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Double Life of a Wicked Woman RAW novel - Chapter 59
59화
아나이스의 외침 후, 아무 대답을 하지 않는 귀족들을 가만히 지켜보기만 했던 카를시아가 식이 끝났음을 공표하였다.
“이후의 일들은 나중에 이야기하도록 하지. 오늘의 식은 이미 끝이 났다. 짐이 선포하였고 부사제가 축복하였다. 그러면 된 것이 아니던가.”
“하오나…!”
여전히 나를 못 가둬서 안달이 난 듯한 루시엘라 후작이 카를시아를 붙잡고 무언가를 더 말하려 하였지만, 아라한과 아나이스의 눈초리에 못 이겨 결국 꼬리를 내리고 말았다.
“그리고 부사제는 아르텐이라는 사제에 대해 소상히 알려 주도록 하고. 빈센트 공녀는…. 죄가 입증될 때까지 자택에서 근신할 것을 명한다.”
카를시아는 그렇게 말하곤 먼저 일어나 회장을 나섰다. 뒤따라 나서는 부사제와 아라한은 그저 나의 곁으로 다가와 나의 어깨를 토닥여 주었다.
“후, 폐하께서 분명 생각이 있으실 겁니다. 그러니 염려치 마세요. 엘리.”
“그래, 엘리. 저들이 무어라 지껄이든 이 할아버지가 널 지켜 주마.”
아나이스와 아라한은 내가 울적해 있으리라 생각한 것인지 다가와 위로의 말을 건네주었지만 사실상 난 아무렇지 않았다.
오히려 자택 근신이면 생각할 것들을 정리할 수도 있었고 애초에 공녀가 되고 차기 가주랍시고 검을 드는 것도 두려웠는데 잘된 일이라 생각하고 있었다. 아르텐이 나에게 준 소문들의 진위도 알아봐야 하고 이것저것 생각해 놓은 것들을 정리하려면 좋게 흘러간 방향이었다.
“괜찮아요. 어차피 좀 쉬고 싶었던 것도 있고.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후…. 에인과 함께 먼저 저택으로 가 있거라. 할아버지는 망할 꼬맹이와 꼴리는 것들과의 대화를 마무리 짓고 가마.”
“나중에 아나이스 님과 함께 저택에 방문하도록 하겠습니다. 그러니 먼저 쉬고 계십시오. 뭣하면… 그….”
무언가 말을 뜸 들이더니 이내 나의 귓가에 속삭이듯 이야기하는 아라한이었다.
“엘리의 디저트 가게에 달콤한 디저트를 미리 주문해 놓았으니 저택에서 디저트를 먼저 먹고 계십시오. 일이 정리되는 대로 찾아뵙겠습니다. 그리고 언제든 필요한 디저트가 있다면 주문하세요.”
“아……?”
아, 잊고 있었다. 나 인수 허가증 받아서 이제 (건물)주님이지! 저택에 가서 디저트를 먹으며 평안하게 다음 이야기를 정리하는 것도 나쁘진 않지.
“그럼 할아버지, 라트. 나중에 뵐게요.”
동등한 공작가가 되었기에 나는 가벼이 아라한을 ‘라트’라 불렀다. 그리고 그 부름에 흡족하다는 듯 미소 지으며 ‘네!’라 말하는 아라한의 모습에 저도 모르게 미소를 짓고 말았다. 그리고 그 옆의 아나이스는……. 표정이 너무 심각해요!! 얼른 푸시라고요!! 그러다가 아라한 잡아먹겠다!!
“아하하, 할아버지. 얼른 가 보세요~ 저는 먼저 에인이랑 가 볼게요~.”
“…그래.”
떨떠름한 표정을 뒤로한 채 카를시아가 향했을 그의 집무실로 걸음을 옮기는 아나이스와 아라한이었다. 그리고 회장에선 귀족파의 사람들이 몇몇 남아 있었기에 그들이 수군거리는 소리는 청각이 발달한 엘리자벳의 귀에 매우 잘 들렸다.
후우, 언제나 이 언니는 악녀이고 마녀구나. 그 누구도 그녀의 과거는. 진실은 중요하지 않았다. 불현듯 스쳐 가는 생각들이 아니었다. 부분 부분 만들어진 그녀의 과거 속엔 신전에 관한 일들은 물론이거니와 그녀가 황태자비로 거론되었던 그해의 기억이 사라진 것으로 보아서는 무슨 일이 있었다는 것을 어느 정도 추론할 수 있었다.
‘그리고 책에선 어릴 적이라고만 서술되어 있어서 그해가 어떤 년도인지는 모르지.’
찾아야 하는 것들이 산더미였다. 어서 디저트를 먹고 아나이스의 서재를 찾아봐야겠어. 그렇게 귀족파들의 수군거림과 황제파들의 시선을 무시하고 회장을 나서자 이미 대기하고 있던 에인이 나를 모셨다.
“엘리자벳 아르엘시아 빈센트 공녀님을 뵙습니다.”
“이름이 너무 길잖아. 그냥 평소대로 불러.”
“에이~ 그래도 이때 아니면 언제 이런 호칭으로 부르겠어요. 조만간 부단장님이 되실 텐데.”
“…부단장?”
뭐시여. 그런 이상한 소리 하지 마. 실제로 일어날까 봐 두렵잖아! 공녀로도 벅찬데 거기에 수호 기사단 부단장은 뭐냐고! 내가 눈을 동그랗게 뜬 채 자신을 바라보다 되레 고개를 갸웃거리던 에인이 이내 마차로 가자는 듯 손짓했다.
결국, 그의 에스코트에 마지못해 움직이는 척 걸음을 옮겼다.
“아 참, 나 건물주 됐어.”
“음? 갑자기요?”
“응, 라트가 공녀 된 선물로 줬어. 자택 근신 풀리면 디저트 주문하러 갈 거야.”
“그러다 살찌십니다.”
“숙녀한테 살 이야기를 하다니. 나중에 할아버지께 말씀드려 연무장 100바퀴 돌게 시켜야겠네.”
“윽……. 너무하십니다.”
이런 소소한 대화가 좋았다. 생각할 게 많지만……. 아, 그러고 보니 에인에게 조사하라고 일렀던 아그리아스 습지대에 대한 보고를 아직 못 들었네. 신전 다녀오고 나서 이것저것 바빠서 듣지도 못했구나. 디저트 먹으면서 물어봐야지.
그렇게 마차에 탑승한 나와 에인은 서둘러 공작저로 향했다.
* * *
카를시아는 집무실로 오자마자 자신을 뒤따라온 부사제를 향해 입을 열었다.
“분명 신전의 인장이었다. 그 말은 사칭의 범인이 신전에 있다는 것이겠지.”
“신전의 인장은 누구나 모방할 수 있는 일입니다. 게다가 공녀님께서는 일전에 신전에 방문한 적이 있는지라….”
“그때엔 라트도 함께 방문한 것으로 알고 있는데.”
부사제는 황제인 그가 무엇을 말하고자 함인지 잘 알고 있었다. 그녀가 범인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그녀를 범인으로 몰아 회장을 엉망으로 만들었다. 모르크 대제국의 지엄하신 황제 폐하, 카를시아 세닐 모르크가 직접 작위를 수여하는 그 자리에서 말이다.
그것이 카를시아는 맘에 들지 않았다. 더불어 14년 전 사건에 신전이 연관되어 있다는 것을 알고 나서 제일 먼저 의심한 것이 아르텐이었다. 해서 그를 불러 직접 신문하지 않았던가.
그러나 그는 초지일관 모른다는 말뿐이었다. 그 속에 거짓은 없었다. 자신이 알고자 하는 진실을 아는 자도 아니었다. 그렇다면 은밀하게. 아주 은밀하게 신전의 동향을 살피라 명했다.
아마 부사제가 말했던 징벌방의 죄목인 ‘대사제의 방을 함부로 들어간 죄’는 자신이 명한 그 일 때문이리라. 아무것도 실토하지 않았기에 징벌방에 있는 것이겠지.
“방금 그 발언은 제국의 재상도 공녀와 함께 신전을 사칭했다고 한 말과 같은데. 안 그런가.”
“……!! 어찌 저희가 제국의 재상 각하를 함부로 그리 말하겠습니까?!”
“제국 유일의 공녀는 괜찮고?”
그리고 이 사실을 회장에서나 이 자리에서 이야기한다면 신전의 반발로 인해 제국민들이 다칠까 염려스러운 카를시아였다. 실제로 신전의 힘은 원래 이토록 거대하지 않았다. 그러나 어느 순간부터 하나의 독립적인 국가처럼 그 세력이 커지더니 이내 제국 내에 큰 영향을 끼치게 되었다.
매년 그들이 행하는 정화 행사라든지 기도회든지 사냥제와 붙어 있는 수확제까지. 제국 깊숙이 들어온 신전의 그 세력을 이용하는 자들이 바로 귀족파였다. 이유는 간단했다. 귀족파엔 성녀라 불리는 오즈번 루시엘라가 있으니까.
그들은 만들어진 성녀든 신탁으로 내정된 성녀든 그런 것들은 상관없었다. 그들에게 오즈번은 철저하게 성녀여야만 했다. 그렇기에 엘리자벳은 악녀가 되어야만 했다.
모든 진실을 알게 된 카를시아에게 부사제는 그저 귀족파의 세력을 밀어주는 신전의 부패한 세력으로밖에 보이지 않았다. 저들로선 자신들이 성녀라 말하는 오즈번 루시엘라가 황후가 된다면 그토록 좋은 일은 없을 테니까.
자신들의 입지를 더 다지고 나아가서 제국에 끼친 영향력을 생각한다면 몇 해 만에 그들은 지금보다 더 큰 세력과 더불어 교황이라 불리는 새로운 황제를 만들어 낼지도 모를 일이었다.
“그런데도 공녀를 그렇게….”
‘쾅!!’ 둔탁한 문소리가 이윽고 방 안 전체에 울렸을 때 역시나 회장에 있을 때보다 몇 배는 더 무거운 눈동자와 중압감으로 걸어오고 있는 아나이스였다.
그 뒤에 날카로운 눈빛으로 부사제와 카를시아를 지그시 바라보는 아라한까지. 그 모습을 보고 있자니 절로 한숨이 나온 카를시아가 우스갯소리로 입을 열었다.
“아나이스 님 때문에 그 문…. 벌써 4번째 바꾼 거 알고 계시죠? 이러다가 철문으로 바꾸겠습니다.”
“지금 그게 중요한 것이 아닐 텐데…!”
“알고 있습니다. 진정하세요.”
“지금, 이게!! 진정할 일이라 생각하는가!!”
우렁차게 울리는 아나이스의 고함이 쩌렁쩌렁하게 황제의 집무실 안에서 메아리치듯 퍼졌다. 이미 집무실의 문이 닫힌 지 오래지만, 밖에서 대기하고 있던 기사들도 절로 어깨를 움찔거릴 정도로 그 고함의 여파는 매우 컸다. 그만큼 그의 분노가 크다는 거겠지.
“망할 꼬맹이를 믿는 게 아니었다. 망할 신전을 믿는 게 아니었다!!”
“…방금 말씀은 취소해 주시죠. 빈센트 공작님. 방금 말씀은 아르켈미스 님에 대한 모독입니다!”
아나이스의 말에 되레 화를 내듯 그에게 사과를 요구하는 부사제였고 그 모습에 기가 찬 듯 아나이스가 조소하며 그를 바라보았다.
“그 편지가 대사제가 보낸 편지가 아니라 하였나. 부사제.”
“물론입니다. 분명히 이 필체는 대사제님의 필체가 아닙니다.”
“하…. 하하하하하!!”
당당한 부사제의 태도에 어이가 없다는 듯 큰소리로 웃던 아나이스가 걸음을 옮겨 집무실 앞에 놓인 소파에 앉아 부사제를 향해 입을 열었다.
“편지의 내용은 읽어 봤는가.”
“물론입니다.”
“그럼 그 내용에 언급된 ‘진실’과 ‘검’에 대한 이야기는 어찌 생각하지.”
“…신전을 사칭한 자의 편지 내용에 대해 생각까지 해야 합니까.”
편지의 내용을 읽지 않았던 카를시아와 아라한은 아나이스의 말에서 나온 ‘진실’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잘 알고 있었다. 또한 ‘검’이라는 단어에 모든 것을 알고 있던 아라한과 카를시아는 단번에 그 편지가 대사제의 편지라는 것을 확신했다.
14년 전의 사건. 곧 모든 진실을 아는 자. 카를시아와 엘리자벳의 기억을 봉인하고 엘리자벳이 검술의 영재라는 것을 아는 자. 그것을 아는 자는 신전에서 단 한 명밖에 없었다.
‘아르켈미스의 사자라 불리는 대사제’뿐이라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