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Crazy Villain Regains His Sanity RAW novel - Chapter 198
198화
정주호는 현재 최준호 팀에 들어온 것을 만족하고 있다.
인원도 없고 체계도 찾아보기 힘든 회사에 불과했지만 최준호의 존재는 어느 단체보다 강력한 권위를 선사했고, ‘아이돌 전문가’라는 타이틀로 기상천외한 이미지 프레임을 고정시키는 진세정은 새롭게 떠오르는 실력자였다.
여기에서 자신이 하는 것은 정부 관계부처와 갈등을 조율하는 것.
얼핏 보기에는 어려워 보이지만 실상을 들여다보면 예전부터 쌓아온 인연을 바탕으로 서로 입장을 들어보고 절충안을 내놓는 것에 불과했다.
누군가에게는 굉장히 어려운 일이지만 정주호 자신에게는 쉬운 일이었다.
특히 평생에 걸쳐 경쟁하던 사이이자 동료였던 이에게 의기양양하게 나설 수 있으면 최준호랑 함께 하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곤 했다.
“나 없으면 너희는 다 죽었어.”
“…….”
염기철은 아무 대꾸조차 못한 채 입술을 질겅질겅 씹다 한숨을 내쉬었다.
그 모습을 보며 정주호는 히죽 웃었다. 평생 앙숙의 쩔쩔매는 모습은 언제 봐도 즐거웠다.
“높은 곳에 올라가다 보니 감이 무뎌지셨나 봐, 염 청장?”
“약 올릴 거면 돌아가라.”
“어허, 난 지금 우리 최준호 초인님을 설득하고 대화로 이끌기 위해 온 사람이거든?”
“그래서 줄초상나게 놔두려고?”
“그런 건 아니지. 그냥 부탁하는 사람이 좀 더 공손했으면 좋겠다는 거다.”
즉, 부탁하는 사람이 좀 더 간절한 태도를 보이라는 것.
염기철의 표정이 와락 구겨졌다.
“네놈이 최준호 팀에 들어간다고 할 때 무슨 짓을 해서라도 말렸어야 했는데…….”
“귀농할 거란 말에 현역으로 도와달라고 했던 녀석이 누구더라?”
“…….”
“흐흐.”
실컷 염기철을 놀린 정주호는 더 놀렸다가는 폭발할 것이란 생각에 그만두고는 본론에 들어갔다.
“장난처럼 말했지만 이번 건은 꽤 심각한 거 알지?”
“안다. 어쩌다 이렇게 된 건지.”
“내가 볼 때 박규원이가 문제 맞다.”
“무난하게 잘 이끌 거라 생각했는데.”
“정확히는 그 주변에 있는 녀석들이 문제지. 거기에 휘둘린 박규원이 문제고.”
그러면서 정주호는 염기철에게 대외협력관리국 문제를 정리해놓은 서류를 내밀었다.
“너도 조사했겠지만 교차 검증이 필요하지? 읽어봐라.”
“…….”
염기철이 서류를 읽기 시작했다. 정주호는 그 모습을 지켜보면서 조직을 이끄는데 자기 능력만 중요한 건 아니란 생각이 들었다.
새롭게 대외협력관리국을 이끌게 된 박규원은 조직원들의 신망을 얻는 덕장의 이미지였지만 스스로 능력이 뛰어나지 않기에 실무 능력이 뛰어난 부하들에게 상당한 권한을 부여했다.
문제는 거기에서 발생했다.
대외협력관리국 또한 3국의 일원이자 각종 특수 임무를 수행하는 곳으로 특활비가 부여되는데, 이걸 놓고 부정비리가 벌어졌다.
한상민이 진행하는 특수작전 같은 것은 특활비가 상당히 소모되는 것으로, 금액 확보를 위해 의도적으로 정보를 차단했을 가능성이 높았다.
여기에는 염기철의 그림자를 지우기 위한 작업도 병행되어 있었다.
즉, 염기철은 국가전선방위청에 오기 전 대외협력관리국에서 진행해놓은 모든 것들을 부정당하는 위치에 서게 된 것이다.
“결국 돈이로군.”
“공무원 헌터한테 흔하게 벌어지는 일이기도 하지.”
“최준호 초인은 어떻게 해결하길 원하냐?”
“짐작하면서 물어보냐? 관련된 녀석들 전원 체포, 대외협력관리국의 전면적인 쇄신이다.”
“증거를 찾아보려고 해도 쉽지 않을 텐데.”
“그런다고 신경 쓸 거 같냐? 증거가 없어도 혐의가 확실하면 그걸로 움직일 거다.”
“…내가 할 일은?”
최준호가 움직인 이상 막을 수 있는 것은 아무도 없다.
오히려 정주호를 보내 예고를 한 것만으로도 엄청난 호의를 베푼 것임을 눈치 챘다.
“비리를 저지른 부하를 네가 감쌀 것 같진 않지만 그래도 연관되지 않게 신경 쓰라고. 가만히 놔두면 나머지는 알아서 다 해결될 거다.”
“참 간단하군.”
“원래 최준호가 그런 존재잖냐. 어떤 복잡한 일도 간단하게 풀어내는.”
그건 그가 압도적인 힘을 갖고 있어서 가능한 일이었다. 이번 일도 복잡하게 생각할 것 없이 대외협력관리국에서 문제가 발생했고, 그 원인이 염기철의 인선 행사에서 비롯되었다.
“…….”
인사 참사 하나가 그동안 쌓아온 것들을 송두리째 무너뜨리다니.
바닥마저 무너지기 전 발견해서 다행이라고 해야 하는 걸까. 국가전선방위청으로 옮겨간 뒤 여전히 국가수호국을 잘 운영되고 있는 걸 보면 자신의 능력이 정주호보다 못한 걸 증명한 셈이었다.
아마 정주호가 염려하는 것도 자신이 옛 부하를 감싸기 위해 아수라장에 발을 빼지 못하는 걸 테지.
차가운 이성으로 상황 파악을 완료한 그가 감사를 표했다.
“고맙다.”
“이 정도로 고맙기는. 당연히 해야 할 일을 한 거다.”
염기철은 고개를 저었다.
“이 자리를 맡아보니 알 것 같다. 나보다 이 자리에 더 잘 어울리는 게 너라는 걸.”
“뭐 잘못 먹었냐?”
“최준호 상대하는 거 하나만으로 넌 높은 평가를 받을 자격이 있어.”
“우리 대표님이 어마어마하긴 하지. 흐흐.”
웃긴 했지만 정주호는 염기철이 느끼는 것이 뭔지 알 것 같았다.
그건 감당하기 힘든 존재로 인해 오는 부담감이었다. 언제 터질지 알 수 없는 폭탄은 적아를 가리지 않고 터져버리니 생각하는 것만으로 머리가 빠지는 충격을 동반한다.
그래서 자신이 궁시렁거리면서도 최준호를 떠나지 못하는 것이고.
‘불쌍하긴 하구만.’
그래도 염기철만한 적임자가 없다.
괜히 스트레스 더 받으면 그만둔다고 할 수 있을 테니 자신이 더 나서줘야겠다.
*
* *
“…….”
대외협력관리국장 박규원은 아찔한 현기증이 엄습하는 것을 느꼈다.
며칠 전 국가수호국에서 협력요청이 왔던 것과 실무진에서 의도적으로 누락시켰던 것, 블랙요원 한상민과 염기철 청장과 관련된 일련의 보고를 듣자 상황이 예상보다 훨씬 커졌다는 걸 깨달았다.
이 일이 하필이면 최준호와 연관되어 있다니.
한상민만 물 먹이면 좋겠다고 생각하던 일이 상상 이상으로 커져버렸다.
애초에 어떻게 한상민과 최준호가 알고 있는 거란 말인가?
거기서부터 모든 게 꼬여버렸다.
“그래서, 일을 저질렀으면 수습할 방법도 있겠지?”
박규원에게는 세 명의 심복이 존재했는데, 협상팀의 인청호와 정보팀의 김유백, 타격팀의 전기철이다.
셋 모두 대외협력관리국의 엘리트 출신이자 실세로 불리는 인물들이다.
박규원은 자신의 실무 능력이 다른 인재들을 따르지 못하는 걸 안다. 그래서 부하들에게 특혜를 베풂으로써 그들의 충성심을 샀다.
“…….”
하지만 박규원의 말에 그들은 대답하지 못하고 눈치만 보고 있었다.
“왜 대답이 없어? 최준호를 자극해놓고 아무 대책도 없다는 거야? 어? 김유백! 한상민이를 깔끔하게 처리할 수 있다며?”
대놓고 지목받은 김유백은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
“우선 최준호와 한상민이 접점이 있을 줄 몰랐습니다.”
“그걸 지금 말이라고 해?”
“염 청장님이 이전 정보를 모두 파기해서 파악할 수 없었던 부분입니다. 거기다 한상민은 블랙요원이라 서류화되지 않은 작전이 무척 많다보니 파악이 어려웠습니다.”
그것이 지금 발생한 문제의 시발점이었다.
“후우! 그래서 해결책은?”
“최준호가 아무리 주제 모르고 날뛴다고 해도 저희를 건드리겠습니까? 작전 중에 서로 싸인이 맞지 않아서 발생한 해프닝으로 몰아가면 된다고 생각합니다.”
“그렇습니다. 최준호는 현재 상황에 대해 제대로 알지 못할 겁니다. 이 부분을 놓고 말하면 미심쩍은 정황이 있어도 우기지 못할 겁니다.”
“그렇단 말이지.”
인청호까지 거들자 박규원의 표정이 한결 편해졌다. 그래, 부처간 정보 교류가 원활하게 흘러가지 않아서 이런 해프닝은 종종 발생할 수 있다.
최악의 상황이 발생한 건 아니니까.
그저 소소한 오류로 발생한 일로 우기면 된다. 그에 따른 징계는 감수하면 그만이고.
박규원의 생각과 심복들의 생각이 일치했다.
조용히 지켜보던 전기철이 말했다.
“차라리 한상민을 조용히 제거하는 건 어떻습니까?”
“지금 상황에서 그건 가능하고?”
“빌런 조직간 항쟁으로 보이도록 유도하는 건 충분히 가능합니다.”
“그러다 최준호한테 걸리면 우리 다 죽는 건 알면서 그러나?”
“그러니까 잘 드러나지 않게 꾸미면…….”
“그만.”
평소에는 부하직원의 말을 잘 들어주지만 정치적인 감각에 있어서는 박규원이 가장 빼어났다. 그는 지금 상황이 다른 팀장들이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위험하며, 무리수를 남발하면 꼬리를 잡혀 최악으로 흘러갈 수 있음을 직감했다.
오히려 손해를 감수하지 않으면 최준호의 타깃이 될 수 있다.
“너희는 아무 짓도 하지 말고 가만히 있어. 내가 염 청장님에게 컨택한다. 의사표현 과정 중에서 오류가 발생했고, 그로 인해 벌어진 해프닝이다. 그에 따른 징계가 이루어질 수 있지만 이게 최소화하는 길이야. 그렇게들 알아둬.”
“…….”
팀장들은 불만스러운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박규원은 심복들의 욕심이 생각 이상으로 커진 것에 불안감을 느끼면서 최대한 빨리 수습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이럴 때는 직접 자신이 깨지는 모습을 보여줘서라도 할 말이 없도록 만들어야 한다.
“지금 염 청장님하고 연락할 테니 가만히들 있…….”
스마트폰을 꺼내 연락을 취하려고 할 때였다.
쾅!
그때 문이 요란하게 열리며 사색이 된 부하가 안으로 들어왔다.
“국장님!”
“갑자기 무슨 일이야?”
중요한 순간에 난입한 부하를 보며 박규원이 소리쳤다.
하지만 이어진 말은 모두의 심장을 철렁 내려앉게 만들었다.
“최준호! 최준호 초인이 왔습니다.”
“뭐? 그 사람이 왜 여기에 와?”
“볼 일이 있다고 합니다. 그리고…….”
“그리고 뭐?”
“본국의 블랙요원으로 주장하는 사람도 함께 왔습니다.”
“…….”
박규원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
* *
처음에 난 국가수호국과 대외협력관리국의 사소한 해프닝 정도로 생각했다. 그거 바로잡아준 것은 한상민이었다. 대외협력관리국의 블랙요원인 그는 현장에 나와 있음에도 자기가 소속된 조직의 상황을 훤하게 꿰뚫고 있었다.
한상민은 저번에 일어난 일이 날 이용하려던 대외협력관리국의 수작이라 말했다.
상황이 흘러가는 게 매끄럽지 않다고 생각하긴 했다.
그래서 나는 정주호를 염기철에게 보내 확인하고, 국가수호국에 재차 확인한 나는 한상민의 말이 사실임을 깨달았다.
본래 난 혼자 대외협력관리국을 찾아가려고 했다. 그런데 어떻게 알았는지 한상민이 찾아와서 자신도 데려가 줄 것을 요구했다.
“대외협력관리국에 대해 나보다 더 자세히 알고 있는 사람은 없을 거다.”
피해자가 함께 가겠다고 하니 어쩔 수 없는 일이지.
무엇보다 누가 죽일 놈이고 살릴 놈인지 판별하기 쉬울 테고.
“혹시, 다 죽일 생각은 아니지?”
“그럴 리가.”
대외협력관리국은 공무원 헌터의 큰 축이다. 관련 있는 녀석들만 쳐내야지 다 죽이다가는 감당하기 힘든 일만 벌어질 것이다.
한상민은 염기철이 승진하고 대외협력관리국의 분위기가 바뀌었다며 한탄했다.
수장 한 사람으로 분위기가 이렇게 바뀌는 걸 보면 새삼 정주호가 대단하다 싶었다. 능력보다 사람이 좋아서 데려왔는데 역시 머리가 허투루 빠진 게 아니었다.
난 불안에 휩싸인 한상민에게 말했다.
“날 휘두르려고 했으면 자기도 베일 수 있는 걸 알려주려는 것뿐.”
“아아.”
안도해도 모자랄 한상민의 표정이 기괴했다.
뭐, 다 쓸어버리지 않는다고 해도 짧은 시간 조사한 것만으로 문제가 있는 건 대외협력관리국장 박규원과 그의 심복으로 알려진 세 팀장이었으니까.
짧은 기간 얼마나 날뛰었던지 조사에 큰 수고가 들지 않을 정도였다. 각종 이권 관여는 물론 부처 내 갑질과 비리로 얼룩져있다.
왕주열 같은 녀석이 셋이나 있을 줄은.
“…….”
대외협력관리국 안으로 들어서자 싸늘한 분위기가 우릴 맞이했다. 국가수호국이 복작복작하다면 여기는 차가운 느낌이 들었다.
우리는 곧장 국장실로 향했다. 안으로 들어가니 마침 딱 필요한 사람들이 다 모여 있었다.
으드득하는 소리가 한상민의 입에서 들려왔지만 개의치 않고 박규원에게 시선을 고정했다.
“최, 최준호 초인.”
“박규원 국장님? 반갑습니다.”
“바, 박규원이라고 합니다. 저번에 청와대에서 인사드렸습니다.”
“최준호입니다. 제가 무슨 일로 찾아온지는 알고 계시지요?”
“그럼요. 이번에 벌어진 일은 유감스럽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내 눈치를 살핀다.
내가 듣기에는 시원찮은 대답이다.
“그게 끝?”
“…이번 사건은 정보 교류가 원활하지 않아 충돌이 벌어지는 건 의외로 흔하게 벌어지는 일입니다.”
식은땀을 뻘뻘 흘리면서도 돌아온 건 발뺌이었다.
딱 봐도 저 말로 우길 수 있다고 생각했나보다. 난 저런 녀석들을 굉장히 많이 봐왔다.
[쟤 거짓말하는데?]용용이도 같은 생각이다.
난 박규원의 말을 더 듣는 대신 가까이 다가가는 걸 선택했다.
“헙!”
기겁한 녀석이 눈을 치뜨며 피하려 했지만 내 다리가 놈의 정강이를 걷어차는 게 더 빨랐다.
빠악!
“끄아아악!”
두 다리가 부러진 녀석이 바닥에 무릎을 꿇고 비명을 질렀다.
“잘못했으면 사과부터 해야지, 뭔 혓바닥이 길어?”
아, 물론 사과했어도 손은 썼을 거다.
난 고통에 몸부림치는 박규원에게 시선을 뗀 난 박규원 심복들을 보며 말했다.
“반항해도 좋아.”
가장 깔끔하게 상황을 해결하는 건 역시 브레인워싱이겠지. 그래도 공무원 헌터니까 바로 하진 않고 개기면 사용해야겠다.
“…….”
나와 눈이 마주친 그들은 양손을 들어 저항할 의지가 없음을 드러냈다.
뭔가 아쉽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