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Count's Youngest Son Is a Player RAW novel - Chapter 83
제83화
뒤늦게 경비대와 신전 및 마법 길드에서 인수인계를 받을 이들이 도착했다.
제국의 숨겨진 아지트라는 말에 게이트가 폭주한 상태에서도 부리나케 달려온 것이었다.
“라울 공자님, 또다시 큰 공을 세우셨군요. 역시 투리엄의 수호자이십니다.”
“악마들의 소굴을 토벌하신 라울 공자에게 제논 님의 축복이 있으실 겁니다.”
뒷정리는 저들이 알아서 처리할 것이기에 라울은 일부 병력을 남겨 둔 채 저택으로 돌아왔다.
작전 상황실.
라울과 버나드 및 간부들이 모여 있었다.
“현재 게이트 상황은?”
“50개의 게이트 중 20개를 처리했습니다. 남은 게이트는 F등급 25개, E등급 5개입니다.”
웨이브가 발생한 게이트를 닫는 법은 의외로 간단했다. 웨이브 말미에 나타나는 엘리트 가디언을 사냥하면 게이트는 저절로 사라진다.
여기서 의문점이 생긴다.
엘리트 가디언이 나왔다는 건 몬스터가 거의 다 쏟아져 나왔다는 뜻인데, 게이트를 꼭 닫아야 하는가 하는 점이다.
결론은 그래야 한다는 것.
웨이브가 발생한 게이트를 방치할 경우, 게이트가 고착화되어 던전처럼 변해 버린다.
던전화된 게이트는 닫기도 어렵고, 주기적으로 웨이브가 발생하기 때문에 지금보다 더 골치 아픈 존재가 된다.
어쨌든 도시와 주민의 안전을 위해선 남은 게이트도 빨리 처리해야 했다.
“중앙군은 움직였나?”
“마스터가 지시하신 대로 중앙군단장과 접촉했고, 도시밖에 있던 본영과 제1 외성의 중앙군 모두 전장에 투입되었습니다.”
“다행이군. 우리 병사들은?”
“마스터의 지시대로 민간 거주 지역을 중심으로 방어 라인을 형성하고 있으며, 일부 여유 병력을 추적조로 편성해 운용 중입니다.”
작전실 전면에 부착된 투리엄의 지도에는 복잡한 마크와 함께 병력 배치와 몬스터 출몰 상황이 실시간으로 갱신되고 있었다.
‘흠. 이 정도면 선방한 건가?’
제3 외성과 제4 외성이 워낙 넓은 탓에 모든 지역에 병력을 배치할 수는 없었다.
그래서인지 몬스터를 나타내는 붉은 마크가 게이트 저지선을 뚫고 넓게 퍼져 나갔지만, 미리 준비해 두었던 거주지 방어 라인은 제 역할을 하고 있었다.
상황이 제일 안 좋은 곳은 제2 외성.
퍼스트 기사단이 투입되지 않아서인지는 모르겠지만, 이미 도시 전역으로 몬스터가 퍼져 나간 상태였다.
다행이라면 각 길드와 신전을 중심으로 형성된 거점 방어망은 잘 버티고 있다는 점이었다.
‘제1 외성은 뭐, 알아서 하겠지.’
웨이브가 터지기 전, 라울은 각 유력 귀족 가문에 공동 방어망을 구축하자고 제안했다.
각 가문의 기사들과 사병들을 동원한다면 제1 외성의 게이트 10여 개를 봉쇄하는 건 일도 아니었기 때문이다.
물론 제안은 매몰차게 거절당했다.
언제 게이트가 터질지 알 수도 없을 뿐더러, 수도를 방어하는 건 경비대와 중앙군이 할 일이라는 그들의 말도 틀린 건 아니었으니까.
대신 라울은 혈족들과 친밀한 가문들의 협조를 얻어 백작가 저택 주변에만 방어선을 만들어 두었다.
퍼스트 기사단 외에 협력 가문의 기사들만 해도 100명이 넘었으니 아무리 마병이 출몰했다 해도 방어선을 넘어서진 못할 것이었다.
케인의 말에 따르면 아지트를 떠난 마병 중 500명 정도는 제1 외성에 투입되었다는데, 과연 다른 가문들이 무사할 수 있을지는 의문이었다.
방어선 바깥에서 곳곳이 불타오르고 비명 소리가 울려 퍼지고 있는 걸로 봐선….
한동안 지도를 살피며 생각에 잠겼던 라울이 입을 열었다.
“특별한 일이 없다면 병력 운용은 현상을 유지한다. 시가지에 퍼져 나간 몬스터 토벌은 우리 몫이 아니니 중앙군에게 맡기도록.”
방어전이 아닌 시가전으로 돌입하게 되면 분명 사상자가 늘어나게 될 것이다.
어설프게 병력을 쪼개서 토벌전에 나서느니 현재 방어선 지역을 확실히 지키는 게 낫다는 생각이었다.
‘내가 진짜로 무슨 수호자나 구원자 같은 것도 아니고 말이지.’
주민들을 구하는 것도 좋지만 엄밀히 말해서 투리엄의 주민들은 라울의 식솔이 아니었다.
주민들의 목숨을 구하기 위해 부하들을 희생시킨다? 라울은 손해를 보면서까지 그럴 생각은 전혀 없었다.
웨이브를 막기 위해 병력을 동원한 것은 철저하게 계산된 정치적 판단이었다.
주민들의 목숨을 구함으로써 명성과 지지를 얻고, 훗날 있을 여러 시나리오에 대비하는 것.
실전을 통해 새로 받아들인 병력들의 실전 감각과 실력을 끌어올리고, 퍼스트 길드에 대한 자부심을 가지게 하는 것.
개인적으로는 퀘스트를 해결하고 플레이어로서 각종 이득과 보상을 챙기는 것.
이런 여러 가지 세속적 목적을 가지고 병력을 움직였을 뿐, 정의감, 인류애, 신앙심 같은 것은 부차적인 것에 불과했다.
그리고 임페리얼 하운드의 아지트를 공략함으로써 솔직히 라울이 노렸던 목표는 충분히 달성한 상태였다.
‘굳이 무리해서 움직일 필요는 없지.’
그렇다고 병력을 놀려 둘 생각은 없었다.
“기사들 중 열 명 정도는 달튼이 맡은 추격대에 합류시키고, 나머지 기사들은 적당히 방어 전선에 투입해.”
“네, 마스터.”
병력 재배치가 끝나자 본부에는 필립 등의 간부 기사들과 아머 유저 열 명만 남게 되었다.
“파워아머 마나석 교체 작업은 얼마나 더 걸리지?”
“마법사 말로는 20분 정도면 마무리된다고 합니다.”
퍼스트 기사단의 아머 유저는 총 30명.
그중 C등급 이상의 파워아머는 단 네 개밖에 없었다.
나머지는 대부분 E등급의 하급품이었고, 전투가 끝나면 마나석을 교체해야 했다.
라울은 백작령을 떠난 이후 계속해서 파워아머를 확보하기 위해 애써 왔지만, 파워아머를 구하는 것은 결코 쉽지 않은 일이었다.
애초에 생산되는 양이 많지 않아 매년 경매를 통해 주문을 받고 있었는데 올해는 이미 마감된 상태였다.
그나마 구하려면 중고품을 구매하는 수밖에 없었는데, 중급 이상의 물건은 거래 자체가 되지 않았다.
실제로 30개의 파워아머 중 20개는 아버지의 도움으로 본가에서 구한 것들이었고, 라울이 직접 구한 것들은 정가의 두 배 이상을 얹어 주고 산 중고품들이었다.
솔직히 가격이 비싸든 중고 물품이든 큰 상관은 없었다. 작동만 한다면 파워아머는 그 자체로 충분한 전략 무기였으니까.
어쨌든 라울과 간부 기사들의 파워아머를 제외하곤 모두 마나석을 교체 중이었고, 교체가 끝난다고 해도 쿨타임이 지나지 않으면 제 성능의 절반도 발휘하지 못했다.
괜히 파워아머 발동 타이밍을 놓고 머리싸움을 하는 게 아니었다.
라울은 잠시 휴식을 취하며 다음 목표를 고민했다.
“뭐가 그렇게 고민이야?”
라벨이 라울의 머리맡에 내려앉으며 물었다. 그녀는 오랜만에 바깥바람을 쐬어 기분이 좋아졌는지 한결 밝아진 표정이었다.
“실은 조금 맘에 걸리는 부분이 있어서.”
“뭔데?”
“왕궁.”
“그 플랭크 자작이란 사람의 말이 걸리는 거야?”
“그런 건 아닌데….”
솔직히 왕이나 왕족이 어떻게 되든 큰 상관이 없다고 생각했다. 아니 오히려 일부러 피해 왔다.
자신이 개입함으로써 미래가 뒤틀릴 것이 걱정되었기 때문이다.
원래대로 역사가 흘러간다고 해도 애쉬튼 백작가나 자신에게 크게 나쁠 건 없다는 생각도 들었다.
이대로라면 왕가는 유명무실해지고 명문 귀족가를 중심으로 권력 구도가 재편될 테니까.
“그렇게 생각했는데, 문득 불안해졌어.”
“뭐 때문에?”
“이미 내가 알고 있는 미래가 바뀐 것 같아서.”
가만히 있었다면 모를까, 라울이 환생하고 난 뒤 이미 많은 것들이 바뀌었다.
사람들의 기억에서 잊혀 가던 애쉬튼 백작가라는 이름이 다시 되살아난 것은 물론, 라울과 퍼스트 기사단도 엄청난 명성을 쌓아 가고 있었다.
원래라면 조만간 멸문할 가문이지만, 라울이 그걸 가만히 두고 볼 리가 없었다.
애쉬튼 백작가가 살아남는다면, 아니 더 부흥해서 큰 힘을 가지게 될 것인데 과연 왕가의 몰락을 그냥 지켜보고 있는 것이 맞는 것일까?
“차라리 지금이라도 적극적으로 개입하는 게 낫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서.”
솔직히 라울은 제자리에 앉아서 무언가를 기다리기보다는 주도적으로 움직이는 걸 선호했다.
남들이 깔아둔 판 위에서 춤추는 광대가 아닌, 스스로가 판을 만들어 나가는 사람이 되고 싶었기 때문이다.
전생에서도 거대 세력들과 타협하지 않고 자신만의 길을 걸어갔다.
덕분에 목숨까지 잃고 게임 속 세상에 환생하게 되었지만, 과거가 후회되지는 않았다. 그저 자신의 힘이 부족했던 것이 안타까웠을 뿐.
그런 라울의 마음을 이해했는지 라벨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인생에 정답이란 건 없어. 그리고 정해진 미래란 것도 없다고 믿어. 연결고리 카페에 적혀 있는 정보는 그저 하나의 가능성을 기록해 둔 것이 아닐까? 나는 라울이 너무 그 정보들에 얽매일 필요는 없다고 생각해.”
라벨은 날개를 펼쳐 스킬 도감 위에 내려앉고는 말을 이었다.
“거기에는 나도 이 아이도 적혀 있지 않잖아. 그리고 라울도 믿기 어려울 정도로 많이 변했고. 그러니까 나는 라울이 좀 더 스스로를 믿고 원하는 대로 움직여도 좋다고 생각해.”
라벨의 말을 들은 라울의 마음이 조금은 편안해졌다.
‘그래. 내가 너무 정답만을 찾으려고 한 것 같아.’
자신이 신이 아닌 이상 어떻게 모든 선택에서 정답만을 찾을 수 있겠는가.
신중하게 생각하고 움직여야 하는 것도 맞지만, 때로는 과감한 결정이 필요할 때도 있는 법이었다.
그렇게 생각이 정리되자 문득 자신의 모습이 너무 우스워 보였다.
생각해 보면 그가 지금 왕궁으로 간다고 해서 뭔가를 바꿀 수 있을 가능성은 낮았다.
왕궁에는 왕국 최고의 기사들이 모인 근위 기사대를 비롯해 지금의 그가 상대할 수 없는 강자들이 득실거리고 있었다.
그와 몇몇 기사들이 참전한다고 해서 대세가 바뀔 것이라고 보기엔 어려웠다.
‘그새 또 자만심이 생겼구나. 정신 차리자!’
여태까지 승승장구해 왔다고 하지만 그건 남들이 모르는 지식들을 이용했기 때문이다.
아직 갈 길이 멀고도 멀었는데 벌써 자만심이라니….
“고마워. 덕분에 고민이 해결됐어. 역시 서포터가 생기니까 마음이 든든한데?”
라울의 칭찬에 라벨이 안경을 슬쩍 밀어 올리며 말했다.
“크흠. 알았으면 앞으로 나에게 좀 더 의지해도 좋아. 아마 나같이 뛰어난 서포터는 찾기 힘들걸. 그, 그럼 나는 이만~.”
자기가 말해놓고도 민망했는지 라벨은 스킬 도감 속으로 쏙 들어가 버렸다.
흐뭇한 표정으로 그 모습을 바라본 라울은 이내 생각을 마저 정리하고는 필립을 비롯한 기사들을 호출했다.
“파워아머 정비가 끝나면 내성으로 간다. 장비 점검하고 집합하도록.”
“내성 말입니까? 지금 출입할 수 있을까요?”
내성은 아무나 출입할 수 없었다. 방문을 원하면 미리 관청을 통해 허가증을 발부받아야 했고, 그마저도 자정이 지나면 문이 완전히 닫혀 버린다.
“글쎄. 그건 나도 장담할 순 없지만, 일단은 가 볼 수밖에.”
“준비하겠습니다, 마스터.”
솔직히 다들 왕궁이 있는 내성의 상황이 궁금할 것이다.
내성에도 게이트가 나타났다는 사실은 이미 알려져 있었고, 그쪽에서 무슨 일이 생겼을 거라는 사실은 어느 정도 짐작할 수 있었으니까.
찌리릿.
왕궁 쪽에서 흘러나오는 무시무시한 기운에 등골이 서늘했다. 여태까지는 애써 무시하려 했지만, 이제는 아니었다.
‘개입할지 말지는 가 보고 결정하자. 적어도 무슨 일이 생겼는지는 확인해 봐야겠어.’
과연 왕궁에선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일까. 라울은 레그나토르를 쓰다듬으며 불안한 마음을 다잡았다.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