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Count's Youngest Son Is a Player RAW novel - Chapter 84
제84화
구구구궁!
왕궁 전체가 무너져 내릴 것처럼 거칠게 흔들렸다.
“폐하. 자리를 피하셔야 합니다!”
근위 기사단장 매버릭이 굳어진 얼굴로 간언했다.
하지만 왕좌에 앉아 있는 루벤 왕국의 국왕 타데우스 2세는 그럴 생각이 없어 보였다.
창백한 얼굴로 힘없이 왕좌에 기대앉은 모습은 그의 몸 상태가 좋지 않음을 보여 주고 있었다.
‘하아, 어찌하여….’
쿠구궁. 쨍그랑!
또다시 진동이 울려 퍼지고 화병이 나동그라지며 깨져 버렸다.
“쿨럭. 그, 그분께서는?”
“봉인에서 풀려난 괴물을 막고 계십니다. 시간이 없습니다!”
“왕, 왕세자와 왕자들은 어찌 되었는가?”
“이미 대피 중입니다. 폐하께서도 어서….”
하지만 왕도 기사단장도 그것이 사실이 아님을 알고 있었다.
왕세자는 이변이 일어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왕궁 지하의 봉인지를 지키겠다며 병력을 이끌고 갔다. 그럼에도 봉인이 풀렸다는 것은….
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일까? 충분히 막아 낼 수 있다고 생각했는데 적들은 그걸 비웃기라도 하듯 왕궁의 방어망을 뚫고 들어왔다.
‘아아, 이 일을 어찌해야 하는가….’
하지만 타데우스 2세의 생각은 이어지지 못했다. 지병과 극심한 스트레스를 견디지 못하고 정신을 잃고 만 것이다.
“어서 폐하를 모셔라!”
근위 기사들이 기절한 왕을 업고 황급히 걸음을 옮겼다. 앞장선 근위 기사단장 매버릭의 얼굴이 매섭게 일그러져 있었다.
구르릉~. 쾅! 콰광!!
불길이 치솟아 오르는 왕성의 창밖에선 커다란 진동과 충돌음이 끊어지지 않고 있었다.
* * *
다가닥, 다가닥.
열 기의 기사가 넓게 뚫린 대로를 질주하고 있었다.
“뀌에엑!”
기마의 소리를 듣고 주변의 몬스터와 마병이 달려들었지만.
촤아악! 써컹.
기사들의 검기를 막지 못하고 몸뚱이가 잘려 나간 채 바닥을 나뒹굴었다.
그렇게 몬스터의 피로 대로를 적시며 달려가던 기사들이 마침내 커다란 성벽 앞에 도착했다.
“신기하네. 어떻게 여기만 몬스터가 한 마리도 없지?”
제이크의 말처럼 내성의 성벽 근처에는 몬스터가 없었을 뿐만 아니라 전투의 흔적조차 없었다.
“성벽 위에 병사들이 아무도 없습니다.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마스터?”
그들이 성문에 접근했음에도 아무도 나타나지 않았다. 그리고 필립의 말처럼 성벽 위에선 아무런 인기척도 느껴지지 않고 있었다.
「결계네.」
라울의 머릿속으로 라벨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결계라고?」
「그래. 안과 밖을 차단하는 대규모 방어 결계야. 마력 구조를 살펴보니 성벽 전체를 감싸고 있는 것 같아.」
그렇단 얘긴 결계를 발동한 건 아군인 듯했다. 아무리 임페리얼 하운드가 대단한 집단이라 해도, 거대한 내성 전체를 감싸는 결계 마법진을 몰래 설치하는 건 무리일 테니까.
라울은 일단 말에서 내려 성문으로 다가갔다. 그리고 성문에 손을 살짝 대는 순간 시스템 메시지가 떠올랐다.
-[주의] 본 지역은 강제 시나리오가 진행되고 있는 지역입니다.
-강제 시나리오 지역에선 로그아웃 할 수 없습니다.
-강제 시나리오 지역에는 시나리오 단계를 뛰어넘는 강력한 몬스터와 NPC가 출몰합니다.
-강제 시나리오 지역의 일부 몬스터와 NPC는 플레이어의 공격에 [무적] 효과를 부여받습니다.
-[경고] 강제 시나리오는 플레이어의 임의적인 플레이에 영향을 받지 않습니다.
「확인했어? 이건 라울에게 보내는 경고 메시지 같아.」
「알고 있어.」
이미 지난 생에 충분히 경험했던 상황이다.
커넥트라는 게임 전체를 가로지르는 [강제 시나리오]는 플레이어들이 건드릴 수 없는 부분이었다.
과거의 피씨나 콘솔 게임으로 치면, 플레이어가 조작할 수 없는 상황에서 영상으로 보여 주는 스토리 진행과 비슷했다.
물론 과거의 게임들과 다르게 실시간 가상 현실 게임 커넥트에선 [강제 시나리오]가 진행 중이라 해도 조작 자체를 할 수 없는 건 아니었다.
당연히 플레이어 중에서 강제 시나리오를 바꿔 보겠다고 도전한 이들이 많았다.
결과는 당연히 실패였다.
메시지에 나온 것처럼 규격 외의 몬스터는 플레이어들의 인해 전술로도 감당할 수 없었고, 중요한 NPC는 시스템의 보호를 받았기 때문이다.
「어떻게 할 거야? 내가 보기엔 들어가지 않는 게 좋을 것 같은데.」
「혹시 결계는 열 수 있겠어?」
「흐~음. 들어갈 생각이구나. 잠시만….」
라벨이 결계에 손을 대고 마나를 주입해 보고는 다시 말했다.
「잠깐이라면 가능할 거 같아.」
라벨의 말을 들은 라울이 몸을 돌려 기사들이 있는 곳으로 향했다.
“진입한다. 성벽을 넘어야 할 거야.”
“괜찮으시겠습니까? 혹시 나중에 문제가 생기지 않을지….”
필립이 조심스럽게 묻자, 제이크가 필립의 어깨를 짚으며 태평한 표정으로 말했다.
“에이~, 단장님은 참 걱정도 많으셔. 마스터에게 다 생각이 있으시겠죠. 그리고 이 난장판에 누가 그런 걸 신경이나 쓰겠습니까?”
말은 그렇게 했지만, 제이크는 그저 성벽을 넘어 보고 싶을 뿐이었다.
‘언제 또 수도의 성벽을 타고 넘어 보겠어?’
그리고 라울 또한 딱히 신경 쓰지 않는 모양이었다.
“뒷일은 나중에 생각하고 일단 들어가 보자고.”
때맞춰 성벽 위쪽에 작은 균열이 생겨났다. 라울이 염동력 발판을 밟으며 성벽을 올랐고, 기사들은 성벽 틈새를 손으로 짚으며 뒤를 따랐다.
허공의 균열 속으로 라울과 기사들이 몸을 던지고 나자, 성벽 앞은 다시 고요한 정적에 빠져들었다.
* * *
챙~! 퍼억!
“막아!”
“버텨! 곧 지원군이 온다!”
쾅!
근위병단 백인장 마르코는 단단한 타워 실드를 앞세워 달려드는 커다란 은빛 늑대를 밀어냈다.
커엉.
8미터 높이의 성벽 아래로 떨어진 늑대는 충격을 받았는지 잠시 비틀거렸지만, 이내 천천히 몸을 일으켜 세웠다.
하지만 마르코는 늑대가 다시 일어나든 말든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
그의 눈앞 계단에는 저런 늑대들 수십 마리가 호시탐탐 기회를 노리고 있었고, 성벽 아래에선 화르륵 소리와 함께 불덩어리가 날아오기도 했다.
퍼엉.
날아온 불덩어리를 타워 실드로 막아 내자 뜨거운 열기가 터져 나와 숨쉬기조차 힘들게 만들었다.
“계속 쏴! 가죽을 뚫지는 못해도 급소에 맞추면 타격이 있다.”
텅~, 텅~.
성벽 위의 궁수와 석궁병들이 쉬지 않고 화살을 날리고 있지만, 솔직히 큰 타격을 주는지는 의문이었다.
“후읍, 후읍.”
마르코의 옆에서는 백인장 잭슨이 방패 뒤에서 거친 숨을 몰아쉬고 있었다.
“제길. 진짜 지원군이 오긴 오는 거야?”
그가 투덜거렸지만, 사실 어떻게 될지는 아무도 몰랐다.
천인장급 지휘관과 기사들은 왕성의 탈환을 위해 자리를 비운 지 오래였고, 그나마 최선임인 백인장들이 할 수 있는 건 기사들이 돌아올 때까지 버티고 또 버티는 일뿐이었다.
푸슉!
커헝~.
계단 옆 성벽에서 내지른 창이 늑대의 몸통을 찔렀다. 마나가 살짝 덧씌워진 탓인지 가죽을 꿰뚫기는 했지만, 치명상까지 입히지는 못했다.
하지만 또 다른 창들이 날아와 몸통을 가격하자, 피하지 못한 늑대는 구슬픈 울음소리를 내뱉으며 계단 아래로 떨어져 내렸다.
‘정말 징글징글하군. 언제까지 버틸 수 있을까? 왕성에 괴한들이 침입하지만 않았어도 이런 일은 없었을 텐데….’
아직은 D등급 녀석들만 달려들고 있지만, 언제 C등급 이상 몬스터가 덤벼들지 몰랐다.
그리고 그의 불안감은 이내 현실로 다가왔다.
“블러드 팽이다!”
D등급 몬스터 실버 팽(은빛 늑대)사이로 핏물을 뒤집어 쓴 듯한 붉은 털의 몬스터 블러드 팽(핏빛 늑대)가 어슬렁어슬렁 계단을 오르고 있었다.
녀석은 이미 이쪽의 실력을 충분히 확인했다는 듯 ‘너희들이 날 막을 수 있을까?’ 하는 거만한 표정으로 천천히 다가왔다.
“침착하게 밀어내! 뚫리면 다 죽는다!”
근위병단의 백인장급은 모두 마나를 다룰 수 있는 소드 유저 이상 실력자였다.
아무리 블러드 팽이 C등급 최상위 몬스터라 해도 작심하면 막지 못할 정도는 아니었다.
문제는 그들이 너무 지쳤다는 것. 마나를 아껴 쓴다고 했지만, 이미 대부분이 마나 고갈 상태에 가까웠다.
‘영악한 놈 같으니.’
아마도 이렇게 되길 기다리고 있었던 게 분명했다.
어슬렁거리며 뜸을 들이던 녀석이 갑자기 속도를 높이며 마르코를 향해 달려들었다.
푹. 푹!
백인장들의 창이 블러드 팽의 몸통을 찔렀지만, 순간적으로 몸을 핏물로 바꾼 탓에 실질적인 타격은 거의 없었다.
그리고 허공에서 휘둘러진 핏빛 손톱이 마르코의 방패를 종잇장처럼 찢어발기며 그의 눈앞까지 다가왔다.
‘여기까진가.’
마르코가 최후를 예감하고는 눈을 질끈 감는 그 순간.
쉐애액~ 철퍽!
화끈한 기운이 마르코의 머리 위를 스쳐 지나가더니 블러드 팽의 몸을 위아래로 반 토막 내 버렸다.
핏물로 변해 바닥에 쏟아져 내린 블러드 팽이 다시 늑대 형태로 돌아가려 했지만.
쉬익.
어디선가 날아온 비수 하나가 핏물 속에 숨겨져 있던 놈의 핵을 파괴해 버렸다.
‘……?’
깜짝 놀란 마르코의 뒤에서 약간은 어려 보이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일단 몬스터부터 정리해.”
“네, 마스터.”
그리고 새하얀 갑옷을 입은 기사들이 계단과 성벽 아래로 뛰어내리며 몬스터들을 학살하기 시작했다.
“여기 책임자가 누굽니까?”
라울과 퍼스트 기사단이 등장했다.
* * *
‘흠. 어쩐다?’
마르코라는 백인장에게 상황을 전해 들은 라울은 또다시 선택의 기로에 서 있었다.
라울의 눈앞에는 반짝이는 퀘스트 창이 주르륵 나열되어 있었다.
…
「와~, 할 일이 많은데?」
라벨도 라울과 함께 퀘스트 창을 확인하며 놀랍다는 표정을 지었다.
‘뭐, 이 정도는 당연하지.’
[강제 시나리오] 지역은 커다란 규모의 사건이 진행되는 만큼 다양한 퀘스트를 선택할 수 있었다.딱히 하나만 선택해야 한다는 법은 없었지만, 시간적인 한계와 괴랄한 난이도 때문에 대부분 하나의 퀘스트에 집중하는 경우가 많았다.
보상도 상당히 쏠쏠한 편이어서 많은 플레이어들이 시나리오 퀘스트에 도전할 것 같지만, 실제로 참가하는 이들은 많지 않았다.
‘재수 없으면 한 방에 죽기 십상이니까.’
C등급 퀘스트를 진행하는데 뜬금없이 A등급 몬스터가 난입한다든지, 난데없이 등장한 시나리오 NPC에 단체로 몰살당하는 어이없는 일들이 종종 발생하는 곳이 바로 이 [강제 시나리오] 지역이었다.
그런 위험을 감수하고 라울이 이곳에 발을 들인 이유는 반드시 확인해 봐야 하는 것이 있기도 했고, 만약을 대비한 충분한 보험을 들어 두었기 때문이다.
‘설마 이걸 보상으로 지급해 줄 줄이야.’
등급 : EX
효과 : 플레이어가 사망할 경우, 즉시 부활시켜 준다. 플레이어는 미리 지정해 둔 체크 포인트, 혹은 그 자리에서 부활할 수 있다.
부가 효과 : 부활 후 1분간 무적. 모든 상처가 회복되고, 스킬 및 아이템의 쿨타임이 초기화된다.
라울의 인벤토리에서 고이 모셔 둔 이 초사기급 아이템은 바로 의 개인 순위 1위 보상 아이템이었다.
부활권은 하드코어 플레이어와 NPC에게도 효과가 있다는 사용 후기가 있었고, 운영진이 공식적으로 인정한 사안이기도 했다.
‘정말 효과가 있을 거라고 맹신할 수는 없겠지만….’
조금이나마 마음이 편해진 것은 사실이었다.
잠시 후, 퀘스트를 살펴보던 라울이 마침내 마음의 결정을 내렸다.
‘일단은 거기로 가 봐야겠군.’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