은 되는 것 같아. 다행히 기사나 마법사 같은 고급 전력은 공격 측과 비슷한 수준이네.”
“그럼 좀 문제가 심각한 거 아냐? 전력 차가 너무 심한데?”
서현이 살짝 눈을 찡그리며 말했다.
그렇게 생각하는 건 그녀뿐만이 아니었다.
린다와 매닝거도 조금은 표정이 심각해졌다.
“공화국 사람들은 아직 잘 모르나 보네.”
“플레이어가 어떤 존재인지 말이지.”
일반적으로 자유 도시를 졸업하고 대륙 퀘스트를 받기 위한 최소 레벨을 30으로 잡고 있었다.
레벨 30.
낮아 보이지만, 최소한 마나를 다룰 수 있는 수준이었다.
게다가 플레이어라면 제한적으로 엑스퍼트급 기사에 준하는 검기류 스킬을 사용할 수 있었으니.
“천 명 가운데 50레벨 이상이 백 명 정도는 된다고 해. 완편 기사단급 전력에 수습기사 900명이 추가되었다고 생각하면 되는 거지.”
“우리가 안 왔으면, 그냥 순식간에 쓸려나갔겠는데?”
린다가 어깨를 으쓱하며 말했다.
커넥트 대륙 주민들이 눈치채지 못하는 사이, 플레이어들은 어느새 전쟁의 향방을 가를 수 있는 수준으로 성장해 있었던 것이다.
“숫자 놀음은 그 정도면 충분해. 당장 중요한 건 마력포야. 상황을 보니 전면전으로 끌고 가기도 전에 포격전에서 끝나면 말짱 도루묵이니까.”
배도현의 말에 다들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서 우리의 목표는 바로 여기와 여기.”
그가 손가락으로 지도를 가리키자 붉은색으로 대상이 마킹되었다.
“도시에 들어가기 전에 선물 보따리를 챙겨가야겠지.”
“오케이~, 접수했어!”
지도에선 제레두 진영의 마력포대가 붉게 물들어 있었다.
* * *
우우웅~ 쾅!
아름드리나무의 몸통보다 커다란 구경의 마력포가 굉음과 함께 광선을 쏘아냈다.
덜컹 소리와 함께 포 뒤쪽의 투입구가 오픈되었다.
“서둘러 교체해!”
“옛써!”
포병들이 달려들어 돌멩이로 변해 버린 마나석을 꺼내고 붓으로 마법진을 청소했다.
일부는 아티팩트로 바람을 일으켜 과열된 포신을 식혔고, 모포로 포구 안을 청소하는 이도 있었다.
“놈들이 당황하는 게 느껴지지 않는가! 조금만 더 고생하면 이 전쟁을 우리 손으로 끝낼 수 있다!”
포병 대장은 우렁찬 목소리로 병사들을 독려했다.
도시에도 열 문밖에 배치되어 있지 않은 마력포인데, 현재 그가 지휘하는 포가 그 정도.
반대편에 있는 포진지에도 열 문이 배치되어 있었다.
덕분에 엄청난 화력을 자랑하며 방어막을 깨지기 일보 직전까지 몰아붙이고 있는 것이다.
‘내 손에서 전쟁을 끝내면, 대박이다!’
포격전으로 도시를 차지한 만큼 어마어마한 포상과 더불어 승진도 가능할지 몰랐다.
그래서인지 병사들을 재촉하는 그의 목소리엔 더 힘이 실려 있었다.
그때 부관이 다가와 말했다.
“대장님, 누가 진지로 다가오고 있습니다.”
“뭐? 본대에서 지시라도 내려왔나?”
전령으로 보이는 기마병 두 기가 빠른 속도로 다가오고 있었다.
정규군 군복을 입고 있었기에 포대장은 그들의 정체에 대해서 전혀 의심하지 않았다.
“정지, 무슨 일인가?”
포병 진지를 지키는 병사들이 기마를 불러 세웠는데, 그들은 말을 세우기는커녕 오히려 속도를 높여 포대를 향해 달려들었다.
“멈춰! 멈추지 않으… 컥.”
그들의 무기에서 빛이 터져 나오는 순간 포병 대장은 일이 잘못되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적이다! 모두 막아!”
도대체 어떻게 아군 진영 한복판을 뚫고 여기까지 침투했단 말인가?
그가 놀랄 새도 없이 진지는 초토화되기 시작했다.
쾅!
써컹.
“으악!”
“기사다! 기사들이야!”
배도현이 조종하는 십여 개의 단검이 주변 병사들의 가슴을 꿰뚫었고, 창에서는 마나 스피어가 솟구쳐 올랐다.
“쿠워엉!”
서현의 소환수들이 사방에서 날뛰었고.
슈웅~ 꽈광!
린다가 날린 화살은 마력포를 박살 내버렸다.
일우와 매닝거는 일행의 뒤쪽에서 날아드는 화살과 마법을 막아내며 일행들을 보호했다.
다그닥, 다그닥.
그리고 그들은 조금도 지체하지 않고 포병 진지를 돌파하여 도시를 향해 달려가 버렸다.
“아, 안 돼!”
다행히 포병장은 마나석 교체를 위해 가장 끝 쪽의 마력포 근처에 있었기에 횡액을 피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는 머리를 부여잡고 바닥에 주저앉고 말았다.
그가 관리하던 열 개의 마력포가 모두 박살 나버렸고, 부대원들 절반 이상이 싸늘한 주검으로 변했기 때문이다.
그와 함께 포격전으로 전투를 끝내겠다는 그의 야심 찬 계획도 물거품이 되었다.
* * *
“가주님! 지원군이 도착했습니다!”
집무실 문이 벌컥 열리고, 기사 하나가 뛰어 들어왔다.
“아아, 그래? 빨리 도착했나 보군. 적당히 쉴 곳을 마련해주고….”
가주 포레아도는 아예 기대도 하지 않았는지, 기사의 얼굴도 쳐다보지 않은 채 서류를 검토하며 사무적으로 말했다.
당장 포격전에 필요한 마나석 조달 때문에 골머리가 아픈 모양이었다.
하지만 기사는 그럴 상황이 아니라는 듯 가주의 말까지 끊어가며 소리쳤다.
“지금 서류나 보고 계실 때가 아닙니다. 당장 성벽으로 가시지요!”
“…무슨 일인가?”
“지원군이 적진의 마력포를 박살내고 왔습니다!”
“뭣이라! 그게 정말인가?”
포레아도가 정말 깜짝 놀라서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
기사가 뭐라고 말을 덧붙였는데 그는 반응할 여력도 없었다.
“어디냐! 당장 내 눈으로 확인해야겠다!”
도시전이 시작되고 처음으로 그의 이마에서 주름이 사라진 순간이었다.
배도현 일행은 말 그대로 극진한 환영을 받았다.
패배 위기에 빠졌던 도시를 살려냈으니 당연한 일이기도 했지만, 포레아도 텐바 시장의 극성도 한몫을 보탰다.
항복까지 생각할 정도로 궁지에 몰려 있던 시장이었으니, 그의 눈엔 그들이 천사로 보였을지도 몰랐다.
그래서인지 그는 배도현 일행이 이방인임에도 불구하고 반존대까지 해가며 기사 대우를 해주고 있었다.
“하하하, 경들이 있어서 든든하오! 정말 어떻게 이렇게 위기의 순간에 딱 맞춰서 도착했는지.”
그들이 도착하고 이틀.
레이선 시는 포격전 제한 시간을 무사히 버텨냈다.
절반의 포대를 허무하게 잃어버린 공격 측은 어떻게든 방어막을 무너뜨리려 끝까지 애써봤지만, 결국 무위로 돌아갔다.
버틸 수 있다는 확신이 서자, 도시의 유력가문들이 꿍쳐뒀던 마나석을 제공했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전투는 잠시 소강상태로 접어들었다.
포격전이 아닌 공성전을 위한 숨 고르기였고, 그 틈에 가주 포레아도는 배도현 일행을 위해 작은 만찬까지 열어줬던 것이다.
“이거 참, 부담스러운데?”
“얼굴에 미소부터 지우고 그런 소리 하지?”
“어허, 이건 다 영업용이라고, 영업용.”
린다와 일우가 근사한 복장을 차려입은 채 만찬장을 누비고 있었다.
귀찮게 들러붙는 남자들 때문에 곤란해진 린다를 일우가 에스코트하고 있는 중이었다.
만찬장 한쪽에선 매닝거가 젊은 아가씨 무리에 둘러싸여 무뚝뚝하게 와인을 마시고 있었고, 서현은 이런 자리가 불편하다며 일찍 숙소로 돌아간 뒤였다.
그리고 배도현은 가주 포레아도, 장군 비셔스와 따로 얘기를 나누는 중이었다.
“그게 사실이오?”
“저희가 직접 확인한 정보입니다.”
배도현을 통해 적의 규모를 전해들은 시장의 표정이 약간 어두워졌다.
“비셔스 장군. 어떻게 생각하시오?”
“배도현 경의 말이 사실이라면, 지금 도시의 전력만으로 적들을 막아내는 건 쉽지 않을 겁니다. 하지만 걱정 마십시오. 공성전은 숫자만으로 승부가 결정되지 않으니까요.”
배도현도 그 말에 동의하는지 고개를 끄덕였다.
“저들이 고용한 플레이어, 아니 이방인들은 저희가 책임지고 막아내겠습니다. 그러니 가주님께선 적의 정규병과 수뇌부에 신경을 써주십시오.”
“끄응. 저들은 천이나 된다고 하지 않았소? 경들을 믿지 않는 건 아니지만, 다섯이서 그들 모두를 감당할 수 있단 말이오?”
배도현이 주먹을 가슴에 대며 자신 있게 말했다.
“이방인이라고 다 같은 이방인은 아니지요. 내일 저희가 직접 보여드리겠습니다. 그러니….”
“…알겠소. 허락하지. 어차피 그대들의 분투에 기대하지 않으면 안 되는 상황이니 말이오. 건투를 빌겠소.”
“감사합니다.”
배도현이 자리를 떠나자 포레아도가 비셔스 장군에게 물었다.
“장군은 괜찮소? 어찌 보면 명예로운 자리 아닌가?”
“물론 그렇기는 합니다만, 저희는 루벤 왕국의 기사들이랑은 다르지요. 뭐가 더 중요한지 잘 알고 있으니 말입니다.”
“역시 내가 믿을 사람은 장군뿐이오. 만약 내일 배도현 경이 패배하더라도, 장군만 믿겠소.”
“물론입니다. 우리 도시는 우리 힘으로 지켜내겠습니다.”
솔직히 말해서 마력 포대를 처리한 건 대단한 공이지만, 실력 때문이라기보다는 운과 전략의 승리였다.
자신만만한 건 좋지만, 과연 진짜 기사를 상대할 수 있을지는 의문이었다.
‘괜히 적들의 사기만 올려주는 건 아닌지 걱정이군.’
아직까지 그들은 배도현 일행의 진짜 실력을 알지 못하고 있었다.
* * *
날이 밝았다.
제레두 측에선 아침 일찌감치 병력들을 전진 배치하며 공성전을 준비했다.
4천의 병력이 사다리와 충차(성문 파쇄용 병기), 운제(공성용 사다리차)까지 각종 공성 병기들을 준비한 채 도열해 있으니, 성벽 위의 병력도 긴장한 모습이었다.
하지만 본격적인 전투가 시작되기 직전.
끼리릭.
성문이 열리며 누군가가 말을 달려 양측 진영의 중간에 멈춰섰다.
웅성웅성.
갑작스런 기사의 출현에 공격 진영이 소란스러워진 그때.
후우웅.
머리 위에서 창을 돌리다 적진을 향해 겨누며 그가 외쳤다.
“무도한 침략자 무리에 고한다. 내 이름은 배도현! 퍼플 길드의 마스터이자, 퍼스트 자작가에서 서임 받은 기사다! 너희들 가운데 나와 대결을 펼칠 용기가 있는 이가 있는가?”
그는 바로 배도현.
새하얀 갑옷에 황금매가 새겨진 보랏빛 망토를 휘날리며 그가 전장 가운데에 섰다.
“배도현? 퍼플 길드? 퍼스트 자작가? 혹시 들어본 적 있는 이가 있는가?”
제레두군 진영.
긴 콧수염을 만지작거리며, 웃음기 가득한 얼굴로 묻는 이가 있었으니.
바로 제레두 가문의 가주 쿠드레 제레두였다.
“하하하, 도대체 어디에 붙어 있는 곳이랍니까?”
“아니, 설마 기사대전을 신청한 겁니까? 어디 루벤 왕국 촌구석에서 기어 나왔나?”
가주의 뒤에 서 있던 십여 명의 기사들이 박장대소하며 웃었다.
그리고 부관이 다가와 가주 쿠드레에게 보고했다.
“저자는 이방인입니다. 그리고 며칠 전에 우리 포대를 박살낸 바로 그놈 같습니다.”
“뭣이라? 감히 이방인 따위가 기사 흉내를 내고 있단 말인가! 이런 괘씸한!”
비겁하게 포대를 기습한 괘씸죄까지 더해지니 쿠드레의 얼굴이 분노로 붉게 달아올랐다.
“누가 당장 저놈의 모가지를 따오거라!”
쿠드레가 외쳤지만, 의외로 나서는 이가 없었다.
‘고작 용병 따위의 대결 신청을 받아줘 봤자, 웃음거리가 될 뿐이지.’
나서봤자 본전도 찾지 못한다는 생각에 기사들이 꺼림칙하게 생각한 것이다.
그 점을 눈치챈 가주 쿠드레의 혈압이 오르려던 그때.
“그 임무. 저희에게 맡겨주시면 안 되겠습니까?”
새별 길드의 길드장.
김이상이 싱글거리는 표정으로 쿠드레에게 제안했다.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