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Crazy Villain Regains His Sanity RAW novel - Chapter 346
346화
용용이가 윤희를 가지고 얼토당토 한 고집을 부려봤자 나한테 아무런 타격도 줄 수 없다.
사람이 처한 상황은 저마다 다른 법이며, 나나 윤희는 내가 일방적으로 베풀면서 돈독한 남매 관계를 유지하는 것에 반해 이세희와 이세찬은 서로가 가진 것을 완전히 빼앗아야 끝이 나는 관계였다.
남매의 탈을 쓴 불구대천의 원수라고 봐도 무방하겠지.
보통 남매 사이가 원수지간이라고 하지만 여기는 진짜 원수였다.
단어는 같아도 의미는 완전히 다른 법이지.
용용이가 아직 인간 세계에 대한 이해도가 낮아서 발생한 문제였다.
[그걸 그렇게 매도한다고?]실수를 저질렀으면 그에 대한 걸 순순히 인정하는 것도 신수의 덕목 중 하나다.
[무슨 말도 못하게 만드네.]입을 막으려는 게 아니라 틀어진 것을 바로잡아주는 것뿐이다.
이번 건은 이세희가 결정을 내려야 하는 문제였다. 강한 힘을 가진 각성자와 거대한 조직을 이끄는 길드의 수장에게 요구되는 재능은 다르다.
신성그룹과 신성길드라는 거대한 조직을 이끌어나가기 위해서는 실력 못지않게 권력을 손에 쥐려는 권력 의지가 중요하다.
그 점에서 이세희는 아직 모질지 못한 면이 있다고 볼 수 있겠다.
[거기에서 더 독해지면 너랑 비슷해져. 내가 정상이 아닌 인간 옆에 있지만 그래도 정상적인 인간 세상을 지켜보고 싶다고.]그 소원은 내 옆에서 나와 어울리면서 실컷 보면 될 일이다.
[그게 제일 문제인 거 같은데.]용용이의 사소한 푸념은 가볍게 흘려버리며 나는 목적지에 도착했다.
내가 온 곳은 신성 병원. 그룹의 총수 이영문이 입원하고 있는 곳이다.
빈손으로 올 수 없어 주스를 샀다.
[정작 아픈 인간은 먹지도 못하잖아.]사다 놓으면 병원에 다니는 사람들이 마시겠지.
이게 바로 예의라는 거다.
[예의를 운운하는 인간의 이명이 헤드 브레이커냐.]그걸로 예의 없는 인간들을 다 해치운 거지. 긍정적으로 생각해라.
난 주스를 들고 곧장 이영문 회장이 입원한 병실로 향했다.
재계의 거두이자 그룹의 총수가 입원한 곳답게 삼엄한 경비가 이루어지고 있었다.
“더 이상 접근은 불가… 헉!”
층 하나 전체를 사용하고 있던 경호원 중 한 명이 날 막으려다가 내 얼굴을 보고 기겁했다.
난 경호원에게 손에 든 주스를 들어보였다.
“병문안 왔습니다.”
“…….”
경호원들의 얼굴이 심각해졌다. 기색을 보아하니 모든 접근을 차단하라는 것처럼 보였다.
“위, 위에 보고하겠습니다. 잠시만, 아주 잠시만 기다려주실 수 있겠습니까?”
이영문의 가족이라고는 이세희와 백치가 된 이세찬이 전부인데 누가 이렇게 통제하는 건지 모르겠다.
눈짓으로 보고하라는 신호를 보내자, 황급히 자리를 벗어난 경호원이 경호실장을 데리고 왔다.
“현재 회장님의 상태가 위중하여 외부인과 만남은 거절하고 있습니다. 양해 부탁드립니다.”
정중한 축객령이었다.
난 잔뜩 긴장한 경호실장을 빤히 보다가 물었다.
“그 결정을 내린 건 누구입니까?”
“비서실장님이십니다.”
“이 위급한 상황에서 회장의 가족이 먼저입니까, 아니면 비서실장이 먼저입니까? 참고로 전 이세희 팀장에게 말하고 병문안을 온 겁니다.”
“그, 그건…….”
경호실장의 눈에 지진이 일어났다. 상급자의 명령을 따라야 하면서도 내가 이세희를 거론하니 눈에 띄게 혼란에 빠진 기색이었다.
예전의 나라면 아랑곳하지 않고 밀고 들어갔겠지.
하지만 제정신을 찾으면서 이렇게 상황이라는 것도 고려할 수 있게 되었다.
“다른 꿍꿍이가 있는 게 아니면 비키시죠. 주스 정도는 놓고 가게.”
“…….”
“더 막으면 강제로 들어갈 겁니다.”
“혹시 다른 의도가 있으신 건…….”
“평범한 병문안이었는데 그쪽이 자꾸 다른 의도가 있는 걸로 만드네요.”
“…알겠습니다.”
억지를 부려봤자 막을 수 없다는 걸 알았는지 경호실장은 순순히 비켜섰다.
자발적으로 해체된 인의 장막을 지나쳐 나는 병실 안으로 들어설 수 있었다.
호화롭게 꾸며진 병실 안에 생명의 불꽃이 사그라들고 있는 남자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난 주스를 내려놓으며 용용이에게 눈짓했다.
역시, 내가 본 것도 비슷했다. 몇 번 마주볼 때마다 마지막 생명력을 불사르던 이영문은 이미 재만 남은 상태였다. 더 이상 태울 땔감이 없는 이상 불꽃이 꺼지길 기다리는 것밖에 답이 없겠지.
이영문은 지금 상황을 봤으면 어떤 결정을 내렸을까.
당연히 내가 알 수 없겠지.
나는 나대로 결정을 내리고 행동으로 옮기면 되는 것이다.
“가, 가시는 겁니까?”
내가 병실을 나오자, 안절부절 못하던 경호실장이 다가와 조심스러운 목소리로 물었다.
“무리해서 막아서지 않았던 건 현명한 판단이었습니다.”
“…….”
하얗게 질린 경호실장을 지나쳐 나는 병원 밖으로 나왔다.
아마 내가 방문한 사실이 다른 곳에 알려지겠지. 난 크게 개의치 않기로 했다.
“권력이 걸린 일이니까.”
아무리 많이 손에 쥐어도 부족하게 느껴지는 것이 권력이란 것이다. 신성그룹 내부와 외부에서 저마다의 이해관계가 얽힌 채로 빠르게 움직일 것이다.
그중에서 가장 중요한 건 모든 걸 가질 수 있는 사람의 결정일 테고.
이세희가 어떤 결정을 했을지 들어볼까.
*
* *
“저는 지금 위치에서 최선을 다해 부딪쳐보려고 해요. 아마 아버지는 이걸 의도하고 계셨을 거예요.”
“이영문 회장이?”
“네. 아버지는 그걸 원하실 거예요.”
“그걸 어떻게 알아?”
“종종 그룹 회장이 가져야 할 마음가짐에 대해 말씀하셨어요. 반대파를 숙청하는 건 승리를 거둔 후 즐기는 전리품에 지나지 않는다고. 제 추진력과 협상력을 높게 평가하셨지만 사람을 다루는 것을 종종 얘기해주셨죠.”
이세희는 지금 상황마저도 일종의 시험이라고 보고 있었다.
내가 모르는 세계 이야기라 생소했다.
그냥 거슬린다 싶으면 아랑곳하지 않고 다 쓸어버리면 되는 거 아닌가.
재벌이란 사람들의 생각을 알 수가 없군.
“죄송해요, 준호 씨가 도와주겠다고 하셨는데. 많이 실망스럽죠?”
이세희가 내놓은 대답은 이세희다우면서 이세희답지 않았다.
목적을 위해 유용한 수단이 있다면 그것이 불법이라도 개의치 않던 것이 이세희였다.
그런데 결정적인 순간, 정공법으로 부딪쳐보겠다고 선언한 것이다.
“실망 반, 대견함 반이지.”
“대견함이요?”
“자기 실력으로 얻겠다는 선언이니까. 미련하지만 신념이 묻어나오는 걸 싫어하지 않아.”
“아…….”
탄성을 흘린 이세희는 가볍게 고개를 끄덕여보였다. 내가 정다현의 저런 면을 좋아했었는데 결정적인 순간 이세희에게서 그걸 보게 될 줄 몰랐다.
서로 친하면 닮는 걸까, 지금 이 순간만큼은 이세희의 모습에서 정다현이 보였다.
그 얘기를 하면 둘 다 질색할 거 같다.
[너도 그 혈종이란 애랑 친해서 닮은 거 아닐까.]누가 친하다고?
[내가 볼 때 비슷하던데.]…일단 용용이 녀석은 나중에 처리하기로 하고, 나는 이세희의 결정을 존중해주었다.
“방법은 있고?”
“정공법으로 가야죠. 제가 맥없이 당하는 것처럼 보이고 있지만 그동안 준비해둔 게 만만치 않거든요. 준호 씨 덕분에 자금도 충분하고요. 지금의 전 저들이 생각하는 것만큼 만만하지 않아요.”
자신감 넘치는 모습에서 준비해둔 한 수가 있나보다.
그럼 남은 불안요소는 하나로군.
“백군서 그 양반은?”
이세희의 표정이 흐려졌다.
“삼촌은… 이번 일에서 중립을 선언하셨어요. 신성그룹의 근간을 흔드는 일은 용납하지 않겠다면서 한 발 물러서신 상태에요.”
“그게 너한테 좋아보이지는 않는데.”
“나쁜 것도 아니니까요. 적으로 만나지 않는 게 제게 있어 최선이에요.”
결국 이렇게 되나보군.
자세히 모르지만 저번 생에서 백군서는 이세희가 아닌 이세찬의 편에 섰던 걸로 안다.
당시 그룹을 이어받았던 것은 이세찬이었고 이세희 이야기는 더 이상 듣지 못했었지.
전생의 이력이지만 지켜봐야 할 일이다.
“내 힘이 필요하면 언제든지 말해. 내가 신성그룹을 신뢰하는 건 이세희가 있는 신성그룹이지, 이세희가 없는 신성그룹이 아니니까.”
“말씀만으로 든든해요. 준호 씨 힘이 필요하면 꼭 도움을 청할게요.”
내게는 그것이 도움을 청하지 않겠다는 걸로 들렸다.
[당연한 거 아냐? 네가 나서면 절단이 날 텐데 누가 엉망진창이 된 걸 손에 넣고 싶겠어. 온전한 형태로 손에 넣고 싶지.]누가 보면 내가 다 때려 부수고 다니는 줄 알겠다.
사무실 밖으로 나온 나는 조용히 집으로 돌아가려고 했다. 그런데 이런 내 움직임 반경을 파고드는 묵직한 기척이 전해졌다.
신성길드 소속 초인 백군서였다.
아무래도 날 기다리고 있었나보다.
그는 굳은 표정으로 날 물끄러미 지켜보다가 잔뜩 가라앉은 음성으로 말했다.
“최준호. 잠깐 얘기 가능한가?”
내가 고개를 끄덕이자 백군서는 나를 자신의 사무실로 데려왔다.
삭막할 정도로 아무것도 없는 곳에서 곧장 본론에 들어갔다.
“형님의 상세를 보고 왔다고 들었다.”
“병문안인 거죠. 가족인 이세희의 의중과 별개로 경호가 이루어지는 건 특이한 일이었지만.”
“…민감한 상황이니 만전을 기하려고 했을 뿐, 심기를 거스를 생각은 없었으니 이해해줬으면 좋겠다.”
“갔던 목적은 이뤘으니 상관없습니다.”
“다행이군. 봐서 알겠지만 형님은 오래 버티지 못하실 거다. 그 후에 그룹은 새로운 주인을 찾아야겠지.”
그냥 회장 후보가 이세희라고 하면 간단할 걸 갖고 말을 돌리고 있다.
“이세희 외에 다른 후보가 있는 겁니까?”
재벌 회장이라면 사생아도 있을 법 했으니까.
백군서가 바로 고개를 저었다.
“새로운 세희가 되겠지. 하지만 뜻대로 흘러가지 않을 거다. 신성그룹에는 수많은 사람들의 욕망이 뒤얽혀있지. 주인이 바뀌면 언제 토사구팽 될지 모르니 격렬하게 반항할 테고.”
“그거야 옆에서 도와주면 되는 거 아닙니까?”
“세희가 회장이 되면 도울 생각이다.”
참신한 개소리로군. 도울 거면 바로바로 도와야지.
결국 진흙탕에 발을 빼고 지켜보겠다는 이야기였다.
자신의 발목이 잠겨서 더러워지는 건 보지 못한 채 말이다.
“이세희가 그룹 회장이 되는 게 싫은 겁니까?”
“세희의 실력을 인정하지만 그룹을 아우르는 건 아직 몰라. 그 예가 사장단의 반발이지. 잘못하면 그룹이 쪼개질 수도 있고.”
“반발이 나오지 않게 바로 도와주면 되는 거 아닙니까?”
그룹 내 유일한 초인인 백군서가 이세희의 편을 들어주면 바로 해결될 일을 멀리 돌아가고 있었다.
백군서가 쓰게 웃었다.
“나도 얽힌 게 많아서 말이지.”
그냥 분수 이상의 욕심을 부리는 녀석들의 머리를 모조리 날려버리면 되는 일이다.
빈자리를 채울 인재는 신성그룹 내부에 넘쳐났고, 충성심을 가진 사람을 골라 채워 넣으면 자연스럽게 해결된다.
다만 이세희가 이럴 생각이 없어 보이니 문제지.
인내심의 한계가 온다면 언제든지 기존의 말을 뒤집고 개입할 생각이다.
“그래서 나한테 하고 싶은 게 뭡니까?”
“…….”
“하고 싶은 말이 없으면 이만 가보죠.”
괜히 어울려줬다가 기분만 더러워졌다.
“할 말, 있다.”
“뭡니까?”
백군서는 뭔가 할 말이 있는 기색이었다.
그게 선뜻 내키지 않는 기색이었는데 누가 보면 내가 기다리는 것처럼 보이겠다.
“난 여전히 내키지 않지만 이것도 그룹을 위한 일이라니 받아들여야겠지.”
알 수 없는 말을 중얼거리던 백군서는 근심 걱정이 서려있는 얼굴로 날 보며 말했다.
“형님이 널 보고 싶어 한다.”
“이영문 회장은 지금 상태가 안 좋은 거 아닙니까?”
“최악이다.”
“근데 무슨 말을 하는 겁니까?”
분명 내가 보고 왔을 때 당장 숨을 거둬도 이상하지 않은 상태였다.
“이럴 때를 대비해서 준비해둔 게 있다. 최악의 상황을 대비해서 만들어놓은 거지.”
이어진 백군서의 말은 제법 놀라웠다.
혼수상태인 이영문이 짧은 시간이지만 정신을 차리게 만들 방법이 있다고 한다.
딱 한 번 뿐이지만 그 시간에 가장 먼저 나와 만남으로 사용하고 싶단다.
대체 왜?
“이해가 안 되네요.”
“다른 경우라면 그룹이 혼란해지는 걸로 끝나겠지만 넌 그룹을 없애버릴 수도 있으니까.”
내가 신성그룹에서 많은 돈을 벌어가는 걸 하나도 염두에 두지 않은 말이로군.
생각해보면 크게 아까울 건 없었다.
“가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