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eldest son is eager for soccer RAW novel - Chapter (14)
장남은 축구가 간절하다 14화
“야, 7번은 무슨 7번이야, 에이스 등번호는 10번이지.”
“그래도 우리나라에서는 7번 아니냐?”
“10번이지! 리그에서도 제일 잘하는 애가 10번인데?”
“그건 너희 구단만 그런 거고. ㅈ병신 구단.”
“디질래, 진짜?”
훈련 내내 등번호 때문에 시끄럽다.
첫날과 많이 다르다.
첫날에는 감독의 목표대로 압도적으로 이길 수 있을까?
우리가 일본을 이길 수 있긴 한가?
이런 이야기로 시끄러웠거든.
어린아이들도 일본과 한국의 유소년 스포츠 격차가 얼마나 큰지 알고 있으니 그런 거다.
돈 좀 있는데 유럽까지 갈 정도로 모험하기 싫은 일부 집안에서는 일본으로 축구 유학을 보낼 정도니 말 다했지.
운 좋아 J리그에서 데뷔하면 K리그보다 돈을 많이 벌기도 하고.
씁쓸하지만, 이게 현실이다.
수십 년 전 많은 한국 선수들이 유럽보다는 돈을 벌기 위해 일본이나 중국으로 가는 것과 비슷하다.
아무튼, 그 소란스러움을 등번호 경쟁으로 잠재워 버렸다.
일본에 기죽어있던 아이들은 온데간데없고 자기가 좋아하는 등번호를 차지하려고 열정을 불태우는 아이들뿐이었다.
이런 거 보면 이정후 감독은 참 애를 잘 다룬단 말이지.
“딴, 따라란, 딴딴, 쿵짜짝, 쿵짜짝, 따라다라다라단.”
…지금 노래를 흥얼거리며 걸어오는 꼬라지를 보면 애를 잘 다루는 게 아니라 자기가 즐거워서 그러는 것 같기도 하지만.
그나저나 감독이랑 나란히 걸어오는 저 사람, 대장고 감독이다.
나중에 서울 UTD 감독이 되어 공세환과 진유준을 데리고 서울의 우승을 이끄는 K리그의 명장이다.
그러고 보니… 이제 막 프로 계약을 했던 두 사람을 적극 기용한 게 이 동아시아 교류전 때문이 아닐까?
가만, 그렇게 생각하니까 대장고의 걔도 있겠네.
대장고 감독의 페르소나.
훗날 서울의 폭격기로 불리던 방성환.
있다.
대장고 감독, 장한준 감독의 뒤에 멀대같이 큰 놈이 뒤따라 걸어오고 있었다.
나보다 네 살 많은 저 양반은 이성호 때문에 국대에서는 빛을 보지 못했지만, K리그 최고의 스트라이커가 되는 사람이다.
아, K-홀란드라고도 불렸다.
홀란드와 비슷한 스타일로 K리그를 두들겨 팰 놈이다.
이렇게 보니 대장고, 만만치 않다.
아무리 중학교 최고의 선수로 구성됐다 해도 어디까지나 단 한 명을 제외하고 전원 중1이니 이기는 게 신기한 상황이다.
“야… 포스 장난 아닌데.”
“저 형들 피지컬을 우리가 감당할 수 있나?”
“몸싸움하면 날아가겠는데?”
아니나 다를까 등번호 싸움하던 아이들이 잔뜩 쫀 표정으로 대장고 형들을 바라보고 있었다.
“야, 축구는 피지컬로 하는 게 아니야, 자식들아.”
쫀 아이들 사이에서 김효준이 거들먹거리며 말한다.
“지랄하네, 저기 저 키 크고 덩치 큰 형이 밀어붙이면 상현이 형이라도 힘들 거 같은데 뭔 개소리야.”
류준서의 말에 배상현이 눈을 부라렸다.
“뭐? 야, 내가 못 막을 거 같아?”
“아니, 사실이 그렇잖아요, 형.”
“그건 그래. 다른 건 몰라도 세트피스에선 어케 이기냐, 저 형들.”
배상현의 앓는 소리에 다들 침울해진 가운데 나는 유유자적 양말을 신고 신가드를 끼워 넣고 내 소중한 발목과 무릎을 위해 밴드를 착용한 뒤, 축구화 끈을 질끈 묶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레인자켓을 벗었다.
“태양아, 넌 안 쫄려?”
태연한 나를 보고 공세환이 나에게 물었다.
세상 물정 모르고 아무 생각 없는 공세환조차 키 크고 덩치 큰 형들 보니 긴장한 듯 잔뜩 굳은 표정이었다.
나는 피식 웃었다.
“쫄릴 게 뭐 있어. 그냥 최선을 다하는 거지.”
“그러다 지면?”
“뭐 어때 연습경기인데. 너 그거 아냐?”
“뭐?”
“작년인가 재작년에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1군이 리저브 팀한테 4대0으로 개발린 거? 리저브 팀 애들 평균 연령이 19살이었는데 개발렸어. 그거 생각하면 우리라고 못할 게 뭐야? 대장고가 맨유도 아닌데.”
“…근데 그거 비토르 펠리시아노가 다 한 거잖아.”
비토르 펠리시아노는 맨유의 유일한 희망이라 불리는 포르투갈의 신성이다.
“비토르? 우리 팀엔 윤태양이 있잖아.”
나는 그리 말하며 감독을 향해 걸어갔다.
* * *
“호오.”
어제 소집일 이후부터 이정후 감독의 시선은 주로 윤태양을 향했다.
아이들 중에 유난히 곱상하고 잘생긴 외모 때문은 아니었다.
저 아이에게는 뭐랄까, 말로 설명할 수 없는 아우라가 있다.
국가대표 소집이 처음이니 설렐 법도 한데 그러지도 않고, 감독이나 코치, 유럽파인 배상현 앞에서 접어줄 법도 한데 당당하다.
또래 아이들을 대할 때는 뭔가 몇 살은 더 많은 어른같이 보인다.
지금도 그렇다.
다들 키 크고 덩치 큰데다가 학원 축구의 명문으로 불리는 대장고를 상대로 기죽지 않는다.
혼자 태연하게 경기를 준비하고 아이들 앞에 당당히 팀에는 윤태양이 있다고 말한다.
동료들이 비웃을 법도 한데, 비웃기는커녕 모두가 홀린 듯 윤태양의 뒷모습을 바라보고 있었다.
“주장감이네.”
에이스이자 주장 그 자체다.
그 증거로 아직 그가 얼마나 잘하는지 모를 아이들이 침착하게 경기를 준비하고 있었다.
실력도 모르는 아이를 믿는다는 거다.
저걸 어떻게 설명한단 말인가.
저게 아우라나 포스가 아니면 뭐라 설명할 건가?
이정후 감독은 마음이 급해졌다.
서둘러 윤태양을 자기의 필드 위에 올려두고 싶었다.
“자자, 다들 주목.”
모여든 선수들을 바라보며 이정후는 말했다.
“연습경기니까 부담가지지 말고. 그렇다고 니네 맘대로 하라는 거 아냐. 시킨 대로 해. 물론, 처음이니까 내 지시를 100% 수행할 거라는 기대는 안 하니까 너무 그거에 얽매이지도 말고. 알았냐?”
“네!”
“좋아, 나가자. 아, 상현아! 이거 가져가야지!”
내심 윤태양에게 주장 완장을 주고 싶지만, 그래도 아직까지는 입증된 배상현에게 주는 게 맞았다.
배상현이 완장을 차고 들어가는 걸 마지막으로 모든 준비가 끝났다.
국가대표 유니폼을 입은 꼬맹이들과 파란색 첼시를 본떠 만든 유니폼을 입은 대장고 선수들이 나란히 섰다.
대장고의 선발은 1학년으로 이뤄져 있었다.
“쓰으… 주전으로 내보내 달라니깐.”
기어이 1학년을 내보낸 대장고 감독을 흘겨보던 이정후는 경기 시작을 알리는 휘슬에 시선을 돌렸다.
이정후는 이번 U-15의 전술 컨셉을 과거 콘테의 토트넘에서 따왔다.
예전이라면 어린아이들이 수행하기에는 어려운 일이지만, 요즘 아이들은 이 정도 전술은 어렵지 않게 소화한다.
자신이 어린 시절 티키타카의 개념조차도 이해 못했던 걸 생각하면 격세지감이다.
“태양이와 이성호가 잘해줘야 할 텐데.”
콘테의 토트넘에게서 착안한 이정후의 전술에 핵심은 윤태양이었다.
원래라면 중앙의 이성호가 해리 케인의 역할이 되어 팀의 득점과 어시스트를 책임지는 핵심이었지만, 지금은 윤태양이었다.
윤태양은 해리 케인이자 클루셉스키이며, 손홍민이 되어야 한다.
솔직히 말하면 프리롤이었다.
과연 서울에서 혼자 알아서 다하던 아이는 자기가 마음대로 플레이하고 부릴 수 있는 동료가 있을 때 어떤 모습을 보일까 궁금했다.
“뒤로뒤로뒤로!”
그 가운데 배상현의 우렁찬 소리가 들린다.
분명 대표팀의 선축이었고, 최지우가 호기롭게 공을 몰아 전진하고 있었는데 어느 순간 뺏겨 공수가 전환된 상황.
대장고는 복잡한 빌드업을 거치지 않고 후방 수비수의 롱패스로 단숨에 전방까지 공을 보냈다.
라인을 높이 올리지 않았지만, 피지컬 차이가 워낙 커서 순식간에 뒤가 털릴 수도 있는 상황이 연출된 가운데, 배상현이 침착하게 자신과 나란히 하는 두 명의 센터백을 뒤로 물리고 떨어지는 공을 잡은 대장고의 스트라이커, 방성환의 뒤에서 절묘하게 공을 가로챘다.
“유럽파는 유럽파네요, 확실히.”
코치의 말대로였다.
괜히 독일에서 데려간 게 아니고, 프로계약을 위해 만 16세만 기다리는 게 아니다.
게다가 배상현의 장점은 뛰어난 수비력뿐만이 아니었다.
뻥!
배상현에게는 전방으로 정확하게 공을 보내는 롱패스를 가지고 있었다.
나이 차이가 무색할 정도로 대장고 센터백보다 더 빠른 공이 정확하게 대장고 센터백과 골키퍼 사이로 떨어져 내린다.
다만 아쉬운 점이라면 대장고 아이들과 대표팀의 피지컬 차이였다.
평균 3살의 나이차는 자라는 아이들에게는 큰 격차였다.
머리 하나는 더 크고 근육은 더 단련되었으며, 그만큼 빠르다.
단숨에 빈 공간을 지우며 대장고 센터백이 공을 받으려는 이성호와 경합했다.
“와, 이성호……!”
그 순간을 지켜보며 코치가 감탄한다.
분명 머리 하나는 더 작은 이성호가 센터백의 견제를 견뎌내며 가슴으로 공을 받아냈기 때문이다.
받은 것까지는 잘했는데, 그 공을 받은 그대로 앞으로 넘어진다.
뒤에서 밀어붙이는 상대의 힘을 이기지 못한 거다.
삑!
심판의 휘슬과 함께 반칙이 선언되자 이정후는 고개를 갸웃했다.
“아, 저 거리는 애매한데.”
골대와 거리가 좀 되는 상황.
지금 U-15에는 프리키커가 지정되지 않았다.
이정후는 가만히 생각하다 윤태양을 가리켰다.
“오늘 네가 한 번 차봐라!!”
“저요?”
“그래!”
“네!”
윤태양이 히죽 웃더니 고개를 끄덕이고는 공 앞으로 다가갔다.
그 웃음이 왠지 모르게 자신감으로 비춰진다.
뭐지? 저 자신감은?
분명 자신이 확인한 기록을 보면 프리킥을 차본 적이 없는 게 확실할 텐데 도대체 어디서 나오는 자신감이지?
당최 이해할 수 없는 놈이다.
그런데 저 웃음이 허풍같이 보이지 않는다.
사람을 기대하게 만들고 있었다.
삑!
그 기대와 동시에 휘슬이 울린다.
태양은 지체하지 않고 그대로 세워진 공을 향해 달려가 공을 찼다.
공이 회전 없이 쭉 뻗어나가는 듯하더니 이내 공이 이리저리 흔들리다 아래로 뚝 하고 떨어진다.
예측이 어려운 무회전 프리킥.
그것도 상상 이상으로 빠르고 크게 떨어지는 낙차에 골키퍼가 미처 반응하지 못하고 공은 골라인 너머 바닥을 때리더니 골망에 감긴다.
세상에 조축에서도 흔히 나오는 무회전 프리킥이라지만, 새파랗게 어린 꼬맹이가 저런 수준급 무회전 슈팅을 보여줄 줄이야.
등줄기에 소름이 돋았다.
“와아아아아!”
“태양아!”
“골!”
기대조차 하지 않던 선제골에 대표팀 아이들이 열광하며 태양에게 달려들었지만, 태양은 그걸 피하고 뻗어오는 손마저 쳐내며 도도하게 하프라인으로 걸어갔다.
태양 특유의 세리머니를 하지 않는 세리머니가 나왔다.
“하하하, 진짜 난 놈은 난 놈이네.”
이정후가 기뻐 웃음을 터뜨렸다.
반대로 상대편 감독은 얼굴이 붉어져 대장고 학생들을 노려본다.
얼굴이 붉어진 건 대장고 감독뿐만이 아니었다.
대장고 아이들의 표정이 절 문을 지키는 사천왕의 그것처럼 험상궂게 일그러졌다.
그래, 상대가 골을 넣고 기뻐하지 않으면 저럴 만하다.
가뜩이나 골 먹힌 것도 화나는데 자신들이 먹힌 골이 그 정도로 가치가 없나 부아가 치밀어 오를 테지.
“그런데 감당되겠냐?”
이정후 감독은 재미있는 상황에 흥미롭게 필드를 바라봤지만, 대표팀 아이들에게는 난관이 찾아왔다.
광역도발에 넘어간 대장고 아이들이 빠른 패스와 피지컬을 바탕으로 거세게 대표팀을 밀어붙이기 시작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