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Crazy Villain Regains His Sanity RAW novel - Chapter 280
280화
최준호가 미국으로 건너오고, 안나 크리스틴은 최준호를 담당하게 되면서 그의 스케줄을 관리할 예정이었다.
극비리에 입국한 만큼 최준호는 리그의 허를 찌를 수 있는 가장 날카로운 창이었다.
비록 그 창이 미국 대통령마저 찌를 뻔했지만 그 성능이 얼마나 대단한지는 눈앞에서 확인하게 되었다.
15년째 미국 대통령의 경호를 맡던 잭과 크리스를 제압하는 광경은 충격 그 자체였으니.
최준호의 강함을 판단하고 논의하는 것은 자신의 몫이었다. 하지만 눈앞에서 그 강함을 보게 되면서 생각이 바뀌게 되었다.
“훨씬 더 큰 성과를 낼 수 있어.”
그가 미국으로 오면서 세운 서부의 리그 세력 일소라는 계획을 이뤄낼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어떻게 움직이면 좋을지 계획을 세우던 안나 크리스틴은 스탠퍼드로 향했던 최준호에 관한 보고를 연이어 전달받다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최준호가 마치 산책하듯 밖으로 나와 우범지대로 향하더니 그대로 빌런 조직을 연달아 격파하기 시작한 것이다.
처음에는 뒷골목에 자리한 소규모 조직이었고, 그 다음은 만만치 않은 규모를 지닌 갱단, 그 다음은 지역에서 이름 난 빌런 조직이었다.
“이건 속도가 너무 빠르잖아!”
마치 게임 스테이지를 클리어하듯 단계를 높여가는 속도가 너무 빨랐다.
안나 크리스틴은 최준호가 돌아오면 어떤 방식으로 리그를 공략할지 적어놓은 걸 보았다. 최준호는 큰 조직을 공략하고 자신들이 그 하부 조직을 공략하는 방법이 무용지물로 전락하고 말았다.
최준호는 하부 조직을 족쳐서 차근차근 상부 조직으로 타고 올라가는 중이다.
“그래서 내가 가져온 정보도 무용지물이 되었다는 걸 확인했지.”
“부통령님.”
어느새 안으로 들어온 다니엘은 손에 쥐고 있던 서류뭉치를 구기더니 탁자 위에 내려놓았다. 그리고 안나 크리스틴 맞은편에 앉아 한숨을 푹 내쉬었다.
최준호가 미국으로 돌아온 지 아직 24시간도 안 됐는데 벌써부터 터진 사고들이 한 가득이었다.
“생각대로 돌아가는 게 하나도 없군.”
“네, 맞아요. 그는 상상을 뛰어넘고 있네요.”
“리그를 제거해야 한다는 명제는 충실히 하고 있지만 이런 그림은 우리가 원한 게 아니지.”
“그렇기는 하지만 기회라는 건 변하지 않아요.”
“그렇게 생각하나?”
“네.”
최준호의 빌런 소탕 방식은 겉모습과 달리 가장 극단을 달리고 있다.
조금이라도 빌런이라 생각되면 모조리 말살해버리는 것. 이렇게 생각하니 최준호 손에 붙잡히고도 살아남은 대통령이 대단하게 느껴졌다.
“대단하긴. 브레인워싱 당할 뻔한 줄 알았더니 간담이 아직도 서늘한 걸.”
“그건 준호 앞이라면 누구나 그랬을 거예요.”
“한다고 하면 진짜 할 것 같아서 무섭기는 하더군. 그나저나.”
다니엘은 최준호의 광폭 행보를 떠올리고는 가볍게 혀를 찼다.
“이렇게 되면 우리가 개입할 여지는 사라진 셈이로군.”
“대신 공백이 발생한 지역을 수복할 필요는 있어요. 리그 세력이 사라진 곳을 방치하면 다른 빌런들이 차지할 테니까요.”
그리고 그들은 상부 조직을 뒷배로 둬야 하니 다시 리그 휘하에 들어갈 확률이 높다. 그래서 한시라도 빨리 움직일 필요가 있었다.
그때, 노크 소리와 함께 다급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긴급 보고입니다!”
“들어오세요!”
땀범벅이 된 채 안으로 들어온 남자는 안나 크리스틴의 귀에 방금 들어온 정보를 속삭였다.
다시 둘만 남게 되자 다니엘이 하얗게 질린 안나 크리스틴을 보며 물었다.
“무슨 일인가?”
“준호가 딜러의 흔적을 발견했다고 해요. 그리고 바로 딜러를 제거하러 가겠다고…….”
리그 12궁의 일원 딜러. 도박 없이 살지 못하는 지독한 도박광이자 독특한 기프트를 보유한 그는 절대 쉽게 볼 수 없는 강적이었다.
12궁이 LA에 머물고 있다는 것도 놀랍지만 그걸 이렇게 빨리 찾아낸다고?
거침이 없는 손속, 조금만 수가 틀리면 백치로 만들어 정보를 뽑아내는 능력.
누가 그를 보고 세계를 구원할 초인이라 생각할까.
새삼 최준호의 이미지 메이킹을 한 사람의 존재가 대단하다고 느끼며 다니엘은 혀를 찼다.
“따라잡는 것도 벅차군.”
*
* *
빌런 조직의 윗대가리를 잡는 방법은 간단하다. 말단부터 차근차근 조져나가다 보면 자연스럽게 위로 향하는 꼬리가 발견된다.
설마 빌런들에게 충성심이라는 걸 기대한 건 아니겠지? 빌런들은 말 그대로 빌런이다. 자기 안위가 최우선이며 자기 이익과 상대의 약점이 될 걸 발견하면 눈에 불을 켜고 달려드는 성질을 지녔다.
당연하게도 여차할 때 사용할 상부에 관한 정보를 모아놓은 문서가 존재했다. 보관 방법은 문서로 저장해두기도 하고, 금고에 넣어두기도 했다. 그것도 없고 조금 머리가 돌아가는 녀석들은 자기 머릿속에 확실하게 새겨두고.
하지만 비밀공간에 숨겨둔다고 해도 그걸 찾아내는 건 어렵지 않은 일이고, 머릿속에 넣어둬도 브레인워싱으로 뒤져보면 금방 찾아낼 수 있다.
아주 잠깐의 수고만 하면 다 해결된다.
“이건 졸라 미친 속도야!”
옆에서 지켜보던 졸라맨이 그리 감탄할 정도였다.
뭘 이런 걸 가지고 감탄하는지. 원래 빌런이라는 건 이런 녀석들이다.
[빌런에 대해 너무 잘 아는 거 아냐?]이제는 신수까지 감탄하는 경지에 올랐군.
[감탄 아닌데? 그냥 어떻게 잘 아느냐는 거지.]그냥 빌런을 많이 상대하면 알게 되는 거다.
[뭐가 더 있는 거 같은데.]알면 다쳐.
평소에는 눈치 없다가 이럴 때만 눈치가 빨라지는 용용이였다.
아무튼 이번에 잡은 녀석들은 리그 하부 조직이 맞았다. 다섯 군데 빌런 조직을 무너뜨리면서 타고 올라가니 마침내 꼬리를 잡는데 성공한 것이다.
그리고 이곳에서 획득한 정보에서도 12궁의 일원인 딜러가 LA에 있다는 걸 확인시켜주었다.
내 기준에서 12궁이 그렇게 대단한 건지 잘 모르겠지만 다른 녀석들에게는 대단한 듯 하니까 그 녀석의 목을 들고 가야겠다.
“준호! 분명 지금까지 굉장한 성과를 거뒀지만, 진짜 딜러를 잡으러 가야겠어?”
“제일 먹음직한 녀석인데 빨리 처리해야지.”
딱 보니 이 지역을 관리하기 위한 녀석 같은데 머리를 날려버리면 팔다리는 갈피를 잡지 못하고 허우적거리기 마련이다.
그걸 기회 삼아 일거에 쓸어버리면 되지.
“하지만…….”
“할 말 있으면 머뭇거리지 말고 확실하게 해.”
내 재촉에 머뭇거리던 졸라맨은 결심을 굳힌 듯 말했다.
“딜러는 빌런 중에서도 졸라 독특한 녀석이야. 어떻게 보면 헬 마스터와 함께 준호에게 가장 상성이 안 좋은 녀석일 수도 있어.”
다른 녀석도 아닌 12궁에 불과한 녀석이?
기분 나쁜 게 아니고 흥미가 생겼다.
“계속 말해봐.”
“딜러의 능력은 정확하게 알지 못해. 왜냐하면 녀석이 설정해놓은 ‘조건’에 들어간 적은 여태까지 모두 죽었기 때문이야.”
재밌는 말이로군. 헬 마스터가 보유했다는 즉사 기프트와 관련된 건가. 세상에 절대 회피하지 못할 기프트는 없다고 생각하지만 알아둬서 나쁠 건 없겠지.
“그 기프트에 내가 당할 거라 보는 거냐?”
“아니, 준호가 당할 것 같진 않아. 하지만 딜러한테 가는 속도가 너무 빠르지 않아? 대비를 하고 가는 게 좋다고 생각해.”
그제야 졸라맨이 뭐 때문에 말리는 건지 알 수 있었다.
본래대로라면 오늘 일정을 마친 뒤 돌아가서 안나 크리스틴과 리그를 어떻게 처리할지 논의를 해야 했다. 그리고 미국에서 제공하는 정보를 받아야겠지.
내가 LA에 도착한지 이제 막 24시간이 지났다.
이렇게 말하니 짧은 시간 동안 이것저것 있었군.
뭐, 내가 미국에 자주 올 것도 아니고 천년만년 있을 것도 아니니 빨리빨리 처리해야겠지.
그래야 나도 여기저기 둘러보면서 여유를 즐길 수 있지 않겠나.
[아니, 천둥새 상대해야 하는데 그런 생각이 나?]생각해보니 그것도 있었군.
그거야 똑똑한 양반들한테 맡겨두면 알아서 발전시켜놓을 테니 차근차근 진행하면 된다.
“난 상관없어.”
“응?”
“그렇게 준비할 거 다 하면 상대는 가만히 있겠냐. 쟤네가 언제까지 내가 서울에 있다는 걸 믿을까.”
“그건 그렇지만…….”
“그리고.”
나는 여태까지 무수히 많은 적을 상대하면서 한 가지 확신을 갖고 있는 게 있다.
그게 뭐냐면.
“미국 정부가 내 속도를 쫓아오지 못한다는 건, 리그 녀석들은 더 못 쫓는다는 거야.”
상황 파악이 되지 않았으니 도망쳐야 할지, 상황을 지켜보고 있어야 할지 당연히 감이 잡히지 않지.
그 짧은 머뭇거림이 큰 차이를 만들어낼 수 있는 것이다.
그러니 이런 때일수록 적의 허를 찌를 수 있게 빨리 움직여야 한다.
“결정적으로 딜러의 기프트라는 게 뭔지 보고 싶어졌어.”
졸라맨조차 겁을 먹을 정도로 경계하는 기프트, 어떤 걸까.
*
* *
기본적으로 졸라맨과 움직이는 게 좋은 점은 훌륭한 내비게이션 역할을 해줘서다.
확실히 똑똑한 녀석이긴 한지 LA 지역 전체를 머릿속에 넣어두고 있는 듯했다.
여기에는 뭐가 있고, 저기에는 뭐가 있는지 정확하게 짚어냈다. 그리고 정보에 없는 곳은 대부분 빌런의 아지트가 자리하고 있었다.
피라미라고 해도 상관없었다. 빌런 하나가 사라지면 그만큼 세상이 살기 좋아지는 것이기에 보이는 족족 죽여 버렸다.
한 곳에 뭉쳐있으면 칼날폭풍으로 쓸어버리고, 흩어져 있으면 저격을 사용했다.
생각해보니 저격은 리그의 빌런에게서 뺏은 거로군. 자기들이 모시던 존재의 기프트로 죽으니 영광으로 알면 될 듯했다.
그러다 우리는 시내 한복판에 위치한 건물에 도착했다.
“멈춰.”
“어? 여긴…….”
“여기에 다 숨어있었네.”
빌런 녀석들은 양지에 대한 그리움이라도 있는 건가. 살만하다 싶으면 하나같이 밖으로 튀어나오는 건지 모르겠다.
나야 찾아내는데 이골이 났으니 쉬운 일이지만.
“넌 돌아가.”
“준호! 나도 따라갈게!”
“딜러 녀석이 위험하다며? 굳이 같이 위험 감수할 필요 없어. 넌 가서 남은 녀석들이나 소탕해. 여기는 내가 정리할 테니.”
“…알았어.”
졸라맨이 몸을 돌려 멀어지고, 나는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그러자 기다리기라도 한 것처럼 턱시도를 입은 남자가 내게 다가왔다. 내가 올 줄 알고 있었나보다.
“어서 오십시오, 기다리고 계십니…….”
퍽!
난 같잖게 있는 척 하는 녀석의 머리를 부숴버렸다. 빌런 주제에 뭔 난 척을 이렇게 하는 건지.
바닥에 물드는 피를 보며 주변이 멈칫하는 게 느껴졌다.
“어디서 개소릴 지껄여.”
함부로 나서지 않는 녀석들을 보면서 나는 딜러라는 녀석이 있는 곳으로 향했다.
놈이 어디에 있는지 알아차리는 건 어렵지 않았다. 대놓고 함정이라면서 불길한 기운을 발산하고 있는 곳이 있었으니까.
자기 공간에 들어서면 살아 돌아올 수 없다고?
기프트가 어떤 걸지 궁금하군.
내가 방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가니 예상했던 것과 전혀 다른 풍경이 나를 맞이했다.
방안은 탁자 하나와 의자 두 개가 놓여 있었다. 그리고 내 맞은편으로 인영 하나가 모습을 드러냈다.
난 그곳으로 향했다.
“헤드 브레이커.”
8:2로 머리를 빗어 넘긴 금발 중년 신사가 미소 짓고 있었다.
돌연 방안의 기류가 달라졌다. 이게 졸라맨이 말했던 기프트인가? 공간 계열인지 정신 계열인지 구분이 모호한 게 느껴졌다.
“어서 오십시오. 제 공간에 온 걸 환영합니다.”
“네가 딜러?”
“그렇습니다. 아르고스에게 당신에 대해 많은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역시 자신감이 넘치는군요. 그럴 실력도, 패기도 있는 것 같습니다.”
“곧 죽을 놈치고 많이 여유로워 보이는데.”
“당연히. 죽는 건 제가 아닐 테니까요.”
“내 앞에 선 놈들은 다 그렇게 말하더라.”
그리고 빠짐없이 나한테 머리가 부서져서 죽었다.
딜러는 미소를 지어보였다.
“이곳은 제 공간. 제가 정한 룰에 따라 모든 것이 결정됩니다.”
자기 자신에게 취한 것처럼 말하는 걸 보니 역시 미친놈이로군.
[그래봤자 유통기한 이틀 정도밖에 안 지난 수준이야.]용용이 진단은 신뢰를 잃었으니 굳이 귀담아 듣지 않았다.
혼자서 신나게 웃던 녀석은 날 보며 외쳤다.
“이제 게임을 시작하겠습니다.”
“게임? 나도 게임 좋아하는데.”
나만 재밌는 게임이지만.
내 대답에 딜러가 웃었다.
“우리는 취향이 같군요. 그럼 게임을 시작하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