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Count's Youngest Son Is a Player RAW novel - Chapter 85
제85화
“쿨럭. 가, 감히 네놈이…!”
한 자루의 날카로운 검이 화려한 갑주를 입은 이의 가슴을 등 뒤에서부터 관통했다.
등을 찔린 남자는 믿을 수 없다는 눈빛으로 검의 주인을 뒤돌아보았지만, 상대방의 얼굴엔 차가운 미소만이 서려 있을 뿐이었다.
푸슉~ 털썩.
검이 뽑혀 나가자 남자는 힘없이 무릎을 꿇으며 주저앉았고, 뒤늦게 이변을 눈치챈 주변의 호위 기사들이 경악한 표정으로 몸을 돌렸다.
“이게 무슨 짓이오!”
“호세 상급 기사, 당신이 어떻게 2왕자님을… 커헉.”
허나 그들 또한 무사하지 못했다. 그들의 주변에 있던 근위 기사 몇몇이 기습했기 때문이다.
“배신자 놈들, 천벌을 받을, 끄르륵….”
2왕자 전담 호위 기사 셋이 허무하게 쓰러지자, 2왕자를 찌른 근위 기사단의 상급 기사 호세가 혀를 쯧 차고는 검을 치켜들었다.
휘웅~.
거침없이 휘둘러진 롱소드는 2왕자의 목을 잘라내며 완전히 숨통을 끊어 버렸다.
챙~챙.
끄아악!
그리고 조금 떨어진 곳에선 대학살이 벌어졌다.
2왕자를 따르던 시종과 병사들이 어느새 나타난 마병과 임페리얼 하운드의 기사, 그리고 배신한 근위 기사들의 검에 썰려 나가고 있었다.
쓱쓱.
손수건으로 얼굴에 묻은 피를 닦고 있는 호세에게 새까만 갑옷을 입은 임페리얼 하운드의 기사가 다가와 고개를 숙였다.
“분부하신 대로 목격자는 하나도 남김없이 처리했습니다.”
“다른 왕족들의 상황은?”
“왕은 근위대장의 호위하에 본성을 벗어나고 있다고 합니다. 3왕자, 4왕자는….”
보고를 받은 호세 상급 기사, 아니 임페리얼 하운드의 간부 요원 [1호]는 고개를 끄덕였다.
‘일이 술술 풀리는군.’
게이트 아웃브레이크에 이어진 임페리얼 하운드의 왕궁 침투 작전은 성공적이었다.
C등급까지 포함된 10여 개의 게이트에서 쏟아져 나온 몬스터는 왕궁의 근위병과 근위 기사대의 이목을 끌기에 충분했다.
그 혼란을 틈타 왕궁과 연결된 지하의 비밀 통로로 아군 병력이 진입했고, 왕궁에 심어 둔 첩자와 포섭된 이들은 병력들이 은밀히 움직일 수 있도록 도와주었다.
제일 문제가 될 것이 뻔한 ‘그자’에 대한 유인도 어렵지 않았다.
위대하신 황제 폐하가 하사하신 기물은 C등급 게이트를 강제로 B등급으로 끌어올렸고, 거기서 등장한 A등급 정예 가디언 [베놈 레서 드래곤]은 제아무리 근위 기사단이라 해도 상대하기 어려운 괴물이었다.
왕실의 숨겨진 마스터이자 봉인의 수호자인 ‘그’가 정예 가디언을 처리하기 위해 자리를 비운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었지만 큰 실책이었다.
전격적인 기습 작전으로 봉인지를 확보한 임페리얼 하운드는 협력자를 통해 봉인을 해제하는 데 성공했고, 그걸로 가장 큰 목적이 완수되었다.
뒤늦게 수호자가 봉인지로 되돌아 왔지만, 그는 결코 그곳을 빠져나오지 못할 것이다.
‘큭큭큭. 이로써 대계는 누구도 막을 수 없을 것이다.’
남은 것은 다음 단계를 위한 포석을 깔아 두는 것.
이 나라 왕족의 씨를 말려 버림으로써 혼란을 불러일으키고 추후 제국의 해방 전쟁을 수월하게 만들어야 했다.
‘왕세자와 2왕자는 정리했고, 다음은 누구를 치우러 갈까?’
1호는 얼굴에 떠오른 미소를 지우고는 배신한 근위 기사들과 함께 다음 먹잇감을 향해 걸음을 옮겼다.
* * *
“도움에 감사드립니다.”
라울과 기사들은 성벽 근처에 달라붙은 각종 몬스터를 모두 정리했다.
물론 또다시 몬스터들이 몰려오지 않는다는 보장은 없지만, 잠시라도 숨을 돌릴 수 있게 된 백인장과 병사들은 감사를 표했다.
“건투를 빌지.”
라울은 백인장 마르코를 격려하고는 성벽에서 내려와 시가지로 향했다.
애초에 성벽에 배치된 병사들의 역할은 몬스터의 유인 및 최종 방어선이었다.
왕성을 공략할 병력들의 부담을 덜어 주는 한편, 몬스터들이 내성을 벗어나지 못하도록 붙들어 두는 일종의 미끼 역할이었던 것이다.
마음 같아선 기사를 몇 명 남겨 두고 싶었지만, 앞으로 어떤 적을 만날지 모르기에 전력을 분산시킬 순 없었다.
“이곳도 난리가 났네요. 성문을 꽉 틀어막고 코빼기도 안 비치길래 재수 없는 놈들이라고 생각했는데….”
“다 사정이 있었겠지. 설마 국왕 폐하가 일부러 시민들을 외면했겠는가?”
제이크와 필립의 말처럼 게이트 사태가 일어나고 난 이후, 내성에 주둔하고 있는 근위병과 중앙군 병력들은 단 한 번도 외성에 출병하지 않았다.
그 때문에 주민들 사이에서는 물론 퍼스트 길드 내에서도 왕이 주민들을 괄시하는 게 아니냐는 말들이 나오고 있었다.
‘뭐, 국왕도 생각이 있으니 병력들을 움직이지 않았겠지.’
어쩌면 오늘 같은 일이 벌어질 줄 예상하고 있었을지도 몰랐다.
왕성 쪽에서 느껴지는 이 어마어마한 기운도 그와 관련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하며 라울과 기사들은 건물 지붕 사이를 뛰어넘었다.
목적지는 당연히 왕성이었다.
기왕 위험을 무릅쓰고 들어왔는데 겉만 핥고 돌아갈 생각은 없었다.
“정지!”
라울의 명령에 기사들이 건물 지붕 위에 멈춰서 자세를 낮췄다.
어느새 시가지 중심부에 도착한 라울은 광장 중간에 설치된 간이 요새를 살폈다.
펑! 퍼엉!
요새는 거의 함락 직전으로 보였다. 돌과 흙으로 성벽을 쌓아 올린 모양이었는데, 사방에서 날아오는 불덩어리들 때문에 쩍쩍 금이 가고 흔들리는 것이 금방이라도 무너져 내릴 것 같았다.
성벽 아래에선 늑대 무리뿐만 아니라 검은 피부의 고블린 수백 마리가 성벽이 무너지길 기다리고 있었는데, 진짜 문제는 놈들이 아니었다.
‘임프(Imp)라. 아까 불덩어리를 내뱉는 헬 하운드(지옥견)가 있길래 설마 했는데…. 악마종이 등장하는 게이트는 한참 뒤에 열리는 거 아니었나?’
요새를 둘러싼 하늘 위에 작은 날개와 뿔이 달린 어린아이 정도 몸집의 몬스터가 화염구를 던져 대고 있었다.
악마종 몬스터는 최하 C등급 이상의 까다로운 놈들이 많았는데, 전생에선 세 번째 시나리오 이후부터 등장했던 걸로 기억했다.
“어떻게 할까요?”
“저대로 놔두면 얼마 못 버틸 겁니다.”
“그냥 쓸어버리죠.”
기사들의 각자 의견을 내비쳤다. 처음 보는 몬스터임에도 다들 싸우고 싶다는 의지가 가득해 보였다.
“처리하고 가자. 모두 저격 준비.”
못 봤으면 몰라도, 눈앞에 위기에 처한 아군을 버려 두고 갈 생각은 없었다.
“날개 달린 놈들을 먼저 처리한다. 마나시(矢)가 안 되는 이들은 날개를 중점적으로 노리도록.”
놈들의 약점은 바로 날개. 기동력을 상실하면 근접 전투 능력은 대단치 못했다.
“조준, 쏴!”
라울과 기사들의 화살이 임프들을 덮쳐갔다.
퍽! 퍼벅!
“끼~엑!”
20여 마리의 임프 중 절반 가까이가 무더기로 떨어져 내렸다.
개중에 라울, 필립, 제이크의 화살은 임프의 머리를 꿰뚫었고, 나머지는 날개를 관통했다.
“계속 쏴!”
첫 사격과 달리 이어지는 사격은 큰 성과를 얻지 못했다. 이쪽을 눈치챈 임프들이 날아오는 화살을 잽싸게 피해 냈기 때문이다.
컹컹! 화르륵~!
게다가 요새 아래쪽에 있던 몬스터들이 라울 일행을 향해 몰려오기 시작했고, 임프들도 화염구로 반격을 해 왔다.
“어림없다!”
터엉. 팡~.
사격을 그만둔 기사 넷이 커다란 방패를 들고 사방으로 흩어져 일행을 보호했고, 화살에 마나를 담는 것이 가능한 라울, 필립, 제이크만이 임프를 노렸다.
“웃차!”
그리고 나머지 기사 셋은 인벤토리에서 기다란 창을 꺼내 지붕으로 뛰어오르는 몬스터들을 상대했다.
“우와아!!”
“지원군이다!”
임프들의 공격이 그치자 거북이처럼 웅크리고 있던 요새의 병력들이 상황을 파악하곤 함성을 질렀다.
그리고 이쪽으로 어그로가 끌리자 여유가 생겼는지 궁수들이 성벽에 올라 지원 사격을 시작했다.
후두두둑~ 퍼벅!
화살 세례가 쏟아지자 정신이 혼란해진 임프들이 하나둘 라울 일행의 저격에 떨어져 내렸고, 접근해 오는 몬스터들은 기사들의 창과 방패를 전혀 버텨 내지 못했다.
임프가 모두 추락한 것을 확인한 라울이 외쳤다.
“모두 돌격! 다 쓸어버려!!”
“좋았어, 다 뒈져라~!!”
라울의 명령에 신이 난 제이크가 가장 먼저 커다란 투핸드 브로드 소드를 힘차게 휘두르며 몬스터들 사이로 뛰어들었고, 나머지 기사들이 그 뒤를 따랐다.
라울은 못 말린다는 듯 피식 웃고는 다시 활을 들어 올렸다. 굳이 그가 끼어들 필요가 없었으니까.
‘그럼 경험치나 좀 챙겨 볼까?’
라울이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경쾌하게 활시위를 당겼다.
잠시 후.
수백 마리의 몬스터 사체를 뒤로한 채, 라울 일행은 간이 요새에 올랐다.
“도움에 감사드립니다. 그런데 어느 가문의 기사분들이신지?”
요새의 책임자로 보이는 천인장급 기사가 감사를 표하며 물어왔다.
“아, 저희는 애쉬튼 백작가의 퍼스트 기사단원입니다.”
필립이 핏물에 가려진 기사단 마크를 닦아 보여 주며 말했다.
“그리고 이분이 저희 기사단의 마스터이신 라울 공자님이십니다.”
“아, 설마 이분이 바로 그!”
기사는 그제야 라울과 기사단이 누군지 깨닫고는 놀랍다는 눈으로 그들을 바라봤다.
아직 서임식이 끝난 지 며칠 지나지 않아서 기사단 마크나 복장을 알아보지 못한 듯했다.
“소문이 자자하신 라울 공자님을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그리고 다시 한번 감사드립니다. 공자님의 도움이 없었다면 이 요새는 얼마 버티지 못했을 겁니다.”
“별말씀을. 왕국의 기사로서 당연히 도와야지요.”
라울이 웃으며 겸양하는 태도로 감사를 받아들였다.
“그런데 어떻게 이곳에 오신 겁니까? 분명 결계로 외성과의 출입을 막았다고 들었습니다만.”
“왕궁에 문제가 생긴 것 같아 급하게 기사들을 이끌고 왔습니다. 안 그래도 결계에 막혀 돌아갈까 하는 찰나에 몬스터의 공격 때문인지 결계에 균열이 생기더군요. 운이 좋았습니다.”
라울이 태연하게 대답하자 천인장이 고개를 끄덕이며 웃었다.
“하하, 공자님보다는 저희가 더 운이 좋았던 모양입니다. 그나저나 밖은 어떻습니까? 피해가 크지는 않을지 걱정입니다만.”
라울이 적당히 상황을 얘기해 주자 천인장이 한숨을 내쉬었다.
“후우, 그나마 다행입니다. 역시 공자님에 대한 소문이 틀리지 않았군요. 하여튼 중앙군 놈들은 문젭니다. 군단장부터가….”
근위병단과 중앙군은 그다지 사이가 좋지 않았는지, 천인장은 잠시 중앙군을 헐뜯었다.
“그런데 지금 왕궁 상황은 어떻습니까? 얼핏 듣기는 했지만 정확한 정보가 필요합니다.”
“아, 왕궁으로 가실 생각이시군요. 일단 제가 알기로는….”
천인장의 설명을 들은 라울의 미간이 살짝 찌푸려졌다. 생각보다 상황이 더 좋지 못한 듯했다.
단순히 왕성에 침투한 정도인 줄 알았는데 아예 성벽까지 빼앗긴 모양이었다.
덕분에 게이트도 다 정리하지 못한 상황에서 근위 기사단과 근위병단, 중앙군의 지휘관과 기사들까지 대부분 왕성을 되찾기 위해 전장을 이탈한 상황이었다.
게다가 공성을 시작한 지 꽤 시간이 지났지만, 아직 왕성에 진입하지 못했다는 걸 보면 적들의 전력도 만만치 않은 듯했다.
더 골치 아픈 건 악마종들이 왕성 쪽에서 나타났다는 사실이었다.
‘왕성 내부에는 게이트가 없다고 들었는데 어떻게 된 거지?’
이대로 왕성 탈환을 위해 본대에 합류해야 하는지, 아니면 다른 방법을 찾아볼 것인지 라울의 머릿속이 복잡하게 돌아가기 시작했다.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