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Crazy Villain Regains His Sanity RAW novel - Chapter 277
277화
난 상대를 제압할 때 기본적으로 속전속결을 추구한다. 대결을 질질 끈다고 해봤자 불필요한 힘을 소모하는 건데 빨리 처리하는 게 당연히 낫지.
당연하게도 허버트를 잡는 것도 최소한의 피해로 최대의 효과를 내려는 생각이다.
누구도 예상하지 못한 시점에 공격을 했기에 문제가 되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지만.
“응?”
돌연 내 팔의 무게가 무거워졌다. 수백 kg이 넘게 느껴지는 무게감에 잠깐이지만 내 움직임이 무뎌졌다. 금방 수습했지만 틈이 만들어진 건 분명했다.
기프트인 거 같은데 어떤 원리지?
“뒤로 모셔!”
그 짧은 시간은 두 경호원이 움직이기 충분했다. 허버트는 뒤로 물러나면서 방을 벗어나려고 했고, 경호원들이 육탄으로 방어하려 들었다.
아주 훌륭한 정석적인 경호방식이다.
나한테는 어림도 없는 방법이지만.
푹!
“컥!”
난 저격으로 허버트의 발목을 꿰뚫었다. 주저앉는 그를 보며 경호원들의 평정심이 잠시 흔들리는 사이, 입구 쪽을 점유하고 대통령에게 성큼 다가갔다.
“Stop!”
“멈추게 해보던가.”
날 가로막는 거구의 백인 경호원이 진압봉을 휘둘렀다. 가볍게 피하려고 했지만 순간 몸이 무거워졌다. 이거, 조금 전에 발생했던 현상과 비슷했다.
하지만 한 번 당하지 두 번 당할 리 없다. 성과에 목이 마른 만독불침이 무시무시한 속도로 상태 이상을 해제시키면서 나는 잠깐 멈칫했다가 어렵지 않게 회피하고 손을 뻗어 기뢰를 쏟아냈다.
백인 경호원 역시 처음에는 견뎌내는 강골이었으나 제련이 가미되자 티타늄보다 더 견고하게 버텨내던 뼈가 비명을 지르면서 갈라졌다.
“크으으으!”
퍽!
몸이 구부려질 때 배를 걷어차자 벽으로 날아가 처박혔다. 그리고 남은 한 명의 경호원이 대통령 옆에 서서 집중하는 걸 보고 저격으로 어깨에 구멍을 뚫어줬다.
“크윽!”
딱 봐도 유사시 도망칠 수 있도록 배치된 공간 이동 기프트 보유자 능력자였다.
첫 저격에 집중력이 흩어졌는지 주변을 감싼 포스가 흩어졌고, 연이은 탄환에 반대쪽 어깨와 옆구리, 허벅지를 뚫리자 그대로 쓰러졌다.
고작 두 명이지만 모두 초인이다. 그래서 시간이 좀 걸렸다.
그래봤자 잠깐 시간을 지연시키는 게 고작이지만.
뭐든 잡을 대상의 기동력을 상실시키면 그 다음은 짐으로 전락하는 법이다.
혈종일 때 이런 식으로 목표를 제거하고 도망치는 전법을 많이 사용했었지.
오랜만에 떠오른 옛 기억을 지우며 대통령에게 다가갔다. 그런데 안나 크리스틴이 그 앞을 막아섰다.
“넌 왜 막지?”
“대체 왜 공격하시는 거예요?”
“그야 리그의 빌런이니까.”
“네? 그게 무슨 말인가요!”
“말 안했나? 난 리그의 빌런이 누군지 구분할 수 있어.”
사실 일반인과 빌런을 구분하는 것에 가까웠지만. 그래도 워낙 많은 리그의 빌런들을 죽이다 보니 어떤 녀석이 리그의 빌런인지 구분할 수 있게 되었다.
“잠깐, 지금 그 말은…….”
“대단한데? 리그가 세계최강국의 대통령도 만들어낸 걸 보면.”
“마, 말도 안 돼.”
안나 크리스틴은 믿기지 않는다는 표정으로 나와 허버트를 번갈아보았다.
그런다고 사실이 바뀌나.
하긴, 리그는 세계 전역을 휩쓸고 있는 반체제 집단이다. 이미 몇몇 국가는 리그로 인해 국가가 전복되고 리그의 사상을 받아들이고 있다.
그것은 다른 국가로 하여금 심각한 위기감을 느끼게 했다. 국가가 전복된다는 것은 기존 기득권이 권력을 빼앗긴다는 의미였다.
물론 그것과 별개로 각성자 우월주의인 리그의 사상이 눈에 밟힌다.
리그 사상에 의하면 나 또한 가장 혜택을 받을 수 있지만 각성자 우월주의는 결국 한정된 파이를 자신들이 차지해서 누리겠다는 발상에 지나지 않는다.
그게 난 크게 틀렸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법의 잣대는 각성자와 비각성자를 잴 때 차이가 있고, 수준에 따른 차별도 버젓이 이루어지고 있으니까.
다만 내 눈에 그놈이 그놈인데 죽을 짓을 해놓고 자기가 각성자라고 뻗대는 게 마음에 들지 않을 뿐이다.
[결국 허접들이 판치는 게 마음에 안 드는 거잖아.]역시 신수로군. 정답이다.
난 그저 내가 보고 느낀 대로 행동할 뿐이다. 어차피 답은 정해져 있으니 과정은 끼워 맞추면 되는 일이지. 그리고 진실이 아닌 거짓을 내뱉는 사람에게 진실을 말하도록 만드는 건 내 전문 분야였다.
허버트 또한 처음에는 경악을 하다가 이내 체념의 빛을 띠었다.
“…설마 옛 시절 이야기를 꺼내게 될 줄 몰랐는데.”
“대통령님?”
“맞네. 난 한때 리그 소속이었지. 정확히는 리그의 일원이 되고 싶었어.”
“……!”
나와 대통령을 제외한 모두가 경악한 표정을 지었다.
태연하게 자리에서 일어난 허버트는 처음 앉았던 소파로 다가와 내게 자리를 권했다.
도망치지 못하도록 발목에 구멍을 냈는데 생각보다 잘 움직인다.
미국이 만든 회복제 성능이 좋다더니 사실인가보군. 돌아갈 때 몇 개 받아가야겠다.
“자세히 얘기하도록 하지.”
*
* *
허버트 R 클라인은 각성자 출신이며 미국우선주의자로 열화와 같은 지지를 받아 대통령에 당선되었다.
곧 있을 대통령 선거에서 재선이 유력하다고 평가받으며, 재임 기간 동안 잃어버린 영토를 회복하고 대서양과 태평양 양쪽으로 영향력을 확장시키는데 성공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위트 넘치고 격의 없는 행동으로 가볍다고 비판받지만 보스라기보다 리더다운 모습을 보여 그를 지지하는 유권자가 많았다.
누구보다 리그를 증오하며 세계의 연대를 강조하던 그가 리그 출신이라니.
“정확하게 말해 리그의 소속이었던 적은 없지. 단지 그들이 내세운 가치에 동감했을 뿐.”
자신이 리그 소속이라고 생각한 건 대선후보가 되기 전까지였다고 허버트는 솔직하게 밝혔다.
“만인이 평등하다고 하지만 세상을 이끄는 건 소수의 엘리트지. 마물의 위협 앞에 인간은 한없이 나약한 존재였어. 난 선택받은 각성자들을 우대하는 것이야 말로 우리 앞에 닥친 위기를 극복할 수 있는 방법이라 믿었지.”
하지만 허버트의 이런 생각은 대선에 출마하고, 대통령이 되면서 산산조각이 나고 말았다.
리그 이전에 시스템을 구축해놓은 파티 또한 겉포장만 다를 뿐, 비슷한 가치를 추구하는 단체였다. 그리고 그들이 내세운 것은 실제론 자신들의 지배를 정당화하기 위한 수단이었고 그 속 어디에도 대의는 존재하지 않았다.
소수의 우상화를 통한 통치의 정당화. 리그의 사상은 세상을 더 낫게 바꿀 수 없다는 것을 느낀 허버트는 리그와 결별을 선택했고 파티와도 거리를 두었다.
“리그의 혜택을 받았지만 리그 소속이 아니라고 할 수 있는 이유지.”
허버트가 내세우려는 새로운 가치는 미국의 정신이라 할 수 있는 아메리칸 드림이다.
꿈을 가진 무수히 많은 사람들이 모여들어 용광로처럼 섞여 하나가 된다. 그 속에서 벌어지는 끝없는 경쟁이야 말로 미국이 세계 패권을 쥐게 된 원동력이 된다고 생각했다.
“그걸 위해 서부의 주도권을 가져오는 게 우선이라 생각했고, 헤드 브레이커 그대에게 의뢰를 넣게 되었네.”
허버트의 설명은 거기에서 끝났다. 중간에 생략된 무수히 많은 과정들이 존재하지만 결론은 리그와 결별했으며 리그의 궤멸을 위해 나서고 있다는 이야기였다.
“구구절절 변명이라 믿기 힘든데.”
“…하하.”
내 중얼거림을 들었는지 경호원 둘이 허버트 옆으로 바짝 붙었다. 하지만 조금 전 있었던 충돌을 떠올렸는지 그 이상의 행동을 보이지 않았다.
“잭과 크리스는 내게 몇 안 되는 믿을 수 있는 동료이자 친구네. 더 괴롭히지 말아주게.”
“대답에 따라서 달라질 거고. 그 전에 대답할게 있는데.”
“뭐든 대답하겠네.”
“왜 리그 냄새가 풍기는 거지?”
“아, 그거 말인가? 내가 리그 사상에 심취했던 적이 있었지. 그때 리그에서 접근한 적이 있지.”
허버트에게 접근한 리그에서는 환심을 사기 위해 몇 가지 물건을 건넸다.
“그중 하나가 부스트 초기 버전이었지. 부작용이 없지만 포스 양을 늘리는데 도움이 되는 물건이지.”
“그리고?”
허버트는 씩 웃으며 말했다.
“당선되고 그들의 정보를 넘겨 모조리 소탕했지.”
“그때 리그 세력 일부가 소탕된 이유가…….”
안나 크리스틴이 놀라서 소리쳤다. 그러면서 당시에 리그가 동부에서 큰 타격을 입고 세력 대부분이 일소 된 사건이 있었다고 말했다.
“넌 어떻게 생각하지?”
“대통령님은 그동안 리그와 연관을 느끼지 못할 만큼 완벽하게 행동을 제어했어요. 그래서 허점을 발견하지 못했어요. 리그 세력을 소탕한 걸로 과거와 결별했고요.”
“부끄러웠던 과거지. 내가 뭘 보고 그런 녀석들이 좋다고 한 건지.”
“말 더 보태지 말고.”
안나 크리스틴은 납득했을지 몰라도 난 아니었다.
“모든 빌런은 자기들이 빠져나갈 구멍을 만들어놓기 마련이지.”
“오!”
그냥 넘어갈 수 있었던 것을 그럴 듯한 스토리를 가미해서 납득이 가기보다 의심이 더욱 커졌다.
허버트는 조금도 납득하지 않은 내 표정에 심각해졌다.
“어떻게 하면 내 진심을 증명할 수 있겠나?”
그건 나도 잘 모르겠다. 사실, 어떤 방향으로 봐야 할지 헷갈리는 면도 있었다. 미국 대통령이 리그 소속이라면 미국은 리그가 먹었다고 해야 하는 걸까, 아니면 미국 대통령만의 일탈이라고 봐야 할까.
내게 의뢰를 한 건 미국 정부니까 사실상 리그가 의뢰한 거라고 봐야 할 텐데, 복잡하군.
그렇다면 허버트가 결백하다는 걸 증명해야 한다.
“가장 좋은 건 브레인워싱인데.”
“노! 그건 싫다고!”
허버트가 질색했고, 안나 크리스틴은 대경했다.
“잠깐만요! 그건 안 돼요!”
“그럼 다른 방법은 있고?”
내 질문을 기다리기라도 한 것처럼 안나 크리스틴이 말했다.
“다니엘 로건, 부통령인 그라면 확실하게 답을 알려줄 거예요.”
허버트 R 클라인의 러닝메이트이자 평생 미국을 수호해온 인물이다. 부드러운 외모와 달리 초강경파인 과격한 사상 때문에 견제 받을 뿐, 미국을 위하는 마음은 진심으로 평가받는 인물이었다.
나도 한국에서 본 적 있다. 당시에 통역을 통해 몇 마디 얘기를 나눈 적 있었는데 꽤 잘 통하긴 했다.
안나 크리스틴의 말마따나 초강경파로 빌런에게 가차 없던 모습이 꽤 마음이 들었었지.
다만 그녀가 착각하고 있는 부분이 있는데, 평생 나라를 위해 헌신했다고 해도 빌런은 될 수 있다.
저걸 믿다가 언젠가 뒤통수를 맞을 수 있는데 뭐, 그거까지 내가 신경 쓸 부분은 아니겠지.
부통령도 리그 소속이라면 한꺼번에 모아서 처리를 할 수 있을 테니. 설사 부통령이 지원군을 몰고 오더라도 다 죽여 버리고 탈출하면 그만이다. 내게는 세상에서 가장 유용한 탈출수단인 용용이가 있으니까.
[이럴 때만 대우가 좋네?]구시렁거리기는.
난 못 들은 척 흘려버리며 안나 크리스틴에게 말했다.
“그럼 불러.”
“평소에 잔소리하던 양반에게 내 목숨이 달렸네. 엄청 혼나겠어.”
허버트는 여유가 넘치는 태도로 중얼거렸다.
그냥 브레인워싱을 해버릴 걸 그랬나?
*
* *
“허버트는 리그 소속이 아닙니다. 이거 하나는 확언할 수 있습니다.”
안나 크리스틴의 부름에 스위트룸으로 온 부통령은 대통령이 한때 리그 소속이었다는 설명에 하얗게 질린 얼굴로 내게 설명했다.
“무엇보다 이 녀석은 모두에게 비밀을 숨길 능력도, 연기력도 안 되는 녀석입니다.”
“이봐, 말이 심하잖아.”
“넌 좀 닥쳐! 지금 너 살려주고 있잖아!”
“그렇긴 한데 완전 멍청이가 되어버리는 기분인데.”
“멍청이 맞으니까 닥치고 있으라고.”
“…….”
허버트는 겉모습과 달리 한때 이상론에 빠졌으며 그걸 이뤄줄 도구로 리그를 염두에 두고 있었다는 것이다. 근데 내가 리그의 기운이 느껴진다는 말에 표정을 구기고는 허버트를 노려보았다.
“너, 설마…….”
“리그가 줬던 걸 먹었지. 효과 좋더라.”
“미친 자식. 차라리 죽어버려. 대통령직은 내가 수행할 테니.”
“진정하라고, 다니엘. 넌 의회랑 사이가 안 좋잖아? 내가 있어야 의회의 지원을 얻어낼 수 있다고.”
“그냥 죽는 게 나라를 위해 더 도움이 될 거 같은데.”
“아니라니깐.”
“일단 죽어봐. 나라에 도움이 안 되면 다시 살아나고.”
“그게 되겠냐.”
눈앞에서 한편의 콩트가 펼쳐지고 있었다. 보아하니 허버트는 약간 철없이 일을 벌이다가 사고치는 쪽인 거 같고 부통령은 열심히 수습하는 쪽 같았다.
미국도 나라꼴이 대단하군.
“아무튼 이 녀석은 리그 소속이 아닙니다.”
“잠깐이지만 살펴본 결과 저도 아닐 거라 생각해요.”
부통령과 안나 크리스틴의 말에 공은 내게 넘어왔다.
어떻게 한다?
둘이 보증한다고 했지만 내가 결정하는데 미친 영향은 1%도 되지 않았다.
아무튼 이곳에 온 이상 나도 내 목적을 이루고 싶었으니까 적당한 부분에서 타협하는 게 좋겠지.
“만약.”
그때 허버트가 입을 열었다.
“내가 믿음을 주지 못했다면 죽여도 좋네.”
“허버트!”
“그걸로 헤드 브레이커의 믿음을 얻을 수 있다면 손해 보는 장사는 아니지.”
나름 결연해보였다. 그리고 내 직감으로 파악한 결과 허버트의 말이 진심임을 알게 해줬다.
스스럼없이 자기 목숨을 걸 수 있다는 건 그만큼 떳떳하다는 이야기겠지.
근데 그걸 순순히 인정해주기에는 심술이 나는데.
난 부통령을 슬쩍 보며 물었다.
“대통령직 잘 수행할 자신 있습니까? 앞으로 대통령이라 불러야겠네요.”
“…….”
그리고 슬쩍 옆을 보니 허버트의 얼굴이 땀으로 뒤덮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