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Extra Is Too Strong RAW novel - Chapter (1006)
엑스트라가 너무 강함 1006화
이레티샤 하음은 세독마에서도 등장한 인물이었다.
강대한 예지자이며, 신화의 존재로서 현세의 활동에 많은 제약이 따르는 그의 역할은 지대했다.
예지능력으로 많은 세계파편의 단서를 찾아내어 반역의 용군단에게 안겨주었고, 용황제 오율에게 위험을 경고하여 에이단의 계획을 어긋나게 만들었다.
하지만 결국 예지는 이레티샤 하음 자신을 파멸로 이끌었다.
그가 본 수많은 예지 중에 오직 스스로를 에이단 앞으로 내몰아서 죽는 선택만이 용황제 오율에게 승리의 가능성을 열어줄 수 있었기 때문이다.
에이단은 최강의 술법사로 불리는 용황제 오율을 상대하기 위해 온누리 각지에서 혼란을 일으켜 그녀의 손발을 어지럽게 만들었다.
서대륙에서 우르핀 제국 내전을 통해 에이단은 이미 인간의 형상을 한 흑마법의 화신이 되어 있었다.
마법사로서의 천재성으로 끊임없이 흑마법의 비의를 발전시켜온 데다가 수백 개의 세계 파편을 손에 넣는 과정에서 접한 온갖 신화의 비밀이 그를 신조차 죽일 수 있는 경지에 올려놓았다.
그는 고대의 비술과 세계 파편의 힘을 이용, 인간이 해서는 안 될 최악의 사태를 저지른다.
온누리 곳곳에서 인간과 용족을 제물로 삼아 강대한 마족들을 직접 소환하고, 대륙의 마계화 현상을 모조리 온누리 제국으로 끌어온 것이다.
강대한, 특히 자신들의 국토를 지키는 것에 있어서는 몇 배로 강해지는 온누리 제국조차 총력을 기울여야만 하는 멸망의 위기.
그런 사태를 빚어내어 반역의 용군단, 그리고 온누리 제국군의 역량을 모조리 분산시킨 에이단은 유유히 황궁으로 침입한다.
이때 그를 따르는 동료들은 이미 그와 함께 어둠에 몸을 담근, 흑마법의 힘으로 인간을 초월한 자들뿐.
황궁 경비병력조차 상당수를 멸망의 위기를 막기 위해 빼낸 상태라 온누리 제국 황궁은 속절없이 에이단의 침입을 허용하고 만다.
에이단이 노리는 것은 온누리 제국 황궁에 존재하는 거대한 고대 시설이었으며, 이 시설을 통해 그가 준비한 의식을 치르는 순간 온누리 제국은 더욱 멸망에 가까워질 상황이었다.
그러나 그 시설에 발 들이는 에이단의 앞을 이레티샤 하음이 가로막는다.
예지에 따라서 자신의 죽음이 확정적임을 알면서도 이레티샤 하음은 그 앞을 가로막았다.
에이단이 그가 확실한 죽음을 예지했으면서도 굳이 그 파멸을 향해 걸어가는 이유를 묻자 그는 대답한다.
‘이것이 이 세상에 또 한 번의 기회를 줄 수 있는 유일한 선택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는 자신을 비웃는 에이단과 전력으로 싸워서 처참하게 패한다.
에이단이 막대한 제물을 바쳐 얻은 힘으로 일방적으로 그를 찍어 눌러 죽이는 과정이었지만, 그럼에도 그는 호락호락하게 죽어주지 않았다.
자신의 목숨을 제물로 바쳐 펼친 술법이 에이단이 정신을 악몽의 세계로 인도하여 그 정신에 끔찍한 균열을 남겼으며…….
‘슬프군. 파멸의 왕 에이단, 네가 뜻을 이룬다 한들 얻는 것은 공허뿐이리라.’
에이단이 노렸던 고대 시설을 파괴함으로써 에이단의 노림수를 막는 데 성공한다.
그것이 그의 최후였다.
* * *
‘이 세상에 또 한 번의 기회를 준다…….’
이제 와서 그 내용을 되새겨보니 의미심장한 느낌이 들었다.
세독마를 볼 때는 저 대사의 의미가, 궁지에 몰린 반역의 용군단이 사태를 수습하고 다시금 에이단을 막아설 기회를 의미한다고 생각했다. 실제로도 그런 내용으로 흘러갔고.
하지만 아무리 예지능력자가 돌려 말하기를 좋아한다 해도 굳이 저런 표현을 쓸 이유가 있었을까?
‘어쩌면 그는 용황제 오율과 대마법사 사무스의 계획을 알고 있었고… 저 최후가 그것과 관련이 있었을지도 모르겠군.’
이 세계를 회귀시키고 지구인 엄태성의 영혼을 불러와 모르드로 전생시킨 것은 대마법사 사무스와 용황제 오율의 합작이다.
이제 그것은 추측이 아니라 확신의 영역이었다.
‘어떻게 그런 일이 가능했을지는 의문이지만…….’
그럼에도 그들이 어느 타이밍에, 어떻게 이런 일을 한 건지는 도통 짐작이 가지 않는다.
그 결과 그들이 역사에서 퇴장한 것을 보면 큰 대가를 치른 것 같고, 원래 강대한 능력을 지닌 마법사나 술법사가 스스로를 제물로 삼으면 놀라운 일이 가능하긴 하지만…….
‘여전히 알 수 없는 문제군.’
모르드는 한숨을 참으며, 눈앞의 일에 집중하기로 했다.
“이레티샤 하음이 황제라면, 란팔로제는 북누리에서 어떤 위치에 있는 거지?”
“진룡장군이라고 불리는 걸로 알고 있소. 독립 작전권을 갖고 움직인다는 것 같지만 그 이상은 우리도 파악하지 못했지.”
한울왕자가 모르드가 물으면 묻는 대로 정보를 술술 말해주자 부하들은 당혹스러워하는 기색이었다. 처음 만난 미지의 세력과 접선하는 와중이다. 이런 정보 하나하나가 귀중한 거래의 대상이 되어야 하지 않겠는가?
하지만 그는 부하들이 그런 시선을 보내는 걸 알면서도 모르드에게 숨김없이 정보를 말해주었다. 그가 눈치가 없는 사람이어서는 결코 아니었다.
모르드는 턱을 쓰다듬었다.
“그렇군…….”
하긴 서대륙에서 다른 용족들, 그것도 하나하나가 최고급 인력이라고 할 수 있는 최정예 병력이 란팔로제를 지키겠다고 목숨을 초개같이 던진 것만 봐도 꽤 높은 지위에 있는 것만은 분명했다.
‘북누리의 사회상은 반쯤 신화로 회귀한 상황이라고 봐도 과언이 아니겠군. 하지만 그들에게 매달리지 않고서는 아무런 희망도 볼 수 없는 상황인가.’
모르드는 탄식했다. 비록 적이긴 하지만 그들이 그런 선택을 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를 이해할 것도 같았다.
“정보 고맙다. 보답으로 알려주지. 항구도시 가포는 당분간은 제 역할을 하지 못할 거다.”
“가포를 파괴한 게 여러분이었소?”
한울왕자가 놀라서 물었다.
모르드 일행이 새벽 반도에 상륙해서 벌인 첫 전투는 김 아르센이 생생하게 목격했기에 자세한 정보를 갖고 있었다.
하지만 가포의 일은 아니었다. 용하에서는 워낙 멀리 떨어져 있었고, 가포에 모인 단죄자 병력이 많은 만큼 경계가 삼엄하여 사람을 가까이 접근시킬 수도 없었다.
따라서 용하 측에서는 가포를 직접 살피는 것을 포기한 상태다. 하늘 높은 곳에 띄워둔 관측대가 있었기에 겨우 전투가 일어났다는 사실을 알아차렸을 뿐.
모르드가 대답했다.
“그래. 우리와 함께 하는 용족들에게 물어보니 가포가 전략적 요충지라고 하더군. 그래서 상황을 살피러 가 보니 단죄자들의 소굴이 되었기에 기습해서 최대한 파괴한 후에 이탈했다.”
“어, 어떻게 그럴 수가 있었지? 아니, 있었소?”
내내 차분했던 한울왕자도 놀라서 말을 더듬었다.
모르드 일행이 상륙해서 첫 전투를 벌인 것과 가포가 불탄 것 사이의 시간 차는 얼마 되지 않는다.
그런데 그 짧은 시간 동안 지도상의 직선거리로 따져도 200킬로미터 이상 떨어진 가포를 강습해서 불바다로 만들고 이탈하다니?
‘아무리 뛰어난 축지술사가 있더라도 불가능해.’
축지(縮地).
대지에 흐르는 용맥을 이용하여 공간을 뛰어넘는 술법.
이 축지술은 대단히 고등한 술법으로 익히고 있는 이는 술법사 중에서도 소수였다. 그리고 혼자 이동하는 것도 아니고 집단을 연속으로 장거리 이동시키는 것은 대술법사가 아니고서야 불가능한 일이다.
그리고 설령 대술법사가 축지술을 펼쳐서 이동시켜줬다 해도 모르드 일행이 한 일은 말도 안 되어 보였다.
모르드는 덤덤하게 말했다.
“우리에겐 그게 가능한 수단이 있다. 대륙의 서쪽 끝에서 여기까지 올 수 있었던 것도 그래서지.”
“…대륙의 서쪽 끝이라고 하셨소?”
“그렇다.”
“서쪽에 아직 생존자가 있었단 말이오? 여러분들 같은 전력을 유지할 만큼이나?”
한울왕자가 믿을 수 없다는 듯 묻자 파르웰이 고개를 저었다.
“아뇨. 서쪽은 멸망했습니다. 극소수의 생존자만이 있었을 뿐이죠.”
그 말에 김운산은 자기도 모르게 쓴웃음을 지었다.
파르웰이 말을 이었다.
“이 대륙의 서쪽은 우리가 처음 당도한 곳입니다. 우리는 서쪽에서 왔습니다.”
“음?”
“우리는 끝없는 폭풍 너머, 서대륙에서 왔습니다.”
“뭐라고?”
한울왕자 일행은 경악을 금치 못했다.
모르드가 말했다.
“대륙의 서쪽에 당도하여 여기까지 오면서 봤는데, 이 새벽 반도를 제외한 땅들은 이미 단죄자들에게 넘어간 상태였다.”
“…….”
한울왕자 일행은 그 말에 반응하지 않았다. 모르드 일행이 끝없는 폭풍을 넘어왔다는 사실이 던져준 충격이 너무 컸기 때문이다.
차라리 50년 전쯤이었다면 모르겠다. 온 세상이 단죄자들에게 잡아먹히고 종말이 눈앞으로 다가온 것 같은 이런 시대에, 끝없는 폭풍을 넘어와서 대륙 서쪽부터 광활한 영역을 가로질러 여기까지 왔다는 사실이 주는 충격은 대단했다.
“그, 그게 정말인가? 아니, 정말이오?”
한울왕자가 당황해서 묻자 모르드가 피식 웃었다.
“굳이 말투를 그렇게 신경 쓸 필요 없을 것 같군. 피곤해 보이는데 그냥 편하게 말해도 된다. 공석도 아니니까.”
“…….”
한울왕자는 움찔하더니 한숨을 푹 쉬었다. 그가 그는 뒷목을 문지르며 스스로를 진정시키더니 말했다.
“…알겠다. 편하게 하지. 젠장, 이런 식으로 실수해서 말투를 지적받다니 너무 창피하군.”
그는 얼굴을 쓸어내렸다.
조금 전까지는 굉장히 점잖은 인상이었는데 한순간에 쾌활한 느낌으로 바뀐다. 모르드 일행 앞에서는 황손으로서 마땅한 태도를 연기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가 물었다.
“어째서 서대륙 사람들이 여기까지 온 거지?”
“세상을 구하기 위해서.”
“…….”
모르드의 대답이 너무 당당해서 한울왕자는 말문이 막히고 말았다.
이런 자리에서 이런 소리를 하면 누굴 놀리는 건가 싶은 기분이 들어야 할 텐데…….
‘하, 세 신의 성자라고 자신을 소개하고 이토록 강대한 신성을 지닌 남자가 이런 말을 하니 그럴싸하게 들리는군.’
무엇보다 온누리 사람들 입장에서 볼 때, 지금은 종말의 시대였다. 단죄자와 싸우는 것은 세상을 구하는 일일 수밖에 없었다.
“한울왕자, 당신은 용하의 지배자라고 했지. 지금 용하에 사람을 받아들일 만한 여력이 있나?”
“어느 정도의 인원이지?”
“전하.”
부하들이 놀라서 그를 불렀지만 한울왕자는 손을 들어 그들을 제지했다.
모르드가 말했다.
“47명이다. 가포에서 구출한 생존자들이지.”
“가포에서? 단죄자들에게 점령된 지 오래인 그곳에 생존자가 있었단 말야?”
“실험체로 쓰이고 있더군. 다들 끔찍한 일을 당했다.”
“…….”
순간 한울왕자의 표정이 분노로 물들었다. 그만이 아니라 일행 모두 모르드의 짧은 설명만으로도 사정을 이해했기에, 강렬한 분노에 휩싸였다.
“천인공노할 놈들!”
“제기랄! 사람의 목숨을, 영혼을 농락하는 것만으로는 만족하지 못한단 말인가!”
모르드는 그들이 마음껏 분노하도록 기다려 주었다가 말했다.
“우리가 그들을 구해서 이곳에서 치료하고 있긴 하지만 계속 그럴 수는 없다. 당신들에게 그들을 부탁하고 싶군.”
“알겠어. 그런 일을 당한 사람들을 외면할 수는 없지.”
한울왕자는 굳은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의 태도에서 보이는 진정성은 모르드에게 호감을 불러일으켰다.
‘아까 전의 반응을 보면 용하가 그리 여유 있는 상황은 아닌 것 같은데 주저 없이 결단하는 걸 보니 인성이 나쁜 사람은 아닌 것 같다.’
사실 황손이면서 한 도시의 지배자이기도 한 그가 위험을 무릅쓰고 직접 여기까지 온 것만으로도 모르드는 그에게 높은 점수를 주고 있었다.
‘칠감이 꽤 발달해 있다는 뜻이지.’
모르드 일행의 정보를 접하는 순간, 이것이 운명의 분기점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본능적으로 알았으리라.
그런 기회를 앞에 두고 솔선수범해서 나선 태도와 결단력만으로도 높은 점수를 줄 만했다.
“식량과 의료품을 넉넉하게 지원해 주지. 도움이 될 거다.”
“고마운 이야기이긴 하지만 당신들이 쓰기에도 모자라지 않겠어? 어디 본거지가 있는 것도 아니고, 인원도 적을 텐데.”
한울왕자의 걱정은 타당했다.
김 아르센이 관측한 전투에는 모르드 일행만이 아니라 생존자 집단도 참전했다. 하지만 그들을 전부 합쳐도 60명 정도에 불과한 소규모 집단일 뿐인데 물자를 갖고 있어 봐야 얼마나 갖고 있겠는가?
“우리의 물자 비축량은 꽤 많다.”
모르드는 파르웰에게 눈짓했다. 그가 나서서 마법으로 허공에 목록을 작성해서 보여주었다.
“이 정도면 어떻겠습니까?”
“이렇게 많은 물자를 지원해 줄 수 있단 말인가?”
그 목록을 본 한울왕자는 깜짝 놀랐다.
파르웰이 작성한 목록에는 대량의 의약품, 철광석, 그리고 목재까지 포함되어 있었다. 전부 용하에서 절실하게 필요로 하는 것들이다.
파르웰이 빙긋 웃었다.
“대부분은 단죄자들에게서 노획한 물자입니다. 대신 저들을 잘 보살펴주십시오. 참혹한 경험을 한 사람들이니까요.”
“…그야 물론이다. 젠장. 이런 일에 대가성으로 뭘 받는 것 같아서 꺼려지긴 하지만 그건 너무 배부른 투정이겠지. 물자는 감사히 받도록 하겠어.”
“가져갈 수 있는 수단이 있나? 없다면 우리가 근처까지는 가져다주지. 물론 저 사람들도 같이 데려다주겠다.”
모르드는 용하까지 배달해 주겠다고는 하지 않았다. 이들 입장에서는 모르드 일행을 용하에 들이는 게 꺼려질 수도 있었으니까.
하지만 한울왕자는 흔쾌히 고개를 끄덕였다.
“호의를 감사히 받아들이지. 아예 당신들을 용하로 초대하고 싶은데, 괜찮다면 와주지 않겠나? 아직 온누리의 사정을 잘 모르는 것 같으니 용하를 보며 자세한 이야기를 나눌 수 있으면 좋겠는데.”
“…….”
한울왕자가 시원시원하게 일을 진행하자 부하들은 뭔가 말하고 싶어 하는 기색이었지만, 결국 다들 입을 다물었다.
‘젊고 사람 좋아 보이는 인물인데 부하들이 진심으로 따르는군. 그냥 황손이라서 따르는 게 아닌 것만은 분명하다.’
한울왕자를 따라온 네 명은 고위 마법사인 김 아르센만이 아니라 다들 모르드 일행이 보기에도 뛰어난 능력자들이었다.
그들이 보기에 한울왕자가 당혹스러운 결정을 한다 해도 함부로 나서지 않고 따른다는 것은, 그만큼 한울왕자가 자신을 훌륭하게 증명해온 인물이라는 뜻이리라.
모르드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도록 하지. 아, 그전에 한 가지 묻고 싶은 게 있다.”
“뭐가 궁금하지?”
“혹시 최근에 용성주를 마신 적이 있나?”
“최근엔 없어. 마신 지 5년… 아니 이제 6년쯤 된 것 같은데.”
“…그랬군.”
모르드는 피식 웃었다.
혹시나 하는 마음이 들어서 물었는데 그러길 잘했다. 이스트람이 에리우에게 말한 고귀한 혈손이 누군지 알 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