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Count's Youngest Son Is a Player RAW novel - Chapter 288
제288화
“결국 저들은 뭘 원하고 왔던 걸까요?”
이를 꽉 깨물고 숲 너머로 사라지는 엘프들을 바라보며 필립이 말했다.
“아마도 우리가 여기에 눌러앉는 게 아닌지 떠보고 싶었겠지. 그리고 라벨이 움직이지 않는 이유도 알고 싶었을 거고.”
라울은 대답을 하면서도 살짝 짜증이 치밀었다.
‘저들은 분명 정령들이 폭주한 이유를 모른다고 했지. 하지만 분명 새빨간 거짓말이야.’
마법 주머니에 담겨 있는 토템.
그 저주받은 물건이 효과를 발휘했을 때 들려왔던 강력한 사념.
그건 비단 라울만 느낄 수 있는 게 아니었다.
정령 친화력과 감각이 누구보다 뛰어난 엘프들이 그 절규를 듣지 못했을 리 없다.
그래놓고 아무것도 모르는 척 태연하게 라벨에게 문제 해결을 요구하다니!
‘동족들의 고통을 목격한 라벨이 당장 제국군과 충돌하길 바랐겠지. 그리고 엘프들은 그 틈을 노려 이득을 보려 했을 거고.’
그랬는데 라벨이 기절하고, 라울이 타운트리에 틀어박혀 움직일 생각을 하지 않았으니.
조바심이 나서 찾아온 것도 어찌 보면 당연했다.
“마스터. 그냥 지금이라도 쓸어버릴까요?”
제이크가 커다란 대검을 어깨에 걸치고는 물었다.
그뿐 아니라 다른 간부들도 모두 엘프들의 행동에 화가 단단히 오른 모양.
하지만 라울은 고개를 저었다.
“당장의 전력은 우리가 앞서지만, 보이는 게 다가 아니다. 굳이 제국과 충돌하고 있는 엘프들을 우리 손으로 처리할 필요는 없지.”
당장 버릇을 고쳐줄 수도 있었지만, 그것은 하수.
한 세력을 이끄는 수장이 내릴 선택은 아니었다.
‘언젠가는 충돌할 일이 있을지 모르겠지만, 그게 지금은 아니야.’
엘프들은 제국과의 전선 한 곳을 맡아줘야 했다.
적어도 인간을 싫어하는 그들이라면 제국을 귀찮게 만들어 줄 테니까.
‘그렇다고 이대로 넘어갈 생각은 없지만.’
저들은 모르겠지만, 라울은 회귀자.
이 원소 정글이 품고 있는 몇 가지 비밀에 대해 잘 알고 있었다.
그 가운데 몇 가지만 잘 엮는다면.
‘너희들은 오늘 일을 두고두고 후회하게 될 거다.’
라울은 차가운 눈으로 엘프들이 사라진 숲을 바라보다 몸을 돌렸다.
* * *
파바밧.
하얀 갑주에 푸른 망토를 두른 기사들이 거침없이 숲을 질주했다.
그들의 가슴에 새겨진 것은 황금 빛 매의 문장.
퍼스트 기사단이었다.
라울을 포함한 마스터만 스물다섯.
최상급 엑스퍼트 100명.
상급 엑스퍼트 800명.
그들 전원이 자체 제작한 B등급 이상의 파워아머를 장착한 아머 유저였으니.
대륙 최강의 기사단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그리고 그 가운데서 발을 내딛지 않고 비행 중인 퍼스트 마탑의 6서클 이상 고위 마법사들.
기척과 소리를 없애고, 시야마저 가리는 환상 마법까지 동원했으니, 제국의 정찰병 수준으론 그들을 찾아낼 수 없을 터.
그리고 마법사들의 뒤쪽에는 각자 독특한 방식으로 대열을 따라가는 이들이 있었으니.
라울이 심혈을 기울여 양성한 [초능력] 전단이 바로 그들이었다.
상급 바람술사에 올라선 버나드를 비롯한 네 명의 상급 초능력자.
거기에 중급 7레벨 이상을 돌파한 중상급 초능력자 100여 명이 뒤따랐다.
그렇게 현 퍼스트 길드의 최강자들로 구성된 천 명 규모의 병력이 원소 정글을 빠르게 가로질렀다.
“정지.”
숲의 경계.
정확히는 정글 가운데 생긴 넓은 평원을 앞두고 라울이 일행을 멈춰 세웠다.
저 멀리 커다란 돌성벽 요새가 시야에 들어왔다.
원래 S등급 개척지라면 있어야 할 탄탄한 목책은 돌성벽 뒤쪽에 가려 제대로 보이지도 않았다.
‘높이가 대략 15m 정도인가?’
석재를 구하기 쉽지 않은 원소 정글에서 저만한 성벽을 쌓으려면 얼마나 큰 수고를 들였는지 알 법했다.
그럼에도 굳이 돌성벽을 쌓은 것은 아마 이 원소 정글의 특성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리라.
‘자칫 목책이 엘프들이나 정령들에게 길을 열어주는 경우도 있으니까.’
그리고 그만큼 저 안에 중요한 무언가를 감추고 있다는 뜻일 터였다.
“전원 전투 준비.”
라울의 명령에 천여 명의 인원이 재빨리 진형을 구축했다.
요새의 크기가 컸기에 외곽을 포위한다는 선택지는 없었다.
초인들이 앞장서고 아머 유저들이 탄탄한 방어진을 형성했으며, 마법사와 초능력자들이 진형 가운데서 원거리 공격을 준비했다.
이미 작전은 충분히 고지된 상황.
라울은 더 시간을 끌지 않고 바로 명령했다.
“공격 개시! 제국 놈들의 요새를 박살 내고 요정들을 구한다!”
“전군 앞으로!”
지휘권을 넘겨받은 필립의 구령과 동시에 퍼스트 길드의 정예 병력들이 제국 측 요새를 향해 달려 나가기 시작했다.
“용감한 전사들에게 용맹한 기운을! 더 빠른 민첩함을! 강함을! 지치지 않는 체력을!”
라벨이 각양각색의 마나를 퍼트리며 아군들에게 종합 버프 세트를 덧씌웠다.
휘리릭, 쨍그랑!
“내려라, 증폭의 비!”
나키아가 수백 개의 시약병을 허공으로 던졌고, 그것들이 터져 나가며 버프 포션의 가랑비가 아군을 촉촉이 적셨다.
그리고 삼삼오오 모여 있던 퍼스트 마탑의 마법사들이 연금 마법진을 발동했으니.
구르르릉!
“구오오!”
원소 정글의 진흙과 나무, 넝쿨들이 얽힌 거대한 골렘 십여 개체가 함성을 치며 성벽을 향해 달려갔다.
성벽 높이만큼이나 커다란 골렘들이 달려가니 평원 전체가 지진이라도 난 듯 들썩였다.
그리고 나키아는 가장 커다란 골렘의 머리 위에 올라 성벽을 내려다보며 자신이 개발한 연금 마법을 퍼붓기 시작했으니.
콰과과과광!
마력총을 통해 발사된 강화 플라스크가 성벽의 보호 마법진과 부딪치며 엄청난 폭발음을 만들어냈다.
“적이다!”
“사격 개시!”
“성벽에 달라붙지 못하게 해!”
제국군의 반격도 시작되었다.
궁수들의 화살이 날아들었고.
마법사들의 다양한 마법이 평원 상공을 수놓았다.
하지만.
퍼버버벙! 티딩.
“안 통한다!”
“그깟 마법으로 누굴 막으려고?”
퍼스트 길드의 초능력자들이 본 실력을 발휘했다.
염동술사들이 허공에 투명한 염력장을 만들어 화살을 쳐냈고.
원소 술사들은 마법이 날아드는 족족 요격해냈으니.
제국군의 원거리 공격은 아무런 타격도 줄 수 없었다.
그사이.
“구오오!”
콰광! 펑! 퍼벅!
성벽 앞에 도달한 골렘들이 양 주먹으로 벽을 내려치기 시작했다.
물론 성벽에 바로 타격이 들어가지는 않았다.
제국군 성벽 앞에 펼쳐진 각종 방어 마법진과 역장들이 그 커다란 충격을 모두 흡수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골렘들은 아무 상관없다는 듯 계속 주먹을 휘둘렀고, 뒤이어 마법사들의 각종 마법과 초능력자들의 원소 공격이 마법진을 두들겼다.
“이, 이런! 마법진이 버티질 못하겠어! 마법사들은 방어 마법진에 달라붙어!”
“기사들은? 마병들은 아직 준비가 덜 된 거냐?”
제국 측의 지휘관들이 당황하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기습 공격이기도 했지만, 워낙 한 번에 쏟아지는 화력이 막대했기에 제국 측이 제때 대응하기엔 쉽지 않았다.
게다가 무슨 이유에선지 요새의 규모에 비해 고급 전력의 수가 적어 보였다.
쩌저정.
“어어어?”
“다들 피….”
콰과광!
그리고 진짜들이 나타났다.
라울을 위시한 25인의 마스터들이 오러 블레이드를 불태우며 성벽에 검을 휘두르자, 방어 마법진이 유리 조각처럼 깨지며 허물어졌다.
그리고 쏟아져 내린 라울의 무기 군단은 성벽 위의 제국군을 가차 없이 꿰뚫었다.
“이대로 진입한다! 1차 목표는 개척지 코어의 확보! 요정을 확인한 이는 길드 통신으로 보고하도록!”
휘리릭!
전무후무한 마스터 스물다섯의 동시 공격은 제국의 1차 방어선을 손쉽게 허물어트렸다.
뒤이어 도착한 아머 유저들도 성벽에 붙은 골렘들의 몸을 타고 올라 개척지 안으로 속속 진입했다.
‘흠.’
성벽 위에서 기감을 펼쳐 내부를 훑어본 라울이 표정을 굳혔다.
성벽을 뚫긴 했지만, S등급 개척지.
주변의 성벽과 내부에서 개미 떼처럼 쏟아져 나오는 병력은 끝이 없어보였다.
마병과 언데드까지 포함하면 적어도 10만은 넘을 듯했으니.
하지만 머릿수는 상관없었다.
중요한 것은 초인의 숫자 및 고급 전력의 수.
만약 이곳에 제국 마장급 인사가 둘이 넘는다면, 쉽지 않은 대결이 될 테니까.
그런데 상황이 영 이상했다.
‘초인의 숫자가 다섯. 넷. 셋. 이런….’
이쪽이 저들의 전력을 파악하듯, 저들도 이쪽의 전력을 파악한 듯했다.
개척지 내부에서 느껴지던 강한 기운들이 갑자기 사라지고 있었다.
‘포털인가?’
기습을 위해서, 그리고 워낙 큰 개척지였기에 순간이동 방해 결계를 깔지 못했다.
성벽에 오른 퍼스트 마탑의 마법사들이 좌표 교란 마법진을 설치 중이었지만, 이미 도주한 이들을 잡을 수는 없는 노릇.
다만 이후 다른 개척지에서 포털을 통해 증원이 오는 것은 막을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라울의 기감에 이상한 것이 느껴졌다.
‘저곳은…?’
타운트리 뒤쪽에 가려져 있어 잘 보이진 않았지만, 마나가 왜곡된 장소가 느껴졌다.
그리고 제국 초인 중 셋 정도가 그곳에서 기척이 사라졌으니.
‘설마 게이트인가?’
뭔가를 눈치챈 라울이 성벽에서 뛰어내려 목책을 향해 날아가며 외쳤다.
“제국의 초인 전력이 모두 철수했다! 일반 병사는 신경 쓰지 말고 고급 전력 위주로 제압하도록! 제4, 5 전투단은 이대로 개척지를 접수하고, 나머지는 나를 따라와!”
제이크, 피어스, 케인이 바로 뒤를 따라붙었고, 달튼을 비롯한 제1에서 제3 전투단의 간부들도 타운트리를 향해 직진했다.
콰과광! 퍼벙!
아무도 라울과 일행의 앞을 가로막지 못했다.
오러로 빛나는 라울의 무기 군단이 걸리적거리는 것은 무엇이든 베어버렸고, 라울의 강력한 염동력은 길을 막는 구조물들을 모조리 좌우로 날려버렸다.
“라벨 괜찮아?”
“응. 한 번 겪었더니 견딜 만해.”
이미 사방에서 토템의 기운이 느껴지고 있었다.
만약 엘프들이었다면, 상당히 곤혹스러웠겠지만.
“이미 따로 추적조를 편성해 따라붙고 있습니다.”
필립의 말처럼 일단의 아머 유저들이 토템을 향해 진격 중이었다.
“혹시 뭔가 느껴지는 것은 없어?”
라울의 물음에 라벨은 힘없이 고개를 저었다.
“아직까지는….”
입술을 깨무는 라벨의 모습에 라울의 마음도 안타까웠다.
‘이런 X같은 놈들이 정말 한 명도 살려두지 않았단 말인가?’
하지만 아직 희망을 버릴 상황은 아니었다.
어느덧 거대한 타운트리의 내부로 진입한 라울은 좀 더 확실한 기척을 느낄 수 있었다.
“저기다!”
거의 높이 100m는 되는 듯한 나무의 꼭대기 부근.
녹색으로 일렁이는 사각의 게이트가 허공에서 반짝이고 있었다.
‘뭔가 다르다!’
여태까지 봐왔던 일반적인 게이트와는 느낌부터가 달랐다.
생긴 것도 원형이 아닌 사각이었고, 그 안에서 새어 나오는 마나의 기운은 생소했다.
“가자!”
라울이 수십 명의 기사들을 동시에 염동력으로 들어 올리며 허공으로 솟구쳤다.
나무줄기를 타고 오르기에는 뭔가 마음이 조급했다.
빨리 서두르지 않으면 뭔가 문제가 생길지도 모른다는 불길한 예감이 들었던 것이다.
“라울, 이거야! 이게 바로 우리 종족들이 휘말렸던 차원 게이트라고.”
거의 눈앞에 도착하자 라벨이 눈을 빛내며 외쳤다.
이미 수천 년 전에 그녀의 동족들을 삼켰던 그것이 그때처럼 빛을 뿜어내고 있었다.
“마스터 이상만 진입한다! 나머지는 게이트 주변을 확실히 장악하고 타운트리를 확보하도록! 앨리아스 부단장은 게이트를 오가며 지시를 전달하고, 만약의 경우엔 지원군을 파견할 것.”
“네, 마스터!”
“진입!”
간단한 명령과 함께 라울과 12인의 마스터가 녹색의 게이트 안으로 발을 들였다.
* * *
“공주님, 무서워요! 이제 어떻게 하죠?”
“우리 이대로 여기서 다 죽는 거예요?”
“고향을 보러 돌아오는 게 아니었어요, 흐애앵.”
수백 명의 자그마한 생명체들이 한데 뭉쳐 두려움에 떨고 있었다.
얼굴로 봐선 이제 예닐곱도 되지 않는 어린아이들.
그 가운데 화려한 두 쌍의 날개를 연신 펄럭이며 그들을 위로하는 소녀가 있었으니.
“괜찮아, 얘들아. 장로님들과 부모님들이 최선을 다해 적들을 막아내고 있잖니. 저들은 절대로 너희들을 해칠 수 없을 거야!”
“하지만, 하지만…. 이미 많은 이모, 삼촌들이 잡혀갔잖아요. 우리 부모님도 잡혀가면 어떻게 해요, 흑흑.”
요정족의 공주 코라는 그저 울고 있는 아이들을 안아줄 수밖에 없었다.
‘설마 이런 일이 생길 줄이야.’
예언에 따라 옛 고향으로 돌아오기로 결정한 건, 전적으로 그녀의 판단이었다.
요정족의 세 공주 중 다른 둘은 원래 세상에 남기를 선택했으니.
‘내 결정이 잘못된 것이었을까?’
그녀가 목에 걸린 사파이어 목걸이를 만지며 한숨을 내쉬었다.
대대로 전해 오는 이 목걸이에는 옛 고향에 남아 그들을 기다리는 여왕님의 표식이 새겨져 있었다.
그리고 잠들어 있던 그 표식이 빛을 되찾는 걸 확인한 순간, 그녀는 게이트에 발을 들일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경솔했다.
충분히 안전을 확보한 이후에 움직였어야 했거늘.
“프하하하! 언제까지 그곳에 숨어 있을 수 있다고 생각하나, 이 날파리 같은 것들아! 지금이라도 기어 나오면 새끼들만큼은 살려주마!”
콰과과광!
정령수가 박살 나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리고 또 한 명의 일족이 저들에게 잡혔을 것이다.
이미 몇 달째 반복되어 온 일상.
정령수와 결합하여 동족을 지키는 방패가 되어온 요정 수백이 이미 저 잔인한 인간들의 손에 넘어갔다.
‘아아, 제발 누가 좀 도와주세요.’
그녀는 정령수 결계에 있는 힘껏 힘을 불어넣으며 속으로 눈물을 흘렸다.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