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Crazy Villain Regains His Sanity RAW novel - Chapter 382
382화
내가 고예진과 인터뷰 한 것은 일종의 가이드라인을 주기 위함이었다.
그런데 흘러가는 상황은 예상했던 것과 전혀 다른 방향으로 흘러갔다.
시작은 남중국이었다.
홍콩, 광둥 연합 못지않게 신성그룹을 압박하는데 열심히였던 남중국은 위하오의 방문 이후에도 고요한 바다처럼 아무 움직임도 보이지 않던 곳이었다.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뻔뻔한 모습이어서 과연 어디까지 갈지 흥미롭게 지켜보던 중이었다.
그리고 내 인터뷰 후, 남중국에서는 생각지도 못한 소란이 벌어졌다.
내분이 터진 것이다.
현 주석과 상무위원을 모조리 사퇴하라는 소장파의 등장과 함께 임시 수도인 난징을 차지하려는 움직임이 드러났던 것이다.
권력을 빼앗기지 않으려는 자들과 빼앗으려는 자들간에 치열한 충돌이 벌어졌고, 그로 인해 수백 명의 각성자가 죽거나 부상을 입는 유혈사태가 벌어졌다.
강력한 언론 통제로 외부에 소식이 알려지기까지 시간이 걸렸지만 지켜보던 이들은 전율을 일으킨 사건이었다.
이 소식을 속보로 접한 윤희는 어떤 조합으로 된장찌개를 끓일지 고민하던 날 보며 감탄했다.
“이젠 말 몇 마디로 수백 km 떨어진 곳의 사람들을 죽게 만드네. 대단하다, 대단해.”
“…….”
“이거 의도한 거 맞지?”
“조용히 수습하려고 한 건데.”
“진짜로?”
“어, 책임질 가이드라인을 정해놓으면 알아서 시시비비를 가릴 거라 생각했다.”
“시시비비 가리고 있기는 하네. 그 과정에서 서로 죽고 죽이고 있지만.”
“그러게 말이다.”
책임질 선을 정해놓으면 알아서 복작복작 하다가 책임자가 튀어나올 줄 알았는데 이런 전개로 흘러갈 줄이야.
뭐, 나한테는 나쁜 건 아니다.
서로 죽고 죽이는 상황에서 피해자가 발생하긴 하겠지만 일을 저지른 녀석이 책임을 지는 상황이 나와야 건강한 사회 아니겠는가.
그래도 안 되면 어쩔 수 없는 일이고.
“그래서 어떻게 할 거야?”
“알아서 정리하고 책임자가 나오겠지.”
“진짜 그렇게 할 거라고?”
“어, 그러라고 한 거니까.”
그 과정에서 사람이 죽어나갈 줄 몰랐지만 원래 책임은 피가 따르는 법이다.
얼마의 피가 흐르던 그건 내가 알 바는 아니다.
“오빠는 가만 보면 사람의 선의를 믿으려고 하는 거 같단 말이야.”
“내가?”
“아냐?”
“그럴 리가.”
나만큼 사람을 믿지 않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사람은 태어날 때부터 악하게 태어났다고 믿는 것 또한 말이다.
선의를 믿는다고 하면 전부 뒤통수에 구멍이 뚫려야 한다고 생각한다.
“정말 책임져야 할 사람이 오빠 앞에 나타날 거라 생각해?”
“무슨 말이냐.”
“만약 엉뚱한 희생자를 만들어서 자기가 저지른 거라고 하면?”
“일단 책임질 녀석을 죽여야지. 그리고.”
“그리고?”
“진짜 책임을 저지른 녀석을 찾아가야겠지.”
“그럼 희생양이 불쌍하잖아.”
“약한 건 죄다. 휩쓸렸던 아니던 여기까지 왔다는 건 죽어도 괜찮다는 거겠지. 그렇다면 그 바람대로 해주는 것이다.”
대신 진짜 책임져야 할 녀석은 내가 찾아가게 만들었으니 출장비까지 대가를 치러야 할 테지.
“어떻게 되던 깔끔하게 마무리 될 거다. 걱정 마라.”
“…진짜 제대로 선택하면 좋겠네.”
윤희가 질린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
* *
“말 몇 마디로 여러 국가에 내분이 일어나게 만든 아주 훌륭한 계책이었습니다. 제 시뮬레이션으로도 예상하지 못했던 전개입니다.”
나와 윤희는 TV를 통해 남중국에 벌어진 일을 접했지만 천명국은 더 많은 정보를 접한 상태였다.
그는 남중국뿐만 아니라 일본과 미국에도 큰 혼란이 빚어지고 있으며, 직접 수작에 관여하지 않은 다른 국가도 정부에서 개입했는지 여부를 놓고 의심을 받고 있는 상황이라고 했다.
“외부에 드러나지 않았지만 미국은 현재 백악관과 의회의 권력이 심하게 대립하고 있습니다.”
내게 다리를 잃은 아놀드는 의회에서 임명한 대사였는데, 백악관에서 이를 제지하지 못할 정도로 대립이 심각한 상황이었다고 한다.
“다니엘 부통령을 밀고 싶어 하는 백악관과 브래들리 의원을 중심으로 뭉친 곳의 대립입니다.”
내게 워낙 퍼준 계약 때문에 백악관이 밀리다가 내가 돌아온 이후 백악관이 우세를 점하고 있다는 것이 천명국의 제보였다.
여기에 파티가 얽혀있고 미국 통제 아래 들어간 남미 국가 소속 초인들이 가세하면서 말 그대로 개판이 벌어지고 있다고 한다.
“그곳보다 주목해야 할 곳은 일본입니다.”
“거기도 문제가 있습니까?”
“아주 큰 문제입니다.”
무슨 일인가 싶어 들어보니 일본의 경우 책임 소재가 아주 골 때리는 상황이란다.
본래 신성그룹에 수작을 부리고 한국 정부를 견제하던 곳은 이전 총리였단다. 현 총리는 소수계파 수장으로, 전 총리의 스캔들로 인해 어부지리로 자리를 취했고 국정을 완벽하게 장악하기 전 내가 돌아왔단다.
그로 인해 현 히가 총리는 전 총리에게 책임을 지라며 압박하는 중이고, 전 총리는 자신은 책임자가 아니라면서 발뺌하는 중이다.
“권력을 차지하기 위한 다툼이기도 해서 시간이 걸릴 것 같습니다.”
“이기는 편이 내 편이네요.”
“초인님은 누구 책임이 더 크다고 보십니까?”
고민할 필요도 없는 문제다.
“둘 다 책임져야죠.”
“…….”
“이번 일이 큰일로 번질 거라 생각했으면 현 총리가 수습했을 거 아닙니까. 은근슬쩍 자기도 발을 담가보려고 했다가 물린 거죠. 그럼 한 명이 책임질게 아닌 전부의 책임입니다. 전부 책임져야죠.”
“현명한 말씀이지만 저들은 결코 용납하지 않겠군요.”
“그 사람들이 착각하는 게 있죠.”
자신이 강자라고 생각하는 사람의 흔한 착각이다.
권력이든 부든, 힘이든 가진 사람들의 아주 흔한 착각.
자신이 아닌 다른 사람으로 대가를 치렀다고 생각하는 것.
하지만 그들보다 강한 자는 세상에 얼마든지 존재한다.
“책임 질 사람을 정하는 건 접니다.”
팔로 책임질 수 있는 걸 목으로 막는 불상사는 일어나지 않을 거라 믿는다.
아연한 천명국을 보며 나는 본론으로 들어가기로 했다.
“절 부른 건 이 얘기를 하시려던 겁니까?”
“아닙니다. 초인님께 도움을 부탁드리고 싶어 초대하게 되었습니다.”
“제 도움을요?”
혼자서도 잘하는 것의 정석과도 같은 게 천명국 아닌가.
“이번 총선에서의 압도적인 승리가 필요합니다. 그 승리를 통해 저는 개헌을 하려고 합니다.”
“개헌이요.”
“아직 마물이 등장한 뒤 시대에 따라가지 못하는 것들이 많이 있습니다. 개헌특위를 설립했지만 강하게 추진하기 위해서는 더 많은 의석이 필요합니다.”
대통령이 되더니 천명국도 권력에 대한 욕심이 생겼다.
그것은 오래 전 해온 일과 관련이 있겠지.
“그리고 정 국장님의 8년 부려먹기 프로젝트도 연관되어 있고요.”
“예, 개헌에서 중임제로 바꾸려고 합니다.”
“기다리던 소식이네요. 근데 국회에서 협력을 안 해주나 봅니다.”
4년 중임제는 국민들에게 가장 선호도가 높은 걸로 알고 있는데.
“제가 독재를 하려는 걸로 선동하더군요. 현직이 아닌 다음 대통령에게 적용되는 건데 말입니다.”
“정권을 차지할 자신이 없나보네요.”
“초인님 덕분입니다. 야당의 이번 총선 슬로건도 개헌 선까지 내어주지 말자더군요.”
나도 여론조사를 얼핏 본 적이 있는데, 천명국의 현 지지율은 무려 70% 중반대로 당장 내일 총선이 치러지면 개헌선 확보가 불가능한 일이 아니었다.
그럼에도 내게 도움을 청한다는 건 확실히 쐐기를 박겠다는 이야기겠지.
시뮬레이션이라는 기프트가 빌런이나 마물을 사냥할 때 좋은 건 알고 있었지만 정치에도 이렇게 큰 위력을 발휘할 줄 몰랐다.
천명국을 상대하는 정치인들만 불쌍하게 되었다.
“제 힘이 닿는 곳이라면 힘껏 돕겠습니다.”
“감사합니다.”
내가 아는 정주호라면 천명국만큼 대통령을 잘할 것이다. 국가수호국을 오랫동안 이끌면서 공직 생활을 충분히 넘치게 했고, 국가 소속 초인이 되어 정치의 물결에 이리저리 휩쓸리는 중이다.
게다가 남은 기간 동안 천명국이 잘 굴려서 대통령감으로 만들어놓겠지.
“그나저나 아쉽네요. 현직도 적용된다면 대통령님도 8년을 하실 수 있었을 텐데.”
“…그게 안 돼서 천만다행이라 생각합니다.”
“저는 정말 아쉬운데요.”
“저도 정말 다행입니다.”
“…….”
뭔가 이야기가 겉도는 느낌이 드는데 내 착각인가?
[아니, 착각 아니야. 한 마디로 너랑 오랫동안 일하기 싫다는 의미인데?]에이, 설마, 아니겠지.
천명국이 날 얼마나 좋아하는데.
[그건 너의 착각.]*
* *
남중국에서 일어난 내전 사태는 미국과 일본에 경각심을 심어주기에 충분했다.
특히 책임을 놓고 목에 핏대를 세우며 서로를 비난하던 전 총리와 현 총리는 절대적으로 무력 충돌만큼은 삼가면서 어떻게든 상대에게 책임을 전가하기 위해 안간힘을 썼다.
권력으로 보면 당연히 현 총리가 힘이 센 것처럼 보이지만 다수파의 수장인 전 총리의 저력 또한 만만치 않아 첨예한 대립만 이루어질 뿐, 쉽사리 승부가 나지 않았다.
그래서 둘은 담판을 짓기 위해 한 자리에 모였다.
“결국 누군가는 책임을 져야 하지.”
“일을 벌여놓고 끝까지 본인이 책임지겠다는 이야기는 하지 않는구려.”
“책임을 질 자리에 없으니 그런 것입니다.”
다케다, 이제는 전 총리가 되어 일개 의원이라 주장하는 그는 뻔뻔한 표정으로 책임을 회피했다.
“…….”
히가 총리는 그 모습을 보며 얼굴이 붉게 달아올랐으나 더 이상 쏘아붙이지 못했다.
서로가 가진 힘은 호각, 이대로 책임을 미뤄봤자 결론은 내지 못한 채 큰 상처만 입을 뿐이다.
그나마 이 정도로 올라설 수 있었던 것도 다케다의 책임이 커서다. 하지만 이 자리에 오른 이상 그 또한 권력의 화신, 상대를 잡아먹기 위해 전력을 다했다.
그나마 제정신을 유지하고 있기에 힘을 소모하는 사이 새로운 세력이 생겨나지 못하도록 견제하는 중이다.
그렇다고 이 대립이 오래 이어지면 소모전으로 확대 될 것은 자명한 이야기.
어떻게든 결론을 내야 한다.
히가 총리가 회심의 한 수를 꺼내들었다.
“이렇게 된 이상 한 가지 방법밖에 없군.”
“복안이라도 있소?”
“최준호를 부릅시다.”
“그를?”
다케다 의원이 흠칫했다.
허를 찔렀다고 판단한 히가 총리의 입가에 미소가 맺혔다.
역시 그는 최준호에 대해 극도의 경계심을 갖고 있다. 그렇기에 그런 무리수를 저질렀던 거겠지. 성공했다면 스캔들이 잊힐 정도로 큰 성과를 거둔 거겠지만 지금은 처참한 실패로 책임을 져야하는 위치에 있다.
히가 총리 또한 최준호에 대해 경계하고 있다. 하지만 그는 자신의 책임이 없을 강하게 자신했다.
설령 자신에게 책임이 있다고 해도 상관없다. 수치로 51% 이상 다케다에게 책임이 있다고 하면 그의 몰락은 기정사실화가 되니까.
말을 이어나가는 그의 목소리에 힘이 실렸다.
“책임 소재에 대해 그가 정하게 둘 겁니다.”
“지금 제정신이오?”
“난 제정신입니다. 다케다 전 총리님.”
“누가 봐도 제정신이 아닌 거 같아서 물어본 거요. 당장 그 생각을 거두시오.”
“아쉽지만 되돌리는 건 불가능합니다. 이미 요청을 해놓았습니다.”
“빠가!”
참지 못한 다케다가 욕을 내뱉었다.
상대가 싫어할수록 이곳에는 호재, 히가 총리의 미소가 짙어졌다.
“그 녀석이 총리를 지지할 거라 생각하오?”
“일을 벌인 건 전 총리님이니 그렇습니다.”
“하지만 그 일을 계승한 건 현 총리님이지.”
다케다의 의중 또한 읽혔다. 절대 혼자 죽지 않겠다는 의미였다.
“…….”
둘의 시선이 허공에서 사납게 얽혔다.
“최준호가 무서워서 꼬리를 말고 사라져도 상관없습니다.”
사생결단의 기색을 띤 히가 총리를 보며 다케다 의원은 혀를 찼다.
‘…어쩔 수 없나.’
팔 하나를 과감하게 내놓으면 될 것을, 권력에 미쳐서 그 이상의 것을 원하고 있다.
외통수에 몰린 다케다 의원은 다른 타협안을 생각했지만 고개를 저었다.
여기에서 밀리면 끝도 없이 원할 것이다.
아마 히가는 자신의 팔을 내주더라도 자신이 꼬리를 말고 도망치는 그림을 원하겠지.
미치광이 전략을 고수하는 상대에게 똑같이 끝을 향해 달려가야 한다.
이미 둘은 절벽을 향해 전력질주 중이다.
‘제기랄.’
웃지도 울지도 못하는 표정이 된 다케다는 속으로 욕설을 내뱉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