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Count's Youngest Son Is a Player RAW novel - Chapter 273
제273화
“…이곳은 정말 축복받은 땅이군. 취익.”
“정말 그렇소, 대족장, 취익. 농사를 짓지 않아도 열매가 맺히는 땅이라니, 취익.”
무너져 내린 돌 성벽을 나무와 모래 따위로 메워 만든 간이 성벽.
그 위에 올라서 있는 것은 녹색 피부를 가진 유사 인류 오크들이었다.
하늘을 직접 마주하는 들창코와 입술 위로 삐죽 튀어나온 아랫송곳니는 인상을 굉장히 사납고 거칠어 보이게 했다.
신체적으론 평균 신장 2m로 인간에 비해 스펙 자체가 우월했고, 불과 2년이면 성인이라 부를 정도로 빠른 성장 속도는 오크를 강력한 종족으로 만들어 주기에 충분했다.
게다가 한 번에 아이를 네다섯씩 낳았으니, 머릿수가 늘어나는 속도는 어느 종족도 따라잡을 수 없었다.
다만 그만큼 부족을 건사하기 위해선 많은 식량과 사냥감이 필요한 건 당연했다.
“부족원들은 모두 정착을 마쳤는가, 취익?”
“그렇소, 취익. 정말 넓은 땅이더군, 취익. 산하 부족들도 적당한 곳에 자리를 잡았소, 취익.”
성벽 위에 오른 이들은 블랙스톤 부족 연합의 대족장 마우하그르와 족장들이었다.
신장이 2m 50cm가 넘는 마우하그르는 평균 신장이 2m 가까운 오크 가운데서도 유달리 큰 체구를 가지고 있었다.
그리고 그만큼 강한 실력과 지도력을 바탕으로 부족원들을 이끌고 있기도 했고.
마우하구르는 우락부락한 손으로 쥐고 있었던 도끼를 성벽 위에 세우고는 회상에 빠져들었다.
거칠고 황량한 평원.
언제나 먹을 것이 부족하고, 위험천만한 포식자들이 주변을 맴도는 곳.
하지만 그럼에도 블랙스톤 부족은 기나긴 세월 동안 부족의 명맥을 이어왔다.
투쟁과 생존을 위한 세월은 부족을 강하게 만들었고, 마침내 수많은 오크 부족 가운데 열 손가락 안에 드는 대부족으로 성장했다.
그리고 고단한 세월을 버텨오던 어느 날.
옛 선조들이 예언해왔던 그날이 찾아왔다.
-‘신비의 문’ 너머에 있는 옛고향으로 돌아가라. 투쟁과 시험의 나날이 이어지겠지만, 종족의 미래는 그곳에 있다.
전 부족의 주술사들이 한날한시에 내뱉은 대예언.
그리고 나타난 것은 거대한 ‘신비의 문’.
당연히 예언에 따라야 함이 마땅했지만, 모두의 의견이 일치한 것은 아니었다.
“이미 우리의 고향은 이곳이다, 취익. 위험을 무릅쓰고 과거의 고향을 찾을 필요가 어디 있는가, 취익.”
10개의 대부족 중 다섯은 잔류를 선택했다.
이미 수천 년간 자리 잡은 땅을 버리고 떠나는 게 쉬운 일은 아니었으니.
그리고 다섯은 예언에 따르기로 했다.
“이 땅은 죽어가고 있다, 취익. 생명력이 떨어져 가는 이곳에 남는 것은 삶을 포기하는 것과 무엇이 다른가, 취익?”
“미래의 후손들을 위해서라도 옛고향을 되찾아야 한다, 취익!”
그렇게 게이트를 넘은 다섯 대부족을 맞이한 것은 넘쳐나는 마나와 생명력으로 가득한 금역의 한복판.
당연하게도 먼저 자리를 잡고 있는 이들이 있었으니, 전쟁은 필연이었다.
“힘만 센 사냥감에 불과하다, 취익! 모두 쓰러뜨리고 우리의 고향을 되찾자, 취익!”
“이미 돌아갈 곳은 없다, 취익! 신비한 문에 남아 있는 동족들을 위해서라도 교두보를 마련해야 한다, 취익.”
금역의 괴물 같은 몬스터들은 강력했다.
하지만 개체 하나하나는 강할지언정 뭉쳐 있지 않았다.
그에 반해 오크 부족은 강력한 전사장과 주술사를 중심으로 뭉친 군대였다.
비록 많은 오크들의 피가 흘렀지만, 그들은 마침내 강력한 몬스터들을 숲과 금역의 외곽으로 몰아내고 중심을 차지하는 데 성공하고야 말았던 것이다.
그리고 눈앞에 그 결실들이 펼쳐져 있었다.
곳곳에 자생하는 식용 식물들과 과수나무들.
그리고 오크 부족 전체를 먹여 살릴 만한 어마어마한 개체의 동물과 사냥감들.
“과연 예언대로 풍족한 땅이었다, 취익. 옛 고향을 선택한 우리가 옳았다, 대족장, 취익.”
여전히 주변의 몬스터들은 위협적이었다.
그들이 살고 있던 세계와 비교해도 충분히 괴물이라 불릴 만한 강한 개체들이 많았으니.
실제로 영역을 차지한 지금도 경계에선 매일같이 전사들이 피를 흘리고 있었다.
하지만 충분히 감당할 만한 수준이었다. 그것이 마우하그르를 불안하게 했다.
부족원들은 지금의 상황에 만족하고 있지만, 대족장인 그는 좀 더 멀리 내다볼 필요가 있었다.
‘선조들이 이런 풍족한 땅을 떠나게 된 데는 이유가 있었을 것이다. 그리고 전해오는 이야기에 따르면 이곳에는 우리 말고 다른 종족들도 살고 있었으니….’
어느덧 신비의 문을 넘어온 지 6개월.
기존의 주인들을 내쫓고 부족이 안정적으로 자리를 잡았지만, 그의 본능은 계속 경고하고 있었다.
진짜는 아직 시작도 되지 않았다고.
“대족장, 정찰대가 되돌아왔다, 취익.”
그리고 그의 불안이 현실로 드러나기까지는 오랜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다.
6개월간 세상의 끝이라 생각했던 남쪽과 북쪽의 벽이 하루아침에 사라져 버렸던 것이다.
* * *
‘흐음.’
라울은 신중하게 테이블 위의 지도를 살펴보았다.
결계가 열린 뒤 지속적인 공중 정찰을 통해 금역 내부의 정보를 수집해왔다.
그리고 오늘에서야 검게 칠해져 있던 지도가 환하게 빛을 드러내고 있었다.
“어마어마하군요. 도대체 어디서 이런 놈들이 나타난 걸까요?”
제2 전투단장 호머가 혀를 내둘렀다.
“그러게 말입니다. 분명 정착한 지 오래되지 않은 느낌인데 말이죠. 만약 저들이 정말 게이트를 통해 넘어온 것이라면….”
제4 전투부단장 오마르가 미간을 찌푸리며 말하자, 회의실에 모여 있던 이들이 다들 묵직한 한숨을 내쉬었다.
서쪽 금역 몬스터 숲.
그 전체의 크기는 왕국 두 개를 합한 것에 비할 정도로 거대했다.
외곽 지역은 커다란 나무와 거친 지형이 혼합된 무성한 숲.
하지만 숲 깊숙한 곳에는 거대한 평원 지역이 있었으니.
마치 분지처럼 사방이 숲이라는 장벽으로 둘러싸인 천혜의 땅이었다.
오크들이 자리 잡은 곳은 그 평원을 세로로 삼등분했을 때 가운데 위치.
남과 북으로 숲을 접하고 있는 가장 중심부였다.
좌측과 우측에는 오크들에게 밀려난 몬스터들이 우글대고 있었다.
중요한 것은 오크들의 숫자가 상상 이상으로 많았다는 것이다.
“대략 추산한 것만 해도 천만은 넘어설 듯합니다. 그리고 아직 사라지지 않은 게이트 너머로 얼마나 많은 놈들이 더 있을지는 알 수 없습니다.”
케인의 말에 제이크가 휘파람을 불었다.
“휘유. 마스터 말대로 거의 왕국 수준인데요? 내전 때 70만이 모였을 때도 어마어마했는데, 이건 정말….”
게다가 오크라는 종족의 특성상 아주 어린 새끼와 늙은이를 제외한다면, 모두가 전투 인력이라 해도 무방했다.
“더 위협적인 사실은, 저들이 일반적으로 우리가 알고 있던 오크와는 전혀 다르다는 겁니다. 저들의 정찰병과 교전했던 이들에 따르면, 왕국에 출몰하는 오크에 비해 적어도 1.5배에서 2배가량은 더 강하다고 합니다. 게다가 몬스터 수준을 벗어나지 못하는 기존의 오크와 달리, 지성이 존재한다고 하니 더 까다롭겠죠.”
케인의 브리핑을 들은 간부들의 표정이 심각해졌다.
기본적으로 인간보다 강력한 개체들이 숫자까지 어마어마하고, 게다가 지능까지 갖추고 있다니.
말 그대로 대륙의 패권을 다툴 만한 세력 하나가 갑자기 나타난 것 아니겠는가?
그때 라울이 생각을 정리하고는 입을 열었다.
“다들 주목. 염려하는 바는 알겠지만, 상황이 그렇게 나쁜 것만은 아니야.”
라울이 손을 들어 지도에 선을 몇 번 그었다.
“보다시피, 놈들 전체가 하나의 집단으로 뭉친 것이 아니다. 마을과 부족의 배치 형태를 보면 크게 다섯 개의 집단으로 나뉘어 있다는 걸 알 수 있지.”
라울이 그은 선은 정확하게 오크들을 다섯 개의 집단으로 가르고 있었다.
“그리고 당장 우리를 공격해 올 이유가 그렇게 많지 않다. 다행히 추수철이 다가와서 식량이 충분하니까.”
오크들은 필요 이상으로 땅에 대한 욕심을 내지 않는다.
애초에 정착하고 농사를 짓는 것이 아니라 수렵과 채집에 의존하는 이들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니 먹을 것이 부족해지면 영역을 넓히려고 하겠지.’
당장은 몰라도 머릿수가 폭발적으로 늘어나게 된다면 언젠가 충돌이 벌어질 가능성이 컸다.
하지만 그건 지금 걱정할 일이 아니었다.
“또 하나. 놈들에겐 우리 말고도 다른 적이 있다는 사실. 바로 제국 놈들이다.”
라울이 손짓하자 케인이 설명을 이어받았다.
“몬스터 숲의 평원, 앞으로는 몬스터 평원으로 지칭하겠습니다. 그 북쪽 숲의 경계에서 촬영한 영상입니다.”
파앗.
하늘에서 찍은 마법 영상에는 인간으로 보이는 수십 명의 모습이 담겨 있었다.
화면을 확대하자 그들이 입고 있는 갑옷에 제국을 상징하는 검은 드래곤의 문양이 새겨져 있었다.
그리고 다음 영상에는 뼈로 만들어진 장벽이 수풀 사이로 흐릿하게 보이고 있었으니.
“제국 놈들이 어느새 저기까지!”
“이미 성벽까지 세웠다는 것은….”
어째서 라울이 방어 라인 형성에 심혈을 기울였는지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다.
금역에는 단순히 강한 몬스터들만 숨어 있던 게 아니라, 거대한 두 세력이 꿈틀대고 있었던 것이다.
이로써 몬스터 숲을 두고 다투게 된 네 개의 세력이 특정되었다.
원래 금역의 주인이었던 몬스터들.
동남쪽에 세력을 형성한 라울의 퍼스트 길드와 플레이어들.
몬스터 평원의 중심을 차지한 오크족.
그리고 북쪽의 제국까지.
네 세력의 목적은 동일할 것이다.
기름지고 풍요로운 몬스터 평원의 확보!
그리고 그건 필연적으로 전쟁을 불러올 것이었다.
“일단 우리는 차분하게 상황을 지켜보며 기회를 노린다. 플레이어들에게는 우리가 형성한 방어선을 가급적 넘지 않도록 권고하고, 오크족과의 불필요한 충돌이 발생하지 않도록 잘 단속하도록.”
“네, 마스터!”
그렇게 회의가 마무리되었지만, 라울은 그저 기회가 생기기만을 기다릴 생각은 없었다.
틈이 없다면 만들어내면 되는 법.
지금 상황에서 가장 좋은 방법은.
‘제국 놈들과 오크족을 충돌하게 하는 것이지.’
두 세력이 전쟁을 통해 전력을 소모하는 동안, 차분히 전력을 끌어올려 단번에 치고 들어간다.
이것이 라울이 생각하는 가장 베스트 시나리오였다.
전생에는 역으로 대형 길드 연합과 오크족이 가장 먼저 충돌했다.
자신감이 넘치던 길드들은 일반 오크와 새롭게 등장한 오크족의 차이를 간과한 채 몬스터 평원에 진출했고.
‘대차게 깨진 뒤에 역습까지 맞아 금역 초입까지 밀려버렸지.’
그 빈틈으로 노려 제국은 금역 한가운데를 통과해 밀고 내려왔고, 왕국 연합은 장벽 근처뿐만 아니라 서쪽 금역까지 양면 전선을 형성해야 하는 처지에 빠졌던 것이다.
라울로서는 당연히 그런 멍청한 짓거리를 할 생각이 없었다.
자칫 오크족과 정면으로 충돌하게 된다면, 지금 그가 형성한 방어선이나 퍼스트 길드의 병력만으론 버티기 힘들지도 몰랐다.
‘누가 뭐래도 천만 대군이니까.’
숫자로 표시하는 건 간단했지만, 실제로 그걸 눈앞에서 막아내려 한다면 까마득했다.
그러니 일단 첫 오크족 웨이브는 남쪽이 아닌 북쪽으로 향해야만 했다.
‘어디 누가 더 센지 한번 알아보자고.’
라울의 입꼬리가 슬쩍 올라갔다.
그리고 다음 날.
라울은 모종의 작전을 위해 홀로 몬스터 평원으로 진입했다.
* * *
서걱.
마나가 서린 검이 정령형 몬스터의 형상을 깔끔하게 베어버렸다.
“…뭔가 이상하지 않아?”
검을 회수한 검사 플레이어가 고개를 갸웃하며 말했다.
“뭐가? 몬스터가 좀 강해진 거? 금역 깊숙이 들어왔으니 당연한 거 아닌가?”
원소 정글 2차 결계 안.
대형 길드 회합이 끝나고 플레이어들이 본격적인 개척 러쉬를 시작했다.
5인에서 10인 파티를 이룬 각 길드의 정예 병력들이 새로운 개척지 포인트를 찾으려 정글을 누비고 있었다.
“아니, 그게 아니고. 원소 트랩이 발동하지 않은 지 꽤 되지 않았나 싶어서.”
“어, 그러고 보니?”
2차 결계 초입까지는 빈번히 터져 나오던 트랩이 어느 순간부터 고요했다.
“그리고 뭔가… 몬스터들이 좀 변한 것 같지 않아? 전에는 좀 본능적으로 움직였다면, 지금은….”
마치 누가 지시라도 내리는 것처럼 유기적인 움직임이 약간씩 보이고 있었다.
“변했다는 건 뭔가 있다는 뜻일지도. 다들 좀 더 주변을 자세히 살펴봐! 개척지가 근처에 있을지도… 컥.”
“헛, 누구, 케헥!”
“매복이다! 방어진을…!”
슈우욱! 퍼벅!
갑자기 날아온 화살에 첫 희생자가 생기고 불과 두 호흡.
열 명의 파티원 중 파티장이자 탱커를 제외한 아홉 명이 순식간에 사망했다.
탱커는 자신의 방패를 관통하고 미간 사이에 멈춰서 부들거리는 화살촉을 보며 목 뒤에서 식은땀이 흘러내렸다.
‘도, 도대체 어떤 놈들이 뒤통수를!’
던전이 아닌 원소 정글에서 금속 무기를 사용하는 건 같은 플레이어들밖에 없었으니까.
하지만 그의 생각은 길게 이어지지 못했다.
마치 구렁이가 담을 넘듯 방패 위를 넘어버린 화살이 그의 이마를 관통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덕분에 그는 볼 수 있었다.
‘뾰족한 귀…?’
원소 정글 2차 결계를 넘었던 각 길드 정예 개척팀이 같은 날, 비슷한 시간에 전멸했다.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