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Extra Is Too Strong RAW novel - Chapter (1016)
엑스트라가 너무 강함 1016화
“그곳에서 이루어진 실험은… 인간을 대상으로 한 것과 용족을 대상으로 한 것이 달랐다고 합니다.”
파르웰은 떠올리기만 해도 혐오스럽다는 듯 표정을 일그러뜨렸다.
“인간을 대상으로 한 실험은… 그래요. 평범한 흑마법 실험이었습니다.”
과연 그걸 평범하다고 할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어쨌든 모르드 일행이 알고 있는 흑마법 실험에서 벗어나지 않는 일이었다.
“하지만 용족을 대상으로 한 실험은 전혀 다른 것이었습니다. 그들은 용족을 언데드가 아니라 단죄자로 바꾸는 방법을 연구했다고 합니다.”
“그러고 보니 바다의 백성들에게도 비슷한 짓을 했었지.”
“예.”
“인류의 정의를 넓히는 데 관심을 가진 건가? 아니면 그들을 단죄자로 만드는 게 언데드로 만드는 것보다 더 크게 이익이 되는 건가?”
“후자일 거라고 생각합니다. 일단 전투능력만 봐도 언데드로 만드는 것보다 단죄자로 만드는 쪽이 월등할 테니까요.”
용족은 언데드가 되면 신성을, 그리고 용신통을 잃는다. 이것은 용족에게 있어서는 매우 치명적인 차이였다.
“그리고 아마 인류의 신성과 달리 그들의 신성을 빼앗을 수 없다는 건, 그들이 기나긴 종족의 역사 속에서 쌓은 진짜 힘을 강탈할 수 없다는 뜻이기도 하겠죠.”
신성을 완성하여 신족이 된 자들이 단죄자가 되면 그 힘을 십분 활용한다.
신의 혈손은 물론이고 신관, 심지어 성자조차 신에게 내려받은 힘과 성물까지 단죄자를 위해 쓰는데 그 힘의 본래 주인인 신들은 속수무책이었다.
“육지와 달리 바다의 백성들이 꽤 많은 세력을 보존할 수 있었던 것도 그래서라고 생각했습니다.”
“확실히…….”
모르드도 동감이었다.
만약 바다의 백성들이 고스란히 단죄자가 되었다면, 그리하여 그들에게 신화부터 전해 내려오는 모든 유산을 고스란히 강탈당했다면 상황은 훨씬 심각했을 것이다.
“용족들도 마찬가지죠. 만약 용족이 단죄자가 되었다면, 국토방위결계는 무용지물이 되지 않았을까요?”
“그렇군. 놈들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도 용족을 단죄자로 만드는 건 해야 하는 일이야. 하지만…….”
“걸리는 게 있습니까?”
“왠지 그것만이 아닌 것 같다는 느낌이 든다.”
무언가 석연치 않다. 바다의 백성이나 용족을 단죄자로 만들려는 시도 너머에는 또 다른 의도가 숨어 있을 것 같았다.
“그저 느낌일 뿐이긴 하지만.”
지금으로서는 추측할 만한 단서조차 없었다.
모르드가 말했다.
“아, 그렇지. 오늘은 휴식이다.”
한울왕자와 이야기한 내용을 들려주자 파르웰이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그럼 여기 마법사들과 이야기나 해봐야겠군요.”
“질문에 시달리는 거 아닌가?”
“저도 그만큼 질문하니까요.”
파르웰은 어깨를 으쓱하고는 술법사들을 찾아서 떠났다.
모르드는 잠시 활인원에 방문해서 환자들의 상태를 살펴보고는 저잣거리를 돌아다니기 시작했다.
마치 대리석을 깎아 만든 듯 완벽한 2미터의 근육질 육체는 가는 곳마다 사람들의 시선을 받았지만 신경 쓰지 않는다. 이제는 익숙한 일이었으니까.
“음?”
느긋하게 주변을 구경하면서 먹거리를 하나씩 사 먹고 있을 때 한쪽에서 소란이 일어난 게 보였다.
무슨 일인가 싶어서 가보니 주먹패 놈들이 시장 상인들에게 패악질을 부리고 있었다.
“저런 놈들은 어디나 있군.”
모르드는 쓴웃음을 지었다.
잠시 후, 주먹패들은 전부 엉망진창이 되어서 나뒹굴었다.
“감사합니다! 나으리, 하지만 이놈들이 전부가 아닙니다. 이놈들은 백룡군 눈에 띄지 않게, 음흉한 수법으로 상인들을 괴롭히는데 도가 텄는지라…….”
상인들이 모르드에게 고개를 조아리며 불안감을 드러냈다.
“나머지 놈들은 어디지?”
그리고 시장의 골칫거리로 떠올랐던 주먹패가 박살 나기까지 채 10분도 걸리지 않았다.
물론 죄다 목숨은 붙여놓긴 했지만 어딘가 하나씩 불구가 된 데다가, 무신술을 익힌 놈들은 다시 재활하기도 힘들 정도로 몸 안쪽을 망가뜨려 놨으니 시장 상인들이 후환을 두려워할 필요는 없으리라.
“감사합니다! 정말 대단하십니다!”
“자자, 이리로 오십시오! 한 상 푸짐하게 차려 올리겠습니다!”
“아니, 잠깐만. 이분 체격을 보게. 자네 가게처럼 좁은 데서 식사하시기 얼마나 불편하시겠는가? 우리 가게로 모시자고. 음식은 같이 내오고.”
“끄응. 그렇긴 하군. 알겠네.”
삽시간에 시장 상인들의 영웅이 된 모르드는 가게에서 상다리가 휘어지도록 대접을 받았다.
지구에서 이런 대접을 받았다면 하나씩 맛만 봐도 배가 터져 죽지 않을까 고민했겠지만, 지금의 그는 마음만 먹으면 10인분이든 20분이든 아무 문제 없이 먹을 수 있었다.
“이 술은 뭔가?”
“아, 그건 막걸리라고 합니다! 입에 안 맞으십니까?”
“아니, 아주 좋군.”
지구에서 맛본 막걸리와 완전히 같은 건 아니다. 시대상이 크게 차이 나는 만큼 제조법부터 크게 차이 날 수밖에 없으니까.
그럼에도 이 술은 앞에 차려진 많은 음식들과 마찬가지로 모르드의 그리움을 자극하고 있었다.
그렇게 신난 사람들 사이에서 식도락을 즐기고 있을 때였다.
“우와……. 모르드, 재밌는 일 하고 있었네.”
케엘이 사람들 사이를 헤치고 나타났다.
모르드가 그 옆을 바라보았다. 서둔이 따라오고 있었다.
“둘이 같이 돌아다니고 있었나?”
“응. 거리 좀 구경하러 나왔는데 나 혼자 돌아다니기가 뭐해서. 너도 그렇지만 나도 너무 눈에 띄잖아? 그래서 마침 서둔 양도 심심하다길래 같이 나왔어.”
케엘이 어깨를 으쓱했다. 모르드의 시선이 자신에게 향하자 떡구이 꼬치를 들고 있던 서둔이 살짝 얼굴을 붉히며 그것을 뒤로 감추었다.
케엘은 그 모습을 못 본 척하며 말했다.
“너도 에리우라도 데리고 나오지 그랬어?”
“에리우는 첫날에 알아보는 사람들이 몇 명 나와서 좀 꺼림칙해하더군.”
“아, 하긴.”
에리우 란팔로제는, 온누리 사람들에게 있어서는 교과서에 나오는 위인이나 다름없었다.
지금도 이 용하의 진룡사원에 가면 큼직한 초상화가 눈에 띄는 곳에 걸려 있을 정도다. 그러다 보니 에리우를 보고 ‘어, 어어어어? 설마? 설마설마?’ 하는 반응을 보이는 이들이 있었던 것이다.
에리우는 놀러 나왔을 때 사람들이 그런 반응을 보이는 게 좀 불편했는지 저잣거리에 나오고 싶어 하지 않았다. 지금은 모르드의 심상 세계에서 세데아, 라그나스와 놀고 있는 중이다.
케엘이 머리를 긁적였다.
“내가 좀 도와줘야겠네.”
“변장시키려고?”
“파르웰한테 도움 좀 받으면 감쪽같을걸?”
“그거 좋군.”
모르드는 자신이 에리우에 대한 배려가 부족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조금만 궁리해 보면 방법이 나오는 문제였지 않은가?
“세데아는 그런 것도 싫다고 했지만.”
케엘이 막걸리를 한 잔 마셔보고는 눈을 크게 떴다.
“이것도 특이하네. 여긴 확실히 식문화가 많이 이질적이야. 사막에 갔을 때만큼이나 거리감이 느껴지는걸.”
“먹기 힘든가?”
“아니, 좀 독특하긴 한데 마음에 들어. 나야 초원의 말젖으로 만든 술도 마셨는데 그거보다야 이게 훨씬 마시기 쉽지. 서둔 양도 한잔할래요?”
“네.”
순간 모르드는 말리려고 했다가 멈칫했다.
‘그러고 보니… 서둔 양이 이 몸보다 나이가 많지.’
모르드는 열아홉 살이고 서둔은 스물아홉 살.
겉보기로는 10대 중반 정도로 보이지만 육체의 나이로 따지면 모르드보다 열 살이나 연상이다.
‘새삼스럽지만 장생종은 이런 부분이 좀 어렵군그래.’
케엘도 저 외모 그대로 지구에 가서 술을 마신다면 미성년자 음주로 잡혀갈 것이다.
케엘이 말했다.
“그나저나 여긴 군벌이 통치하는데도 저런 놈들이 있구나. 사람 사는 데는 어디나 똑같은가?”
“어디나 행정력이나 치안 유지력에는 한계가 있지. 용하는 계속 난민을 받아들여서 본래 도시를 건설할 때 설정한 수용 한계를 훨씬 넘어선 상태니까 위쪽에서 통제할 수 없는 시민들끼리의 문제가 이것저것 있을 수밖에 없다.”
“…….”
“왜?”
“아니, 가끔 파르웰처럼 말한단 말야, 모르드 너는.”
모르드는 피식 웃었고, 케엘도 따라 웃었다.
“뭐, 위에서 아무리 잘해도 한계는 있는 법이지. 그런 문제가 있다는 걸 알고 나니까 여기가 우리한테는 낯설어도 사람 사는 곳이란 느낌이 들어. 그리고…….”
잠시 그릇에서 찰랑거리는 막걸리의 수면을 보던 케엘이 말을 이었다.
“이 땅에 아직 사람 사는 곳이 이렇게 남아 있어서 다행이란 생각도 들고.”
“동감이다.”
“여러분의 고향은 역시 이곳과는 많이 다른가요?”
서둔이 물었다.
그녀에게 있어서는 이곳 온누리도 낯선 땅이었다. 어린 시절부터 아빠 엄마에게 이야기를 많이 들으며 자라왔다 해도 자신이 직접 그곳에 들어오는 것은 전혀 다른 느낌이다.
김운산은 고향에 돌아온 기분이겠지만 서둔은 낯선 땅에 여행 온 이방인의 기분이었다.
그녀에게는 고향의 기억이 없다.
아니, 엄밀히 따지면 있긴 하다. 하지만 그건 그리워하기에는 너무 비참한, 엄마가 있었다는 사실을 제외하면 두 번 다시 돌아보고 싶지 않은 지옥의 기억이었다.
“고향이라…….”
모르드는 지구를 생각했다.
그다음으로 떠오른 것은 사시사철 얼어붙어 있던 북방의 기억이었다.
“…많이 다르긴 하지.”
그 사실이 좀 어이없게 느껴졌다. ‘모르드’의 고향은 북방이 아니다. 그리고 엄태성이 모르드로 전생하여 눈을 뜬 곳은 베르나스 대공성이었다.
이 세계에 눈 떠서 처음으로 각인된 삶의 배경은 엄연히 존재하고 있는데, 이 세계에서 그리움을 느끼게 하는 곳은 사람 살기 힘든 북방이라니 참으로 기묘하지 않은가?
그렇게 생각하다 케엘과 눈이 마주친 그는 왠지 실소했다. 말로 하진 않았지만 모르드와 케엘은 서로 똑같은 생각을 했음을 알아차렸다.
케엘 역시 고향이라는 말을 들었을 때 북방을 떠올렸다. 그 혹독한 기억으로 가득했던 땅을.
분명 마음속 가장 깊은 곳에 남아있는 것은 어린 시절 어머니와 함께했던 그 오두막이었는데, 그럼에도 고향이라는 말을 들었을 때는 북방을 떠올리고 있었다.
케엘이 말했다.
“다들 잘 지내고 있겠지?”
“그럴 거다. 시간적으론 그렇게 오래 지난 것도 아니지 않나?”
“하긴 그렇지. 이제 마계화 현상도 많이 줄어들었을 테니 전보다는 좀 여유도 생겼겠고…….”
“…….”
술잔을 주거니 받거니 하면서 북방의 이야기를 하는 두 사람을, 서둔은 부러운 눈으로 바라보았다.
얼마 전에 김운산을 비롯한 온누리 출신의 다른 용족들이 이 땅에 발 디뎠을 때 보이는 감정을 보면서도 똑같은 생각을 했었다.
어쩌면 자신은 앞으로 평생토록 고향을 그리워하거나, 고향에 돌아왔을 때의 저 특별한 감정을 맛볼 수 없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 감정에 사로잡혀 있다 보니 어느새 케엘이 그녀를 가만히 바라보고 있었다.
“아, 저기…….”
서둔은 괜히 당황해서 무슨 말이든 하려고 했다.
하지만 케엘은 미소 지으며 고개를 저었다.
“괜찮아요.”
마치 서둔의 마음을 읽은 것 같은 말이었다.
케엘이 부드럽게 웃으며 말했다.
“누구든 처음은 있잖아요.”
“…….”
서둔에게는 모든 게 처음이었다.
이렇게 많은 사람이 모여 사는 도시부터가 그녀의 인생에서 처음으로 보는 경이로운 무언가였다.
모르드 일행과 만난 후로도 그녀가 본 가장 많은 사람들의 집단은 불과 백수십 명 정도였다. 그것만으로도 아직 세상에 이렇게나 많은 사람이 남아 있다는 사실에 놀람을 감추지 못했다.
물론 바다 밑에서 바다의 백성들을 만나긴 했지만 그들은 환경도 문화도 동떨어진 이종족이라 신기한 풍경을 구경하는 기분이었을 뿐이다.
그런데 이 도시에는 수천 명이나 되는 사람이 모여 살고 있었다. 처음 이곳에 발 디디는 순간부터 그녀는 그 사실이 도무지 믿어지지 않아서 꿈을 꾸고 있는 것만 같았다.
돌을 쌓아 올려 만든 성벽, 그 안에 자리한 수많은 건물들, 피어오르는 불빛, 요란한 소리를 내며 무언가를 만들어내고 있는 대장간, 도시와 이어진 넓은 호수와 배들, 엄마 일을 돕는 아이들…….
온전한 문명사회 안에서 활기찬 저잣거리를 걸으며 무언가를 사 먹은 경험은, 그녀의 마음을 크게 뒤흔들고 있었다.
케엘이 말했다.
“서둔 양은 사람들 사이에 발붙이고 살아갈 수 있는 마음을 가진 사람이에요. 많은 곳을 돌아다닌 제가 하는 말이니까 틀림없어요. 그러니까 지금 혼란스럽다고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
서둔은 가슴이 뭉클했다. 케엘의 말이 자신의 불안을 너무나 정확히 짚어서 위로해 주었기 때문이다.
모르드가 말했다.
“정붙이면 고향, 이라는 말이 있지.”
“비슷한 말은 몇 번 들어본 적이 있어. 지역에 따라서 다들 조금씩 달랐지만.”
케엘의 대꾸에 모르드가 고개를 끄덕였다.
“어디든 살아봐서 정이 붙으면 고향처럼 여길 수 있는 법이고… 만약 정이 안 붙으면 떠나면 그만 아니겠나.”
“떠나면 그만이라고요?”
놀라 눈을 크게 뜨는 서둔에게 모르드가 대답했다.
“그래. 정 붙일 만한 곳을 찾아서. 그런 곳을 찾아서 세상을 떠돌며 견문을 넓히는 것도 나쁘지 않은 삶이겠지. 서둔 양, 당신에게는 그럴 수 있는 능력이 있지 않나? 그리고 성직자로서도 세상을 돌아다니며 많은 인간군상을 보는 의미가 있겠지.”
“…그렇군요.”
서둔은 감탄했다. 그랬다. 그런 삶도 있을 수 있을 것 같았다.
별것 아닌 이야기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지금까지 누구도 서둔에게 이런 이야기를 해준 적이 없었다.
그녀의 삶은 매우 좁았다. 그저 눈앞에 보이는 망가진 세상 속에서 하루하루 살아남으려고 발버둥 치는 것만으로 가득 찬 삶이었다.
그런 이에게 세상의 이치, 미래를 살아가는 방법에 대해서 이야기한들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예전의 서둔은 어른들이 나누는 과거 세상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도 머릿속에서 그런 세상을 제대로 상상할 수 없었다. 따라서 그들이 그 시절을 떠올리며 느끼는 감정을 이해할 수도 없었다.
하지만 이제 그녀는 달라졌다.
아직 망가지지 않은 인간 세상에 들어와서 어른들이 이야기하는 과거의 세상이 어땠는지 알게 되었다. 그러자 비로소 사람들 속에서 살아가는 미래를 상상하고,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