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Count's Youngest Son Is a Player RAW novel - Chapter 65
제65화
“모두 포위 진형으로! 절대 정면으로 상대해주지 마라!!”
혼란은 없었다.
이미 한번 만난 적이 있었던 만큼, 그에 대한 대비는 되어 있었다.
필립의 지체 없는 명령에 12명의 퍼스트 기사단 아머유저들은 신속히 검은 괴수들을 둘러쌌다.
“피어스. 지휘를 맡긴다.”
“맡겨주십시오!”
지휘권을 보다 신중한 피어스에게 넘긴 필립이 라울의 뒤를 따랐다.
만약 적의 대장마저 [검은 희생]을 발동한다면 마스터 혼자 상대하게 놔둘 수 없었다.
‘전과 같이 수월하게 풀리면 좋겠지만….’
아직 마스터의 이상한 파워아머는 믿음이 가질 않았다.
만약의 경우엔 ‘그것’을 사용하겠다고 다짐하며 필립은 좀 더 속도를 높였다.
* * *
‘왜 이렇게 소식이 없어??’
찰거머리처럼 따라오는 어린 괴물을 떼어내려고 부하들까지 희생시켰는데 별다른 효과가 없었다.
게다가 저 어린놈은 자신에게 무슨 억하심정이 있길래 끝까지 따라붙는단 말인가?
잭은 머리끝까지 차오르는 짜증을 꾹꾹 누르면서 쉬지 않고 발을 놀렸다.
그때 드디어 소식이 들어왔다. 하지만 그건 잭이 기대하던 보고가 아니었다.
「잭 부대장! 일이 틀어진 것 같소. 우리가 잡아두었던 몬스터들을 다 처분했는데도 게이트엔 변화가 없소. 아무래도….」
잭의 머리가 지끈거렸다.
‘설마…?’
한편, 라울은 한결 편해진 마음으로 잭의 뒤를 쫓았다.
다행히 전투는 라울이 설계한 그림대로 흘러갔다.
준비해 두었던 전투 물자는 충분히 도움이 되었고 용병과 기사들은 기대 이상으로 활약해 주었다.
저 앞에서 눈치를 보며 도망 다니는 적의 지휘관을 보니 게이트 밖의 작전도 성공적으로 마무리된 듯했다.
이제 남은 것은 폭주한 검은 괴물 셋과 적의 지휘관을 정리하는 것뿐.
라울은 요새에서 너무 멀어지지 않은 채 뺑뺑이를 돌고 있는 잭의 뒤를 쫓으며 그의 어리석음을 비웃었다.
‘딱 봐도 무슨 생각인지 훤히 보이는군. 안 됐지만 네 생각대로 흘러가진 않을 거다.’
전생에도 그랬지만 임페리얼 하운드는 플레이어들이 게이트를 클리어하지 못하도록 일정 수의 몬스터를 어딘가에 숨겨두곤 했다.
그래야 사냥감들이 게이트를 탈출하지 못하니까 말이다.
상황이 바뀐 지금, 놈들은 숨겨둔 몬스터를 처리하고 게이트에서 탈출하려고 할 테지만….
‘그 꼼수를 쓸 수 있는 건 너희만이 아니란 말씀.’
라울이 세운 요새 내부에는 죽이지 않고 잡아둔 몬스터 몇 마리가 고이 모셔져 있었다.
결국 놈들은 독 안에 든 쥐나 다름없다는 얘기였다.
게다가 아직 라울의 파워아머 가동시간에는 여유가 있었다.
처음 레그나토르를 가동시켰을 때에 비하면 라울 자신도 굉장한 성장을 이룬 상태였다.
레벨, 경지, 숙련도가 받쳐주고 꾸준히 파워아머 조종을 연습해온 결과 레그나토르의 기동시간이 5분에서 30분으로 늘어났다.
‘그래도 아직 멀었지.’
레그나토르의 제 성능을 이끌어내려면 도대체 어느 정도의 경지에 도달해야 할지 가늠조차 되지 않았다.
그때 앞서가던 잭의 행동이 돌변했다.
지금까지는 라울의 눈치를 보며 적당히 요새 주변을 배회했다면 이제는 아주 작정한 듯 요새를 향해 달려가기 시작했다.
‘눈치챘구나!’
확신은 하지 못했다 하더라도 요새에 뭐가 있으리라 짐작한 모양이었다.
“필립!”
뒤에서 따라오던 필립에게 모종의 신호를 보낸 라울이 폭발적인 스피드를 내며 잭의 뒤에 따라붙었다.
두 개의 파워아머가 중첩되며 상승한 신체 능력과 염동력의 힘까지 빌리니 마치 로켓이 날아가는 것처럼 빨랐다.
하지만 잭도 만만치 않았다.
일반적인 병사들에게 새겨지는 ‘황제의 낙인’과 달리 ‘황제의 문장’은 좀 더 폭발적으로 능력을 증폭시켜주었다.
온몸을 거의 붉은 문장으로 도배한 잭은 아슬아슬하게 라울에 앞서 나가고 있었다.
어느새 요새가 눈앞에 들어오고 있었다.
‘아쉽지만 이제 마무리해야겠군.’
사실 오늘의 전투가 길어진 것은 전적으로 라울의 의지 때문이었다.
애초에 전력에서 앞서고 있었으니 정면대결을 했어도 이겼을 것이다.
하지만 라울의 목적은 단순한 승리가 아니었다.
퍼스트 기사단의 기사들은 너무 짧은 시간에 강해졌다. 그 경지에 비해 실전 경험이 터무니없이 부족한 상태였다.
게다가 파워아머 유저 간의 실전이라니! 돈을 주고도 경험하기 힘든 기회였다.
허나 그것도 여기까지. 소년만화 주인공도 아니고 일부러 적을 살려두고 희망고문 할 생각은 없었다.
라울은 접어두었던 창 하나를 눈앞에 띄웠다.
-[레그나토르]가 금지된 힘의 조각을 감지했습니다.
-맹약에 따라 봉인을 일시 해제하시겠습니까? (남은 시간 8분22초)
흑마력을 감지하자마자 폭주했던 전과는 달리 이번엔 라울에게 선택권이 주어졌다.
봉인을 해제하면 짧은 시간 동안 말도 안 되는 힘을 얻는 대신, 이후엔 강제로 파워아머가 해제되고 무방비 상태가 되고 만다.
당연히 라울로선 [레그나토르 각성]이라는 필살기를 신중하게 사용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지금이 바로 그 타이밍이지.’
라울은 더 이상 망설이지 않고 최후의 비기를 발동시켰다.
‘봉인을 해제한다!’
휘우우웅!!
거대한 황금빛 파장이 전장을 휩쓸어 버렸고 이제는 완전한 황금빛 갑주를 장착한 라울이 오연한 눈빛으로 잭을 바라보았다.
등 뒤에서 느껴지는 어마어마한 기운에 기겁한 잭이 반사적으로 뒤를 돌아본 순간.
슈우욱!
라울이 제 자리에서 손을 내밀었고 라울의 몸을 감싸고 있던 거대한 광휘의 빛이 손 모양으로 변하며 날아가 잭을 덥석 붙잡아 버렸다.
“끄아아악!!”
마치 염산이라도 뒤집어쓴 것처럼 잭의 파워아머가 부식되며 증기가 피어올랐고, 잭은 피부가 통째로 녹아내리는 듯한 고통에 비명을 질렀다.
‘아, 안 돼! 이, 이렇게 된 이상 최후의 수단을….’
하지만 잭에게 그럴 기회는 없었다.
라울이 잭의 움직임을 묶어둔 사이 어느새 다가온 필립이 검을 휘두르고 있었던 것이다.
“서, 설마 ㅇ…!?”
써컹!
무언가에 놀란 듯한 잭의 목소리는 허무하게 공기 중에 흩어져 버렸다.
털썩.
목을 잃은 시체가 힘없이 바닥에 쓰러졌다.
“와아아!!!”
“이겼다!!!”
그와 동시에 요새 성벽 위에 모여 있던 용병들이 기쁨의 환호성을 질렀다.
단순히 전투에 이겼기에 터져 나온 환호성은 아니었다.
“봤어!? 라울 공자님의 몸을 감싼 그 찬란한 빛! 그리고 악을 징벌하는 빛의 주먹을!”
“분명해. 우리 고용주는 신의 사자라고!”
“난 처음부터 알았다니까? 생각해봐. 만약 신의 축복을 받은 게 아니라면 여태까지 아무도 죽지 않았다는 게 말이 되냐고?”
“X발. 난 이제 무조건 라울 님을 따라다닐 거야! 신의 군대라니! 내 어릴 적 꿈이 이렇게 이루어질 줄이야….”
용병들은 라울이 신의 사도라는 사실을 확신해버린 모양이었다.
하긴 눈앞에서 그런 모습을 봤으니 누가 그 사실을 부정할 수 있겠는가?
흥분한 용병들이 환호성을 지르는 사이 옆 전장에서 폭주한 검은 괴수들의 처리도 끝난 모양이었다.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 기사들이 다가와 라울의 주위를 둘러쌌다.
“쿨럭.”
어느새 파워아머가 해제된 라울이 살짝 핏물을 게워냈다. 다행히 기사들이 가려준 덕에 용병들은 그 장면을 보지 못한 모양이었다.
“후우, 다들 고생했다.”
겨우 속을 가라앉힌 라울이 미소를 지으며 부하들을 치하했다. 하지만 아직 완전히 끝난 것은 아니었다.
“제이크 경, 날랜 부하들을 데리고 적의 잔당을 처리하도록. 피어스 경은 적들의 잔해를 회수하고 쓸데없는 흔적을 정리해. 호머와 나머지 기사들은 요새를 정리하고 퇴각할 준비를.”
“맡겨주십시오!”
지시에 따라 기사들이 뒤처리를 시작하고, 필립만이 남아 라울의 곁을 지켰다.
“필립 경, 축하해. 이제 얼마 남지 않았네.”
라울의 말에 필립이 포근한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숙여 예를 표했다.
“감사합니다. 이게 다 마스터 덕분입니다. 마스터의 힘이 될 수 있도록 더 정진하겠습니다!”
마지막에 잭의 목을 날려버린 필립의 검. 짧은 순간이었지만, 거기에 서려 있던 것은 분명 ‘오러 블레이드(검강)’였다.
물론 그렇다고 필립이 소드 마스터의 경지에 오른 것은 아니었다.
힘을 응축시켜 잠시지만 오러 블레이드를 만들어 낼 수 있다는 건, 그가 소드 엑스퍼트의 끝자락에 도달했다는 의미였다.
그리고 진짜 마스터가 될 수 있는 자격을 얻었다는 뜻이기도 했다.
‘흠. 이러다가 필립경이 먼저 마스터의 경지에 오른다면 아버지 체면이 말이 아니겠는데?’
문득 엉뚱한 생각이 들긴 했지만 어쨌든 주변 인물들을 성장시켜 미래를 대비한다는 라울의 계획은 순탄하게 진행되고 있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짧고도 격렬했던 게이트 원정이 마무리 되었다.
* * *
“알아낸 것은?”
“아무래도 힘들 것 같습니다. 한 놈도 아니고 전원이 백치가 되어버렸으니…. 정말 지독한 놈들입니다.”
저택 내의 회의실에는 라울과 길드의 간부들이 모두 모여 있었다.
임페리얼 하운드와의 충돌이 있은 지 벌써 이틀이 지나갔다.
현재 루벤왕국의 수도 투리엄은 제국 마병과 첩보부의 등장으로 인해 엄청난 혼란과 불안에 휩싸여 있었다.
라울은 게이트에서 획득한 마병의 사체와 제국 아머 유저들의 사체를 숨기지 않고 공개했다.
난리가 나는 것은 당연했다.
왕궁에서 나온 조사대는 라울과 용병들의 진술 및 증거물을 토대로 황급히 제국 첩보부에 대한 추적에 나섰지만 딱히 기대가 되진 않았다.
오히려 더 적극적인 것은 바로 실종된 토벌대가 속한 가문들이었다.
실질적인 손해는 둘째 치고 가문의 체면이 달렸으니 범인의 정체를 듣고도 가만히 있을 수는 없었다.
그들은 사병까지 동원해 수도의 뒷골목을 들쑤시고 다녔다.
한편 마탑과 마법사들은 마병의 사체와 제국 파워아머에 눈독을 들였다.
며칠 지나지도 않았건만 여러 마탑에서 구매 의사를 타진해왔고 마법사 협회의 간부까지 저택을 방문했다.
신전도 가만히 있지 않았다.
단순한 제국병이 아니었을 뿐만 아니라 흑마기까지 출현했으니 신전이 움직일 만한 충분한 이유가 되었다.
그들은 마병 이외에도 라울이 신의 사자라는 소문에 대해 궁금해 했지만 라울은 몸 상태를 핑계로 신관들을 피했다.
다른 건 몰라도 신성력이나 종교와 관련해선 조심, 또 조심해야 한다는 게 라울의 생각이었기 때문이다.
어쨌든 라울은 각 세력이 불만을 가지지 않도록 적절하게 전리품을 넘겼다. 그 과정에서 꽤나 많은 이득을 챙긴 건 당연한 일이었다.
그렇게 상황이 어느 정도 정리되고 나서야 이렇게 회의실에 모두가 모일 수 있었다.
“후우. 알아낸 것이라곤 그들 중 일부가 수도 방위대의 병사로 위장해 있었다는 것 정도인가? 뭔가 조금만 더 단서를 잡았으면 좋았을 것을….”
“면목 없습니다.”
라울이 한숨을 내쉬자 버나드가 고개를 숙였다.
하지만 이건 누구의 탓이라 할 수 없는 문제였다.
게이트 내부에서 거의 다 생포했던 마법사들은 문신이 발동하여 폭사해 버렸다.
게이트 외부에서 천공기로 통로를 만들어 낸 이들은 게이트 근처 주택의 지하실에 숨어 있었다.
전생의 기억에서 얻은 힌트를 통해 버나드와 남아 있던 길드원들이 그들을 찾아냈지만 포획한 순간 전원이 백치가 되어버렸다.
어차피 이렇게 되리라 예상하긴 했지만, 아쉬운 마음을 감출 수 없었다.
‘제대로 된 정보조직이 있었다면….’
하지만 없는 걸 어쩌겠는가?
“놈들에 대한 조사는 이만 접는다. 어차피 조만간 다시 모습을 드러낼 테니 그때를 노리는 수밖에. 포로들은 아무도 모르게 아카데미의 그레이 님께 전달하도록. 그레이 님이라면 뭐라도 찾아내실지 모르니까.”
“그렇게 하겠습니다.”
“그리고 내일 행사 준비는?”
“최대한 차질이 없도록 준비하고 있습니다.”
내일은 바로 기사협회의 기사 서임식이 있는 날이었다.
여러 가지 일들이 겹치는 바람에 예년처럼 성대하게 진행되진 못하겠지만, 중요한 일정이었다.
‘바로 내일. 우리 퍼스트 기사단이 어떤 곳인지 제대로 보여준다!’
굳게 다짐한 라울의 두 눈이 강렬하게 반짝였다.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