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Crazy Villain Regains His Sanity RAW novel - Chapter 86
86화
키에에엑!
구슬프게 울부짖던 가람이 몸을 떨며 축 늘어졌다.
너덜너덜해진 네 다리로 힘겹게 지탱하다가 지면에 쓰러졌다.
쿵!
이 모든 광경을 지켜보던 나는 가볍게 혀를 찼다.
“이건 좀 의외네.”
플러스 단계에 접어들지 못한 가람 사냥은 어렵지 않았다. 근데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질겼다. 헤츨링이 죽은 걸 봐서 그런가? 차라리 살려 둬서 이용했다면 좀 더 쉽게 잡았을 텐데.
가람을 무력화를 시킨 뒤 나는 누리 때처럼 브레인워싱을 시도했다.
유해 8단계 마물이 테이밍 될지 한번 실험해 볼 생각이었던 것이다.
처음에는 거세게 저항하던 가람은 거듭되는 브레인워싱에 점점 약해지는 모습을 보였다.
저항이 잦아들고 내 메시지에 순종적인 반응을 했다. 테이밍이 되는가 싶던 순간, 돌연 가람의 눈이 번뜩이더니 살기를 폭사하며 내게 달려들었다.
캬아악!
그런데 그동안 봐 왔던 유해 8단계 마물과 달랐다.
힘이 덜 정제되었지만 거세게 폭주하는 힘의 크기는 누리와 비슷했다.
이 현상이 의미하는 바는 하나였다.
“마물이 각성이라니.”
놀라운 일이었다. 잠깐이지만 가람은 플러스 단계에 버금가는 힘을 발휘했다. 기프트로 추정되는 중력 조절로 잠깐이지만 날 당황하게 만들었으니.
하지만 결국 다시 쓰러지는 신세가 되었다. 그리고 브레인워싱을 재개하려 했는데 그 다음 보인 가람의 행동이 놀라웠다.
살기가 가득 담은 눈으로 날 노려보다가 흐릿해지더니 빛을 잃었다.
스스로 목숨을 끊은 것이다.
설마 브레인워싱에 굴복하느니 목숨을 끊는 걸 선택한 건가.
마물에게 이 정도 지능이 있을 줄은 몰랐다.
나는 어스 드래곤 성체와 헤츨링이 나란히 쓰러진 걸 한참 동안 우두커니 지켜봤다.
“······.”
내가 느낀 소감은 여기에 한 마리가 더 있으면 좋지 않나였다.
부모가 있다면 보통 두 개체가 아닌가?
배우자와 자식도 생을 달리했으니 나머지도 나타나서 나란히 잡히면 좋을 것 같은데.
그런데 한참 지나도 나타나지 않았다.
피 냄새를 풍겨야 하나? 그러기에는 내 감각에 걸려드는 게 없었다.
“자웅동체였나?”
10분 정도 더 기다려 보다가 나타나지 않아서 청와대로 연락을 취했다.
* * *
최준호가 정찰을 나간 것은 청와대의 선제적인 대응에 있었다.
그동안 인류는 유해 8단계 마물을 사냥함에 있어 수세적인 태세를 갖춰 왔다. 그 이유는 마물의 반응이 느껴진 곳을 탐색하려면 필연적으로 다른 마물을 상대하는 부담을 떠안아야 해서다.
만약 마물을 상대하고 있던 중에 유해 8단계 마물이 모습을 드러내면?
사냥팀이 전멸할 수도 있기에 차라리 저지선을 구축하여 유해 8단계 마물이 등장하길 기다렸다.
청와대가 이렇게 움직일 수 있던 건 전적으로 최준호의 존재가 있어서다.
비공식적으로 십대초인에 버금가는, 어쩌면 그 이상일지도 모르는 존재였다.
“이상 반응입니다!”
안동 방면을 예의주시하던 청와대로 긴급 보고가 올라왔다.
유해 8단계 마물의 등장은 국가의 존립과 직결된다.
아니, 각성자 강대국은 더 이상 8단계 마물에 큰 위협을 느끼지 않는다. 그동안 꾸준히 사냥했고, 데이터를 쌓아 사냥 노하우를 축적했으니까.
하지만 그 다음 등장한 플러스 단계는 강대국조차도 멸망으로 몰아넣을 수 있는 개체였다.
마물은 계속 등장하지만 사망한 초인은 보충하는데 오랜 시간이 걸리니까.
천명국은 체면도 고려하지 않고 달려가며 대응 명령을 내린 뒤 곧장 대통령에게 찾아갔다.
“8단계 마물이 등장했습니다. 경북 안동 방면입니다.”
“최준호 초인이 있는 곳이로군.”
“예.”
긴급한 상황이지만 대통령의 표정은 평온했다.
최준호를 믿는 걸까, 대한민국 각성자 전력을 믿는 걸까.
천명국은 둘 다라고 생각했다. 그곳에 최준호가 있으니 선제적으로 조치가 취해질 거라 보았다.
대통령의 시선이 천명국에게 향했다.
“플러스 단계인가?”
“불분명합니다.”
“플러스가 아니면 좋겠어. 아직 상대하기 버거워. 최준호 초인이 잘해 내겠지만 사고는 예상하지 못한 순간에 덮쳐 오니까.”
그 사이, 보고가 올라왔고 천명국이 환한 표정으로 보고했다.
“플러스가 아니랍니다.”
“그럼 사냥하기 한결 수월하겠군. 좋아, 곧장 움직이게.”
“일전에 입찰 받은 신성 길드에 곧장 연락해서 가람 대응책을 마련하겠습니다.”
새로 등장한 유해 8단계 마물의 이름은 가람이었다.
플러스 단계가 아니라고 해도 방금은 결코 금물이다.
대통령은 소기의 목적을 달성했다고 판단했다.
“우선 최준호 초인에게 먼저 연락해서 후퇴를 명하게.”
“예! 그럼 바로······.”
천명국이 움직이려고 할 때 비서관이 다급한 표정으로 달려왔다.
“실장님!”
대통령과 천명국의 시선이 동시에 비서관에게 고정되었다.
“왜 그러나?”
“유해 8단계 마물의 반응이 사라졌습니다.”
“사라져?”
“예! 완전히 사라졌습니다.”
대체 무슨 일이 벌어진 걸까. 대통령과 천명국의 시선이 마주쳤다. 둘 모두 어안이 벙벙한 얼굴이었다.
그것도 잠시, 대통령은 확신 어린 목소리로 말했다.
“무슨 일이 벌어졌어. 아마 최준호와 관련된 일일 확률이 높을 테고.”
“저도 같은 생각입니다.”
“반응이 사라졌다는 건 분명······.”
안 좋은 소식보다 좋은 소식일 확률이 높았다.
왜냐, 현장에 최준호가 있으니까.
사람이든 마물이든 그 손에 걸리면 누가 무사할까 싶다.
여러 생각이 교차할 때, 천명국의 스마트폰이 요란하게 울렸다.
“최준호 초인입니다.”
“받게.”
“천명국입니다.”
대통령의 허락이 떨어지자 곧장 전화를 받았다. 잠시 후, 그의 표정이 가볍게 굳어지더니 연신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을 했다.
“뭐라나?”
천명국이 허탈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8단계 마물을 사냥했다고, 뒤처리 할 팀을 보내 달라고 합니다.”
“예상대로군.”
“예.”
유해 8단계가 이렇게 쉽게 사냥할 수 있는 마물이었던가?
국가조차 멸망시킬 수 있는 마물을 상대하기 위해 총력을 다해 준비하고 있었는데. 개인이 어린 아이 손목 비트는 것처럼 쉽게 잡아 버렸다.
개인은 결코 국가를 뛰어넘을 수 없다.
절대 그래서도 안 되고.
이건 천명국이 변함없이 지켜온 신념이었다.
그런데 오늘, 최준호를 보면서 산산조각 나는 기분이었다.
국가가 멸망의 위협을 느끼며 준비해야 되는 개체를, 마치 어린 아이 손목을 비트는 것처럼 간단하게 해치우고 있었다.
“으허허허! 좋군, 좋아!”
이런 천명국의 심정을 모르는지 대통령의 웃음은 그칠 줄 몰랐다.
* * *
정찰을 나갔다가 8단계 마물을 잡게 되었다.
이 상황이 실제로 일어나고 말았다.
어스 드래곤 미성숙 개체를 발견했고, 장난처럼 부모님을 모셔 오라고 했다가 진짜 부모까지 잡게 되었다.
말 그대로 우연과 우연이 겹쳐 만들어진 해프닝.
한 마리가 더 걸려들길 바랐지만 그건 실패, 자웅동체거나 눈치를 채고 도망친 듯했다.
사냥 결과로 1조에 가까운 수입이 생겨났지만, 내가 ‘가람’으로 명명된 마물을 사냥한 내용은 전혀 다르게 각색되어 있었다.
진세정의 작품이었다.
“플러스 단계 마물의 등장으로 두려움에 떨 시민들을 안정시키기 위해 최준호 초인님이 결단을 내려 안동으로 갔다가 이뤄 낸 쾌거로 포장이 되었죠.”
“······.”
이마저도 포장해 내는 능력을 대단하다고 해야 할지, 무섭다고 해야 할지.
그냥 월급 값 하러 간 거고, 간 김에 보여서 잡은 건데.
의미부여하는 솜씨가 상상을 초월했다.
난 그걸로 진세정이 대단하다 생각했지만, 진세정은 여기에서 그칠 생각이 아닌가 보다.
“초인님, 여기서 끝낼 문제가 아니에요. 내일 다시 한번 가람의 사체가 전시된다고 했죠? 이번에는 그 자리에 꼭 참여하셔야 해요.”
“저번에는 참여 안 했는데.”
굳이 참여할 이유가 있을까?
가봤자 나보다 연상인데 오빠라 부르는 정체불명의 팬들이 모여들고, 사진이나 찍히는 신세일 텐데.
난 거절의 의미를 내비쳤지만 진세정은 단호하게 내 말을 잘랐다.
“그러니 이번에는 참여하셔야죠.”
“꼭 참가해야 하는 이유를 알고 싶습니다.”
“네, 우선 스포트라이트가 초인님에게 쏟아져야 하기 때문이에요. 이대로 두게 되면 가람을 사냥한 최대 공로는 정부가 가져가게 돼요. 하지만 가람을 사냥한 건 초인님이시죠. 그걸 국민들이 정확하게 알게 해 줘야 해요.”
누가 사냥한 건지 알리는 게 중요한 건가?
“네, 중요해요! 가장 중요한 부분이에요.”
내 속마음을 읽기라도 한 것처럼 말한다.
진세정은 내 눈을 마주하며 다시 한번 강조했다.
“누리의 경우 마음 넓으시게도 정부에 공로를 양보하셨죠. 지금 대통령님은 상식적인 분이라 초인님에게 고마움을 표하셨고요. 하지만 계속 고마움을 가질까요? 원래 한두 번은 고마움을 느끼더라도 그 다음은 당연하게 여기는 게 사람 심리에요. 어느 순간 정부는 사냥 성과만 챙기고 최준호 초인님은 사냥만 하는 게 당연한 인식이 자리하겠죠. 왜 사냥은 초인님이 했는데 성과는 정부가 챙겨야 하는 거죠?”
“······.”
“서서 빌려주고 엎드려 받는다는 말이 있어요. 저는 초인님이 거둔 성과를 정부가 생색내고 인심 쓰듯 콩고물을 나눠 주는 걸 원하지 않아요.”
“동감합니다.”
일리가 있는 말이다.
다만 진세정이 착각한 건 내가 가만히 있을 거란 부분이었다.
수틀리게 하면 가만히 있을 생각이 조금도 없는데.
날 착하게 봐준 건가? 하긴, 내가 정상인이니 그렇게 보는 것도 이상하진 않다.
내 수긍에 진세정의 표정도 한결 풀렸다.
“나중에 양보할 때 하시더라도 자기 건 확실하게 챙기셔야 돼요. 제가 주제넘었다면 죄송해요.”
“아니, 전혀 주제넘지 않았습니다.”
“다행이다. 사실 각오 단단히 하고 떨면서 얘기했거든요.”
···그런 것치고 막 얘기하는 거 같은데.
하지만 진세정의 얘기가 틀린 게 없었다.
나도 몰랐던 건 아니다.
그저 내가 귀찮고, 불편하다고 생각해서 신경 쓰지 않았을 뿐이지. 진세정의 말로 포기할 땐 포기하더라도 어떤 순서를 거쳐야 하는지 알게 되었다.
간단하게 요약하면 생색내라는 의미 아닌가.
오히려 이런 조언은 내게 필요한 것들이다.
“앞으로 제게 필요한 부분이다 싶으면 조언 부탁드리겠습니다.”
“그래도 되나요?”
“예.”
“그럼, 네. 그럴게요. 사실 드리고 싶은 말이 아주아주 많았거든요.”
싱긋 웃는 진세정을 보고 아차했다.
···실수다.
난 끝없이 이어지는 진세정의 수다 속에 그대로 파묻히고 말았다.
그래도 유익한 시간이었다.
새로운 스타일링을 실험하지만 않았다면 더더욱.
* * *
광장은 인산인해였다. 무수히 많은 사람들이 30m에 달하는 어스 드래곤 가람을 보며 탄성을 터뜨렸다. 일부는 사체임에도 무서워서 다가오지 못하고 있었다.
마물이란 시민들에게 그런 존재였다.
내 삶의 터전을 파괴하고 목숨을 위협하는 공포의 대상.
정부에서는 마물에 대한 두려움을 희석시키기 위해 마물을 사냥하면 이렇게 전시를 했다. 죽으면 별거 아니라는 일종의 시위이자 광고였다.
이세희와 정다현은 가람이 전시된 광화문 광장에 나와 있었다.
둘은 가람의 사체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서 대화를 주고받았다.
“이렇게 보는 건 새롭네.”
“응.”
“레벨 7에 오른 거 축하해.”
“고마워.”
“······.”
잠시 둘 사이에 침묵이 내려앉았다. 이세희는 정다현이 어색해하는 걸 보았다.
착한 아이 같으니라고.
자신이 자존심 상했을까봐 신경을 써 주고 있다.
자존심이 상한 건 사실이지만 그걸 겉으로 드러낼 정도는 아니었다. 이 감정을 부정적으로 표출하지 않고 자신의 성장을 위한 자양분으로 삼으면 된다.
이럴 때면 오히려 자신이 위로를 해 주곤 했다.
“나도 열심히 할 거야. 뒤처지는 건 내 성미랑 안 어울리거든. 그리고 초인은 내가 먼저 될 수도 있는 거잖아? 그러니 앞서 간다고 방심하지 마셔.”
“응.”
다시 살짝 어색한 분위기가 내려앉았다.
이세희도 이번에는 별말 하지 않았다.
시민들은 축제 분위기였다. 가람을 사냥한다고 대한민국이 마물의 위협에서 해방되는 것도 아니건만 즐거워하고 있었다. 짧게나마 환호할 수 있는 지금 이런 순간이 필요한 걸지도 모른다.
잠시 후, 광장에 조금 떨어진 곳에 대통령의 관용차가 모습을 드러냈다. 최준호가 먼저 내리고 경호를 받아 대통령이 내렸다.
주위에 최준호 외에 경호 인력이 없었다. 그를 향한 대통령의 신뢰와 자신감이 느껴졌다.
그리고 최준호.
검은 슈트를 쫙 빼입고 풀메이크업을 한 모습은 경호원 역할을 맡은 한류 스타같았다.
아니나 다를까, 사방에서 환호성이 터져 나왔다.
근데 왜 40대가 훌쩍 넘어 보이는 분들도 오빠라고 하는 걸까.
‘하긴, 뭐든 해낼 것 같은 믿음직한 이미지니까.’
새삼 진세정이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며 지켜보았다.
“멋지다.”
“···응. 근데 저렇게 꾸미는 거 누구 아이디어야?”
“진세정 씨라고 업계에서 유명한 분 있어. 왜? 아항.”
이세희가 입꼬리를 말아 올렸다.
장난감을 발견한 것 같은 눈빛에 정다현이 몸을 움찔 떨었다.
“왜, 왜 그렇게 보는데.”
“막 뺏기는 느낌이 들어?”
“아니거든.”
정다현이 부인했지만 이세희의 미소는 짙어지고 있었다.
완전히 말린 걸 느낀 정다현의 얼굴에 체념이 서렸다. 한 번 건수를 잡은 이세희는 상대가 백기를 들고 항복할 때까지 물고 늘어진다.
“다 알아. 원래 나만 알던 스타가 대중에게 인기를 얻으면 상실감이 크거든. 우리 귀여운 다현이, 많이 불안하셨어요?”
“아니라니깐.”
“난 다 알아.”
장난스러운 미소와 함께 어깨를 토닥여 주자 정다현이 그 손을 탁 쳤다.
얄미운 것!
이세희가 손을 부여잡고 국어책 읽듯 곡소리를 냈다.
“아,악, 레,벨 7 정,다,현,이 사,람 잡,는,다.”
“세희야, 넌 연기는 하지 마.”
“응, 안 할게.”
장난스러운 대꾸에 정다현이 웃음을 터뜨렸다.
* * *
시간은 순탄하게 흘러갔다.
가끔 가람을 사냥할 때와 비슷한 반응이 일어나서 정찰을 나갔지만 마물이 모습을 드러내는 일은 없었다.
서로 짜기라도 한 건가?
이게 결코 좋은 현상은 아닌 게, 반응은 있고 발견은 못하는 거라 유해 8단계 마물이 플러스 단계가 되어 나타날 가능성으로 비춰지고 있었다.
가람을 사냥하고 두 달이 지나고 이제 등장하는 8단계 마물은 전부 플러스 단계로 바뀌어 있었다.
학자들은 이를 놓고 마물 전체의 상향평준화라 칭했다. 마물들도 각성자들처럼 치열한 생존 경쟁이 펼쳐지면서 수준이 빠르게 올라가고 있는 것이다.
다음 등장할 플러스 단계 이름을 정부에서는 ‘소예’라 짓고 신성길드가 사냥 권리를 입찰 받았다.
이번 기회에 신성 길드의 역량을 보여주겠다며 이세희가 잔뜩 벼르고 있었다.
그런데 예상하지 못한 일이 벌어졌다.
-오빠! 지금 난리 났어! 언니하고 이사님하고 충돌했어!
윤희에게서 다급한 목소리로 연락이 왔다.
이 팀장은 이세희고 이사는 백군서였다.
둘이 충돌한 게 나와 무슨 상관일까. 백군서는 어차피 이세희가 신성그룹 회장이 될 때 반대에 서서 크게 이상할 게 없었다.
-오빠랑 관여되어 있어.
“나?”
윤희는 길드 내부 일이지만 내일쯤 다 퍼질 거라면서 다른 곳에 말하지 말고 나만 알고 있으라고 엄포를 놓은 뒤 자세한 내막을 설명하기 시작했다.
간단하게 요약하면 이세희가 날 옵저버로 넣은 것에 백군서가 자존심이 상했단다.
이세희 입장에서 희생을 줄이기 위한 보험이었지만 백군서 입장에서는 자신을 못 믿는 것처럼 비춰졌단다.
별거 가지고 자존심이 다 상하는군.
하지만 그렇게 생각할 것만은 아니란다. 신성 길드의 사냥 노하우 같은 것도 엄격하게 관리해서 일각에서 이세희의 실수라는 사람들도 있단다.
대체 왜? 신성 길드 사냥 방식이 그렇게 특수한 건가.
어차피 난 사냥팀을 꾸릴 생각도 없어서 흘려버릴 텐데.
“알았어. 나머지는 내가 알아서 할게.”
-설마 뒤집어엎으려는 건 아니지?
“내가 그럴 거 같냐?”
-어, 99% 확률로 그럴 거라 생각하고 있어.
···귀신같은 것. 그 방법을 생각하고 있던 걸 어떻게 알았지?
“안 그래.”
-괜히 주변 사람 불편하게 하지 마. 여기 내 직장이라고.
“오냐.”
통화를 끊고 나는 머릿속으로 방금 전 상황을 정리해 보았다.
길드 내부에서 의견이 엇갈리는 건 이상한 일이 아니다.
백군서가 이세희를 아끼는 척 하지만 결정적인 순간 돌아선 건 미래에 실제 벌어진 일이고.
소란을 수습할 수 없었는지, 다음 날 언론이 를 놓고 씹고 뜯고 맛보고 즐기기 시작했다.
그로부터 이틀 뒤, 소예 사냥 회의 자리에 신성 길드 핵심 간부들과 이세희, 백군서가 참여했다.
얼핏 봐도 둘 사이에 냉랭한 분위기가 감돌았다. 그런 와중에 이세희는 은연중 날 곁눈질했다.
나와 연관 있다 이거겠지. 언론에 내 이름도 올랐으니까.
아니면 얘도 윤희처럼 내가 사고 칠 거라 생각한 건가.
이거, 사람에게 믿음주기가 쉽지 않다 싶었다.
그래서 나는 뒤집어엎으려던 생각을 버리고 백군서에게 다가가 친절하게 물어보았다.
“대체 뭐가 불만입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