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Count's Youngest Son Is a Player RAW novel - Chapter 306
제306화
그들이 화를 내는 건 어쩌면 당연할지도 몰랐다.
왜냐하면 라울이 그들에게 제공하겠다는 땅은 바로 원소 정글 남쪽이었기 때문이다.
‘이건 사기야!’
분명 한 달 전 라울과 협의했을 당시의 조건은 다음과 같았다.
-왕국의 지배력이 미치지 않는 독립된 곳.
-잡음이 생기지 않도록 퍼스트 길드가 소유권을 가지고 있는 곳.
-이주하는 이들이 충분히 머물 수 있을 정도로 넓고 자급자족이 가능한 영토.
-최소 6개월간은 퍼스트 길드가 책임지고 안전을 보장할 것.
정확히 지명을 기재하지는 않았지만, 각국 정부가 생각했던 곳은 당연히 한 곳이었다.
금역 서쪽.
몬스터 숲과 평원 일대의 풍요로운 토지.
이미 2년이 넘게 퍼스트 길드와 협력 길드가 총력을 기울여 개발을 진행해 왔기에 플레이어들이 자립하기에 충분한 시설이 완공되어 있었다.
‘그런데 뜬금없이 원소 정글이라고?’
금역 개방 초기부터 퍼스트 길드의 손에 들어와 개발을 순조롭게 진행해 온 몬스터 숲과는 완전히 달랐다.
대형 길드 연합, 엘프, 퍼스트 길드, 파이어니어 협회, 마지막엔 제국까지.
각종 세력의 손을 거쳐 온 원소 정글 남쪽의 땅은 말 그대로 개척 예정지에 불과했다.
물론 사람의 손을 탄 이상 건물들이 지어져 있기야 하지만, 제대로 된 도시 계획도 없이 멋대로 지어진 통나무 집 따위는 오히려 철거 대상에 불과했다.
당장 빈 땅에 몇억 인구가 머무를 도시를 새로 지어야 한다는 뜻이었다.
그러니 각국 수장들의 머리에 열이 뻗치지 않을 수 있겠는가?
하지만 그런 그들의 생각이야 아무 상관없다는 듯 버나드는 태연하게 되물었다.
“물론입니다. 그래서 지금 이렇게 여러분들에게 영토를 넘겨드리려 하지 않습니까?”
“…크읏! 우릴 속인 것인가!”
“속이다니요? 저희는 분명 협의했던 대로 조건에 맞는 땅을 넘겨드리는 것뿐입니다만. 어느 부분이 문제란 말입니까?”
“지금 몰라서 묻는 것이오? 분명 협상할 때 언급한 곳은 서쪽 금역, 몬스터 숲을 말한 것 아니오? 그런데 원소 정글을 넘기겠다고?”
아즈키 일본 총리의 말에 다른 국가수반들도 함께 항의하기 시작했다.
“우릴 바보로 아는가?”
“제대로 약속을 지키지 않는다면, 우리가 가만히 있지 않을 거요!”
“5억 지구인들이 지켜보고 있소. 이딴 협잡이 통할 거라 생각하는 건 아니겠지요?”
노회한 정치인들의 항의에 버나드는 한동안 입을 다물고 있었다.
그게 마치 패배를 인정한 것이라고 생각했던 것일까?
넓은 회의실을 가득 채운 각국의 수뇌들이 아주 기가 살아서 퍼스트 길드를 성토해댔다.
하지만 다음 순간.
“하하하하하, 정말 가관이구나. 가관이야!”
평소에 거의 표정 변화가 없다고 알려진 버나드가 허리를 부여잡고 웃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마스터가 이럴 거라고 말씀하시긴 했지만, 정말!’
이건 숫제 떼쓰는 어린아이들이나 다름없지 않은가?
한 국가를 대표하는 수장이란 자들이 어찌 이리 가볍단 말인가.
그의 웃음소리가 회의장의 소란을 가라앉혔다.
마치 그들을 비웃는 듯한 웃음소리에 분위기가 싸늘해졌다.
“지금 우리를 비웃는 것인가?”
“글쎄요.”
버나드가 아랑곳하지 않고 합의서를 꺼내 들었다.
타이밍을 맞춰 합의서가 회의실 전면의 마법 스크린에 확대되어 투사되었다.
“도대체 여기 어디에 서쪽 금역, 혹은 몬스터 숲, 혹은 지명이 적혀 있단 말입니까? 지구에서는 어떤지 몰라도 이곳에선 표기되지 않은 내용을 ‘합의 내용’이라 주장하지 않습니다만.”
“말장난하지 마시오. 합의서에 적혀 있지 않지만, 분명 우리가 합의할 당시 조건에 맞는 땅은 그곳밖에 없었소!”
“그렇습니까? 하지만 그건 여러분들이 마음대로 생각한 ‘짐작’일 뿐이지요. 그리고 말장난은 여러분이 하고 계시지 않습니까? 지금 우리가 넘겨드리는 이 땅의 어디가 합의 내용에서 어긋나는지 말씀해 보시지요. 만약 지적이 합당하다면, 제가 직접 마스터께 여러분의 의견을 전해드리지요.”
“그, 그건….”
순간 협상장의 모든 이들이 침묵했다.
아무리 따져봐도 합의했던 조건을 만족하지 않는 부분이 없었다.
“그리고 솔직히 말해서 저는 당신들의 그 뻔뻔함이 맘에 들지 않는군요.”
“뭣이라?”
“이번 합의를 두고 길드 내부에서 말이 많았습니다. 굳이 이주자들에게 그렇게 커다란 땅을 넘겨줄 필요가 있는가. 그것도 거의 아무런 대가도 받지 않고 말이죠.”
“대가를 치르지 않았다니! 우리가 얼마나 많은 것들을 양보했는데….”
“하, 지구에 있는 그 쓸모없는 고철 덩어리들 말입니까? 아니면 선심 쓰듯 합의해준 가디언즈라는 국제기구? 솔직히 그딴 게 우리에게 무슨 소용이지요?”
버나드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이 얼마나 이기적인 자들이란 말인가.
“아니, 좀 더 확실히 말하지요. 그건 우리가 제안할 게 아니라 여러분들이 먼저 해결했어야 하는 문제입니다. 국가의 수장이라는 당신들이 정말로 남겨질 국민들을 조금이라도 생각했다면! 그런 걸 조건이고 대가라고 내민 스스로를 부끄러워해야 정상 아닙니까?”
“…한 나라의 왕도 아니고 영주도 아닌 자에게 그런 소리를 들어야 할 이유를 모르겠군요. 그리고 우리가 제시한 대가에는 추후 지구 출신 플레이어들의 협력도 포함되어 있다는 걸 잊고 있는 듯합니다만.”
너무나도 태연하게 대답하는 저들의 얼굴에는 전혀 부끄러움이나 자책이라곤 느껴지지 않았다.
아마도 자신들의 선택이 최선이었다고 생각하는 것일지도.
버나드는 더 이상 이들과 말을 섞어봤자 의미가 없다는 걸 깨달았다.
‘마스터가 굳이 이 자리에 참석하지 않으시려 했던 이유를 알겠구나.’
마음속으로 탄식을 내뱉은 그가 살짝 한숨을 내쉬고는 말했다.
“더 이상 길게 얘기할 필요는 없을 것 같군요. 약속대로 여러분이 머무실 땅을 넘겨드리겠습니다. 받으시겠습니까? 받지 않으시겠습니까?”
원소 정글 전체의 1/5.
면적만 해도 여느 왕국의 절반에 가까운 커다란 땅이었다.
게다가 지금은 약해졌지만, 세계수의 축복을 받아왔던 곳이니만큼 기름지고 생기 넘쳤으니.
제대로 개발할 수만 있다면, 자급자족하고도 남을 만한 가치 있는 곳이었다.
그렇지 않았다면 지금까지 그곳을 두고 수많은 세력들이 다툼을 벌이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누가 그랬던가.
인간의 욕심은 끝이 없다고.
“그럴 수는 없소! 이런 오지가 아닌 제대로 된 땅을 제공하란 말이오!”
“당신들은 도의라는 것도 없는가? 지금 고향을 잃은 5억의 이주민이 머물 장소를 얘기하고 있는 거요! 그들을 생각해서라도 이렇게 나오면 안 되지.”
“아랫것이랑 얘기하려니 말이 안 통하는군. 당장 라울 백작을 불러오시오! 그와 직접 얘기를 해야겠소!”
사람들이 벌떼같이 일어나 소리를 쳤다.
‘이런 염치도 모르는 작자들이!’
버나드는 화가 치밀어 올랐다.
제 손에 피 하나 묻히지 않은 자들에게 원소 정글을 넘겨주는 것도 아까운데, 2년 넘게 퍼스트 길드가 피땀 흘리며 개발한 땅을 요구한단 말인가?
게다가 감히 누구를 오라 마라 한단 말인가!
휘우우웅.
버나드의 몸 뒤편에 생성된 녹색의 칼날들.
무시무시한 속도로 휘몰아치는 그 바람의 칼날에 담긴 힘은 오러 블레이드에 못지않았으니.
사람들이 그 어마어마한 기세에 밀려 뒷걸음질 치거나 주저앉았다.
“이 무슨 무례한… 크윽!”
그들의 호위를 맡고 있던 국가 소속 랭커 플레이어들이 튀어나오며 버나드 앞을 막아섰다.
하지만 그들은 무기조차 뽑아 들지 못했다.
아니 그럴 엄두가 나지 않았다.
‘이, 이럴 수가….’
그들 또한 100레벨을 넘어서 초인의 경지에 들어선 이들.
허나 급의 차이란 것이 있었다.
이미 오래전에 상급 바람술사의 경지에 오른 버나드는 시스템의 도움으로 겨우 초인에 턱걸이한 이들이 감당하기엔 너무나도 큰 산이었다.
‘이 정도로 차이가 날 줄이야.’
호위 임무를 맡은 랭커들은 압박감에 식은땀을 줄줄 흘리며 이를 깨물었다.
정식 서비스가 시작되고 모든 플레이어의 싱크로율이 100%로 고정되었다.
그 말은 예전과 달리 마나를 훨씬 더 예민하게 느낄 수 있다는 것.
그러니 더더욱 눈앞의 버나드라는 인물이 가진 힘의 크기가 여실히 느껴지고 있었다.
버나드는 녹색 칼날들을 띄워놓은 채로 무표정하게 말했다.
“착각하지 말았으면 좋겠습니다. 당신들이 5억 지구인을 대표한다는 게 진실이라 하더라도, 감히 우리 마스터를 오라 가라 할 자. 이 자리에 그 누구도 없다는 걸 분명히 말씀드리지요. 그리고.”
버나드가 자신의 앞을 가로막은 랭커들과 하나하나 눈을 맞췄다.
털썩, 털썩.
그럴 때마다 랭커들이 보이지 않는 바람의 압력을 버티지 못하고 무릎을 꿇었으니.
“지구 출신 플레이어들의 지원? 솔직히 없어도 그만이지만, 마스터가 원하시니 따를 뿐. 다시 한번 그깟 걸 핑계로 도에 넘치는 요구를 하겠다면.”
버나드가 슬쩍 손을 들어 올렸다.
쿠과과과!
그의 뒤에 호위차 참석했던 다섯 기사들이 억누르고 있던 힘을 개방했다.
“크헉.”
“악.”
장내에 있던 지구 측 인사들이 모두 바닥에 철푸덕 엎어졌다.
이는 그들이 철석같이 믿고 데려왔던 수십 명의 랭커들도 마찬가지였다.
거대한 힘에 짓눌려 경악한 표정을 짓고 있는 그들을 향해 버나드가 차갑게 말했다.
“이곳은 당신들이 호의호식하며 지내던 지구가 아니라는 걸 명심하길 바랍니다. 호의를 권리라 착각하는 일이 다시 한번 생긴다면, 그때는 오늘처럼 조용히 넘어가는 일은 없을 겁니다.”
휘릭.
버나드가 황금빛을 띠는 나뭇가지 하나를 던져 회의실 바닥에 꽂아 넣었다.
원소 정글 남쪽 중심부의 타운트리의 수호상이었다.
“분명히 넘겼습니다. 이제부턴 당신들의 땅이니 어떻게 개발하든 마음대로 하시길. 그리고 약속한 대로 6개월간은 제국과 왕국의 침략에서 보호해 드리겠습니다. 설마 개척지 주변의 몬스터까지 막아달라는 재밌는 소릴 입에 담으실 분은 없을 거라고 믿겠습니다.”
딱.
버나드가 손가락을 튕기자, 장내를 억누르던 힘의 파동이 소리 소문 없이 사라졌다.
“아, 그러고 보니 잊은 것이 있네요.”
버나드가 한 팔을 접으며 살짝 허리를 굽혔다.
“커넥트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지구인 여러분.”
그리고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회의장을 빠져나갔다.
아무도 그의 발길을 막아서는 이가 없었다.
* * *
“죄송합니다. 화를 참지 못하고 그만….”
버나드가 라울에게 허리를 숙였다.
하지만 라울은 그저 피식 웃었을 뿐, 딱히 나무랄 생각도 없었다.
“아니야, 잘했어. 보고 있던 내가 더 속이 시원하던걸, 뭐. 버나드가 틀린 말을 한 게 아니잖아.”
만약 라울이 그 자리에 있었다면, 오히려 일이 더 커졌을지도 몰랐다.
라울 본인이야 저들이 뭐라 한들 웃어넘길 수도 있겠지만, 과연 그가 모욕을 당했을 때 부하들이 가만히 있었을까?
그 자리는 넘어가더라도 지구 출신들은 두고두고 애로사항이 꽃피었을 터였다.
‘그리고 저들에겐 충격 요법이 필요하기도 했고.’
무슨 생각으로 커넥트 세상에 넘어왔는지는 알 수 없었다.
하지만 이곳을 지구처럼 만만한 곳이라 생각하면, 큰코다치는 정도가 아니라 목숨을 잃기 십상일 터.
저런 정치인들이야 어떤 면에선 없는 게 더 나을 수도 있지만, 그 과정에서 애꿎은 이들까지 피해를 봐서야 되겠는가?
라울은 부디 저들이 현명한 선택을 하길 바랐다.
그리고.
“영상과 소문은?”
“지시하신 대로 처리했습니다.”
“뭐, 우리가 공개했다는 걸 알아도 상관없긴 하지만, 굳이 대놓고 할 필요는 없겠지.”
“길드원을 통해 몇 번을 세탁한 계정으로 올렸으니 알아차리기 쉽진 않을 겁니다.”
“그래. 방심하지 말고 여론전을 계속 이어가도록 해.”
“네, 마스터.”
당연히 지구의 지도자들만 믿고 있을 생각은 없었다.
5억이라는 지구 출신 이주자.
시스템을 이용할 수 있다는 측면을 제외하더라도, 상당한 재원들이라 할 수 있었다.
솔직히 커넥트 주민 가운데 고등 교육을 받은 이들의 수는 많지 않았다.
게다가 서로 장단점은 있겠지만, 지구의 정치, 경제, 문화적인 측면은 확실히 커넥트보다 앞서 있었다.
그러니 가능하면 많은 이들을 퍼스트 영지로 끌어들일 필요가 있었다.
‘지구의 대표라 자신하는 모양이지만, 과연 플레이어들도 그렇게 생각하고 있을까?’
라울의 입꼬리가 슬쩍 올라가 있었다.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