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Count's Youngest Son Is a Player RAW novel - Chapter 284
제284화
“정말 우리의 도움이 필요 없단 말인가?”
“지하 도시 공략을 말하는 것이라면, 그렇소. 하지만 점령한 뒤에 지키는 것은 당신들 몫이라는 걸 알고 있겠지요?”
“그야 당연한 일이지만….”
대족장 타르오는 믿기 힘들다는 표정이었다.
기간트 부대까지 동원한 대규모 공세로도 뚫어내지 못했던 곳이었다.
아무리 라울의 실력이 인간치고는 뛰어나다고 해도, 혼자서 지하 도시를 점령한다는 말을 어찌 쉽게 믿겠는가.
처음에는 거래에 소극적이던 대족장 이하 장로들은 어느새 굉장히 적극적인 태도로 전향했다.
이유야 당연히 라울이 제시한 조건들이 드워프들 입장에서 너무나 관대했기 때문.
장인 정신을 불타오르게 하는 초 희귀 소재를 가공할 기회.
거기에 남쪽의 전선을 대폭 줄일 수 있고.
‘그 물건’을 직접 연구할 수 있게 된다는 건 행운이나 다름없었으니.
“그, 굳이 무리하지 않아도 좋네. 거래 조건 때문이라면, 우리가 충분히 양보해 줄 수 있으니….”
“배려에 감사하지만, 나 개인적으로도 저놈들에겐 볼일이 좀 있어서 말이오.”
드워프들은 혹시나 라울이 다치거나 문제가 생겨 거래가 깨질까 봐 전전긍긍했다.
라울은 어찌 보면 너무 순수한 그들의 태도에 웃음이 나왔지만, 마음을 바꿀 생각은 없었다.
‘굳이 여기서 드워프들의 도움을 받아 빚을 질 필요는 없지. 오히려 확실하게 인식시켜 줄 필요가 있어.’
라울이 가진 힘이 무엇인지.
그리고 라울이 드워프들에게 얼마나 양보를 해주고 있는 것인지.
그래야 추후 드워프들과의 관계 정립에도 유리한 고지를 점할 수 있지 않겠는가.
“어차피 ‘이 물건’이 어떤 힘을 가졌는지 확인할 필요도 있지 않겠소?”
라울이 손목을 들어 올리자 모든 드워프의 눈이 그곳으로 향했다.
라울이 제시한 세 번째 조건.
그것은 바로 파워아머 ‘레그나토르’의 봉인 해제에 대한 의뢰였다.
오랜 세월을 살아온 라벨과 카르데나스의 공통된 의견은 레그나토르의 제작에 드워프가 깊이 관련되어 있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드워프족 가운데 기간트와 파워아머에 관한 최고 권위자가 바로 눈앞에서 눈을 초롱초롱 빛내고 있는 타르오 대족장이었다.
“그럼 시작하겠소. 개입하지 않겠다는 약속, 꼭 지키길.”
라울이 몸을 돌려 동굴을 걸어 나갔다.
온통 새하얀 눈으로 뒤덮인 높은 설산이 눈앞을 가득 채웠다.
‘그래도 덕분에 편하게 왔군.’
드워프들은 지하 도시와 연결된 각종 지하 통로를 이용해 이동하고 있었다.
매우 복잡하고 찾아내기 힘든 기관 장치였기에 플레이어들은 발견조차 하지 못했다.
그런 지하 통로를 통해 오니 춥지도 않고 제국군의 눈도 피하며 목적지 근처까지 도착한 것이다.
“케인.”
“네, 마스터.”
휘릭.
언제 따라온 것일까.
갑작스레 모습을 드러낸 케인 때문인지 뒤따르던 드워프들이 움찔거리는 게 느껴졌다.
‘저 인간은 어디서 나타난 거지?’
‘…기척도 느끼지 못하다니! 설마 저 인간도?’
동요하는 드워프들을 등진 채 라울이 물었다.
“상황은?”
“큰 변화는 없습니다. 아직까진 아무런 낌새도 느끼지 못한 듯합니다.”
“그렇겠지. 어차피 이쪽도 소수로 움직였으니까. 예상되는 병력은?”
“대략 오천 내외입니다. 기사는 오십 이상. 마법사도 오십 이상으로 추정됩니다. 그리고 제국 측 다른 지하 도시들의 상황을 봤을 때, 초인이 한둘 정도는 머물고 있을 것으로 추정됩니다. 다만 마병이나 언데드 병력의 수는 파악하지 못했습니다. 죄송합니다.”
“괜찮아. 놈들이야 얼마가 있든 상관없으니.”
외부로 노출되는 인간 병사들과 달리 마병과 언데드는 전투가 벌어지지 않을 때는 가수면 상태로 대기한다.
따라서 직접 부딪치지 않는 이상 숫자를 추정하기란 쉽지 않은 게 당연했다.
“대원들의 배치는?”
“완료되었습니다. 아무도 도망칠 수 없을 겁니다.”
“좋아. 시작하지.”
아무리 실력이 일취월장했다고 해도 라울은 방심하지 않았다.
어차피 혼자서 공략할 수 있다고 확신하고 있지만, 변수라는 건 언제 어디서 발생할지 모르는 법.
그래서 믿을 수 있는 몇몇 부하들을 대동했고, 그들은 이미 목표 지하 도시 근처에 자리 잡고 있었다.
팟, 파밧!
라울과 케인의 신형이 순식간에 눈밭을 가로질렀다.
한 번에 십여 미터 이상씩 이동하는 그들의 발자국은 눈밭에 전혀 찍히지 않았다.
“이런. 우리도 서두르자!”
“출발해!”
부우웅.
그에 반해 드워프들은 스키를 닮은 장비를 장착하고 있었다.
마력을 이용한 추진 장치는 매끄럽게 눈밭을 헤쳐 나갔다.
하지만 이미 라울과 케인의 모습은 한참 멀어져가고 있었다.
* * *
“오셨습니까.”
일단의 마법사들이 비탈 아래서 라울에게 고개를 숙였다.
“고생했군. 먼저 돌아가 있도록.”
“네, 건승을 기원합니다.”
작은 마법진이 생겨나며 마법사들의 모습이 사라졌다.
“라벨, 부탁해.”
“맡겨둬.”
라벨이 팔랑팔랑 날아내려 마법사들이 미리 구축해둔 마법진에 지팡이를 꽂았다.
“결계 발동!”
구우웅.
반투명한 구형 결계가 주변 일대를 감쌌다.
이로써 지하 도시에서 외부로 통하는 모든 통신 마법과 순간이동 마법진이 동작을 멈췄을 것이다.
“어엇? 페어리?”
“그냥 페어리가 아니야! 저 어마어마한 결계를 보라고. 분명 페어리 퀸일 거야!”
“그런데 어째서 페어리가 인간과 함께하고 있는 거지?”
뒤늦게 도착한 드워프 무리들이 웅성거렸다.
하지만 라울은 그들의 반응은 신경 쓰지 않고 말했다.
“5분 있다가 들어오시오. 장애물을 치워놓을 테니.”
그리고는 진짜 혼자서 지하 도시로 향하는 통로로 쑥 들어가 버렸으니….
“정말 우리 도움이 필요 없다고?”
“일단 지켜보자고.”
“만약 위험에 빠지면?”
“구해야겠지. 그 정도는 문제없잖아? 그럼 인간이 더 귀한 재료를 꺼내 놓을지도 모르고.”
“오오.”
드워프들은 눈을 빛냈지만, 과연 그들이 힘을 쓸 기회가 있을지는 모를 일이었다.
‘흠. 깔끔한데?’
지하 도시로 향하는 통로는 이미 케인에 의해 정리되어 있었다.
졸듯이 벽에 기대있는 사체들은 자신들이 뭐에 당했는지도 모른 듯한 표정이었다.
어차피 병력이 거의 배치되지 않았기도 했지만, 케인의 은밀한 솜씨는 마스터가 된 이후로 더욱 발전하고 있는 듯했다.
저벅저벅.
똑같은 지하 도시임에도 느낌이 완전히 달랐다.
드워프들의 지하 도시는 밝고 열기가 넘치는 스팀펑크 풍이었다면 이곳은.
‘지독하게 춥고 음산하군.’
분명 천장에서 빛이 내리쬐는 건 비슷했건만, 멀리 보이는 도시 근처의 평원은 메말라 있었다.
그리고 마침내 평원 입구에 도달했을 때.
‘어째서 드워프들이 고생했는지 알 것 같군.’
분명 평원이어야 할 곳은 몇 미터씩 고랑이 파인 미로로 변해 있었다.
마치 늪처럼 보이는 그 찐득한 기운이 보기만 해도 혐오스러웠다.
그 안에서 느껴지는 건 분명 사기(邪氣).
‘언데드와 마병이 매복하고 있군.’
평원 전체를 뒤집어엎지 않는 한 도시까지 진입하기도 쉽지 않아 보였다.
“케인. 나키아와 함께 이곳에 남아 드워프들을 지키도록.”
“네, 마스터.”
“나키아는 혹시나 그들이 전장에 휘말리지 않도록 장벽을 좀 쳐주고.”
“그럴게요.”
나키아의 연금 마법이라면 저들의 눈에 띄지 않게 안전한 관전 장소를 구축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아직 모습을 드러내지 않은 피어스와 다른 다섯 마스터는 비밀 통로를 확보하여 적들의 도주를 막을 것이었으니.
‘미안하지만, 너희는 오늘 본보기가 되어야겠다.’
라울이 싸늘한 눈빛으로 저 멀리 지하 도시를 노려봤다.
이는 드워프들에게 보여줄 위력 시범이기도 했고, 제국에게 보내는 경고이기도 했다.
「드워프들이 진입했습니다.」
케인의 통신이 들어왔다.
챠라락.
라울이 파워아머를 발동했다.
은빛 금속이 그의 전신을 뒤덮었고.
‘레그나토르 발동.’
파앗.
팔찌에서 시작된 황금빛 광채가 또다시 은빛 금속 위를 뒤덮었으니.
고풍스런 황금 갑옷이 그 본모습을 드러냈다.
“오오, 저것이 전설의 파워아머 레그나토르인가!”
“정말 기록과 한 치도 다르지 않게 생겼어!”
“레그나토르를 정말 실물로 볼 수 있게 될 줄이야.”
드워프들이 황홀한 표정으로 라울을 지켜보던 그때.
퉁.
살짝 제자리를 박찬 라울의 몸이 공중으로 떠오르며 등 뒤에서 은백색의 환상 날개가 펼쳐졌다.
파앗!
가공할 속도로 라울의 신형이 지하 도시의 성벽 앞까지 날아들었다.
드워프들에겐 큰 장애물이었을 미로는 라울에게 아무런 문제도 되지 않았다.
땡땡땡땡땡!
“적이다!”
“모두 무기를 들어!”
지하 공동의 상공에 떠 있는 황금빛 기사를 제국군이 눈치채지 못할 리 없었다.
성벽에선 소란스런 경계종이 울려 퍼졌고, 도시 내부의 건물에서 병사들이 개미 떼처럼 튀어나오기 시작했다.
그 모든 장면을 무심한 표정으로 내려 보던 라울이 천천히 검을 뽑아 들었다. 그와 동시에.
쿠과과과!
등 뒤에 열린 아공간에서 수천의 무기 군단이 해일처럼 쏟아져 나왔다.
“저, 저게 뭐야!”
“구, 궁수들 뭐해! 쏘라고!”
“방패병! 막아!”
위협적으로 대형을 펼친 무기의 군단은 지하 도시 상공을 완벽하게 점령했다.
마치 짙은 먹구름이 드리운 것처럼, 무기 군단이 빛을 가리자 도시는 어둠에 휩싸였다.
핑! 화르륵!
본격적으로 화살과 마법이 라울을 향해 날아오기 시작했지만.
‘어림없다.’
라울의 한참 아래 펼쳐진 염동력 장벽조차 뚫지 못했다.
‘셋인가? 제국 놈들도 이곳의 중요성을 조금은 알고 있었나 보군.’
라울의 기감에 초인으로 보이는 세 개의 기척이 느껴졌다.
고작 중급 규모의 지하 도시에 배치하기에는 과분한 전력.
하지만 라울의 얼굴에선 조금의 긴장감도 느껴지지 않았다.
“뭐 하는 놈이냐!”
“이곳이 크라넨 제국의 영토라는 것을 알고 까부는 것인가!”
뒤늦게 파워아머를 착용한 마스터 둘이 도시 중심 건물 옥상으로 모습을 드러냈다.
그리고 마법사들을 거느리고 나타난 일단의 무리 가운데는 7서클의 기운을 풍기는 마법사도 있었다.
“주역이 다 모인 듯하니, 시작하지.”
라울의 목소리가 도시에 울려 퍼졌고, 이제야 도시 상공을 뒤덮은 무기를 확인한 제국 초인들의 표정이 일변했다.
“무기의 군단!”
“라울 백작! 네놈이 어째서 이곳에?”
“제길. 증원을 요청해야….”
아무리 삽질을 많이 한 제국 첩보부였지만, 이제 라울의 정체와 실력에 대해선 확실히 파악하고 있었다.
이미 제국이 지정한 요주의 인물 가운데서도 최상단에 이름을 올리고 있었으니 말이다.
초급 마스터 둘과 7서클 네크로맨서가 감당하기엔 버거울 수 있다는 것도, 충분히 짐작하고 있으리라.
하지만 이미 늦었다.
휘릭.
라울이 손을 내리긋는 순간.
눈부신 황금빛 마나를 내뿜는 수천 개의 무기가 번개 다발처럼 굉음과 함께 도시로 내리꽂혔다.
콰과과과과광!
마스터 최상급을 노리는 라울의 밀도 높은 마나에 두 파워아머의 증폭을 거친 데다 영력과 신성력까지 섞였으니.
무기 하나하나의 파괴력은 기사의 마나 블레이드로도 쉽게 막아내지 못할 만큼 무시무시했다.
한차례의 폭격이 지나가고 난 지하 도시.
그곳에 제대로 서 있는 이들은 세 초인과 소수의 기사, 마법사뿐이었다.
“크윽. 증원 요청은?”
힘겹게 오러를 머금은 무기를 막아낸 제국 마스터가 물었지만, 마법사의 안색은 이미 창백해져 있었다.
“맙소사. 도대체 누가 이렇게 어마어마한 방해 결계를 펼쳤단 말인가!”
“제길. 이렇게 된 이상 끝을 보자! 마법사들 구경만 하지 말고 보조해!”
검을 고쳐 쥔 마스터들이 라울을 향해 뛰어올랐고, 마법사들은 그들이 공중으로 올라갈 수 있도록 부유 마법과 발판을 마련했다.
“죽어라!”
두 줄기의 검은 오러 블레이드가 라울을 노려왔지만, 라울은 검을 휘두를 필요조차 없었다.
챙! 퍼버벙!
대신 6개의 무기가 눈부신 오러를 머금고 그들을 상대했고.
‘딱히 손쓸 것도 없으니 정리라도 해야겠군.’
라울은 그들을 일별한 채 고개를 돌려 평원을 바라봤다.
순간.
파아앗!
마스터 레벨을 향해가는 광휘의 아우라가 펼쳐지며, 해일처럼 공동 전체를 물들였다.
“크앗!”
“이건 또 무슨, 컥.”
흑마기를 잔뜩 끌어 올렸던 마스터들은 강렬한 신성력의 파도에 허우적대다 검을 맞고 떨어져 버렸고.
구어어.
평원의 미로 속에 숨어 있던 언데드와 마병들이 괴로움에 부들거리며 땅속에서 기어 나왔다.
그리고 당연히 그들은 무기 군단의 먹잇감이 되어 버렸으니.
‘지, 진짜 혼자서?’
‘저게 정말 일개 인간이 펼칠 수 있는 힘이란 말인가?’
‘만약 저 인간과 진심으로 싸웠다면…!’
말 그대로 혼자서 도시 하나를 박살 내버리는 라울의 신위를 목격한 드워프들은 침만 꼴깍 삼킬 수밖에 없었다.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