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Count's Youngest Son Is a Player RAW novel - Chapter 241
제241화
화려한 방 안.
따스한 햇살이 테라스를 통해 들어오고 있었다.
알록달록한 화병 옆에 놓인 색감이 화려한 찻잔.
“하아.”
김이 살며시 오르는 찻잔에서 입술을 뗀 삼십 대 후반의 여인이 알 수 없는 한숨을 내뱉었다.
아리엘라.
루벤 왕국에 남은 유일한 왕비이자 5왕자 에드라드의 어머니.
아직 시들지 않은, 아니 여전히 빼어난 외모를 자랑하는 그녀였지만, 그게 다 무슨 소용일까.
남편인 타데우스 2세는 병들어 오늘내일하고 있었고, 왕실의 상황은 한 걸음 한 걸음이 살얼음판을 걷는 것처럼 위태롭기만 했다.
‘그냥 마음 편하게 살 수는 없겠지…?’
원해서 오른 왕비 자리도 아니었고, 딱히 권력이나 재물에 욕심이 있는 것도 아니었다.
그저 걱정 없이 편안한 일상을 보낼 수만 있다면, 더 바랄 것이 없을 텐데.
당연한 일상이라 믿었던 것이 무너지는 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다.
어쩌면 이건 왕실에 발을 들이는 순간 정해져 있던 운명일지도 몰랐다.
그렇게 씁쓸한 차 한잔을 즐기는 사이, 누군가의 걸음 소리가 들려왔다.
“어머니, 티타임을 즐기고 계셨군요?”
하나뿐인 자식이자 5왕자 에드라드가 미소를 지으며 다가왔다.
“그래, 에드라드. 너도 차 한잔 마시려무나.”
올해로 스물넷이 된 에드라드는 솔직히 평범했다.
검술, 학업, 외모, 성격.
뭐 하나 뛰어나지도 않지만, 부족하지도 않다는 평가를 받았으니, 평범한 시대였다면 원하는 대로 무난한 삶을 살았으리라. 하지만.
“어젯밤에도 외할아버지가 찾아오셨어요. 어머니의 결심이 필요하다고 하시더군요.”
“…….”
아리엘라의 입술이 꾹 닫혔다.
에드라드의 외할아버지이자 그녀의 아버지.
베오르티오 드 애드머는 왕국에 셋밖에 없는 후작 중 한 명이었다.
5대 무가와는 달리 행정과 상재에 뛰어난 가문인 애드머 후작가.
덕분에 가진 재산이나 가문 출신의 관료 수, 영지의 넓이를 따진다면 템플턴 공작가를 넘어선다는 말까지 있을 정도의 명문가였다.
부족한 점이라면 5대 무가와 달리 단 한 번도 가문에서 마스터를 배출해내지 못했다는 것.
하지만 기사들의 왕국이라는 루벤 왕국이었기에, 그 하나의 단점이 너무나도 큰 족쇄로 다가왔다.
그래서였을까.
베오르티오 후작은 이번 기회를 순순히 놓치고 싶은 생각이 없었던 모양이었다.
어떻게든 외손주를 왕위에 올리고 왕국 최고의 가문이라는 소리를 들어보고 싶은 욕심을 보이고 있었던 것이다.
‘…하아.’
그게 아리엘라에게는 큰 부담이자 짐으로 다가오고 있었다.
다 죽어가는 남편도.
이미 명문임에도 더 많은 것을 바라는 아버지도.
젊은 혈기를 감추지 못하는 아들도.
이해가 되지 않는 건 아니었지만, 걱정을 감출 수가 없었다.
적지 않은 시간 왕궁에서 살아온 그녀는 느끼고 있었다.
지금 어마어마한 포식자가 덫을 치고 먹잇감들을 기다리고 있다는 것을.
3왕자가 아니었다.
바로 그 뒤에 서 있는 맥닐 후작가의 현 가주.
클리포드 드 맥닐 후작이 그녀는 너무나도 두려웠다.
“어머니. 뭘 걱정하시는지는 알고 있어요. 하지만 우리에겐 선택권이 없다는 것도 아시잖아요? 이제는 결단을 내리셔야 할 시간이에요.”
아들 에드라드가 그녀의 손을 잡으며 굳은 목소리로 말했다.
‘…아, 많이 컸구나.’
항상 곁에 두고 봤더니 몰랐을 뿐.
장성한 아들의 타오르는 눈빛을 보자 그녀는 더 이상 아들을 막을 수 없다는 걸 깨달았다.
스륵.
그녀의 품속에서 화려한 문양이 새겨진 봉투가 빠져나왔다.
“가져가거라. 그리고… 아니다. 몸조심하고.”
“감사합니다, 어머니! 당분간 왕성에서 몸을 피해 계세요.”
봉투의 정체.
그것은 바로 5왕자 에드라드에게 왕위를 물려주겠다는 현 왕, 타데우스 2세의 유언장이었다.
그녀로선 차라리 순리대로 3왕자에게 왕위를 물려주는 것이 낫다고 생각했지만, 아버지와 아들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 모양이었다.
손등에 키스하고 떠나는 아들의 뒷모습을 보며 그녀는 이것이 최후일지도 모른다고 직감했다.
부디 그녀의 우려가 기우에 그치기를 바라며, 그녀는 눈시울을 붉혔다.
* * *
휘리릭.
검은 야행복을 입은 한 무리의 인형이 어두운 지하수로를 내달리고 있었다.
「지난 왕궁 침공 사태가 있었는데도 아직 이런 지하도가 남아 있다니. 거참.」
「수백 년 동안 알게 모르게 만들어진 지하도니까요. 왕궁 전체 지하를 매몰하지 않는 이상 완벽하게 틀어막는 건 불가능할 겁니다.」
길드 통신을 통해 제이크와 케인이 이야기를 나눴다.
「통로는 어디까지 이어져 있지?」
「이번에는 바로 각 왕자궁으로 갈 수 있을 겁니다.」
라울이 묻자 케인이 의미심장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사실 지난 왕성 침입 이후 웬만한 지하 통로는 다 막힌 것이나 다름없었다.
하지만 통로가 막혔다면?
새로운 길을 뚫으면 되지 않겠는가.
라울이 퍼스트 길드 수도 지부에 맡긴 일이기도 하고, 케인이 틈틈이 챙겨온 일이기도 했다.
‘바로 오늘을 위해서 말이지.’
만약 별다른 일이 없었다면, 이 통로를 쓰지 않았겠지만….
나쁜 예상은 틀리지 않는다는 말이 있듯이, 왕성의 상황은 최악으로 돌아가고 있었다.
4월 중순.
라울은 황급히 루벤 왕국으로 귀환했다.
국왕 타데우스 2세가 위독하다는 믿을 만한 소식 때문이었다.
다행히 브레넌 공화국의 판도는 라울이 의도한 대로 흘러가고 있었다.
마스터를 잃은 델라미안 가문이 당황한 사이, 갈레고스 가문이 총공세를 펼쳤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각 가문의 새로운 마스터들이 등장했으니….
델라미안(2)-보이드(2) 연합의 마스터가 총 넷.
갈레고스(3)-맥그리거(1) 연합의 마스터 또한 넷.
기존 3명뿐이던 공화국의 마스터 숫자가 9명이 되었던 것이다(기존 총령가인 라르센에 1명).
팽팽해진 마스터 숫자와 구도는 각 가문의 움직임을 제약했고, 이미 우세한 표수를 확보한 갈-맥 연합은 승기를 잡았다.
배도현을 제외한 퍼플 길드원들은 여전히 갈레고스 측에 남아 변수가 생기지 않도록 활약을 이어갔으니.
덕분에 라울은 큰 걱정 없이 귀국할 수 있었다.
라울이 영지에 귀환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일이 터졌다.
결국, 국왕 타데우스 2세가 타계한 것이다.
문제는 직후에 일어났다.
5왕자 에드라드와 애드머 후작가의 세력이 국왕의 유언장을 공개한 것이다.
5왕자 에드라드를 차기 왕으로 임명한다는 국왕의 유언장을 확인한 대신들과 관료들은 두 가지 사실에 놀랄 수밖에 없었다.
먼저 소문만 무성하던 유언장이 실존했고, 정말로 5왕자가 후계자로 지명되었다는 것.
-그럴 거면 처음부터 3왕자가 아닌 5왕자에게 실권을 줬어야 하는 것 아닌가.
이제는 죽어버린 왕이기에 대답해줄 이는 없었다.
두 번째로 왕국에 새로운 마스터가 탄생했다는 것.
유언장이 공개되는 순간, 애드머 후작가의 혈족 중 하나가 마스터가 되었음을 동시에 공표한 것이다.
즉석에서 오러 블레이드를 피워올린 덕에 그 자리에 있던 각 파벌의 귀족들은 물론이고 3왕자마저 쉽사리 유언장의 존재를 부정할 수 없었다.
그렇게 5왕자가 순조롭게 왕위를 이을 것 같았지만….
바로 그날 밤.
챙! 채쟁!
“왕국의 반역자 5왕자 에드라드와 베오르티오 후작을 체포하라!”
“그게 무슨 X소리… 크헉.”
3왕자 헤르디안의 가신들과 맥닐 후작가의 병력들이 왕궁을 급습했다.
왕궁을 지켜야 할 근위병단과 근위 기사단은 그들의 길을 막지 않았다.
저항한 것은 5왕자 궁의 호위병력과 애드머 후작가의 사병들뿐.
이미 근위병단장과 근위기사단장이 3왕자 측에 포섭되었던 까닭이다.
써컹~, 푸확!
“이놈들! 감히 왕의 유지를 거스르겠다는 것이냐! 이 메타오르 드 애드머가 용서치 않겠다!”
마스터의 위용은 과연 명불허전.
겁 없이 왕자궁을 침범한 침략자들은 병사, 기사를 가리지 않고 그의 오러 블레이드에 피를 흘려야만 했다.
짝짝짝.
“과연! 깜냥도 안 되는 에드라드 놈이 옥좌를 탐낸 이유가 있었구나.”
“당신은….”
피칠갑을 하고 있는 메타오르의 앞에 박수를 치며 모습을 드러낸 이는 바로 3왕자 헤르디안이었다.
“칼질하는 솜씨가 썩 맘에 드는군. 어때? 내 밑에서 일해볼 생각은 없나? 당장 무릎을 꿇는다면, 지금까지의 무례는 용서하고 중히 써주마.”
발 앞에 놓인 기사의 사체가 걸리적거렸는지, 눈살을 찌푸린 채 발길질로 퍽퍽 밀쳐내며 3왕자가 가볍게 말했다.
그 기사가 자신의 명령에 따르다 죽었다는 사실은 전혀 안중에도 없어 보였다.
“재밌는 소리를 하는구나. 너는 내 앞에 모습을 드러내지 말아야 했다!”
촤악!
이 침략의 원흉이나 다름없는 3왕자와 말을 섞을 이유가 없었다.
메타오르는 바닥을 박차며 3왕자를 향해 달려나가며 거칠게 오러 블레이드를 내질렀다.
“쯧쯧. 하여튼 멍청한 것들은 기회를 줘도 알아먹지를 못한단 말이지.”
오러 블레이드가 날아오고 있음에도 뒷짐을 진 채 눈 하나 깜빡하지 않는 3왕자.
확실히 배포와 담력만큼은 인정받을 만했다.
챠자장!
콰광!
“…크윽. 누구ㄴ….”
오러 블레이드가 막힌 것은 물론이고 상당한 반탄력에 뒤로 몇 걸음이나 물러난 메타오르.
낭패한 음색으로 적의 정체를 물으려 했던 그의 말문이 막혔다.
후우웅. 파앗.
3왕자 헤르디안의 뒤편.
보기만 해도 무시무시한 오러 블레이드 네 개가 살벌한 이빨을 드러내고 있었다.
“…하아.”
허탈한 표정을 지은 메타오르가 탄식어린 한숨을 내뱉었다.
하지만 이내 그의 검에서 다시금 오러 블레이드가 격렬하게 불타오르기 시작했다.
“하몬드, 정리해. 아, 에드라드 녀석과 애드머 후작은 살려서 데려오고.”
헤르디안은 시종이 가져다준 의자 위에 털썩 앉아서는 다리를 꼬고 턱에 손을 괴고는 거만한 표정으로 장내를 내려다봤다.
“하앗!”
콰광! 쿵!
5왕자 궁에서 최후의 불꽃이 피어 올랐다.
다음 날 오전.
제2외성의 광장.
근위병단과 기사단의 삼엄한 경계 속에 수많은 시민들과 귀족들이 단상 앞에 모여 있었다.
그리고 단상 위로 온몸이 피와 멍으로 물든 두 인물이 질질 끌려왔다.
“…가 명명백백히 밝혀졌다. 따라서 5왕자 에드라드와 베오르티오 드 애드머 후작에게 국왕 시해 및 유언장 위조의 죄를 물어 사형에 처한다!”
웅성웅성.
대중들이 뭔가를 판단할 시간도 없었다.
처형인이 대검을 들고 두 사람의 목을 내리치려는 순간, 누군가가 단상 위에 올라 그의 검을 빼앗았다.
“짐에게 거스르는 자는 이 꼴을 면치 못할 것이다!”
써컹! 써컹!
3왕자 헤르디안이 대검으로 동생과 후작의 머리를 단번에 베어버렸다.
그리고 그 장면은 수도 전역뿐만 아니라 왕국 전역에 중계되었다.
-말도 안 되는 폭거다!
-유언장이 위조라니! 근거가 어디있단 말인가?
-맙소사! 저런 망나니가 왕이 된다고? 어찌 저런 폭군을 주군으로 모신단 말인가?
당연히 어마어마한 반발이 나왔지만, 그것도 며칠 가지 못했다.
써컹.
또 한 번의 처형식.
이번에 희생된 것은 4왕비 아리엘라였다.
중앙군 일부와 맥닐 후작가의 기사단이 합류한 토벌군이 애드머 후작가의 영지를 습격했다.
규모로 치면 왕국에서 가장 크다고 할 만했기에 애드머 후작가의 병력과 기사 수는 무시할 수 없는 규모였다.
그럼에도 토벌에는 며칠 걸리지 않았다.
그 결과, 애드머 후작가에 몸을 피해 있던 4왕비 아리엘라가 붙잡혀 온 것이다.
아무리 친어머니가 아니라 한들, 왕자 헤르디안이 직접 4왕비마저 직접 처형을 집행하는 장면은 가히 충격적이었다.
하지만 그보다 더 충격적인 것은 그 뒤에 버티고 선 다섯 명의 마스터였다.
맥닐 후작가의 가주 클리포드 드 맥닐.
왕실 근위기사단장 하몬드.
그리고 새로이 마스터에 오른 맥닐 후작가의 세 마스터까지.
다섯 사람의 검에서 솟아오른 오러 블레이드를 확인한 수도의 귀족가와 각 영지의 귀족들은 암담한 마음으로 입을 다물 수밖에 없었다.
“보름 뒤 투리엄에서 대관식을 열겠다. 작위를 지닌 모든 귀족들은 비무장으로 수도에 상경하여 짐에게 충성을 맹세하라. 참석하지 않는 자들은….”
콰직.
떨어진 4왕비의 머리가 헤르디안의 구두 아래에서 터져 나갔다.
3왕자의 협박 어린 포고.
라울 일행이 야행복 차림으로 왕실 지하도를 걸어갈 수밖에 없는 이유였다.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