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eldest son is eager for soccer RAW novel - Chapter (273)
장남은 축구가 간절하다 273화
“하아.”
가을은 한숨을 내쉬며 스코어보드를 바라봤다.
2대0, 전반 15분 만에 이튼 칼리지는 윈체스터 스쿨에게 두 골이나 헌납했다.
들은 대로 확실히 윈체스터 스쿨은 쉽지 않았다.
나름대로 체계가 있다고 해야할까?
우르르 몰려다니며 막는 걸로는 쉽지 않았다.
문득, 가을은 어젯밤 오빠와 전화 통화를 떠올렸다.
‘오빠, 걔들이 우리보다 잘한다는데 어떻게 해?’
-애들 경기는 축구를 조금만 배워도 차이가 많이 나지.
‘그럼 우리가 이기는 건 불가능이야?’
-아니, 그건 또 아니지.
‘그럼?’
-압도적으로 잘하는 사람 한 명만 있어도 경기가 뒤집히는 게 그 나잇대 축구야.
‘그게… 가능해?’
-알게 모르게 축구는 멘탈이 관여하는 게 크거든. 유소년 축구에서는 특히 더 해.
‘그럼… 멘탈을 흔들면 된다는 거네? 어떻게?’
-말도 안 되는 골을 넣으면 순식간에 분위기가 뒤집어질 걸?
말도 안 되는 골.
가을은 오빠가 넣었던 골을 떠올려 봤다.
오빠가 어떤 골을 넣었을 때 상대 선수들의 멘탈이 흔들렸더라?
생각해 보면 대부분 골들이 그러했다.
오빠는 절대 성격이 좋은 편은 아니어서 쉽고 정석적인 골을 넣는 편은 아니었다.
어떻게든 상대의 힘을 빼는 고약한 골을 넣고는 좋아했다.
태연한 척 오만하게 걸어가지만, 오빠의 동생인 가을은 안다.
저 표정 너머에서 속으로 히히, 하고 웃는 오빠의 실체를 말이다.
하지만 그 가운데에서도 상대 선수들이 가장 힘 빠지던 골이 있었다.
이건 자신도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때마침 상황은 윈체스터 스쿨의 공격을 막고 간신히 공을 가지고 있는 상황.
“여기!!”
가을은 손을 번쩍 들고 흔들었다.
여학생인 가을이가 손을 흔들자 윈체스터 스쿨의 선수들은 피식, 비웃음을 머금었다.
축구의 축자는커녕 그저 공부밖에 모를 이튼 칼리지의 샌님이 뭘 한다고?
그 가운데 가을은 공을 앞에 두고 골대를 바라본다.
“설마… 슈팅? 저 위치에서? 진짜 공부만 죽어라 했나보네.”
그걸 본 윈체스터 스쿨의 학생이 비웃는 사이, 가을은 그 학생의 두 눈이 휘둥그레 떠질 정도로 교과서적인 슈팅을 선보인다.
스핀을 잔뜩 먹어 크게 휘어 들어간 공은 먼 거리가 무색할 정도로 정확하게 골대 구석으로 빨려 들어갔다.
와아아아!
그 골을 본 순간 이튼 칼리지 학생들과 선수들 모두 환호성을 내질렀다.
한편, 윈체스터 스쿨의 선수들은 하나같이 벙 찐 얼굴로 그 모습을 바라본다.
심지어 윈체스터 스쿨을 따라온 윈체스터 시티의 코치는 그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아, 아니, 저게?”
적지 않은 유스를 키워본 코치로서도 처음 보는, 말도 안 되는 수준의 슈팅이었다.
저 나잇대, 아니 유스 전체를 포괄해도 저런 슈팅을 보여줄 수 있는 유스가 얼마나 될까?
“저 아이 뭐야? 왜 저런 데 있어?”
당장 여자 유스팀에 있어도 이상할 게 없는 아이가 고리타분한 이튼 칼리지에서 공부를 하고 있는 거지?
그 가운데 경기가 다시 시작된다.
한편.
“언니가 골 넣었어!”
“엉니!!”
관중석에는 오남매의 엄마인 지민과 겨울이, 보미가 앉아 있었다.
가을이가 친선대회를 한다는 이야기를 듣고 경기를 응원하기 위해 그나마 거동이 자유로운 세 사람이 찾아온 거였다.
“언니도 잘하네, 그지?”
지민의 말에 보미가 웅! 하고 대답하는 사이, 겨울이 고개를 갸웃한다.
“잘하는 거야?”
“그럼, 저 거리에서 골을 넣었잖니.”
“나도 저런 거 할 수 이써!!”
지민은 눈을 게슴츠레 뜨며 말했다.
“겨울이는 작아서 아직은 못할걸?”
“아니야, 겨울이도 잘하는데? 그지 보미야?”
“웅! 겨리 엉니! 잘해!”
“들었지, 엄마? 나 잘해!”
“그렇다고 해두자.”
지민은 겨울의 머리를 마구 헝클어주고는 필드를 바라봤다.
축구를 잘하는 아들을 둔 덕분에 필드는 익숙했지만, 그 필드에 가을이가 뛰는 모습은 상상도 못했다.
“우리 가을이도 축구 선수가 되고 싶은 걸까나?”
이튼칼리지까지 가서 축구라니, 뭐, 이러나저러나 뒤늦게라도 자신의 꿈을 찾는다면 상관없긴 하다만.
“어머?”
그 와중에 가을이는 경기 시작과 동시에 공을 뺏어 전진하기 시작했다.
그 옆에는 마치 공주를 호위하는 기사처럼 가을이보다 머리 하나는 큰 남자아이가 가을이를 지키며 함께 달려가고 있었다.
가을이는 자신을 지키며 달리는 동급생, 엘튼을 적절하게 이용했다.
세 명이 길 앞을 가로막아 도저히 뚫을 수 없을 것 같자 엘튼에게 패스를 돌리고 상대 선수들을 비집고 앞으로 나아가며 공을 받아 전진했고, 코앞에서 자신을 견제하는 상대 선수를 두고는 엘튼을 바라보며 패스를 하는 시늉을 해 속이더니 그대로 제치고 골대 앞까지 나아갔다.
이제 남은 건 골키퍼.
가을은 침착하게 골키퍼를 바라보고 왼발을 휘둘렀다.
골키퍼가 반응하기 어려운 낮고 빠른 슈팅이 골라인을 넘어 골 그물에 휘감겼다.
와아아아아아!
다시 한번 함성이 울려 퍼진다.
“동점! 동점이야!”
“이 자식들 축구 잘한다고 하더니만 별 거 없네!!”
“이대로 한 골만 더 넣자!!”
이튼칼리지의 사기가 올랐다.
반대로 생각지도 못한 상대에게 두 골을 내준 윈체스터 스쿨은 멘탈이 크게 흔들렸다.
재개된 경기 그들은 조급하게 경기를 풀어나가며 초반 두 골을 넣을 때처럼 날카로운 모습을 보여주지 못했다.
대신 그들은 이튼칼리지의 7번, 윤가을이 이 팀의 에이스인 걸 파악하고 철저하게 가을과 그를 돕는 엘튼을 막아 이튼칼리지의 추가 득점을 막았다.
그렇게 정처 없이 시간이 흘러 전반이 끝나고 후반도 거의 끝나갈 무렵.
“후…….”
가을은 크게 심호흡했다.
오빠는 전, 후반 90분을 쉬지 않고 뛴다.
하지만 평소 운동을 하지 않는 가을이는 쉬엄쉬엄 뛰었는데도 70분을 제대로 소화하지 못하고 있었다.
후반에는 지쳐서 거의 뛰지 못한 상황.
“음…….”
가을이는 고민하다가 엘튼에게 다가갔다.
“엘튼.”
“응?”
“프리킥 넣기 좋은 위치에 가서 반칙을 당해.”
“바, 반칙을 유도하라고? 가만, 그런 걸 어디에서 배운 거야?”
엘튼의 말에 가을은 어깨를 으쓱하며 말했다.
“우리나라 말에 서당개 3년이면 풍월을 읊는다는 말이 있어.”
“그게 무슨 뜻이야?”
“아무튼, 가서 도발을 하든 뭘하든 반칙당하라고. 이기게 해줄게.”
가을의 말은 묘하게 태양을 닮아있었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갈색으로 빛나는 가을의 눈동자는 거역할 수 없는 아우라를 뿜어내고 있었다.
엘튼은 자신도 모르게 침을 꿀꺽 삼키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아, 알았어.”
엘튼은 지금까지 살면서 자신에게 반칙을 유도하라는 심부름을 받을 줄은 꿈에도 몰랐다.
영국의 유력한 귀족 가문의 장남인 그가 언제 어디서 아랫사람 취급을 받아보겠는가.
“서, 성공한다면 괜찮은 작전일 것 같아서 하는 것뿐이야.”
엘튼은 스스로 자신을 달래며 남은 시간을 불태우기 위한 것처럼 전력을 다해 골대를 향해 달려갔다.
가을이가 타이밍 좋게 엘튼에게 공을 패스한다.
신기하게 발에 착 감기는 공을 두고 엘튼은 골대를 바라봤다.
순간 욕심이 일어난다.
이 위치라면 골을 넣을 수도 있을 것 같은데?
엘튼은 눈앞에 상대를 두고 툭툭 치고 옆으로 가다가 기습적으로 앞으로 전진했다.
그 순간 수비가 쫓아와 어깨와 다리를 들이민다.
이튼칼리지에서는 어깨에 힘 좀 주고 다닌다는 엘튼이지만, 때마침 상대는 윈체스터 시티에서 정규 훈련을 받고 내년엔 정식으로 유스팀에 합류할 예정인 아이였다.
피지컬에서 밀려난 엘튼이 볼품없이 나뒹굴었다.
삐익!
기다렸다는 듯 울리는 주심의 휘슬.
프리미어 리그라면 이 정도 가지고 휘슬을 불 일이 없지만, 여기는 학교 친선대회였다.
가차 없이 휘슬이 나오고 프리킥 선언이 나온다.
“잘했어, 엘튼.”
가을은 엘튼의 어깨를 두드려 주고는 공을 챙겼다.
가을! 가을! 가을!
가을이 프리킥을 준비하자 관중석에서 이튼칼리지를 응원하는 학생과 교직원, 그리고 가족들이 일제히 가을의 이름을 외쳤다.
가을은 그런 사람들을 잠시 바라보다가 골대를 향해 슈팅했다.
가을의 발에서 떠난 공이 회전해 곡선을 그리며 골대 구석을 노리고 쭉 뻗어간다.
태양의 프리킥을 생각하면 한없이 느린 공이지만, 또래 아이가 막기에는 어림도 없는 공이었다.
윈체스터 칼리지의 학생은 망연자실한 표정으로 골망을 가르는 공을 바라봤고, 이내 작은 관중석 가득 함성이 울려 퍼졌다.
가을이 인생 첫 해트트릭, 그리고 승리를 확정짓는 골이었다.
* * *
“언니 프리킥 차는 거 봤지?”
“웅!”
가을의 경기를 보고 온 겨울은 마당에서 보미를 앉혀놓고 말을 걸었다.
보미는 알아듣기라도 한 것처럼 힘차게 고개를 끄덕이다 순간 휘청였다.
이제 1년 하고도 8개월 정도 된 아기, 보미는 자기 몸을 완벽하게 컨트롤하지 못하고 있었지만, 그렇다고 넘어지진 않았다.
아이 답지 않은 균형감각이 신기할 법도 하지만, 겨울은 그게 당연하다는 듯 보미를 바라보다 공을 자신의 발 앞에 둔다.
“엄마는 대단하다고 하는데, 내가 보기엔 아니란 말이지.”
겨울은 그리 말하고 멀리 나무를 바라보고 공을 퉁하고 찼다.
공은 당연하다는 듯이 그 나무를 정확히 맞췄다.
그걸 본 보미가 박수치는 사이, 겨울은 또 다른 공에 스핀을 잔뜩 먹여 찼다.
공이 스핀을 먹은 상태로 바닥에 통통 튀기며 나아가다 거짓말처럼 아까 그 나무를 맞춘다.
“어어엄청 쉬운데. 그지?”
“웅!!”
“언니 축구 선수나 할까?”
“웅!!”
“너는 응밖에 할 줄 아는 말이 없어?!”
“보미 말 자래!!”
“그래, 말은 잘하네. 추우니까 들어가자.”
겨울이는 보미와 손을 잡고 집으로 걸어갔다.
한국이라면 초등학교 3학년에 다닐 나이인 겨울이는 아직까지 이렇다 할 꿈이 없었다.
하지만 열심히 학교를 다녀본 결과 겨울이는 본능적으로 알 수 있었다.
자기는 공부와 인연이 없다는 걸.
아직 크지 않아 그걸 입 밖으로 표현할 줄은 몰랐지만 말이다.
뭐, 사실, 미래를 결정지을 나이가 아니기도 하고 말이다.
하지만 최근 가을이가 축구 경기를 하는 걸 보고 축구를 하는 게 멋있고 재밌어 보인다는 걸 느꼈다.
물론, 큰오빠인 태양이를 보며 항상 멋있다는 생각을 하긴 했지만, 뭐랄까, 태양이 정도는 되어야 할 수 있는 걸 자기보다 운동신경이 없는 언니가 하는 걸 보고 자극을 받았다고 할까?
“큰오빠한테 물어볼까?”
“크노빠? 물어?”
“응. 언니가 축구해도 될까 싶어서.”
“무러봐!”
그래야겠다고 마음먹었던 겨울은 멈칫했다.
“맞다. 지금 박싱데이야!”
“그게 머야?”
“크리스마스!”
“산타 하부지?? 보미 선물!!”
겨울이는 보미를 가소롭다는 듯이 바라봤다.
산타를 믿다니, 애기는 애기군.
하지만 자신도 믿는 척 해줘야 한다. 그래야 선물을 받을 테니까.
“크쓰마쓰! 보미 조아! 산타!”
“응… 근데 큰오빠는 크리스마스에 바빠.”
“바빠? 왜?”
“오빠는 왕이니까.”
“왕인데 바빠?”
“왕이니까 바쁘지.”
왕으로 불리며 모두가 사랑하는 태양이지만, 겨울이 보기에는 왕으로 불리는 오빠는 자기들이랑 놀아줄 시간도 없을 정도로 바쁜 사람이었다.
“축구 안 해야겠다!”
바쁜 건 딱 질색인 겨울은 금방 축구 선수의 꿈을 접었다.
물론, 언제 또 바뀔지 모르지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