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Extra’s Academy Survival Guide RAW novel - Chapter (156)
크레핀 토벌전 (7)
―타당! 탕!
검이 바닥을 굴렀다.
로스테일러 저택 별관 3층의 로스테일러 홀.
호화로운 장식이 가득한 사이에 에드가 똑바로 서 있다. 아직 체격도 듬직하지 못하고, 행동거지도 어리숙하다.
세례식을 치른 지 얼마 되지도 않아 아직 풋내가 날 때다. 그렇다곤 해도, 로스테일러 가문의 일원으로서 다부진 모습을 보여 주려고 애써 몸을 가누는 모습만큼은 기특하다.
행사장으로도 사용하고, 평시에는 귀족들 간의 연습 대련장으로도 사용되는 이 로스테일러 홀은 역사적으로도 수많은 명 결투들이 펼쳐진 장소이기도 하다.
이름난 전사들이 잔뜩 결투를 펼쳤던 이 공간에서, 어린 아르웬과 에드는 연습 대련을 펼치곤 했다.
검을 맞대고, 서로 합을 주고받으며, 땀을 뻘뻘 흘리다 보면 후계자의 무게에서 오는 스트레스도 훌훌 털어 버릴 수 있었다.
다만, 서로의 수준은 꽤나 차이가 난다.
― ‘역시 누님이십니다.’
떨어진 검을 바라보며 기억 속 에드가 멋쩍은 듯 미소짓는다.
아르웬은 검을 한번 허공에 휙 휘두르고 그대로 갈무리했다.
그리고 에드에게 말한다. 실력이 많이 늘었다고. 조금만 있으면 제대로 자세가 잡힐 것 같다고.
― ‘글쎄요, 저는 검술엔 재능이 없는 것 같습니다. 마법도 영 시원찮으니, 기분도 참 착잡하고… 고민이 많습니다.’
아르웬은 대검을 정리하면서 그를 격려한다.
아직 우리에게는 시간이 많이 남았다.
그리고 우리는 로스테일러 가문의 후손이라는, 축복받은 신분으로 태어났다.
비옥한 자양분이 있으니, 그에 걸맞은 노력을 한다면 반드시 성과를 볼 수 있으리라.
아르웬이 자애로운 얼굴로 그런 말을 하자, 에드도 칼을 집어 들어서 정리하며 웃었다.
― ‘그리 말씀해 주시니 감사합니다.’
아르웬과 에드는 서로 바라보며 빙그레 웃는다.
신의 축복을 받은 듯, 평화롭고 아리따운 분위기의 로스테일러 영지.
그곳의 저택 별관, 로스테일러 홀에도 따사로이 태양 빛이 스며들었다.
대낮의 온기가 포근하게 자리 잡은 와중에, 검을 들고 이리저리 휘두르며 골똘히 생각에 잠기는 에드를 본다.
아르웬은 그대로 눈을 지그시 감고, 그렇게 잠시 동안 평화로운 초봄의 온기를 느꼈다.
로스테일러 홀의 외벽은 거의 다 날아가서, 이제 ‘홀’이라 부를 수도 없는 상태가 되었다. 흡사 테라스다.
기묘한 살점이 꿈틀거리며 건물 잔해를 뒤덮어 가고 있고, 하늘에는 메뷸러와 루시의 마법진이 가득 차 있다.
그렘린과 정령들이 싸워 대는 전투음이 저택 부지에 가득했으며, 이따금씩 그렘린의 칼날에 당하는 사람의 비명 소리도 섞여 들려왔다.
그리고, 눈을 뜬 아르웬의 앞에 에드 로스테일러가 서 있다.
피 칠갑이 되어 있는 연미복과 역수로 쥔 단검, 그를 두르고 서 있는 박쥐 정령과 사자 정령, 예전과도 비교할 수도 없을 정도로 방대해진 마나량, 눈에 띄게 다부지게 변한 몸과 냉철한 눈매.
그의 몸에서 흘러나오는 기세만으로도 아르웬은 충분하리만치 깨달았다.
에드는 되돌아갈 마음이 없다.
뚫고 올라갈 심산이다. 그렇기에 아르웬도 전투태세를 취했다.
―파악!
에드가 바닥을 박차고 도약했다. 아르웬을 향해 일직선으로 거리를 좁혀 온 것이다.
아르웬은 두 자루의 대검을 쓰는 근접 전투를 구사한다. 굳이 거리를 좁혀 올 것이라 생각하지 못했던 아르웬은 재빠르게 왼손에 든 ‘단죄’를 올려 세웠다.
그러나, 사거리에 들어오기 직전… 에드는 바닥에 미끄러지며 급정거했다. 딱, 검의 사거리가 닿지 않는 위치였다.
그리고는 자연스럽게 품속에 넣어 둔 마법 구슬을 바닥에 흘리듯이 떨궜다. 아르웬은 재빠르게 반응해서 일단 거리를 벌리려 했으나, 그 구슬은 공격 수단이 아니다.
―화악!
‘마공학?!’
‘갈퀴손’.
주변의 물건을 일시적으로 자기 쪽으로 끌어당길 수 있는 마공학 용품이었다.
출력엔 한계가 있었으나, 발동 속도가 빠르다는 점 때문에 근접 전투에서 상대를 교란하기 좋은 도구였다.
구슬에서부터 마력이 발하더니, 순간적으로 아르웬이 쥐고 있던 ‘단죄’가 끌려가기 시작했다.
아르웬의 자세가 무너지면서 그 몸까지 에드 방향으로 끌려갔다.
그러나, 거리를 좁히는 것은 아르웬에게도 감사한 일이다. 그대로 아르웬의 보조 마법들이 순식간에 위력을 발하기 시작한다.
자기 체구만 한 대검, ‘여명의 날’에 경량화 마법이 부여되었다. 그대로 아르웬은 대검을 집어 올리고, 갈퀴손에 끌려가는 관성 그대로 에드가 있던 자리에 검을 때려 넣었다.
―콰앙!
대검을 휘두르면서 자유자재로 경량화 마법을 껐다 켰다 할 수 있는 수준. 아르웬의 마력 운용은 이미 상당한 레벨까지 올라와 있었다.
그대로 경량화 마법을 해제해서 그 무게로 바닥을 강타하자, 흙먼지가 피어오르며 순간적으로 시야를 가렸다.
그러나 검을 휘두른 아르웬은 알 수 있었다. 에드는 이미 사거리 밖으로 나갔다. 휘두르는 그 순간을 캐치해서 크게 뒤로 도약한 것이다.
그렇다면 애초에 뭣 하러 거리를 좁혔나. 그 의문이 피어오르는 순간, 흙먼지 사이로 바닥에 꽂아 놓은 단검이 눈에 들어왔다.
로스테일러 저택에서 쓰는 예식용 단검이다. 처음 오필리스관에서 쫓겨나던 날부터 쭉 에드가 쓰던 바로 그 검의 표면에는… 깔끔한 필체로 정령식이 각인되어 있었다.
‘이건….’
―쾅!
그 정령식을 해독해 보기도 전에 커다란 폭발이 먼저 일어났다.
재빠르게 ‘여명의 날’에 각인된 방어 마법을 발현해서 몸을 지켜 내는 데에 성공했으나….
―콰앙!
이어서 중위 불 마법 ‘일점 폭발’까지 아르웬의 명치에 때려 박혔다.
그대로 직격당해서 떨어져 나간 아르웬은 대검을 바닥에 꽂고 겨우 몸을 지탱했다. 한 줄기 선혈이 흘러나왔다.
연기가 걷혔을 땐, 그 너머에 피를 잔뜩 뒤집어쓴 에드가 묵묵히 서 있다.
“많이… 노련해졌구나….”
아르웬은 대검으로 몸의 무게를 지탱하며 다시 일어섰다.
개전하자마자 마법사가 전사에게 거리를 좁히는 짓은 자살행위다. 그러나 에드는 아무렇지도 않게 거리를 좁혀 상대를 당황시키고, 다시금 영역 안으로 끌어들여 온 뒤 다시 거리를 벌리는 기행을 했다.
일반적인 전사들이 가지는 거리 감각을 철저하게 유린하면서, 자기 페이스대로 전투를 끌고 가는 숙련자의 모습이었다.
단 한 합만으로 아르웬은 에드가 그 전과는 비교도 안 되게 성장했음을 인지했다.
로스테일러 홀에서 검술 대련을 하던 그때의 에드는 더 이상 없다.
―파악!
이번엔 아르웬이 바닥을 박차고 도약했다.
순간적으로 발현된 경량화 마법이 대검의 무게를 없애 버렸다. 그대로 아르웬은 ‘단죄’의 검 손잡이 밑을 발로 차서 하늘로 띄워 버렸다.
그리고 양손으로 ‘여명의 날’을 집어 들고는 달려들어, 가로로 크게 한 합을 베며 경량화 마법을 제거해 버린다.
검의 무게를 자유롭게 다루는 대검 여전사. 그 전투를 보면, 대검의 무게에 이끌려 춤을 추는 무희를 보는 것만 같다.
―화악!
에드는 가까스로 뒤로 도약해 피했지만, 아르웬은 가로로 크게 나아가는 검 손잡이의 무게에 이끌려, 그대로 한 바퀴 돌아 바닥을 박찼다.
한 번 더 거리를 좁힌 아르웬이 이번엔 세로로 대검을 내려꽂는다. 에드는 기초 방어 마법을 발현해서 받아 내려 했지만, ‘여명의 날’에는 모든 방어 마법으로부터 우위를 가지는 관통 마법이 각인되어 있었다.
―카앙!
―챙그랑!
순식간에 에드의 방어 마법이 부서지고 검날이 그를 덮쳤다. 가까스로 검날을 피했지만, 어깻죽지 쪽을 검날의 끝이 스쳐 지나가며 핏줄기가 흩날렸다.
에드는 얕은 신음성을 내며 미간을 좁혔다. 그러나, 치명상이 아니라는 점이 중요하다.
―콰악!
에드는 땅에 내다 꽂힌 대검을 발로 콱 밟았다. 아르웬의 동공이 일순간 커졌다.
아르웬의 근력은 이렇게 커다란 대검을 자유롭게 다룰 수 있을 정도로 강인하지 않다.
아르웬의 검술은 결국 경량화 마법을 이용해 대검을 들어 올리고, 그것을 휘두르며, 중간중간에 마법을 해제할 때 생기는 무게의 관성을 이용하는 데에 집중한다. 그렇기에 한 동작 한 동작이 마치 검의 무게에 이끌려 춤을 추는 것만 같다.
힘 그 자체를 키우는 것보다는, 이미 발생한 힘의 중심점을 파악하고, 그것을 비틀어 꺾는 감각이 발달한 동작들이다.
가진 근력에 비해 훨씬 큰 파괴력을 구사할 수 있게 해 주지만, 그 방식에는 맹점이 있다.
경량화하지 않은 상태의 대검은 무거워서 다루기가 힘들다.
경량화한 상태의 대검은 가벼워진 만큼, 외부의 힘에 더 큰 영향을 받는다.
즉 대검 그 자체를 외부적인 압력으로 짓눌러 버리면, 경량화 마법을 써도 검을 들어 올릴 수 없게 된다. 그럼 아르웬의 힘으로는 검을 다룰 수 없게 되는 것이다.
‘단 두 합 만에…?’
치명적인 맹점이지만, 그것을 간파하기는 쉽지 않다.
왜냐하면 대검은 생긴 것 자체만으로는 한없이 무겁고 둔중해 보이기 때문이다. 인간은 시각 정보에 생각 이상으로 많은 영향을 받는다.
이렇게 크고 육중한 검을 보고 있으면 회피하거나 어떻게든 막아 낼 생각을 하지… 검 자체를 무게로 찍어 누르겠다는 생각은 못 하는 법이다. 보통은 그 파훼법을 깨닫는 데 시간이 한참 걸리거나, 아니면 목이 떨어져 나갈 때까지 끝끝내 깨닫지 못한다.
그러나 에드는 단 두 합만을 주고받은 뒤 순식간에 파훼법을 간파해 냈다.
에드가 ‘여명의 날’을 짓밟고 있는 동안에는, 아르웬은 그 검을 사용할 수 없다.
‘놀라운 순발력이지만…!’
허나, 아르웬이라고 해서 이런 상황을 상정하지 않은 건 아니다. 아르웬은 그대로 대검의 손잡이를 놓고 몸을 휙 돌리며 측면으로 크게 빠져나왔다.
헤진 스커트 자락이 휘리릭 펼쳐지며, 꽃 한 송이가 피어나는 것 같다. 그대로 시원하게 한 바퀴 회전한 아르웬의 손에는 또 다른 검 ‘단죄’가 들려 있었다.
검 하나를 제 무게로 찍어 누르는 것은 쉽지만, 두 개를 동시에 제압하기는 힘들다. 아르웬이 두 자루의 검을 쓰는 이유다.
이럴 때를 대비해서 방금 검 하나를 하늘에 던져둔 것이었다. 깔끔하게 검을 받아 낸 아르웬의 몸동작은 거의 묘기에 가깝다.
그대로 몸의 회전을 멈추지 않고, 이번엔 ‘단죄’의 무게를 이용해 가로로 크게 한번 베어 낸다. 에드가 검을 회피하기 위해 몸을 뒤로 무르자, 다시금 앞으로 도약하면서… 자유로워진 ‘여명의 날’을 발로 차올린다.
아르웬이 발로 차올린 ‘여명의 날’이 무게가 제거된 채로 공중에서 몇 바퀴 빙글 도는 순간, 이미 아르웬의 다음 공격이 에드를 향해 날아들고 있었다. 깔끔하고도 확실한 검격이 에드의 어깨를 목표로 날아든다.
대각선으로 크게 베어 낸 검격을 ‘바람 칼날’을 이용해 흘려 내 버리자, 아르웬은 다시금 검의 무게에 이끌려 한 바퀴 빙글 돌았다. 그대로 빈손으로 방금 차올려 두었던 ‘여명의 날’을 집어 들고서는, 빙글 도는 관성을 유지하며 다음 공격을 내려 꽂았다.
―악!
에드는 다시 바람 칼날을 발현해서 ‘여명의 날’을 튕겨 내는 데 성공했지만, 그 반동으로 인해 크게 나가떨어지고 말았다.
―콰당탕!
“방어 마법이 통하질 않는다는 걸 알자마자, 원소 마법을 동원해서 방어를 시작했구나.”
나가떨어진 에드를 보면서, 아르웬은 대검의 날을 한 번 털었다.
“정말 엄청난 순발력이지만, 물리력 그 자체를 막을 수는 없어.”
에드는 숨을 휙 몰아쉬고서는 다시금 자리에서 일어섰다. 눈빛은 여전히 강렬하다.
아르웬은 그 눈빛에 마른침을 삼키고 말았다.
에드 로스테일러의 전투는 언제나 ‘사전 정보’를 기반으로 했다.
그 누구를 상대하든 에 등장하는 인물이라면, 어떤 방식으로 전투를 걸어올 것인지 그의 눈에는 선하게 보였다.
그러나, 아르웬 로스테일러는 철저하게 시나리오 밖의 인물이다.
어떠한 사전 정보도 없으며, 모든 것을 처음으로 부딪혀야만 한다.
그렇기에, 그는 눈을 부릅뜨고 상대의 정보를 머릿속에 각인시킨다.
사소한 몸동작부터, 마법의 원리, 행동의 습관까지… 순식간에 모든 정보를 파악해 내 간다.
단 첫 합 만에 자유로운 거리 조절로 아르웬을 당황시키고, 두 합 만에 경량화 마법의 맹점을 파악해 내 파고들었으며, 세 합 만에 ‘여명의 날’에 각인된 방어 무시 속성을 깨닫고 대처까지 해낸다.
적응 속도가 빠른 수준을 넘어서, 아예 한 합 한 합 다른 사람이 되어 가는 것만 같다.
아르웬은 그 모습을 보고서… 새삼 직감하고 말았다.
나가떨어진 채로 겨우 몸을 일으켜서, 피 칠갑이 된 채로 두 눈을 부릅뜨고 아르웬을 관찰하는 그.
상대는 임기응변의 달인이다.
장기전으로 끌고 가면, 반드시 진다.
아르웬의 전투 방식에 대한 모든 정립이 끝난다면, 그는 순식간에 그 대처법까지 완벽히 도출해 내 버릴 것이다.
“에드.”
아르웬이 나지막이 그 이름을 부르자, 에드는 대답한다.
“이제 와서, 또 할 말이 있습니까?”
“이제 와서라도, 그만둘 순 없겠니?”
“후우….”
에드는 그대로 천천히 몸을 바로 세워서, 단검을 다시 쥐고는 마력을 끌어모았다.
고위 정령까지는 소환하고 싶지 않았다. 그에게는 아직 남은 전투가 있기 때문이다.
고위 정령은 소환하는 것만으로도 말도 안 되는 수준의 마력을 잡아먹는다. 지금에서야 감당 가능한 수준이 되었지만, 사실상 결전 병기나 다름없는 수단이라는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르웬이 생각 이상으로 까다롭다.
대검은 파괴력이 강한 대신 무겁고 느리다.
그 당연한 원칙을 깨부수고, 대검의 파괴력을 가진 공격을 마치 단검처럼 빠르게 퍼붓는 전투 방식이 얼마나 말이 안 되는 것인지… 새삼 체감하고 만다.
필요하다면, 고위 정령까지도 끌어내야만 하는 상황이다.
“아마 우리는… 죽을 때까지 서로를 이해하지 못하겠지.”
더 이상 존대조차도 하지 않는 에드를 보며, 아르웬은 고개를 수그리고 말았다.
“그럼 검을 맞댈 수밖에.”
가족이란 게 뭐 어떻단 말인가. 결국 에드는 자신이 살아남기 위해 크레핀을 마무리 지으러 갈 뿐이다.
술주정뱅이 남편한테 매를 맞으면서도 끝끝내 가족의 끈을 끊지 못하는 아내가 되었든, 자식을 벌레 보듯 하는 부모의 아래에서도 끝까지 그 도리를 다하는 효자가 되었든, 아니면 자식 같지도 않은 놈 하나 뒷바라지하겠다고 제 인생을 다 바치는 부모가 되었든.
에드는 그로부터 몇 걸음이나 떨어져 살아왔다.
혈연이라는 끈으로 그를 속박하기엔, 이미 너무 멀리 왔다.
테라스에서 서로 갈라서던 그날 이후로, 로스테일러 가문을 향한 에드의 모든 경의는 전부 불타 사라졌다.
이제 와 남은 것은, 피 칠갑이 되어 크레핀을 잡으러 가는 마법사 하나뿐이다.
길게 끌어서 좋을 것이 없다. 이것이 마지막 한 합이 되어야 한다.
아르웬은 그렇게 확신하며, 검을 올려 들었다. 이미 에드는 자리를 박차고 달려드는 상태였다.
시간의 흐름이 느리다.
포효하며 거리를 좁혀 오는 에드의 모습이 아르웬의 두 눈에 각인된다.
에드의 눈에 비친 광경 또한 마찬가지다.
대검을 들고서 마지막 한 합을 내지르는 아르웬의 모습엔, 더 이상 망설임이 남아 있지 않다.
천천히 거리를 좁혀 오는 에드의 등 뒤에 박쥐 한 마리가 날아든다. 아르웬이 대처하기도 전에 불을 뿜어낸다.
천천히 날아드는 불꽃이 똑바로 아르웬을 향한다.
아르웬은 자세를 낮추고 불을 피하며, ‘여명의 날’에 경량화 마법을 부여한다.
허나, 그 순간 암사자 레이시아가 아르웬의 검을 낚아채 버린다.
끝까지 아끼고 아껴 둔 정령 현현.
마지막 한 합, 그녀의 허를 찌르기 위해 그 동안 동원하지 않은 수단이었다.
아르웬의 핵심적인 약점은 바로 경량화하는 그 순간 검이 지나치게 가벼워진다는 점이다.
약한 물리력만으로도 튕겨 나갈 정도로 검이 가벼워지니, 레이시아의 발길질 한 번이면 검을 튕겨 내 버릴 수 있었다.
그러나, 아직 한 자루가 남아 있다.
초대 검성 루덴이 사용하던 ‘단죄’. 영광스러운 로스테일러의 후계자로서 황실로부터 하사받았던 그 검이, 빛을 발하기 시작한다.
아르웬의 손에서 나가는 검격이 에드의 몸을 곧바로 향한다. 최단거리로 찌른다면, 에드의 공격보다 훨씬 더 그 속도가 빠를 것이다.
그러나, 에드는 알고 있다.
아르웬 로스테일러는… ‘찌르기’를 할 수 없다.
검의 무게에 의존해 파괴력을 끌어내는 그녀의 전투 스타일상, 온전히 제힘으로 검의 무게를 버텨 내야 하는 찌르기는 사용할 수 없는 기술이다.
검의 무게에 이끌려 크게 베어 내는 동작만으로 이어지는 기술들은, 깊게 파고들었을 때 완전히 무력화당한다.
그러나, 아르웬 또한 그 사실을 모르진 않는다. 그렇기에 그녀는 손에 든 ‘단죄’에 각인된, 마지막 마법을 발현한다.
‘가속화’ 마법. 순간적으로 몸의 움직임을 빠르게 해 주는 그 힘은, 에드의 계산 안에 들어 있지 않다. 아르웬도 끝까지 숨겨 놓았던 능력이다.
물리 법칙을 무시할 정도로 빠른 속도. 그렇게 에드의 가슴께에 검격을 가하려는 순간, 에드의 대처에 아르웬은 당황하고 만다.
―에드는 그대로 눈을 질끈 감아 버린 것이다.
모든 것을 포기한 것일까. 그렇지 않다.
그 순간, 에드의 몸 근처를 흐르는 바람이 주변을 휘감는다.
서로 남겨 놓은 최후의 한 수, 그러나… 수 싸움에서, 에드가 감춰 놓은 수가 약간 더 많았다.
인지 밖의 공격을 완전히 무력화해 버리는 ‘풍랑의 가호’.
그대로 바람이 일어나 아르웬의 검을 튕겨 내 버리고, 그대로 몸이 들려 버린 아르웬은 무력화 상태가 된다.
에드가 순식간에 단검을 쥐고 그 빈틈을 찔러 넣으려는 순간, 아르웬도 순식간에 최적의 대처를 해낸다.
이가 부서질 듯 악물고, 대검의 손잡이를 쥔 손을 꽉 움켜쥔다.
경량화 마법이 해제된 대검의 무게를 이용해, 그 손잡이를 끌어 내려 어떻게든 에드의 일격을 막아 내는 데 성공한다. 이로써 서로의 허를 찌르는 마지막 한 합은, 완전히 반반 상태로 되돌아간다.
이제 끝내자. 그런 대화가 오간 듯한 느낌이다.
허공에서 다시금 안정을 되찾은 자세로, 서로가 마지막 일격을 가하는 순간이었다.
일대일 전투.
그 모든 대전제를 무너뜨리는 변수가, 둘을 덮쳤다.
―콰아아아앙!
―화아아아악!
또다시 불어친 바람.
불안정한 바람 마법을 어떻게든 다잡으며, 둘 사이에 착지한 소녀가 있다.
밤하늘을 배경으로 휘날리는 그 금발 머리칼은 아르웬의 색과 한없이 닮아 있고, 날카로운 눈매는 에드와 닮아 있다.
중앙 첨탑에서부터 천장이 부서진 로스테일러 홀까지 한 번에 착지한 소녀는, 아르웬과 에드 둘 다 상정하지 못한 변수다.
느릿해진 시간 속에서 타냐의 표정이 보인다.
울먹거리는 것 같기도, 화난 것 같기도, 또 당황스러운 것 같기도 하다.
소녀의 머릿속에는 너무나도 많은 정보가 몰아치고 있다.
갑자기 난리가 난 로스테일러 영지. 부서진 저택 별관. 기괴한 모습으로 살아 있는 아르웬. 피 칠갑이 되어 별관을 오르는 에드. 그리고 둘 사이의 전투.
아무것도 알 수 없고, 어떻게 판단해야 할지 모르는 급박한 상황 속, 마지막 한 합을 주고받는 둘 사이에 나타난 그녀의 손에는 아직 미약하게나마 마력이 남아 있다.
단 한 번, 미약하지만 확실하게 바람 마법을 구현해 낼 수 있다.
아르웬과 에드. 둘 모두 단 일격이면 모든 방어가 무너지는 상황.
둘 사이에서 타냐의 눈은… 언제나 자애롭게 자기를 보살펴 주던 아르웬을 향한다.
사랑해 마지 않는 언니의 모습이 두 눈에 들어온다.
――테라스에서 안겨 있던 날 밤이 생각난다.
어둠 속에서 이 쪽으로 오라고 말하던 에드를, 타냐는 그냥 떠나보냈다.
그저 이유를 알 수 없고 무서워서, 아르웬의 품에 안긴 채 울었다.
갈라서는 둘 사이에서, 그렇게 타냐는 아르웬의 길을 따라갔다.
그렇게 에드는 테라스를 떠나고, 아켄섬으로 향하고, 고독 속에 살아남아 버텼다. 타냐는 그 옆에 서 있어 주지 않았다.
에드가 저택을 떠나던 날, 창문 뒤 커튼에 숨어 멀찍이서 그 고독한 뒷모습을 지켜보았을 뿐이다.
그날 이후로 그가 어떤 가시밭길을 걸었는지, 이제 타냐 로스테일러는 알고 있다.
―화아아악!
상황의 이유도, 일의 전말도 모른다.
백 분의 일 초조차도 아까운 마지막 한 합의 상황 속에서, 타냐는 아르웬의 손을 향해 바람 마법을 날렸다.
―화아아아악!
―카강
아르웬의 손에 들려 있던 마지막 한 자루 ‘단죄’가 그 손에서 튕겨져 나갔다.
아르웬이 일단 재빨리 거리를 벌리려고 하는 순간…
―콰악!
파고든 에드에 의해, 아르웬의 어깻죽지가 단검에 꿰뚫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