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Crazy Villain Regains His Sanity RAW novel - Chapter 197
197화
내게 자리를 권한 한상민은 자신이 처한 상황 아니, 정확하게 말해 하소연을 하기 시작했다.
그중 내 흥미를 잡아끄는 말이 있었다.
“빌런 품귀 현상이라고?”
“어, 지금 수도권 빌런은 3년 전에 비하면 1/5 수준으로 줄어들었어. 대부분 죽거나 체포되고, 용케 화를 피한 빌런들은 지방으로 도망가는 선택을 했지.”
“요즘 빌런이 날뛴다는 소식이 별로 없긴 하던데.”
갑자기 우리나라가 이렇게 살기 좋아질 수 있는 건가?
내가 아는 빌런들은 갱생이라는 것을 모르는 녀석들인데.
그나마 버서커가 대표적인 갱생의 예였지만 얘는 애초에 빌런 성향이 약한 녀석이었다.
의아함을 느끼는 나를 향해 한상민이 한숨을 푹 내쉬었다.
“3년이 뭘 의미하는 건지 몰라? 네가 나타나고 일어난 변화잖아.”
그 3년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내가 모를 리가 있나.
“난 그 정도로 많이 죽이지 않았는데.”
“전부 네가 죽여야 빌런이 줄어드는 거냐?”
아니었나? 듣고 보니 그건 또 맞는 말이군.
내가 납득하자 한상민은 자세한 원인에 대해 설명했다. 빌런이 줄어든 이유 1순위가 나라면 2순위가 정다현과 국가수호국이란다.
하긴, 정다현이 마물 사냥으로 선회하기 전에 빌런들을 쥐 잡듯이 잡았던 기억이 난다. 근데 그게 빌런 숫자를 유의미하게 줄어들게 만들 정도였단 말인가.
그러자 한상민이 어처구니없는 표정을 짓는다.
“나찰녀라는 이름이 빌런들을 얼마나 무섭게 다가오는지 모르나 보네?”
“그 정도라고?”
“오히려 잔챙이들한테는 정다현 이름이 더 무시무시해. 그래도 넌 눈에 띄게 나쁜 짓을 저지른 녀석들만 잡았잖아? 정다현은 저인망 사냥이었어. 손속에 자비라고는 전혀 존재하지 않았고.”
한때 정의로움의 상징이던 정다현이 나찰녀라는 이명이 붙은 건 이유가 있단다.
잡범들에 한해 나보다 더 악명이 자자할 정도라고.
그런 정다현이 빌런 체포가 아닌 마물 사냥 쪽으로 빠지자 농담하지 않고 축제를 열었다고 한다.
한편으로는 정다현이 다시 이쪽으로 오지 않게 자중하자는 말도 나왔었다고.
“…….”
정다현이 그 정도일 줄이야. 한상민은 질색하고 있지만 난 내가 만든 변화가 기특하기만 했다.
[너 때문에 멀쩡한 애가 이상해진 거 같은데.]오히려 번듯한 공무원 헌터라고 생각하지 않냐?
[원래 공무원 헌터가 빌런이란 인간들을 다 죽이고 다니는 거였어?]당연하지.
[그럼 넌 왜 안 잡아가는데?]용용이 녀석은 아직도 날 빌런이라고 말하고 싶나보다.
하긴, 이쯤 되면 나도 더이상 가볍게 여기고 있진 않다.
현아도 혈종과 비교할 때 날 보면서 정상이 아니라고 말하고 있는 형국이었으니까.
언제고 한 번쯤 짚고 넘어가야겠다.
[이제야 날 믿는구나.]아니, 너 말고 현아 말을 믿는 거지.
[그게 뭐야!]칭얼거리는 용용이 말을 한 귀로 듣고 흘려버리며 난 한상민과 대화에 집중했다.
“그래서.”
“응?”
“빌런이 줄어든 거랑 네가 여기에 있는 게 무슨 상관인지 모르겠는데.”
“하, 이것도 다 너 때문이 맞아.”
“난 왜?”
한숨을 푹 내쉰 한상민은 내게 물어보았다.
“혹시 보이는 빌런들을 다 치워버리면 더이상 빌런이 생겨나지 않을 거라 생각해?”
“빌런 자연발생설을 말하는 건가.”
“그런 거 아냐!”
“그럼?”
“우선 네 생각을 바로잡자면 아무리 치우고 치워도 빌런을 완전히 없애는 건 불가능해.”
“…….”
그래도 숫자를 최소화 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데.
“세상이 그렇게 순진하게 돌아가지 않으니 문제지. 세상 어디에나 사회악은 존재할 수밖에 없어. 그건 인정하지?”
“어느 정도는.”
세상이 완벽하게 흑백으로 돌아가지 않는다는 건 나도 알고 있다.
“그 점에서 빌런도 존재할 수밖에 없다는 거야. 이 무법지대는 정부의 영향력이 미치는 곳이 아니니까 빈자리가 생기면 사회에 적응하지 못한 녀석들이 채워나가는 거지.”
“계속해봐.”
“근데 헤드 브레이커와 나찰녀의 등장으로 대한민국의 빌런이 씨가 마르게 됐어. 문제는 그 자리를 자국 출신 빌런으로 채울 수 없게 되면서 외국 빌런들이 유입된 거야.”
그로 인해 벌어진 해악은 상상을 초월한다고 한다.
외국에서도 밀려는 밑바닥 인생의 손속은 잔인했고, 뒤가 없기에 극단적으로 치닫기 좋았다.
좋다고 불러들였다가 통제에 애를 먹으면서 새로운 문제로 대두되고 있단다.
그럼 다 쓸어버린 다음에 안 받아들이면 그만 아닌가.
한상민이 고개를 저었다.
“이미 여기로 들어온 녀석들이 자국에 연락하면서 하루에 몇 건씩 밀항이 이루어지고 있어. 아주 개판이 나버린 거지.”
한상민이 이곳에 온 이유는 그걸 적절히 통제하기 위해서란다.
그럴 듯한 말이다. 내가 모르는 세계에 대해 알게 된 느낌이랄까.
“그래서 통제는 되고 있고?”
“잘 되고 있지! 내 인생 최대 업적이라고 해도 무방해!”
“왜?”
“네 귀에 들어간 적 없잖아?”
“…….”
정곡이로군. 생각해보니 우연히 흔적을 발견해서 찾아냈을 뿐, 여기에 암약하면서 나쁜 짓을 저지른다고 들은 적이 없다. 만약 대외협력관리국에서 좀 더 빨리 정보를 줬다면 아예 오지도 않았겠지.
“필요악이라면 이걸 두고 봐야 한다는 건데.”
“나한테 맡겨줄 수 없냐? 어차피 이 녀석들도 구제 불능 쓰레기가 맞아. 적당한 때를 봐서 다 잡아 넘길 거야.”
그럼 얄짤없이 북한 개척단에 포함되어 평생 노동력을 제공해야 할 것이다.
“그럼 너한테 맡기지.”
“그래, 맡겨주라.”
“그리고.”
“응?”
“대외협력관리국 문제는 한 팔 거들지.”
말은 안 했지만 한상민과 대화를 나누면서 여러 깨달음을 얻을 수 있었다.
빌런의 완전한 박멸은 불가능하며 그들이 만들어낸 공백은 필연적으로 다른 빌런이 채운다라.
한상민이 전문가라니 전문가에게 일을 맡기는 게 옳다.
그렇다면 내가 신경 쓸 것은 대외협력관리국 문제다.
블랙요원인 한상민이 잠입하고 있음에도 정보 교류가 원활하지 않았던 부분을 짚어내야겠지.
“내가 정보 공유를 요청했는데 네가 잠입한 걸 말하지 않은 건 이유가 있지 않겠냐?”
“…….”
한상민이 굳은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내가 모르는 알력이라던가 갈등이 있을 거 같은데 빌런 처리할 때 사적인 감정이 들어가서는 안 되겠지.
“너도 험한 일 하지 말고 복귀해. 빌런을 제어하려고 빌런의 탈을 계속 쓰면 결국 그 사상에 물들 수밖에 없으니까.”
“주의하지.”
나도 왕년에 빌런을 해봐서 해줄 수 있는 말이었다.
고개를 끄덕이는 한상민을 뒤로 하고 밖으로 나왔다.
* * *
최준호가 밖으로 나가자 한상민은 세상이 꺼져가라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휴! 살았다, 살았어. 그래, 세 번째는 무사해야지. 여기에서도 팔다리 다 부러져서 반병신이 되면 그건 죽으라는 거잖아!”
그것도 잠시, 최준호가 했던 말을 떠올리며 분노를 터뜨렸다.
“이 개자식들이! 최준호가 정보를 요구하면 주말이라도 출근해서 바로 정보를 제공할 것이지 짬을 쳐? 나 죽으라고 지랄하는 거냐!”
누구는 나라를 위해 빌런의 탈을 쓰고 현장에서 먼지 마셔가며 일하는데 편하게 사무용 책상에 앉아서 일하는 녀석들은 미적거리다니.
“박규원 이 개자식!”
한상민은 자신과 동기이자 대외협력관리국장이 된 박규원 이름을 외치며 살기를 발산했다.
공무원 헌터 생활 내내 앙숙이었던 관계가 이런 식으로 비틀릴 줄은 몰랐다.
아마 최준호의 의심이 합리적일 것이다. 박규원은 예전부터 자신을 눈엣가시처럼 여겨왔으니까.
그래도 나라를 위해서 아니꼬워도 최선을 다했다. 하지만 개죽음은 아니지 않은가.
최준호의 얼굴을 본 것만으로 과거의 악몽이 되살아나는 기분이었다.
열이 뻗친 한상민은 참지 않고 염기철에게 연락을 했다.
“청장님.”
-나 지금 마나님이랑 쇼핑 중이다.
“지금 저 내부 분탕 때문에 죽을 뻔했습니다.”
-…….
“받으시기 힘들면 제가 사모님에게 연락드려 양해를 구하겠습니다.”
-10분만 기다려라.
처음에는 사모님 쇼핑 보좌하는 중이라고 연락을 피하던 염기철은 한상민이 이판사판 다 뒤집어버리고 나갈 거란 말을 듣고 진짜 10분 만에 연락을 해왔다.
-자세히 말해봐라. 박규원이가 사고를 쳤다고?
“나 이대로면 일 못합니다.”
-그러지 말고 자세히 얘기해봐라.
“오늘 최준호랑 또 만났습니다. 청장님이 마지막 지시를 한 작전을 수행하다고요.”
-…….
“게다가 최준호가 오게 된 이유가 뭔지 압니까? 국가수호국에서 대외협력관리국에 정보를 요청했는데 짬 시켰답니다. 이거 박규원이가 나 죽이려는 거 아닙니까?”
말을 할수록 감정에 복받쳐 거칠어졌다.
-…어떻게 하면 좋겠나?
“박규원이가 설치는 꼴 더 못 보겠습니다. 대외협력관리국 안으로 들어가겠습니다. 내가 들어가서 다 갈아엎겠습니다.”
-그러자.
“진심입니까?”
자신이 악에 받쳤다지만 염기철이 이렇게 순순히 받아들일 줄 몰랐던 한상민은 오히려 놀랐다.
-그래, 나도 박규원이가 대외협력관리국이 제멋대로 움직이는 거 좋지 않게 보고 있었다. 네가 그리 말할 정도면 내가 생각하는 것보다 심각한 게 더 숨어있겠지. 박규원이를 추천한 게 나이니 책임도 내가 지는 게 맞다.
“역시.”
이럴 때만큼은 날카로운 판단력을 보여주는 염기철이었다.
-다시 연락하마. 그리고 미안하다.
“뭐, 그렇게 말씀하시니 어쩔 수 없네요.”
이래서 염기철을 미워할 수 없었다. 어떤 상황에서도 최적의 판단을 내리니까. 한때 저렇게 되고 싶었고, 경력이 쌓이면서 염기철의 구상을 성공으로 이끌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그래, 염기철은 자신의 우상이자 롤모델이다.
-그래, 그럼 난 널 믿고…(오빠! 여기서 뭐해? 빨리 와서 짐 좀 들어. 무거워 죽겠어!)(알았어! 금방 갈게!) 맡기마. 그럼 난 급한 일이 있어서 가보마. 내일 연락하지.
그렇게 통화가 끊겼다.
“…….”
조금 전까지 염기철의 판단력을 칭송하던 한상민의 얼굴은 짜게 식어 있었다.
* * *
난 세상에 착한 빌런은 없다고 생각한다.
빌런은 존재 자체가 독. 빌런은 생산성이라고는 없고 누군가의 고혈을 착취한다고 봤다.
그 점에서 한상민의 관점은 신선했다. 빌런을 완벽하게 박멸할 수 없다면 제어를 선택한다는 것. 결국 세상 구조가 빌런이 나타난다면 그걸 제어해서 피해를 최소화하겠다는 발상은, 보이는 족족 없애면 된다는 내 생각과 다르면서도 효율적이었다.
일단 빌런 조직 처리는 한상민이 맡기로 했으니 맡겨두기로 하고.
문득 이 부분에 대해 조언을 듣고 싶어져서 진세정에게 빌런의 필요악론을 언급해보았다.
“일리가 있다고 생각해요.”
“어째서요?”
“현재 대한민국 모든 영토에 공권력이 미치지 않거든요. 공권력 공백지는 마물과 빌런들이 영향을 끼치고 있는데 기존에 구축된 질서가 무너지면 혼란이 일어날 테고, 그 피해는 고스란히 힘없는 사람들이 받을 거예요.”
그렇다고 진세정은 필요악을 옹호하진 않는다고 말했다. 정부는 최대한 빠르게 전력을 증강하여 공권력 공백지를 없애고 빌런의 숫자를 줄여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게 정상적인 관점이겠지.
“하지만 분야에 따라 필요악은 경각심을 심어주는 용도로 나쁘지 않다고 생각해요.”
어떤 분야를 말하는 거지?
진세정이 날 보며 웃었다.
“제가 초인님을 존경하고 좋아하지만 초인님을 위해 어쩔 수 없이 악플을 다는 것처럼요.”
“…….”
그런 것치고 굉장히 즐기고 있던 거 같던데.
그 부분을 물어보니 진세정이 착각이었다면서 잡아 뗐다.
아주 잘나셨군.
“한 가지 더 궁금한 게 있는데.”
“네.”
“절 싫어하는 사람들 중 제가 빌런과 다를 바 없다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뭐야, 지금 나 말하는 거야?]용용이가 꿍얼거렸지만 듣지 못한 척 외면하고 진세정에게 물었다.
“팀장님이 보기에도 제가 빌런 같습니까?”
“네.”
“…….”
아니라고 할 줄 알았는데.
충격이었다.
[봐봐! 너 빌런 맞다니까. 저 인간은 네가 주는 돈 때문에 좋은 말만 했던 거야.]진세정의 대답보다 용용이 태도가 더 얄미웠다.
내 표정을 봐서일까. 진세정이 돌연 히죽 웃었다.
“당연히 농담이죠! 너무 심각하게 생각하고 계신 거 아니에요?”
“어떤 의미로 한 대답인지 궁금합니다.”
“간단해요. 실제로 이렇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다수일 수 있거든요. 그리고 이 사람들의 생각을 바꾸는 건 굉장히 힘든 일이고요.”
그럴 거 같다. 사람의 생각이란 게 바뀌는 걸 본 적이 없는 거 같다.
그래서 나도 설득보다 죽이는 걸 주로 선택한다.
“관점 차이인 거 같은데 목적을 위해 수단과 방법도 체계적인 과정을 거쳐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을 수 있고, 누구는 구닥다리가 된 수단과 방법에 염증을 느끼고 있을 수 있어요.”
그 관점에서 볼 때 전자를 지지하는 사람은 내가 빌런보다 더 악독하다고 느낄 수 있단다.
“만약 주변에서 빌런이라고 손가락질하는 게 신경 쓰이신다면.”
진세정은 확신을 담아 말했다.
“초인님을 지지하는 사람만 보고 행동하시면 돼요.”
“그래도 됩니까.”
“그럼요. 초인님이 안티들의 마음을 돌리겠다고 행동을 바꾸면 오히려 지지하는 사람들만 돌아서게 될 걸요? 그러느니 초인님을 지지하는 사람을 보고 행동하는 게 더 낫죠. 그리고 누가 초인님 면전에서 그걸 지적하겠어요?”
하긴, 용용이나 현아도 신수니까 그럴 수 있던 거겠지.
혈종 이 녀석은 자기 자신을 합리화하기 위해서일 테고.
그렇게 생각해보면 나한테 빌런이라고 하는 사람은 전부 제대로 된 녀석이 아니다.
필요악 개념이 뭔지도 잘 모르는 녀석들인데, 뭐.
확실히 진세정의 말을 들으니 생각이 정리가 되는 기분이다.
[내가 볼 땐 저거 아닌데. 넌 그냥 미친 게 맞아.]용용이가 마지막 발악을 했지만 내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그래, 날 빌런이라고 칭했던 놈들은 애초에 문제 삼기 위해 그런 걸 터였다.
필요악과 빌런의 차이에서 오는 혼동이겠지.
누군가는 그걸 빌런이라고 생각해도 어쩔 수 없다. 불만이면 필요악의 맛을 보면 되지.
“앞으로 눈치 볼 것 없이 행동해야겠습니다.”
“네, 그게 초인님의 매력이니까요.”
“필요악이라.”
그래, 잠깐 고민했지만 역시 나는 나대로 행동하는 게 옳다.
단지 바뀐 게 있다면 내가 필요악이라는 걸 자각 했을 뿐.
그렇다면 여기저기 눈치 볼 이유가 없겠지.
예정대로 대외협력관리국부터 뒤집으러 가야겠다.
[더 미쳐가네.]용용이가 옆에서 탄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