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Duke is so good at magic RAW novel - Chapter 15
15화 마탑 (2)
“…과했군.”
카를이 정신을 차렸을 땐 이미 몇 시간이 지나, 달이 하늘에 떠올라 있었다.
팔과 다리가 물에 젖은 것처럼 무거웠다. 몸을 계속 움직이면서, 마력까지 소모한 탓에 찾아온 탈력감이었다.
아무리 마력을 많이 가지고 있다고 하더라도 몇 시간이나 쉬지도 않고 마법을 썼으니 당연한 일이다.
하지만 성과가 바로 눈에 들어오니 자기도 모르게 연습에 집중하게 되었다.
“고작 몇 시간 만에 이 정도라니.”
처음 마법을 사용했을 때는 둔기로 분류해야 했던 얼음 덩어리가 이제는 날카로운 고드름이 되어 있었다.
이전에 염동으로 날린 얼음 덩어리들은 고목을 꺾어서 부러뜨렸다.
이 고드름들은 염동으로 날린다면 아마 고목의 두꺼운 몸통을 꿰뚫어 버리지 않을까.
공터에 자라나 있었던 풀과 나무들이 ‘눈보라’의 연습 때문에 모두 얼어 죽은 것이 살짝 아쉬웠다.
“…특성 덕분인가?”
아무리 생각해도 숙련도의 상승이 말도 안 될 정도로 빠르다.
물론 그가 연습한 마법이 빙결 계열의 기초인 ‘얼음 화살’이긴 하지만 고작 몇 시간의 연습으로 이 정도의 성과를 얻다니.
새로 얻은 특성의 영향이 분명했다.
“분명 ‘기초’ 성장 보조 특성이었지.”
그렇다면 ‘심화’ 성장 보조 특성을 얻게 된다면 또 어떻게 될까.
필요한 포인트는 44점.
이제까지 얻었던 포인트의 두 배 정도 되는 양이었다.
5점짜리 특성이 이 정도 효율이라면, 50점짜리 특성은 과연 어떨까.
그걸 알기 위해선 기회가 될 때마다 착실히 포인트를 모아 놓아야 할 것이다.
“다음엔 이 특성을 먼저 골라야겠군.”
목표를 새로 다잡은 카를은 저택으로 돌아갔다.
* * *
이튿날, 카를은 아침 일찍 일어나 자신의 집무실에서 업무를 보고 있었다.
대부분의 실무는 가신들의 손에 이루어지지만, 카를의 손을 거쳐야 하는 일들도 있었다.
‘하.’
가신들이 올린 보고서와 서류를 읽고 사인을 하거나, 재검토하라는 도장을 찍을 뿐이다.
쉬운 일이다. 만약 카를에게 영지 운영에 관한 지식이 조금이라도 있었다면.
정현은 대학생이었고, 카를로스는 마탑의 마법사였다. 영지 운영에 관한 지식은 전혀 없었다.
‘역시 경영학과를 갔어야 했나….’
그런 생각을 하던 카를은 한숨을 푹 쉬고는 다시 서류들을 들여다보았다.
지식은 전혀 없었지만, 못 할 정도는 아니었다.
마법이라는 이능마저 강제로 분석해 이해시키는 능력이 그에게는 있었으니까.
그리고.
‘기초 사고 능력이라.’
새로 얻은 특성이 있었다.
분석을 통해 쉽게 풀어낸 문제가 이해의 도움을 받아 머릿속으로 흘러 들어오면, 그다음을 떠올리는 것은 사고의 영역이다.
‘모호하지만 확실히 도움은 돼.’
카를은 자신이 손에 들고 있는 보고서를 들여다보면서 그렇게 생각했다.
벌써 근처의 도시와 마을로 간 집행관들이 올린 보고서.
내용은 아직 20살이 되지 않은 이라도 재능과 의지만 있다면 모집해도 되겠냐는 것이었다.
‘여기에 내가 사인을 하면.’
따위의 생각을 했을 때, 이후의 가정을 할 수 있게 해 주는 것.
물론 카를 스스로도 충분히 할 수 있다. 하지만 한참 동안 머리를 쥐어 싸매고 고민할 시간을 필요로 하지 않았다.
‘큰 문제는 없겠지.’
카를은 마지막 서류에 사인을 마친 뒤 의자의 등받이에 몸을 기댔다.
아침 1교시도 힘들었는데 그 시간에 일을 하는 건 오죽할까.
잠시 눈을 감고 있었던 카를의 귀에 누군가 집무실의 문을 노크하는 소리가 들렸다.
몸을 일으키고 빠르게 자세를 가다듬은 카를이 말했다.
“들어오도록.”
집무실에 들어온 이는 집사 마이크였다. 칼리가 두리번거리면서 그를 뒤따라 들어왔다.
“가주님. 유리아 아가씨께서 보내신 편지입니다.”
“…벌써 답장이 왔나?”
“일반 전령이 아닌 마법사를 통해 보내고 받았습니다.”
“알겠다. 다른 용무가 있나? 없다면 수석 행정관 대리를 불러오도록. 황실과 관련된 문제로 이야기할 것이 있다.”
“예.”
카를은 밀랍 인장이 찍힌 편지를 조심스럽게 외투의 안주머니에 집어넣었다.
“칼리.”
“아, 응?”
“어떻게, 내 선물은 마음에 들었나?”
마침 그것과 관련된 말을 하려고 집사를 따라온 것이었다.
하지만 갑작스러운 물음에 미리 생각해 놨던 말들이 떠오르지 않았다.
눈앞에 있는 남자가 카를로스 크로우라는 사실을 알게 된 탓이었다.
아마 자신이 무슨 짓을 했는지 저 남자가 알게 된다면, 나를 죽이지 않을까.
그런 불안이 머릿속을 휘저었다.
“…….”
“따로 하고 싶은 말이 없다면 하지 않아도 된다.”
“아, 그게….”
마족들은 철저하게 계급을 나눈다.
타고난 핏줄과 가문 그리고 그들의 직업으로.
하지만 어떤 경우에도 반마(半魔)는 천민으로 구분된다.
그중에서도 그녀는 마족을 적대하는 엘프와의 혼혈, 그들의 표현에 따르면 잡종.
그래서 잡종의 손에 죽어 나간 그들이 짓는 절망적인 표정은 달콤하기 그지없었다.
살면서 처음으로 편안하게 잠들었다. 오랜만에 꿈까지 꾸었다. 악몽이 아닌, 달콤한 꿈을.
덕분에 복수를 이루었다.
혹시나 저 남자의 손에 죽더라도, 고맙다는 말은 하고 싶다.
“…살면서 처음으로 푹 잤던 것 같아. 고마워.”
“선물이 마음에 들었다니 다행이군.”
“아, 그리고 하고 싶은 말이 하나 있는데.”
그녀는 마른 침을 삼켰다. 손에서 식은땀이 흘렀다.
“무슨 말이지?”
“그, 전투 말이야… 그저께 말고, 처음에 평원에서, 혹시 기억해?”
“기억하고 있다. 왜 그러지?”
“…그때 우리가 퇴각했던 건 적 사령관, 그러니까 당신을 죽이는 데 성공해서였어. 알고 보니 실패였지만.”
“거의 성공이었다. 그래서 하고 싶은 말이 무엇이지?”
“……내가, 거기에 관여했었다고.”
카를은 그게 무엇을 뜻하는지 잠시 고민했다.
죽음의 순간은 상황이 너무나 급박했기에 기억이 정확하지 않았다.
그래서 제대로 떠올릴 수 있는 건 없었지만… 몇 가지 추론은 가능했다.
‘호위가 붙어 있었는데도 단숨에 당한 이유가 그것이었나.’
아무리 기습이었다지만 마법으로 대처하지도 못할 정도로 너무 순식간에 당했다. 호위로 가문의 정예병들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순수한 마족의 육체 능력만으로는 불가능한 일. 즉 마법이나 주술의 도움 없이는 불가능하고, 그 마법을 쓴 것이 칼리라는 말이었다.
“무슨 말을 하나 했더니 그런 거였나.”
“그래, 그러니까….”
자신의 목숨을 빼앗으려 했던 이를 살려 두는 사람이 있을까.
저 남자는 자신을 죽일 것이다.
그런 확신을 품고 있었음에도 칼리는 용기를 내어 말했다.
말하지 않아도 언젠가는 알게 될 사실이다. 그때 죽으나 지금 죽으나 차이는 없다.
그나마 다행인 점은 그 빌어먹을 놈들을 저 남자 덕분에 죽였다는 것….
“…이제 알아서 해. 죽이든, 쫓아내든.”
“기껏 들인 인재를 죽이다니. 내가 왜 그런 짓을 해야 하지?”
“아, 음?”
“아니면, 나를 또 죽일 생각이라도 있는 건가?”
“그건… 아닌데.”
“그러면 상관없는 일이 아닌가. 그대는 아무 걱정 말고 혈마법을 연마하면 된다. 서재에 관련된 책도 있으니 꺼내서 읽고.”
“……나 글 못 읽는데.”
“아, 그랬군.”
중세~근대를 배경으로 한 게임.
노예는 물론이고 평민 중에서도 글을 읽고 쓸 줄 아는 자는 드물었다.
마족은 그보다 더 심하니, 칼리가 글을 읽지 못하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
“그러면 내가 직접….”
―각하. 수석 행정관 대리 아틸렌입니다. 들어가도 되겠습니까?
“잠시 뒤에 이야기하지. 들어오도록.”
절묘한 순간에 노크와 함께 아틸렌이 들어왔다.
그의 손에는 아데나 제국의 법전과 여러 장의 서류가 들려 있었다.
“그래, 아틸렌, 법이 문제라 하였나?”
“예. 각하. 115년 전, 17대 황제께서 선포한 칙령이 법전에 문항으로 남아 있는 게 문제입니다. 군사 교육 시설의 설립에는 황실의 허가가 필요합니다.”
“나는 병졸을 기르는 학교를 짓는 것이 아님에도 필요한 건가?”
“예. 애초에 신설이 아닌 개편이라 법전의 문항에 위배되지는 않사오나… 걸리는 점이 몇 개 있습니다.”
아틸렌이 손에 들고 있었던 서류 한 장을 꺼내 들었다.
카를이 이미 확인하고 사인까지 한, 모집 진행 상황 보고서였다.
“현재 54개의 마을에서 73명을 모집했습니다. 이 비율대로면 약 600명 정도가 모집될 것으로 추정되는데… 수가 많습니다.”
“수가 많은 게 문제가 되는가?”
“기사와 마법사를 길러 내기 위한 학교라기에는 규모가 너무 큽니다. 타인이 본다면 병졸을 길러 내기 위한 훈련소로 오해받을 우려가 있습니다.”
카를은 아틸렌이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것인지 이해했다.
상대가 황실이니 함부로 말을 꺼낼 수 없기에 빙 돌려 이야기하고 있는 것이다.
그의 말을 짧게 줄이면, 학교의 규모를 가지고 황실이 문제를 따지면 입장이 곤란해진다는 것이었다.
“알겠다. 내가 직접 가서 허가를 받아 오겠다.”
카를 또한 그런 상황은 가능하다면 피하고 싶었다. 황실에 잘못 보였다가 반역자로 몰리면 아무리 공작이라도 목이 날아갈 수 있었으니까.
주변의 입을 단속해서 숨길 수 있는 칼리의 정체와는 다른 문제였다.
[신규 퀘스트가 발급되었습니다!] [최우선 목표 : 황제의 허가] [당신의 목표를 위해선 황제의 허가가 필요합니다. 만약 허가를 받지 않는다면 그는 당신이 학교를 세우는 의도를 의심하게 될 것입니다.] [보상 : 특성 포인트 +15]눈앞에 떠오른 퀘스트.
카를은 마른 침을 꿀꺽 삼켰다.
그때 자신의 수첩에 무언가를 적은 아틸렌이 말했다.
“알겠습니다. 마이크에게 마차의 수배를 부탁해 놓겠습니다.”
“고맙군. 단, 행선지는 제도가 아닌 북부 마탑으로 부탁하지.”
제도가 아닌 마탑? 아틸렌의 눈이 의문으로 휘둥그레졌다.
하지만 그는 그 의문을 입에 담는 대신 고개를 끄덕였다.
“수행원은 얼마나 데려가시겠습니까?”
“…한 명.”
혼자 다니는 것이 편했기에 필요 없다고 말하려 하던 그는 곧 생각을 바꾸었다.
“칼리를 데려가겠다.”
“…어? 나?”
“준비시키도록 하겠습니다.”
“고맙군. 아, 그리고 아틸렌 그대에게 부탁이 하나 있다.”
카를은 책상으로 돌아가 종이에 대고 무언가를 쓰기 시작했다.
‘확률은 4분의 1이지만, 무시할 수 없다.’
시나리오에서 발생하는 특수 이벤트, 전염병.
강력한 전파력을 가진 전염병은 동서남북 네 개의 공작령 중 하나로, 랜덤하게 발생한다.
게임의 극 초반부에 발생하는 특수 이벤트이기에 만약 자신의 영지에 발생할 가능성을 고려한다면 지금 알아 두어야 한다.
“…됐다.”
그가 종이에 쓴 것은 전염병의 증상이었다.
주로 고열과 복통, 그리고 구토를 겪는 전염병으로, 치사율은 그리 높지 않다.
하지만 이 전염병이 위험한 이유는 따로 있었다.
‘제대로 대처하지 못하면 반란으로 직결된다.’
안 그래도 제국이 망해 간다는 소문이 백성들 사이에서는 공공연하다. 전염병이 퍼졌는데 영주가 관심도 갖지 않고 방치하면, 그들의 분노는 하늘을 찔러 반란으로 직결된다.
“곧 여름이니 전염병이 돌 우려가 있다. 집행관들에게 그 사실을 숙지시키고, 이 종이에 적힌 것과 비슷한 증상을 단체로 겪는 마을이 있으면 보고하도록.”
“예. 알겠습니다, 각하.”
카를의 말이 끝나자 궁금해 죽겠다는 표정이 되어 있었던 칼리가 다급한 목소리로 물었다.
“나, 나를 왜 데려가?”
“이유는 나중에 설명하겠다. 마이크 집사가 밖에서 기다리고 있을 테니 그를 따라가도록.”
“어… 응. 아, 알겠어.”
그녀는 당황스러워하면서도 아틸렌을 따라 나갔다.
다시금 정적이 찾아온 집무실. 카를은 안주머니에 넣어 두었던 유리아의 편지를 꺼냈다.
커팅 나이프로 조심스럽게 밀랍 인장을 뜯어낸 그는 안에서 편지를 꺼내 읽기 시작했다.
“…뭐가 이리 많은 것이지.”
봉투가 두껍다 싶더니 글자가 빼곡한 편지지가 무려 열 장이나 되었다.
카를에게서 오랜만에 편지를 받아 보니 신기하다는 내용부터 카를의 찬탈에 대한 생각과 아덴 크로우를 향한 저주 섞인 말 몇 마디, 자신과 친했던 가신이나 하인들에 대한 안부의 말을 전해 달라는 말까지.
제가 LA에 있었을 때… 로 말을 시작하는 어느 야구 선수가 떠오를 정도로 말이 많았다.
“결론은 이건가.”
카를이 그녀에게 보낸 편지의 내용은 짧고 단순했다.
자신이 아덴 크로우를 밀어내고 공작이 되었다. 정리할 일이 많은데 잠시 본가로 올 수 있냐.
거기에 대한 답장은 당장은 힘들 것 같다, 였다.
“학교가 엄해서인가.”
그녀가 다니는 학교는 귀족 영애들이 다니며 사교나 화술 등을 배우는 아가씨 학교였다.
그것 때문에 학교는 학생이 기숙사 밖으로 나가는 것을 엄격히 통제한다. 그래서 당장은 불가능하다는 답장을 한 것이리라.
“한번 만나 봐야겠군.”
또 한 가지 더, 유리아를 만나러 가야 하는 이유가 있었다.
그녀와 같은 학교에 다니는 어느 영애 때문이었다.
카를로스의 방, 책상 서랍에서 나온 사람의 손으로 직접 짠 손수건.
그 손수건을 만들어 준 아나스타시아가 유리아와 같은 학교에 다니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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