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Extra Is Too Strong RAW novel - Chapter (931)
엑스트라가 너무 강함 931화
제281장 성역의 수확자
하쿠룬이 주시자 군주를 이용해서 대소환을 위한 권역을 형성한 순간.
‘기회다.’
모르드는 본능적으로 파악했다.
천공신의 피를 이은 그이기에 알 수 있었다. 공간을 장악한 이 힘이, 그 안의 표적을 수확자 앞으로 데려가는 것을 목적으로 하고 있음을.
이 순간 그에게 주어진 선택지는 두 가지.
이대로 탈출해서 닭 쫓던 개 꼴로 만들어줄 것인가, 아니면 놈들의 앞마당에 가줄 것인가?
이 시점에서, 모르드는 하려고 마음먹었다면 충분히 탈출할 수 있었다.
주시자 군주를 통해 행사하는 대소환은 놀라운 이적이었지만, 그 거대함만큼 느렸으니까.
물론 공간을 장악하고 뒤흔들고, 저주의 농도를 높이는 것으로 모르드의 공간왜곡장이 봉쇄당하기는 했다.
하지만 오러화로 이동하는 것까지 막진 못했다. 어느 정도는 억제되기에 수백 미터 단위로 이동하는 게 한계지만, 그것만으로도 대소환이 완성되기 전에 빠져나가기는 어렵지 않았다.
‘위험한 기회지만… 너무 좋은 기회인데.’
수확자가 자기 앞마당으로 끌고 간다.
그곳은 단죄자를 위한 요새일 것이다. 상당한 전력이 갖춰져 있으며, 수확자의 권능이 그들을 더욱 무섭게 만들리라.
‘그뿐이다.’
상당한 전력은, 결코 최고의 전력이란 뜻이 아니다.
지금 수확자 하쿠룬이 모르드 일행을 발견하고 대소환을 하는 것은 어디까지나 즉흥적으로 결정된 일이다. 전력을 모조리 집결시켜서 최강의 진용을 갖출 시간은 전혀 없었다.
‘무엇보다 평시 전력이 그렇게 대단한 성역도 아니지.’
카리안 클론의 영혼을 구해 대화를 나눔으로써, 모르드는 수확자 하쿠룬과 그의 성역에 대한 정보를 얻은 상태였다.
옛 아르판 제국령은 광활하지만 단죄자의 적이 없는 땅이다.
마경이 사라지고 나서는 북쪽의 얼어붙은 바다로 이어지는 이 땅은 땅 넓이에 비해서는 단죄자들의 후방 지원 기지로서도 별로 큰 역할을 하지 못한다.
그나마 광산 도시 정도가 가치를 갖지만, 그것도 규모가 크지 않았다.
21세기 지구에 비하면 이 세계의 문명 수준에서 쓸모 있는 지하자원은 훨씬 한정적이기 때문이다. 석유나 가스가 나와 봐야 쓸모없는 세상이니까.
그런 이유로 이 땅을 지배하는 수확자는, 수확자 중에서는 한직이었다. 수확자의 주요 업무인 부활 업무, 그리고 주시자 군주를 비롯한 괴물 생산 업무가 다른 곳에 비해 많이 처리되는 정도다.
이런 곳에 다른 곳보다 강한 전력이 자리해 있다면 그건 오히려 이상한 일이리라.
‘부딪쳐보자.’
짧은 고민 끝에 모르드는 결단을 내렸다.
자신의 결단이 옳았는지 틀렸는지는 얼마 안 지나서 확인할 수 있었다.
‘감사해야겠군.’
모르드의 입가에 날카로운 미소가 걸렸다.
* * *
단죄자들이 미처 가까이 다가오기 전이었다.
한순간에 그 앞으로 쇄도한 모르드가 라흐팅을 휘둘렀다.
꽈광!
폭음이 울리며 단죄자 하나가 폭사한다.
검을 들어 막았지만 그 검을 수수깡처럼 부러뜨리고 흉부 위를 통째로 날려 버린 것이다.
쾅! 콰광!
모르드가 그들을 스쳐 가며 도끼질을 할 때마다 폭음이 울려 퍼진다.
“이, 이놈은 대체?”
단죄자들은 당황했다. 모르드가 접근했다 싶은 순간 단죄자의 목숨이 날아가고 있었다.
“막아!”
단죄자들이 일제히 달려들어서 벽을 형성한다.
그것은 모르드를 잠깐이라도 묶어놓고자 하는 전술적 선택이었다.
-멸살의 섬광!
-하늘의 이빨!
-화염정령의 군단……!
그 상태로 멀찍이 떨어져 있던 단죄자들, 그중에서도 영격이 높은 자들이 막강한 화력을 자랑하는 주문을 쏟아낸다.
모르드를 막아선 아군도 휘말려 버리겠지만 전혀 신경 쓰지 않는다.
단죄자에게 있어서 죽음은 얼마든지 되돌릴 수 있는 결과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강력한 적을 잡기 위해 아군을 희생양으로 바치는 것에 거리낌이 없다!
하지만 모르드는 코웃음을 칠 뿐이다.
콰과광… 콰아아아아앙!
주문이 목표점에 도달하여 폭발했을 때, 모르드는 이미 그 자리에 없었다.
그는 오러화로 앞을 가로막은 벽 그 너머에 도달하여 질주하고 있었다.
“놈이 황궁으로 간다!”
“막아!”
단죄자들이 기겁해서 달려온다.
아무리 다른 성역에 비해 평시 전력이 별 볼 일 없는 편이라고는 해도 성역은 성역이다. 수확자 하쿠룬의 체면을 세워주기 위해서라도 강력한 전력이 배치되어 있다.
그리고 그 강력한 전력은 단죄자만이 아니었다.
[갈 수 없다!]용족 언데드가 모르드 앞에 내려서서 술법을 펼친다.
꽈아아앙!
그러나 그 술법이 미처 완성되기도 전에, 충격이 그를 관통하며 폭발했다.
[어……!]“술법사가 너무 용감하시군그래. 생전에도 그랬나?”
모르드는 이미 그를 지나친 후였다.
그리고 용족 언데드는 해골만 남은 육신이 폭발에 부서져 나가는 가운데, 자신의 영혼이 모르드에게 빨려 들어가는 것을 느꼈다.
그워어어어어!
그 앞을 그림자에서 일어난 괴물들이 가로막는다.
3미터를 훌쩍 넘는 거인의 실루엣을 가진, 재로 이루어진 괴물들이다.
‘이건 또 못 보던 놈들인데.’
한둘이 아니다. 사방팔방에서 솟구친다.
발밑에서도 아무런 조짐 없이 튀어나와서 모르드를 붙잡으려고 한다.
그 속도가 대단히 빠르다. 모르드도 집중해서 공방을 벌여야 할 정도로.
퍼어엉!
모르드는 다가오는 실루엣 괴물들을 하나하나 쳐부쉈다.
하지만 놀랍게도 이놈들은 몸이 부서지거나 말거나 상관하지 않는다. 정말로 재로 이루어져 있어서 부서져도 금세 시간을 되돌리듯 다시 재생된다.
아니, 재생이라는 말은 어울리지 않는다. 이것은 복원이다.
퍼퍼퍼퍼퍼펑!
그래도 모르드의 주변에 다가가는 순간, 압도적인 파괴력이 쏟아지며 산산조각 날 뿐이다.
‘완전 분쇄되어도 되살아난다. 영혼을 가진 존재도 아니군. 권능으로 형성되는 전투용 인형에 가까워.’
모르드는 혀를 찼다.
물론 답은 있다.
-권능 무력체!
권능 무력체를 실어서 치면 제아무리 불사의 괴물이라도 부서져 흩어질 뿐이다.
문제는…….
‘한 번에 완전 분쇄하지 못하면, 손끝만 남아도 다시 복원되는군.’
어이없을 정도로 강력한 복원력이다.
한 번에 전신을 손가락 하나 부피의 파편조차 남기지 않고 분쇄해야만 한다는 뜻이다.
이런 괴물이 수십, 아니, 백 단위가 되고도 멈추지 않고 계속해서 수가 늘어나고 있었다.
‘성역에서 무적을 자신할 만도 하다.’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이놈들이 쌓아 올린 성채는 인류의 절망으로 군림할 강력함을 갖췄다는 것을.
-권능 공유!
뿐만 아니다.
괴물들에게서 영격이, 오염된 신성이 일어나고 있었다.
‘이것까지…….’
영혼 없는 단죄자 병사들에게 권능을 공유하는 것과 같은 방식이다.
차이점이라면 이곳이 성역이라 그런지 신격이 상당히 높은 신혈들 수준의 권능을 발휘한다는 점이다.
파파파파파!
에소우의 권능으로 쏘아낸 빛의 화살들이 쏟아져 내린다.
콰콰콰!
란슬리시아의 권능으로 날린 초음속 투창 공격이 모르드의 머리 옆을 꿰뚫는다.
-잉여 마력 지배!
브레디아스의 권능이 발동하며, 지금까지의 전투로 발생한 마력이 괴물들의 통제에 들어간다.
그리고 단죄자들이 고화력 마법을 아낌없이 퍼부었다.
콰광! 콰과과과과광!
웅장한 황도가 어마어마한 화력으로 파괴되어 간다.
인간이라면 망설였을 상황이다. 하지만 단죄자들은 도시가 파괴되는 것도, 아군이 휩쓸리는 것도 상관하지 않는다.
도시의 주인, 수확자가 그러라고 명한 이상 충실하게 따른다.
“…진짜 어이가 없군.”
모르드는 자기도 모르게 중얼거렸다.
왜 성역에 자리한 수확자가 살해당한 일이 역사상 단 한 번도 없는지 알겠다.
평시 전력이 약하든 말든 아무런 상관도 없다. 성역 안으로 한정된다 해도 이런 괴물들을 수백 단위로 부릴 수 있다면!
‘하지만 그렇기에 상상도 못 하고 있겠지.’
모르드는 쏟아지는 권능과 마법의 포화 속을 현란한 회피 기동으로 누비며 눈을 빛냈다.
‘이런 불가침의 성채조차 공략할 방법을 가진 적이 있다는 것을!’
빛이 번뜩였다.
오러화한 모르드가 단번에 화망을 빠져나온다.
적들이 금세 모르드의 위치를 파악하고 추적해 오지만 상관없다. 한 번 더 오러화해서 이동했으니까.
“큭……!”
그러나 예상치 못한 상황이 모르드를 덮쳤다.
단번에 황궁 안으로 뛰어들려고 했는데, 황궁을 감싼 방어막이 오러화를 막아냈던 것이다.
‘저주의 층과 같은 원리인가!’
저 하늘을 가로막은 저주의 층과 마찬가지였다. 공간왜곡장으로도, 오러화로도 한 번에 넘어가는 게 불가능하다.
콰광! 콰과과광……!
주춤한 모르드의 등 뒤로 적들의 마법과 권능이 쏟아진다.
모르드는 이를 악물고 그 충격을 버텨내며 주먹을 들어 올렸다.
이 방어막에는 저주의 층과 비교하면 중대한 차이점이 있었다.
-권능 무력체!
이것이 수확자의 권능으로 빚어낸 방어막의 형태를 취하고 있다는 점이다.
모르드가 권능 무력체를 실은 주먹을 내지르자 방어막이 충격으로 뒤흔들렸다.
꽈과광!
적들이 미처 추격해 오기 전에 연타를 넣어서 구멍을 뚫고 안으로 침입한다.
그리고 추격해 오는 적들을 무시하고 황궁 벽을 향해 일권을 날렸다.
* * *
수확자 하쿠룬은 재의 옥좌에 앉은 채 경악하고 있었다.
“말도 안 돼.”
단죄자로 전생하고, 위대한 의지에 선택받아 수확자가 된 후로 오늘처럼 놀라본 적이 없었다.
지난 수십 년 동안 적당히, 나태하게 딱 주어진 일만 하며 살아온 그였지만 실전경험이 없냐 하면 그건 아니었다.
북부 마경을 정화하는 과정에서는 혁혁한 전공을 세웠다. 그리고 그가 전공을 세운 과정은, 대소환의 권능으로 마경의 수뇌부인 마왕을 비롯한 최고위 마족들을 성역으로 데려와서 처치한 일이었다.
마왕조차 성역의 힘으로 쉽게 처치한 그에게 있어서, 모르드가 성역에 발 들인 후로 보여주는 전투능력은 너무나 비현실적이었다.
“저럴 수가 없는데?”
신혈은, 아니, 심지어 신성을 완성한 신족이라고 해도 성역에 들어오는 순간 무력화될 수밖에 없었다.
“아무리 봐도 멀쩡하잖아?”
절대로 저주에 고통받는 모습이 아니다. 그의 신성이 불타오르며 막강한 권능을 쏟아내는 것이 느껴진다.
차라리 모르드가 엘프나 용족이었으면 조금은 납득이 갔을지도 모른다.
물론 엘프나 용족이었어도 저주의 밀도가 바깥과는 비교도 안 되는 이 성역에서는 제힘을 발휘하지 못했겠지만 말이다.
“만약을 대비해서 탈출 준비를 하시는 게 어떻겠습니까?”
하쿠룬의 곁에 있던 카리안 클론이 조심스럽게 제안했다.
그 말에 하쿠룬은 어이없다는 얼굴로 그를 바라보았다.
“탈출하라고? 그거 혹시 나보고 한 말인가?”
“…….”
“하! 진짜 너희들은 저 모르드라는 놈에게 뼛속까지 두려움을 품고 있구나. 새삼 저놈이 서쪽 땅에서 얼마나 터무니없는 짓을 해왔는지 알겠다.”
하쿠룬이 의욕 없는 인물이라고는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자존심이나 사명감이 없는 것은 아니다.
인류를 단죄한다는 사명감, 그리고 긍지가 없다면 결코 수확자로 선택받을 수 없다.
“수확자인 내가 성역을 포기하고 도망치라고? 그런 일이 용납될 수 있다고 생각하나?”
하쿠룬은 혀를 찼다. 카리안 클론들은 단죄자로 전생한 지 얼마 되지 않았다. 그렇기에 수확자라는, 권력과 권능의 상징이 짊어진 것의 무게를 이해하지 못한다.
‘그렇군. 문화적인 이해가 부족한 것인가? 확실히 그런 부분은 전생하면서 각인되는 것과는 별개의 부분이지…….’
하쿠룬이 카리안 클론을 보며 그런 생각을 할 때였다.
“이런!”
하쿠룬의 권능을 통해 상황을 보고 있던 두 명의 카리안 클론들이 기겁했다.
그들은 뭔가를 예감한 듯 전력으로 방어막을 펼쳤다.
콰아아아아아!
그리고 그 선택이 하쿠룬을 살렸다.
황궁에 도달한 모르드가 날린 극초음속의 섬광이, 바깥벽으로부터 이 옥좌가 있는 알현실까지 존재하는 몇 개의 벽들을 종잇장처럼 뚫어버리며 도달한 것이다.
그리고 빛이 번뜩였다.
“둘은 여기 있었나?”
한순간에 오러화로 알현실에 도달한 모르드가 서로 색이 다른 두 개의 눈동자로 카리안 클론들을 바라보았다.
“모르드, 결국 이렇게 만나게 될 줄이야.”
“절대로 만나고 싶지 않았는데 말이죠.”
중년의 카리안 클론과 청년 카리안 클론이 결연한 표정을 지었다.
죽을 것을 알면서도, 본래는 누군가 전위를 맡아주는 이들 뒤에서 싸우는 게 전문인 마법사이면서도 수확자 하쿠룬 앞을 가로막는다.
“너희들에겐 감사하고 있다.”
“무슨 말씀입니까?”
“너희들이 일을 벌여준 덕분에 이런 기회가 생겼으니까.”
만약 하쿠룬이 카리안 클론을 자신의 휘하로 삼지 않았다면?
그랬다면 옛 아르판 영역은 예전처럼 주어진 일만 하고 새로운 일은 벌이지 않는, 적당주의로 돌아가고 있었을 것이다.
신화의 흔적을 탐사대가 돌아다니다가 우연히 모르드 일행과 마주치는 일도 일어나지 않았을 터. 카리안 클론을 귀하게 여겨 그의 정보를 실시간으로 알아낼 수 있는 조치를 취해놨던 하쿠룬이, 모르드 일행을 잡겠다고 대소환을 쓰는 일도 일어나지 않았으리라.
“…….”
카리안 클론들은 명석한 자들이었다. 그렇기에 모르드의 말에 담긴 뜻을 이해하고 아연해졌다.
“모르드, 당신은…….”
그들은 입술을 깨물며 모르드에게 말을 걸었다.
무슨 말이든 해야겠다. 몇 초라도 좋으니 하쿠룬이 대비할 시간을 벌어줘야 한다.
“이야기는 나중에 하지. 일이 이렇게까지 쉽게 풀릴 줄은 몰랐는데, 정말 상상 이상으로 날로 먹는 기분이군.”
그런데 다음 순간, 모르드와 하쿠룬이 사라졌다.
“어?”
카리안 클론들이 눈을 크게 떴다. 전혀 예상치 못한 상황이었으니 당연했다.
그리고 당황해서 주변을 살피던 둘은, 곧 자신들이 예상치 못한 끔찍한 사태가 벌어졌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세계 파편……!”
그들의 앞에는 영롱한 빛의 구체가 떠올라 있었다.
세계 파편으로 빚어낸 ‘모방된 세계’가 구현되었음을 알려주는 현상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