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day I became a dragon RAW novel - Chapter 149
“나야.”
“···너라고? 그게 무슨 말이야.”
“나랑 관련이 있다고.”
“지금 이 모든 일에 배후가 너라고 이야기 하는 거야?”
“이 일 뒤에 크루툰이 있다는 건 너희들도 알고 있잖아. 피차 간 보는 말은 하지 말자고.”
“간은 네가 보고 있는 것 같은데.”
“아니, 나는 문자 그대로 말을 하는 거야. 이 일은 나와 관련이 있어. 크루툰에서 나한테 좋은 제안을 해 왔거든. 나는 말지소더를 위해서 일하지 않아. 나는 나를 위해서 일하지.”
아, 그런 뜻이었어?
“흠, 그런 거까지 말해줘도 돼?”
“돼. 나를 지키기 위해서니까.”
“정보를 제공하는 게 너를 지키기 위해서다?”
“나는 말지소더의 기억도 조금 가지고 있거든. 골드 녀석들이 때에 따라서 얼마나 잔인해질 수 있는지도 잘 알고 있지. 여기서 내가 말 안 해주면 내 머리라도 열어서 들여다보려고 할 거 아니야? 그런 건 난 사양이야.”
뭐, 그렇게까지 할 속셈은 아니었다.
녀석은 인간이니까 내가 사용하는 [진실의 눈]을 막아낼 힘이 없었으니까.
그래도 순순히 말해주니까 이쪽도 편하기는 하네.
“그 제안이라는 게 뭐지?”
“뭐, 별일은 아니야. 이 일이 성사되면 크루툰의 이름하에 다시 드래곤으로 환생하기로 한 거지.”
“다시 드래곤으로?”
“아차, 나 한 번도 드래곤이었던 적 없지? 말지소더 그 새끼 기억 때문에 자꾸 헷갈린단 말이야. 아무튼 드래곤 환생권을 받기로 했지.”
환생권이라.
역시 신 정도 되니까 딜 자체도 스케일이 다르구만.
닥터의 말을 들은 나는 곰곰이 생각에 잠겼다.
그리고 결론을 내렸다.
“그럼 만약 환생을 못 하게 되면 어떻게 되는데?”
“그럴 일은 없어. 이건 크루툰의 약속이니까.”
“제아무리 크루툰이라고 할지라도 물질계에 봉인된 영혼을 데려가서 환생시킬 수는 없을 텐데.”
태연한 나의 말에 닥터의 얼굴이 얼어붙은 것처럼 굳어 버렸다.
“너, 지금, 그 말은···.”
“어, 맞아. 역시 머리가 똑똑하니까 눈치가 빠르네. 내가 누구를 환생시킬 능력은 안 되더라도. 누구를 봉인시켜서 환생을 못 하게 막을 수는 있거든.”
싸늘하게 굳어버린 닥터의 얼굴에서 시꺼먼 악의로 두 눈이 일렁인다.
짧은 순간 드러났던 악의는 순식간에 지우개로 지운 것처럼 감쪽같이 모습을 감춰 버렸다.
닥터는 처음 내가 방 안에 들어갔을 때와 같이 인형 같은 무표정으로 돌아갔다.
“그렇게 되고 싶지 않으면 말해. 마나핵폭탄 어디에다 감췄어?”
“그걸 말해주면 나한테 남은 건 아무것도 없는데?”
나는 진실의 눈으로 닥터의 머릿속을 들여다봤다.
복잡한 상념이 칵테일처럼 뒤엉켜 혼란을 빚어내고 있었다.
이건 혼란에 빠진 게 아니라 일부러 자신의 생각을 감추기 위해 수작을 부리고 있는 거다.
“남는 게 없긴 왜 없어. 적어도 네 목숨은 남길 수 있잖아.”
“그런 걸로는 거래가 안 돼. 차라리 봉인을 당하면 당했지.”
“정말 그렇게 생각해? 정말? 헤아릴 수 없는 억겁의 시간 동안 봉인구 안에서 영혼이 조금씩 세월에 풍화되어 가는 걸 견딜 수 있다고? 너무 자신감이 넘치는데. 악마나 마왕들도 세월의 흐름은 견디지 못해. 꺾어지고 부서지다가 결국 먼지 한 톨 남기지 못하고 스러져 버리지.”
은근히 피어를 끌어 올리면서 협박하자, 유리구슬 같던 닥터의 눈동자가 슬쩍 흔들리는 게 보인다.
그리고 녀석의 머릿속으로 짤막한 영상이 스치고 지나갔다.
복잡한 기계장치가 주렁주렁 붙어 있는 커다란 수정구 형태의 무언가.
연합의 요원 녀석들이 사용하는 BPM이라는 폭탄하고 비슷하게 생긴 물건이었다.
나는 직감적으로 마나핵폭탄임을 알아차렸다.
닥터의 상념은 짧은 순간 흐릿하게 떠올랐다가 금세 씻은 듯이 사라졌다.
이 녀석 멘탈 하나는 정말 대단하군.
조금 더 흔들어 볼까.
“말지소더 녀석을 누가 봉인시켰는지 알아?”
“물어보나 마나 바하마의 손들이겠지. 그걸 굳이···. 설마, 그게 너라는 이야기는 아니겠지?”
“맞아. 나야.”
나의 대답에 닥터의 심상이 지진이라도 일어난 것처럼 흔들린다.
그만큼 말지소더가 녀석의 안에서 차지하고 있던 비중이 커다랗다는 이야기겠지.
닥터의 머릿속으로 과거의 기억들이 주마등처럼 빠르게 스치고 지나간다.
말지소더의 기억을 갖고 녀석의 실험실에서 눈을 뜨던 순간.
온갖 종류의 고문 같은 실험에 시달리던 기억.
실험의 여파로 기괴하게 변형되어 버린 끔찍한 몸과 그에 따른 고통.
지금의 모습조차 말지소더에게 해방되고 난 뒤에 마법과 과학의 힘으로 어렵사리 회복한 것이었다.
격정, 분노, 회한, 기쁨, 혐오, 증오 말로 설명할 수 없는 온갖 감정들이 소용돌이치다가 어느 순간 차분하게 내려앉는다.
닥터의 내면은 마치 해탈이라도 한 것처럼 고요하기 그지없었다.
진실의 눈으로 녀석의 내면을 들여다보고 있던 나까지 녀석의 감정에 동화되는 것처럼 느껴질 지경이었다.
“이걸 너한테 말해주면 내가 어떻게 되는지는 잘 알고 있겠지? 대신이 이름을 걸고 한 약속을 저버리고 배신하게 되는 셈이다.”
“걱정하지 마, 우리가 지켜줄 테니까. 네가 분명 마나핵폭탄하고 LS변이제 같은 기술을 개발하기는 했지만 아직까지 아무런 일도 벌어지지 않았어. 충분히 정상참작이 가능한 범위라고.”
“그런 번지르르한 말만 믿고 안심하기에는 상대가 너무 나쁘다고 생각하지 않아? 상대는 크루툰이야. 아직 물질계의 법칙조차 제대로 정립되기 이전부터 존재해 왔던 태초의 대신이라고. 그녀가 자신을 배신한 나한테 어떤 고통을 선사할지 내 머릿속으로는 상상도 가지 않아. 크루툰에게 맞설 바에야 차라리 너한테 봉인당하는 편이 한 억만 배쯤은 더 나을 것 같은데?”
“왜, 크루툰만 생각하지. 이쪽에는 바하마가 있어. 바하마가 크루툰의 손에서 너를 지켜줄 거야.”
“나는 바하마를 못 믿어.”
“그럼 어쩌자는 거야.”
닥터는 무표정한 얼굴로 잠시 동안 말이 없었다.
“나를 놓아줘.”
“너를 놓아달라고?”
“용언으로 약속해. 나에게 아무 해도 끼치지 않고 이곳에서 놓아주겠다고. 그럼 마나핵폭탄이 있는 위치를 알려주겠다.”
닥터의 말에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위치만 알면 해체는 별로 어려울 게 없다.
공간마법으로 우주공간에라도 날려 버리면 그만이니까.
어차피 대량살상무기를 만드는 지식은 인간들 전반에 퍼져버렸지만 적어도 파멸이 오는 것을 늦추는 것은 가능할 것이다.
파멸을 늦춘다면 어쩌면 막아내는 것도 가능할지 모른다.
“우리의 보호를 받는 게 낫지 않겠어?”
“신들에게서 모습을 감출 방법 하나 정도는 만들어 놨어. 나는 크루툰을 저버렸고 바하마는 믿을 수가 없어.”
닥터의 말에 나는 어깨를 으쓱해 보였다.
스스로 그렇게 하겠다는 데 녀석을 붙잡을 명분도 없었고 그러고 싶지도 않았다.
얼굴은 검둥이와 비슷했지만, 녀석은 검둥이가 아니었으니까.
“마나핵폭탄의 위치는···.”
나는 닥터로부터 연합과 제국에 감춰져 있는 마나핵폭탄의 위치를 전해 들었다.
진실의 눈으로 들여다보니 거짓이 아니었다.
녀석이 약속을 지켰기에 나도 약속을 지켰다.
연합은 어차피 닥터의 기술을 전부 손에 넣고 닥터에 대한 흥미가 떨어져 있어서 큰 문제는 발생하지 않았다.
연합이 이미 닥터의 기술을 전부 손에 넣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닥터에 대한 흥미가 떨어졌으니까.
*
닥터를 놓아주고 난 뒤 나는 곧장 타다스트라에게 이 일에 대해 보고했다.
제국에 있는 마나핵폭탄의 위치를 손에 넣은 바하마의 손은 곧장 알아낸 위치로 출발했다.
그에 맞춰 나도 연합령에 숨겨져 있는 마나핵폭탄을 찾았다.
마나핵폭탄은 연합의 하수도에 감춰져 있었다.
당연하다면 당연할 수 있는 것이 연합에 가까울수록 더 많은 피해를 강요할 수 있기 때문이다.
거미줄처럼 얽혀 있는 하수도를 지나 목적지에 도착하니 인간의 악의적인 망상에서 튀어나온 것 같은 괴물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
인간과 문어, 곤충을 섞어 놓은 듯한 괴물은 넓은 하수구를 꽉 채울 만큼 거대했다.
게다가 MPB기술을 적용시켜 놨는지 마나를 밀어내고 있었다.
이 녀석도 닥터의 작품인가?
생명체가 어떻게 마나를 배제하고 살아있을 수 있는지 의문이었지만 지금은 그런 의문을 해소할 때가 아니었다.
—–!
몸을 뒤틀며 온몸으로 소리 없는 괴성을 내지른 괴물이 촉수를 뻗어온다.
후-웅!
거대한 기둥 같은 촉수들이 태산이 무너지는 것 같은 박력으로 해일처럼 밀려온다.
“피해-!”
이건 도저히 마나를 사용할 수 없는 인간형으로 상대할 만한 괴물이 아니다.
본능적으로 알 수 있었다.
무한한 드래곤 하트의 마력을 끌어 올려 본체로 변신하자 같이 왔던 연합의 요원들이 경악하는 것이 느껴졌다.
푸화아아악-!
[영 어덜트 파이어 브레스]
나는 곧장 브레스부터 뿜어냈다.
물밀 듯이 밀려오던 촉수들이 드래곤 브레스에 노출되자 불판 위에 올라간 오정이 다리처럼 오그라든다.
잠깐 드래곤 브레스를 맞고 단순히 ‘오그라든’다고?
성룡이 된 내가 뿜어내는 파이어 브레스는 바위를 용암으로 만드는 것조차 모자라 완전 연소시켜 기화시킬 정도.
이 촉수 괴물이 지닌 내성은 놀라울 정도였다.
새까맣게 탄 촉수들이 각질처럼 떨어져 나가고 그 자리에서 새로운 촉수들이 동영상을 빨리 감기한 것처럼 자라난다.
물론 그걸 기다리고 있을 내가 아니다.
마법은 물론, 인벤토리도 사용할 수 없는 지금.
[드래곤 클러]를 뽑아내 거칠게 덤벼들었다.
양팔을 마구 휘둘러 촉수를 찢어발기고 피막을 접은 날개를 검처럼 사용해 몸을 가른다.
꼬리를 휘둘러 후려치고 이빨로 괴물을 물어뜯었다.
—–!
괴물 녀석도 그대로 당하고 있지만은 않았다.
소리 없는 괴성을 온몸으로 내지르며 촉수를 뻗어 나의 몸을 칭칭 감았다.
그대로 숨통을 조여 나를 죽일 셈이었다.
무너지는 태산에 깔린 것 같은 압력이 전신으로 느껴진다.
우득우득.
금강석보다 단단한 비늘과 가죽이 뒤틀리고 근육과 뼈가 어긋나는 소리가 전신에서 들린다.
괴물이 가진 힘이 놀라울 정도다.
“누렁아!”
아직 드래곤 하트가 완전하지 않은 검둥이와 다크는 외부마력의 보조 없이는 본체로 현신하지 못한다.
나의 위기상황을 본 검둥이가 앞뒤 가리지 않고 뛰어들려 하자 다크가 녀석의 다리에 매달리며 만류했다.
“이거 놔!”
“네가 가면 오히려 방해라고 멍청아!”
“이익! 그래도 가야 돼!”
“안 된다고! 아야! 아파! 때리지 마!”
“맞기 싫어면 놓라고!”
“안 돼!”
실랑이를 벌이는 두 녀석의 목소리를 뒤로하고 나는 괴물과의 전투를 속행했다.
생고무처럼 질긴 가죽을 뚫고 내장을 파헤쳤다.
괴물의 엄청난 재생력 때문에 마치 진흙을 휘젓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손톱과 날개로 가르고 지나면 그 자리에 곧장 살이 차오른다.
그래도 기어코 배를 찢고 들어가 괴물의 내장과 심장을 헤집었다.
배 속을 완전히 헤집고 난 다음에는 머리 위로 기어 올라갔다.
자기 배 속까지 따라 들어온 촉수가 머리로 기어오르는 나를 배 속에서 끄집어내려고 난리를 부린다.
짧은 순간 [해츨링 모드]로 변신해 촉수를 빠져나와서는 다시 본체로 변신해서 곧장 머리 위로 솟구쳤다.
두쿵! 두쿵!
심장처럼 거칠게 펄떡이는 거대한 뇌를 갈가리 찢어발기고 중간에 박혀 있는 코어까지 부숴버리고 나서야 괴물은 활동을 멈추었다.
괴물의 두개골을 쪼개고 밖으로 나오자, 놀란 표정으로 나를 향해 뛰어오던 검둥이 녀석이 코를 막고 멈춰 선다.
“윽, 냄새.”
괴물의 검은 피와 뇌수에 절인 내 몸은 마치 똥통에 들어갔다가 나온 것처럼 지독한 냄새가 났다.
끝
ⓒ 미래소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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