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Extra’s Academy Survival Guide RAW novel - Chapter (243)
벨브로크 토벌전 (11)
휩쓸어버린 마물들이 전부 육편이 되어 흩어지고, 드높은 하늘이 다시금 눈에 들어왔다.
루시는 흐릿해져가는 눈으로 하늘을 보았다. 의식을 잃기 직전까지 간 상태이지만, 척봐도 벨브로크에게 유효타가 들어갔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최고위 원소 마법을 구사할 줄 아는 사람은 역사적으로 통틀어서도 그리 많지 않다.
그리고, 그런 최고위 마법들조차도 며칠 밤낮을 준비해가며 겨우 시전한 공성용 마법인 경우들이 많았다.
그런 대규모 마법을 혼자서 시전해버린 것은, 정말 마법학이라는 학문 자체를 부정하는 듯한 기행이다.
그럼에도, 벨브로크는 쓰러지지 않는다.
모든 종류의 마법으로부터 일정한 저항력을 가지고 있는 벨브로크의 비늘은… 그런 상식을 뛰어넘은 최고위 마법조차도 거의 무력화 시켜버린다.
루시가 전력을 다해 내지른 대규모 원소 마법인만큼, 벨브로크도 고통의 포효를 내질렀다. 허나 그저 아픔을 느낀 게 전부다.
하늘을 뒤덮은 마물족 무리는 순간적으로 사라졌지만… 이윽고 벨브로크가 다시 불러낸 소환진에 의해 새로운 마물족이 뒤덮여간다.
온힘을 다한 일격임에도, 그렇게 순식간에 루시의 노력은 무의미해져간다.
그리고, 생활동 광장의 부서진 첨탑위에 똑바로 서있는 대현자 실베니아.
거대한 지팡이를 한 번 휙 휘두르며 나타난 그녀는, 고위 성위 마법 ‘공간 장막’을 해제했다.
공간을 비틀어 꺾어서 그 틈새로 숨어버리는 그 성위 마법은, 사실상 모든 물리 법칙을 초월해서 일시적으로 그 어떤 공격도 흘려내버릴 수 있게 해준다.
단점이 있다면 시전 시간이 무척이나 길고, 범위가 좁은데다가, 자신 또한 공간의 장막 사이에 갇히므로 외부 상황을 쉽게 판단하기 힘들다는 것이다. 요컨대 한 자리에 눈을 감고 가만히 웅크려 있는 것이므로, 막 마법을 해제했을 때 기습당하기 쉽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어떤 공격으로부터도 안전할 수 있다는 절대적 방어능력은 모든 단점을 상쇄할 수 있을만한 장점이다.
그 누가 됐든 휩쓸려 나가는 것이 당연한 루시의 마법으로부터, 생채기 하나조차 남지 않고 생존해있다. 그것만으로도 그 위력을 논하는 것은 더 의미가 없었다.
그리고, 부서진 첨탑의 꼭대기에서 루시를 내려다 본다.
루시의 새하얀 블라우스는 이미 원래의 색깔을 잃고 붉게 물들어있다. 소매 끝이나 스커트에 말려들어간 안자락 정도만 원래의 색을 흔적처럼 남겨두고 있을 뿐이다.
스커트 끝자락도 찢어져 있으며, 하얀 니삭스는 때가 잔뜩 타고 헤져서 본래의 형태를 유지하고 있질 않다.
그리고, 그 언제나처럼 멍하던 눈에 드디어 적개심이라는 것이 드러나기 시작한다.
눈에 힘을 주고 실베니아를 올려다보는 모습엔 의지 비슷한 것이 서려있다.
몸을 웅크리고 학사 구석에서 잠들어있던 모습이 어쨌냐는 듯이, 루시는 실베니아를 올려다본 채 말한다.
“마력의 전환 속도.”
천부적인 감각을 타고난 루시는 그제서야 실베니아의 빈틈을 캐치해낸다.
실베니아 로베스테르는 성위 마법의 선구자이자 희대의 천재로서, 그 누구도 범접할 수 없는 마법적 성과를 이룩한 자다.
전투 마법 분야에 있어서도 마찬가지다. 타고난 마력량, 빠른 계산 속도, 그리고 적절한 결단력까지.
결투 마법 분야도 이미 위인에 버금가는 능력을 지닌 만큼… 이미 지칠대로 지친 루시가 어떻게 감당해보기 힘들다.
하지만, 일반적인 마력과 성위 마력은 그 성질부터가 완전히 다르다.
일반적인 원소 마법을 다루기 위해 마력을 끌어내려거든, 그 마력을 다 흩뿌려 없애버리고 성위 마력을 새로 이끌어내야만 한다. 그야말로 비효율의 극치다.
그렇기 때문에, 성위 마법과 일반 마법은 병행해서 사용하기가 힘들다.
일반적인 마법사가 보기에는 별 속도 차이가 없는 것 같아도, 인류 최고의 마법사들끼리 맞붙는 전투에서는 그 미세한 전환의 틈이 보인다.
수 십, 수 백 합을 주고 받아봐야 비로소 그 편린을 겨우 볼 수 있을만한 작은 틈이지만… 루시 메이릴은 단 서너 합만에 눈치챘다.
실베니아 로베스테르의 성위 마법은 모든 상성을 무시하고 불합리하게 적을 제압하는 치트에 가까운 수단이지만… 빈틈이 없는 건 아니다.
대응이 까다로운 원소 마법으로 발을 묶고, 방어를 강제한 다음, 성위 마법을 시전하는 틈을 타 기습적인 일격을 박아넣으면 승산이 있을지도 모른다. 에드가 그 어깨에 단검을 꽂아넣을 수 있었던 것도, 죽음을 담보로 그 마력 전환의 틈을 이끌어냈기 때문이다.
힘 대 힘으로 붙으면 이젠 정말 승산이 없다.
남은 건 기술과 감각이다.
그리고, 별의 축복을 타고난 루시 메이릴은 기술과 감각 마저도 일반인의 범주를 아득히 벗어나있다. 실베니아를 제압할 전략을 재빠르게 수립한 뒤, 몸의 마력을 끌어올린다.
그러나, 몸에 남은 마력이 거의 없다.
실베니아와 몇 합 주고 받고, 벨브로크를 일시적으로 무력화하기 위해 쏟아넣은 마력만으로도 기진맥진한 상태다.
고위 마법은 커녕, 중위 마법 한 발 조차 시전하려거든 머리가 지끈거려온다.
만전의 상태에선 수십 수백개의 고위 마법진을 밥먹듯이 구현하던 루시다. 얼마나 궁지에 몰린지 실감이 되어서, 스스로도 인상을 찌푸리게 된다.
죽음의 그림자가 루시의 뒷목을 타고 스물스물 기어 올라온다.
생의 마감점.
살아남아 도망치려거든, 지금이 마지막이다.
이 앞을 더 나아가, 적과 마주하려거든 목숨을 내걸어야 한다.
목숨의 위기.
루시 메이릴 같은 강자에게는 너무나도 거리가 먼 단어.
허나, 그 금발의 몰락 귀족은 밥먹듯이 달고 다니던 무게추. 언제든지 목숨을 잃을 수 있단 위기로부터, 끝까지 이 악물고 살아온 사내의 그림자가 루시의 등 위로 덧대어 포개진다.
도망치지 못할 것도 없다. 딱히 자존심이니 명예니 하는 것을 챙기는 스타일도 아니다.
허나, 여기서 도망치는 것은… 그 사내에 대한 예의가 아니란 생각이 들고 말아… 루시 메이릴은 고민조차 하지 않는다.
바닥 난 마력을 이를 악문 채 긁어모으고 또 긁어모아서, 기술과 감각에 의존한 싸움을 계속해간다.
기초 바람 마법, ‘바람 칼날’ 예닐곱개가 실베니아를 향해 날아든다.
실베니아는 코웃음을 치며 지팡이를 휘둘러서 모두 무력화 시켜버린다.
고위 마법 쯤 되는 화력이 되어야 회피 기동을 할 의미가 생긴다. 기초 마법이 실베니아의 몸에 닿을 일은 없다.
허나, 루시는 아랑곳하지 않고 그대로 팔을 휙 내저으며 기초 불 마법 ‘발화’를 발현해냈다.
루시를 중심으로 피어오른 불꽃들이 시야를 가린다. 그리고 기초 땅 마법 ‘토벽’을 발현해내어, 솟아오른 벽들 사이로 몸을 숨겼다.
이 시점에서 실베니아는 눈치 챘다.
루시는 이제 정말 마력이 남아나질 않는다. 아무렇지 않게 발현할 수 있는 중위 마법조차도 아껴서 사용해야할 정도로.
아까부터 난무해대는 기초 마법이 그 증거다. 그 루시 메이릴이 기초 마법을 사용하다니. 거대한 발리스타에서 자그마한 석궁 화살이 나가는 것만 같은 광경이다.
루시는 토벽 사이를 가로질러 뛰어가면서 생각했다.
──못 이긴다.
──아마, 자신은 여기서 죽는다.
그렇다면, 최소한 실베니아를 데리고 가기라도 해야한다.
저 막대한 재앙인 벨브로크는 에드 로스테일러가 어떻게든 막아낼 방법이 있다고 했다.
허나, 실베니아 로베스테르에 대한 이야기는 전혀 듣지 못했다. 대현자 실베니아의 부활은 완전히 에드 로스테일러의 계산 밖에 있었던 일인 것이다.
마법 결투란 기본은 화력 싸움이지만, 디테일로 들어가자면 계산의 영역이 훨씬 많다.
그리고, 결투에 있어서 계산의 기본 전제란 자기 자신의 안위를 가장 먼저 두는 것에 있다.
자기 목숨을 내던질 각오로 덤벼든다면, 합리적 계산의 영역 밖으로 벗어나게 된다는 뜻.
즉, 상대의 허를 찌를 수 있게 된다는 것이다.
단 한 번.
자기 목숨을 담보로, 실베니아에게 일격을 박아넣을 수 있는 틈만 만들어낼 수 있다면…
그렇게 해서 급소를 맞춰 일격사 시킬 수 있다면… 최소한 재앙의 단초만큼은 없앨 수 있다. 판돈은 루시 자신의 목숨이다.
결국 벨브로크는 누군가 다른 사람이 쓰러트려 줘야 하는 것이지만…
루시는 에드의 말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 벨브로크는 어떻게든 해결 될 것이다. 그렇다면 역시 자신의 역할은 명확하다.
“우, 으흑… 크흑… 크으으흐극… 흑흑….”
웃는 건지 우는 건지 알 수 없는 얼굴로, 실베니아가 첨탑에서 광장 쪽으로 착지한다.
루시 메이릴이 더 이상 저항 할 수 있는 힘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사실을 간파했으므로… 더 손속을 둘 이유가 없다.
토벽들이 미로처럼 얽히고 설킨 상태다.
조금이라도 상대를 헤매게 만들기 위해 구현된 토벽들이지만, 그런 노림수는 강자에게는 통하지 않는다.
– 쾅!!
기초 마법으로 발현된 토벽정도는 그냥 마력을 쏟아붓는 것 만으로도 다 박살이 나버린다.
불길과 토벽으로 몇 겹이고 겹쳐진 루시의 미로는 순식간에 무력화 되고, 피를 흘린 채 절뚝거리며 달아나고 있던 루시가 한 눈에 들어온다.
실베니아는 팔을 들어올려서, 마지막 일격을 날리기 위해 얼음의 원소 마법을 발현해냈다. 이미 루시는 저항할 힘이 거의 없다.
그렇게 루시의 몸에 얼음창을 때려박는 순간이었다.
루시의 몸이 산산조각나서 사라졌다.
“…?”
사람은 얼음창에 찔리면 피를 흩뿌리며 내장을 쏟는 생물이지, 기계 부품처럼 저렇게 조각나 사라지지 않는다. 애초에 환영이었던 것이다.
현명한 실베니아라면 그런 일차원적인 함정에는 당하지 않는다.
광기에 잡아먹혀서 이성이 거의 사라져버린 소녀. 눈앞의 적을 박살내는 데에만 혈안이 된 실베니아이기에, 루시 또한 순발력과 임기응변에 능하다는 사실을 감안하지 못한 것이다.
토벽과 발화로 시야를 가린 것은, 그 틈바구니에서 새 함정을 설치할 시간을 벌기 위함일 뿐이었다.
기초 빙결 마법 ‘얼음칼’을 구현해내, 땅에서 솟아나게 만든다. 그 번들거리는 표면에 마법으로써 환영 각인을 새긴다.
제대로 된 고위 환영 마법을 쓸만한 마력이 없는 상태인 루시다. 그렇게 잡기술을 써서 미끼를 만들어놓는 게 지금 당장 할 수 있는 일의 전부다. 오히려, 고위 환영 마법은 마력의 여파가 강하게 남기 때문에 실베니아 같은 고위 마법사들에겐 간단히 간파당할 가능성도 있었다.
그렇기에, 쥐꼬리만큼 남은 마력을 어떻게든 끌어내어 적을 속이려 든다.
이것은 누가 뭐라해도, 약자의 전투방식이다.
속이고, 도망치고, 눈에 모래를 뿌리고, 돌을 집어들어 찍어대고, 머리를 잡아뜯고, 손톱을 박아넣고, 허벅지를 깨물고…
힘의 격차를 권모와 술수로 메꾸려는 그런 방식의 전투는 루시같은 사람은 평생토록 경험해 볼 수 없는 것이다.
루시 메이릴은 일평생을 강자로 살았으니까. 힘의 크기로 찍어누르는 것이 그녀가 평생토록 해온 싸움이니까.
그렇기에, 이런 식의 전투 방식은… 루시가 스스로 깨우친 것이 아니다.
– 콰앙!!
피를 잔뜩 흘리며, 위장 마법으로 숨어있던 루시가 실베니아의 등 뒤에서 일어선다.
실베니아는 화들짝 놀라며 뒤로 마력을 흩뿌렸지만, 그 또한 얼음칼에 각인된 루시의 환영이었을 뿐이다.
루시는… 피어오르는 연기 속에 몸을 숨긴 채 실베니아의 머리 위에 부유하고 있었다.
피칠갑이 된 모습이 흡사 시체처럼 보였지만, 확실하게 살아있었다. 연기 속을 헤치고 튀어나온 루시의 손에는 이미 바닥까지 긁어모은 마력이 모여있었다.
오두막 캠프의 나무 위에서, 오두막의 지붕 위에서, 오른산 꼭대기의 갈음의 제단 위에서, 로스테일러 저택에서, 전투부 대련장에서…
멍하니 앉아서 내려보던, 그 사내의 싸움이.
어느샌가 루시 메이릴의 두 눈동자에 아로새겨져 있다.
별빛이 가득찬 듯 영롱한 그 눈동자에 가득 담긴 것.
그것은 루시가 어렸을 적에 글록트에게 배웠던, 마법사로서의 명예어린 싸움이 아니다.
마탑의 마법사들이 예를 차리고 벌이는 결투 같은 것도 아니다.
루시 메이릴은 평생을 강자로 살았고.
에드 로스테일러는 평생을 약자로 살았다.
등을 맞댄 듯 정반대를 보고 살아온 두 사람이기에, 삶의 방식도, 싸움의 방식도 정반대일 수밖에 없다. 각자의 입장을 이해할 수도 없었어야만 했다
─그렇기에, 루시는 실베니아에게 처참하게 패배해야만 했다.
대현자 실베니아의 앞에서, 완전히 지쳐버린 루시는 그야말로 약자의 입장이다. 약자의 입장을 이해할 리가 없는 루시가, 힘의 차이에 찍어눌려서 패배하는 그림은 스스로도 충분히 예상이 갔다.
그러나, 세상 일이란 모르는 것.
알 수 없는 변수가 가득해서 미래가 어떻게 될지 모른다는 것이, 어쩌면 삶의 묘미라는 것.
안락의자에 앉아, 모닥불을 쬐던 글록트의 뒷모습이.
낮잠 잘만한 곳이 없나, 북쪽 숲을 거닐다가 우연히 발견한 목재 쉼터에 들어가서 잠들었던 그 날의 결정이.
그러다가 생긴 한 인연이, 돌고 돌아서 지금의 루시 메이릴을 만들었다는 것.
그 기묘하고도 알 수 없는 우연의 연속에, 루시 메이릴은 아이러니함을 느끼면서 마력을 끌어모았다.
– 화아아악!
미간을 찌푸리며 실베니아가 루시 쪽으로 다시 고개를 돌렸다. 그 거대한 지팡이를 휘둘려보려다가, 루시의 손에 어린 마력이 검붉은 색이라는 사실을 눈치챘다.
성위 마력이다.
여기서 한 번 더 수를 꼬아놓은 것이다.
일반적인 마력보다도 훨씬 더 많은 정신력을 소모하는 성위 마력까지 이끌어냈다는 건, 여기서 끝을 보겠다는 이야기다.
이미 한계까지 몰린 상태에서 성위마력을 쓰는 건 자살 행위에 가깝기 때문이다. 설마 이 타이밍에 스스로를 더 한계에 내몰면서 성위 마법을 쓸 거라곤 생각하지 못했다.
발현된 마법은 ‘시간 감옥’일까. 일격에 실베니아를 제압해야만 하는 루시 입장에선, 어쨌든 제압용 마법을 구현해야만 했을테니까.
뭐든 간에 일단 당하면, 반드시 제압당한다.
그러나 그것은… 성위 마력을 쓰지 못하는 상대를 대상으로 했을 때의 이야기다.
성위 마법의 대가 실베니아 앞에서 성위 마법을 논하는 것은 우스운 일이다.
끌어올린 마력을 흩어버리고, 순식간에 성위 마력을 끌어올린다.
성위 마력은 성위 마력으로만 대항할 수 있다. 재빠르게 루시의 성위 마법을 흩어버리면 이제 더 이상 싸울 기력이 없는 루시에겐 죽음만이 남을 뿐이다.
그렇게, 성위 마력을 끌어올려 대처하려는 순간이었다.
– 화아아아아아아아악!
실베니아를 향해 착지하는 루시 메이릴의 손에 어린… 그 붉디 붉은 기운이 사라져간다.
이윽고 그 붉은 기운은 루시가 이끌어낸 원소 마력에 의해 완전히 사라졌다.
“뭐…?”
실베니아는 눈을 의심하고 말았다.
성위 마력에서 일반적인 마력으로 전환하려거든, 모아놓은 마력을 일단 흐트러뜨려야 하는 비효율적인 과정이 생겨난다.
루시나 실베니아 같은 정점에 오른 마법사라면, 그 정도 시간차는 1초도 채 되지 않는다. 0.5초 될까 말까한 그 잠깐의 틈은, 어지간한 마법사들 상대로는 그리 유의미한 흠이 되지 않는다.
그러나, 이런 급박한 상황의 수 싸움 속에서는 완전히 이야기가 다르다.
억지로 거리를 좁히고, 순발력 싸움으로 끌어낸다. 상대의 흠을 잡아채서 파고드는 루시의 전략은, 누가 뭐라해도 에드 로스테일러의 전투 방식과 너무나도 닮아있었다.
그러나, 루시는 어떻게 저렇게 빠른 마력 전환을 이끌어낸단 말인가.
성위 마법의 대가인 실베니아조차도 아주 약간의 틈은 벌어지고 마는데, 그 찰나조차도 허용하지 않고 마력을 전환해낸 루시의 능력은 이론적으로 말이 안되는 것이다.
그러나, 이윽고 드러난 루시의 팔을 보고서 실베니아는 혀를 내두르고 말았다.
애초에, 성위 마력을 발현조차 하지 않았던 것이다.
루시가 발현해낸 것은 일반 마력이다. 마력의 전환 과정도 없었으니, 실베니아가 이끌어낸 성위 마력의 양보다 훨씬 많다.
검붉은 마력처럼 보였던 것은, 마력이 아니다.
타오르는 발화 마법의 불꽃에 영향을 받아, 루시의 마력또한 검붉은 색처럼 보였을 뿐이다.
──루시는 자기 팔에 불을 붙여버린 것이다. 그저 단순한 눈속임을 위해서.
아주 잠깐이지만… 얼룩진 화상이 눈에 들어왔다. 아마 평생을 가도 사라지지 않을 흉터일 것이 분명하다. 밀려오는 고통도 보통이 아닐 것이다.
확실한 결단. 애초에 환영을 이용한 두 번의 페이크도, 상황을 더 급박하게 만들어 실베니아가 성급하게 대처를 취하도록 이끌기 위해 파둔 함정이다.
이 짧은 시간안에 모은 마력만으로 루시의 주변에 얼음창 세 자루가 모여들었다.
전략은 에드 로스테일러의 방식을 취해온 것일지도 모르나, 기본적인 마력 감응과 몇 초 정도의 짧은 시간 안에 이 ㅈ어도 중위 마법을 끌어내는 것은 루시이기에 가능한 것이다.
실베니아에게 허락된 시간은 많지 않았다. 루시의 페이크 때문에 성위 마력을 끌어냈기에, 마력을 끌어모을 시간이 1초도 채 되지 않았다.
그 찰나의 시간에 실베니아가 모은 성위 마력이라 해봐야 한계가 있다.
그래도, 루시의 얼음창을 방어해내는 데에 사용한다면… 치명상은 피할 수 있다.
고위 성위 마법을 발현할 수 없지만, 모아놓은 성위 마력을 단순히 발산하는 것만으로도 어느 정도의 물리력은 행사할 수 있다.
– 콰아아아아앙!
이 모든 사고의 흐름이 1초도 채 되지 않는 찰나의 시간 안에 마무리 되고…
광장에 루시의 얼음창이 때려박히면서 거대한 흙먼지가 피어올랐다.
*“크, 후욱…”
궁지에 몰린 루시가 가진 모든 수단을 동원해 마지막으로 던진 노림수.
자기 한쪽 팔을 불태워가면까지 시도했던 마지막 일격은… 아쉽게도 빗나갔다.
“허억… 허억…”
실베니아는 인상을 찌푸리며 숨을 몰아쉬고 있었다.
자기 코앞에 내려꽂힌 얼음창은, 성위 마력의 영향에 의해 억지로 궤도가 비틀어져서 아무것도 없는 땅에 꽂혔다.
그러나 조금만 궤도가 덜 엇갈렸어도 얼음창은 자신의 머리를 갈라버렸을 것이다.
루시의 노림수는, 결국 마지막에는 먹혀들지 않았다.
루시가 감안하지 못한 마지막 하나의 변수. 그것은 바로 ‘운’이었다.
최대한 공격 범위를 넓게 잡기 위해, 모든 마력을 끌어내 세 자루의 얼음창을 구현해냈지만, 결국 성위 마력에 의해 비틀린 공간은 얼음창의 궤도를 꺾어버리는 데에 성공했다.
바닥에는 피로 범벅이 된 루시가 널브러져 있었다.
실베니아는 미간을 찌푸리고 루시를 바라보았다.
절대적인 마력의 양과 운용 능력, 그리고 힘의 크기 자체는 실베니아가 루시를 상회할지도 모른다.
허나 극한의 극한 상황에서까지, 그저 승리를 취하기 위해 환경을 구성하는 그 순발력과 임기응변. 단 0.1%의 가능성이라도 억지로 끌어내서, 승리를 취하려고 하는 전투 양식.
그것은, 마법사에게 배울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실베니아는 고개를 가로젓고서는, 다시금 마법 지팡이를 널브러져 있는 루시에게로 향했다.
절대로 살려두어선 안되는 자다. 그 일념이 머리 안에 가득히 차오르는 순간, 피로 붉게 물든 루시의 안광이 희번득거렸다.
갑자기 눈을 뜬 루시가, 실베니아를 휙 노려본다. 이를 악물더니, 다시금 마력을 끌어내려고 한다. 이젠 마력이라고 부르기도 민망할 정도로 미약한 마력만이 흘러나왔으나, 루시는 그 마력의 힘을 지지대 삼아 또 몸을 일으킨다.
넝마가 된 교복을 늘어 뜨린 채, 어렵사리 고개를 든 루시가 실베니아를 노려본다. 허억, 허억 몰아 숨쉬는 소리엔 아직도 투지가 서려있다.
루시는 생각한다.
비록 죽음이 목전에 다가와도, 도망갈 생각이 없다.
죽음의 공포가 스물스물 몸을 타고 기어올라와도, 그 사내는 언제나 똑바로 서있었다.
자기도 마찬가지다.
받은 생이 있으니, 자기 생은 그 사내를 위해 준다. 어찌보면 당연하다고 볼 수도 있는 이야기 아닌가.
10초라도. 아니 1초라도 더… 실베니아의 발을 묶을 수 있다면, 그렇게 해서 그 사내가 살아남을 가능성이 단 0.1%라도 더 확실해진다면.
목숨 정도는 아무렇지 않게 판돈으로 내던져준다.
그 결단은, 언제나 변한 적이 없었다.
그렇게 실베니아가 마력을 발현하는 모습을 보면서도, 루시는 흔들림 없이 똑바로 서있었다.
더 저항할 수 있는 수단이 있을까 생각해보지만… 아마도 여기까지인 듯 하다.
밝아져오는 마력의 빛에 시야가 아득해진다. 루시는 눈을 지그시 감았다.
따뜻한 모닥불 빛이 느껴진다.
솜이불 속에서 내다 보았던 글록트의 모습이, 이제는 이해가 된다.
생의 끝자락에서, 무의미한 삶일 뿐이라 생각했던 그 생애의 끝에서…
그래도, 살아있길 잘했다. 라고 독백할 수 있다면… 그 자체로 얼마나 의미있는 것인지.
그 말의 뜻을 드디어 이해한 것 같았다.
한 사내를 만났고, 그 사내를 위해 죽었다.
의미 있는 삶이었다고 회상할 수 있었다면, 얼마나 가치 있는 삶인가.
그렇기에, 루시의 입에서는 지그시 미소가 흘러나올 수 있었던 것이다.
그렇게, 시야는 아득해져갔다.
*- 콰아아아아아아앙!
그러나, 눈을 떴을 때 마주한 광경은 내세가 아니다.
여전히 피를 흘리며 어떻게든 이를 악물고 살아가는 사람들이 모여있는, 현실이다.
“잘 들어라, 루시.”
부서진 첨탑의 잔해 속에서, 자신과 마찬가지로 피칠갑이 되어있는 한 사내의 품 안에 안겨 있단 사실을 눈치 챘을 땐…. 이미 정신이 아득해져가고 있는 상황이었다.
그러나, 루시는 자기를 끌어 안고 있는 사내의 냄새를 잘 안다.
피비린내 속에서, 그토록 루시를 안심시켰던 풀내음이 피어오른다.
“무슨 일이 있어도, 절대로, 죽음만큼은 받아들이지 마라….”
실베니아가 날렸던 마법은, 예니카 페일로버의 정령 마법에 의해 일시적으로 무력화되어 있었다. 급박하게 사용한 마법이었지만 그걸 받아내는 것만으로도 예니카는 이를 악물어야만 했다.
루시가 눈을 뜨자 가장 먼저 본 것은, 달려들어서 바닥을 구르며 루시를 낚아챈 에드의 모습이었고, 그 다음은 실베니아를 막아선 일행들의 모습이었다.
황족 숙소에서부터 도주해온 에드의 일행들이었다.
“진짜 잘 버텨줬다, 루시… 정말… 잘 버텨줬어… 고맙다… 하지만…”
피칠갑이 된 루시를 끌어안은 에드 또한, 이미 피로 범벅이 되어 있었다.
둘 다 살아있는 몰골이라고 보기 힘든 상황이었지만… 어떻게든 이를 악물고 살아 있었다.
“무슨 수를 써서라도, 죽음에는 저항해라…. 죽음은… 절대 받아들이지 마…”
루시가 눈을 부릅뜨고 에드를 올려다 봤다.
에드는 온 몸의 격통을 참아내면서도 루시를 끌어안은 채 몸을 일으켜세웠다.
“우리는 오필리스관으로 도주한다. 지원군이… 거기로 집결할 거야…”
그렇게 말하며, 온 몸에 힘이 들어가지 않아 축 늘어져 있는 루시를 잡아 끈채 에드는 이를 악문다.
그런 에드를 올려다 본 루시는 순간적으로 눈물이 핑 돌았다.
그것은, 에드가 살아있다는 것을 확인해서 안심한 탓일까.
아니면 어떻게든 자신이 살아있다는 사실에 안도한 것일까.
아마도, 둘 다인 듯 해서… 루시는 아득해져가는 정신을 부여잡으면서도 그만 눈물을 쏟고 말았다.
피와 눈물에 범벅이 된 얼굴은 끔찍한 몰골이었지만, 그래도 에드는 루시의 눈물을 닦아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