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Count's Youngest Son Is a Player RAW novel - Chapter 43
제43화
라울은 스킬도감을 덮고 소녀를 바라봤다.
“남의 물건에 손댔으면 사과부터 해야 하지 않을까? 그리고 내가 왜 네 궁금증을 풀어줘야 하지?”
라울의 말에 그녀가 살짝 놀란 표정을 지었다.
“정말 내 말이 들리는구나. 책에 손을 댄 건 미안하게 생각해. 인간이 나를 알아보는 건 정말 드문 일이거든.”
그녀는 라울의 눈치를 살짝 보더니 입술을 슬쩍 깨물고는 책상 위로 날아와서 앉았다.
양쪽 치마 끝을 잡고 우아하게 고개를 숙이며 인사한 그녀가 입을 열었다.
“내 이름은 라이벨리나 에리오트 메르디아네. 줄여서 라벨이라고 해. 요정, 그중에서도 조화와 질서를 사랑하는 숲의 요정이야.”
라울도 살짝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
“나는 라울. 올해 아카데미에 입학한 학생이지. 보다시피 인간이고. 그런데 아무리 봐도 평범한 요정 같지는 않은데….”
라울이 말끝을 흐리자, 요정 라벨의 표정이 살짝 어두워졌다.
“그래. 사실 나는… 어찌 보면 유령 같은 존재지. 도서관을 드나드는 인간들은 나를 ‘도서관의 유령’이라고 불러.”
“유령? 고스트란 말이야?”
“실례야! 내가 그런 저급한 몬스터로 보여? 나는 그저 삶과 죽음의 경계에서 줄타기를 하고 있는 영혼이라구. 특별한 존재란 말이야!”
하긴 일반적인 몬스터나 귀신이라면 각종 마법으로 도배된 도서관에 자리 잡긴 힘들 것이다.
“뭐, 그렇다고 하지. 그런데 이 책엔 왜 그렇게 관심이 많은 거야?”
“그, 그 책은 특별해. 특별한 책들은 많지만, 그 책은 뭔가 더 특별하다고!”
라벨의 얼굴은 살짝 격앙되어 있었다. 그리고 그녀의 시선은 언제부턴가 스킬도감에서 떨어지지 않고 있었다.
“이 책이 무슨 책인지는 알고 하는 얘기야?”
“아니, 몰라. 그 아이가 얘기해주지 않았어. 하지만 분명해. 그 아인 특별하다구! 그러니까… 한 번만 보여주면 안 될까?”
라벨은 분홍빛 눈망울을 반짝이며 애처로운 표정으로 라울을 바라봤다.
라울은 살짝 갈등했다.
사실 라울도 스킬도감에 대해선 잘 몰랐다.
환생하면서 그를 따라오긴 했지만, 전생에서도 제대로 된 정보를 얻지 못한 상태였으니까.
‘어쩌면 도감을 업그레이드 시킬 방법을 찾을 수 있을지도….’
어쩌면 저 요정이 도감에 무슨 짓을 할지도 몰랐다. 하지만 시스템의 힘을 믿기로 했다.
아까도 요정 혼자선 책장조차 열지 못하지 않았던가.
‘어차피 귀속템이라 가지고 도망치지도 못할 테고 말이지.’
결정을 내린 라울이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 책을 보여줄게. 대신 이 책에 대해서 알아내는 게 있으면 숨기는 거 없이 얘기해 주겠다고 약속해.”
“물론이야! 고마워!! 정말 고마워!”
라벨은 만면에 환한 미소를 띄웠다. 그와 함께 청량한 숲의 향기가 라울의 코끝을 맴돌았다.
라울은 스킬도감의 표지를 활짝 열고는 자리를 비켜줬다.
이윽고 라벨이 두근거리는 가슴을 다독이며 조심스럽게 도감의 앞으로 다가섰다.
마침내 그녀의 자그마한 손이 책장에 닿았고.
파앗.
격력한 전기가 통하는 느낌을 받으며 라벨은 다리가 풀려 자리에 주저앉았다.
“하앙.”
흐릿해져 사라질 것만 같았던 그녀의 형체가 선명하게 모습을 드러냈고, 흘러넘치는 에너지와 자극을 견디지 못한 그녀의 입에선 신음이 새어 나왔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갑자기 도감에서 스파크가 튀며 라벨의 손이 뒤로 밀려났다.
“꺄악!”
충격을 받았는지 두 손을 감싸 쥔 라벨은 망연자실한 표정으로 도감을 바라보았다.
“이럴 수가… 말도 안 돼. 어떻게 이런 책이…. 설마 그는 이런 일을 예견했단 말이야? 하지만 그건 법칙과 어긋나는 게 아닌가? 지금 이 책이 나타났다는 건….”
라벨은 흔들리는 눈빛으로 혼잣말을 내뱉었다.
라울은 영문을 알 수 없는 그녀의 반응을 잠시 지켜보다가 말을 걸었다.
“이봐. 라벨? 어이~!”
라벨은 라울이 불러도 반응이 없었고, 그가 도감을 탁하고 덮고 난 후에야 정신을 차렸다.
“이, 인간. 아니 라울! 이 책을 어디서 손에 넣은 거야? 응??”
라벨은 다급히 날아올라 라울의 눈앞에 몸을 들이밀며 물었다.
라울은 눈앞을 꽉 채우는 그녀의 실루엣에 당황하며 슬쩍 눈을 돌리며 말했다.
“지, 진정해. 그리고 질문은 내가 하기로 했잖아. 약속을 어길 셈이야?”
“…후아~.”
라울의 말에 깊게 숨을 들이마시며 마음을 가다듬은 라벨이 입을 열었다.
“이 책은… 창조신의 힘이 담긴 책이야. 알겠어, 라울? 그냥 신도 아니고 사라졌다고 알려진 고대 창조신의 힘이라고!”
“……??”
라벨이 대단한 일인 것처럼 말했지만 솔직히 라울은 신이니 뭐니 하는 말엔 딱히 관심이 없었다.
그런 라울의 기색을 알아챘는지 라벨이 한숨을 푹 내쉬었다.
“하아, 인간들이란…. 창조신은 말이지, 과거….”
“잠깐! 솔직히 신에 관한 내용은 관심 없어. 책에 대해서 알아낸 것만 얘기해줘.”
라울이 라벨의 말을 끊어버렸다. 라벨은 불만스런 표정으로 퉁명스레 말했다.
“어째서 이런 인간의 손에…. 일단 책의 자세한 내용은 잘 모르겠어. 잠깐밖에 살펴볼 수 없었으니까. 다만 이 책은 지금 금제에 걸린 상태야. 무슨 이유에선지 충격을 받고 그 격을 잃어버린 거지.”
“그래서? 어떻게 하면 책을 원래대로 만들 수 있는데?”
“그걸 내가 어떻게 알아? 이 까칠한 아이가 말하기를 거부했다구.”
“쳇.”
라울이 실망한 표정으로 혀를 차자 라벨이 발끈했다.
“잠깐 손댄 거 가지고 어떻게 금제를 풀라는 거야? 정말 알고 싶다면 내가 책속에 들어갈 수 있도록 해줘!”
라벨의 말이 끝나는 것과 동시에 라울의 눈앞에 시스템 창이 튀어올랐다.
숲의 요정 [라벨]의 영혼체가 스킬도감에 입주하기를 요청했습니다.
스킬도감에 영혼체가 입주하면 자동적으로 ‘도감의 사서’로 임명됩니다.
사서를 임명하면 스킬도감의 등급, 기능, 효율이 상승할 수 있습니다.
한 번 사서로 임명하면 합의가 이뤄지지 않는 한 강제로 해고할 수 없습니다.
[라벨]을 스킬도감의 사서로 임명하겠습니까?YES / NO
‘이게 무슨 소리야?’
뜬금없이 나타난 시스템 창을 꼼꼼하게 살펴본 라울이 라벨을 바라보며 입꼬리를 올렸다.
‘이 녀석 봐라? 지금 은근슬쩍 스킬도감에 들러붙으려고 한 거야?’
내용을 보니 요정이 스킬도감에 입주해서 나쁠 것은 없어 보였다.
하지만 아직 이 요정에 대해서 잘 알지도 못하는 데 함부로 들이기가 애매했다.
하물며 공짜 입주라니? 들어오려면 뭔가 대가를 받아야 하지 않겠는가.
“뭐, 뭐야 그 눈빛은?”
먹잇감을 바라보는 사냥꾼 같은 라울의 눈빛에 라벨이 살짝 움찔했다.
“음. 생각해보니 굳이 너한테 더 이야기를 들을 필요가 있을까 싶어서. 이 ‘스킬도감’이 금제에 걸려 있다는 건 나도 알고 있던 사실이고, 시간을 들이면 어떻게든 해결할 수 있을 것 같기도 하고. 아, 시간도 늦었으니 이제 돌아가야겠네?”
라울은 미련없이 스킬도감을 집어 들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러자 당황한 라벨의 눈이 정처없이 흔들렸다.
“아, 안 돼. 그러지 말고 내 얘길 좀 더 들어줘, 응?”
“글쎄, 바쁜 일이 있어서 이만 가봐야 해. 다음에 얘기하자. 언제 또 올진 모르겠지만….”
“내가 화나게 한 거야? 미안해! 정말 미안! 인간이랑 대화한지 너무 오래돼서 그런 거야.”
라벨이 눈앞에서 애처로운 표정으로 사과했다.
라울은 순간 움찔했지만, 표정을 관리하며 짐을 챙기기 시작했다.
“내가 도움이 될 수 있을 거야. 정말이야, 맹세해! 그 책은 나한테도 정말 소중하단 말이야. 조금만 더 내 얘길 들어줘~!”
아무리 봐도 라벨에겐 스킬도감이 굉장히 중요한 모양이었다.
‘이제 충분하겠지? 그럼 이제 슬슬 협상을….’
“흑흑, 정말인데… 훌쩍. 너무해, 흑.”
라울이 말을 꺼내기도 전에 요정의 눈물이 터져버렸다.
눈물이 주룩주룩 흘러내리는 라벨의 얼굴을 바라본 라울의 심장이 철렁 내려앉았다.
“아, 아니, 그게 아니라….”
“흐애앵~!!”
뭔가 나쁜 사람이 된 것 같아 라울은 한동안 입을 열 수가 없었다.
잠시 후.
라울과 라벨은 스킬도감을 앞에 두고 마주 앉아 있었다.
“좀 전 일은 미안하게 생각해. 딱히 널 괴롭히려고 그런 건 아니야. 사과할게.”
“…괜찮아.”
라울이 진심 어린 말투로 고개를 숙이며 말하자 라벨이 사과를 받아주었다.
“하지만 이 책에 관해선 아직 허락할 수 없어. 이건 나에게도 정말 중요한 책이거든.”
라울의 단호한 말에 라벨의 안색이 어두워졌다.
“그러니 정말로 이 책에 뭔가를 하고 싶다면 일단 네 이야기를 들려줘. 네가 그렇게 된 이유가 뭔지, 어째서 이 책에 관심을 가지는지 하는 것들. 판단은 그다음에 내리도록 할게.”
라벨은 고개를 들어 라울의 눈을 빤히 바라봤다.
라울 또한 그녀의 눈을 피하지 않았다.
한동안 라울의 눈을 살핀 라벨이 짧은 한숨을 내뱉고는 말했다.
“좋아. 라울을 믿고 얘기할게. 좀 긴 이야기가 될지도 몰라.”
그리고 시작된 라벨의 이야기.
얼마나 오래됐는지 기억도 할 수 없는 먼 과거.
커넥트 대륙에선 커다란 전쟁이 벌어졌다.
수많은 종족과 신, 악마라 불릴 만한 인외의 존재들까지 엮인 거대한 전쟁은 대륙을 멸망의 위기로 몰아넣었다.
그리고 라벨의 종족, 숲의 요정들에게도 위기가 찾아왔다.
멸종의 위기를 맞은 요정족은 일족 최후의 후계자인 라벨을 모종의 술법을 통해 책 속으로 대피시키고자 했다.
하지만 요동치는 마나와 불안정한 차원 때문이었는지 라벨은 영혼만 책에 얽매인 기묘한 상태가 되었고, 요정 일족은 차원의 균열 속으로 모두 흩어지고 말았다.
이후 그녀는 긴 잠에 빠져들었고, 깨어난 이후론 특별한 힘을 지닌 책 사이를 옮겨 다니며 겨우 삶을 이어나가는 신세가 되었다.
“잠들었다 깨어날 때마다 많은 기억을 잃어버려. 그래서 내가 얼마나 오랜 시간 살아왔는지조차 잘 모르겠어. 하지만 나에겐 꼭 해야 할 일이 있어.”
“그게 뭔데?”
“흩어진 일족들을 찾아내는 일. 분명 나 말고도 살아남은 요정들이 있을 거야. 그들에게 일족들의 지혜와 정수를 전달해야만 해. 그러기 전까진 결코 눈을 감을 수 없어!”
살짝 물기가 맺힌 라벨의 눈에는 굳은 의지가 드러나 있었다.
“하지만 현실은 뭐…. 책에 묶여 도서관을 벗어날 수조차 없고, 그나마 이젠 나를 받아줄 책조차 거의 없어.”
라벨의 시선이 스킬도감으로 향했다.
“그랬는데… 그 책은 달라. 처음 나를 받아준 위대한 마도서와 비슷한 향기가 나. 아니 숨겨진 힘은 더 뛰어날지도 몰라. 그러니 부디 도와줬으면 좋겠어, 라울. 내가 그 책에 들어갈 수 있도록 해줘, 부탁이야.”
라벨은 책상에 털썩 무릎까지 꿇으며 애절한 표정으로 라울을 바라봤다.
라울은 잠시 그녀를 바라보다 이내 마음을 굳혔는지 입을 열었다.
“이 책은 스킬도감이라는 책이야. 네 말처럼 신의 힘을 담았는지는 모르겠어. 하지만….”
라울은 게임적인 요소를 제외하고 적당하게 스킬도감에 대해 설명했다.
“…해서 네가 만약 도감에 들어온다면 사서 역할을 맡아야 하나 봐. 그리고 도감이 그러하듯 너도 나에게 종속될지도 몰라. 그래도 괜찮겠어?”
본인의 사정을 모두 이야기한 라벨을 속이고 싶지 않았다.
해야 할 일이 있는 그녀를 억지로 도감에 담아 끌고 다니는 건 그가 바라는 바가 아니었으니까.
“라울은 이 책에 담긴 힘으로 뭘 하고 싶어?”
라벨이 묻자 라울은 잠깐 고민하는 듯하더니 담담하게 말했다.
“가족과 고향을 지키고 싶어. 너무 소박한가?”
라울의 표정을 뚫어져라 바라보던 라벨이 이내 미소를 지었다.
“잘 부탁해, 라울.”
그렇게 라울은 작은 소녀 요정을 동료로 얻게 되었다.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