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Game's Top Troll RAW novel - Chapter 279
279화 드래곤 아닌데 (2)
“미, 미천한 인간이 위대하신 존재를 뵙습니다.”
고개를 처박고 자신이 할 수 있는 최선의 예를 표하는 하이머.
그는 미친 듯이 떨리는 몸을 부여잡고 온 힘을 다해 희미해지는 정신을 붙잡았다.
‘드, 드래곤이었어……?’
어마어마한 거금이 드는 마법 재화를 너무나도 손쉽게 쏟아붓는 의문의 존재. 영문도 모르는 상황에서 자신을 구해 주고 온갖 일들을 시키는 그를 보며 하이머는 이제야 모든 것이 이해가 된다는 듯이 속으로 생각했다.
‘그래서 그랬던 거야. 어쩐지 처음부터 뭔가 말이 안 된다는 상황이라고 생각은 했는데……. 이제 어, 어떻게 해야 하는 거지?’
전설이나 옛이야기 속에서나 들어 볼 법한 초월종 드래곤.
이런 식으로 대면할 것이라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하이머가 무슨 말을 해야 할지 새하얗게 비어 버린 머리를 쥐어짜고 있는 그때. 그의 귓가에 어이가 없다는 듯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나 드래곤 아닌데?”
“예……?”
그 말에 조심스럽게 고개를 들어 눈앞의 존재를 바라본 하이머. 그의 눈에 들어온 것은 그게 무슨 소리냐는 듯, 황당한 표정을 짓고 있는 재영의 얼굴이었다.
“나 그 도마뱀 아니니까 겁먹지 말고 일어나라고. 누가 보면 너 잡아먹는 줄 알겠다.”
피식 웃으며 어딘가로 향하는 재영. 그런 그를 멍하니 쳐다보던 하이머는 이내 침을 꿀꺽 삼키고는 자리에서 일어나 그 뒤를 따라서 걸어가기 시작했다.
‘와……. 이거 도대체 다 얼마야? 어마어마하네…….’
한참 동안 재영의 뒤를 따라 걷던 하이머. 그는 그 거대한 공동 안에 질서 있게 차곡차곡 쌓여 있는 물건들을 연신 두 눈으로 힐끗힐끗 쳐다보며 마음속으로 탄성을 내질렀다.
‘황금 나무의 수액. 유니콘의 뿔. 거기에 상급 정령의 눈물까지……?’
이름만 들어 본, 전설 속에나 존재할 법한 온갖 희귀한 마법 재료들이 값진 보물들과 한데 뒤섞여 있는, 그야말로 휘황찬란한 황금의 보고(寶庫). 거기에 하이머는 작은 동산을 이루며 차곡차곡 쌓여 있는 반짝이는 크리스털의 무리에 입을 다물 수 없었다.
“이런 미친……. 최상급 마나석이 이렇게 많이……?”
가엘 연방에서도 한 해에 최대 500kg 정도밖에 생산되지 않는 최상급 마나석.
하지만 이곳에 놓여 있는 최상급 마나석은 그 양을 감히 파악하기에도 어려울 정도로 어마어마하게 많았다.
“아, 저거? 최상급 마나석만 있는 건 아니고, 아마 정령석도 같이 섞여 있을걸?”
자기도 모르게 큰 목소리를 내지른 하이머. 그 말을 들은 재영이 돌아서서 싱긋 웃으며 답하자 하이머의 눈은 더 크게 떠졌다.
“저, 정령석이요……?”
마나석보다도 훨씬 더 귀한 물질. 정령석.
잘만 가공한다면 특정 원소 계열의 마법을 몇 배나 더 극대화할 수 있는 최상급 마법 재료가 저 거대한 언덕에 뒤섞여 있다는 말에 하이머의 얼굴은 경악을 넘어 해탈의 경지에 이르렀다.
“이럴 수가…….”
거의 전 대륙의 부가 이곳에 모여 있다고 해도 이상하지 않을 것 같은 상황. 그렇기에 하이머는 떨리는 목소리로 조심스럽게 물었다.
“저, 정말 덱스 님은 드래곤 아니세요……?”
도무지 지금의 현실을 못 믿겠다는 듯한 하이머. 그런 그의 물음에 재영은 단호하게 말했다.
“그냥 평범한 모험가라니까? 보면 몰라?”
모험가는 보는 것만으로도 곧장 인식할 수 있는 NPC들. 그런 게임 속 설정을 적용받으면서도 믿을 수 없다는 듯, 하이머는 혼란스러운 얼굴로 중얼거렸다.
“그, 그건 그렇지만 아무리 봐도 여기는…… 드래곤의 레어 같은걸요.”
온갖 진귀한 보물들이 한가득 있는 거대한 동공. 어디인지 모를 정체불명의 이 공간은 하이머의 상상 속에서 존재하는 드래곤의 레어와 정확히 일치했다. 그리고 그런 그의 중얼거림에 재영은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다.
“여기 드래곤의 레어 맞아.”
“네……? 그럼 여기는 도대체 어떻게……?”
그 말에 더 혼란스러운 표정을 짓는 하이머. 그런 그의 반응에 재영은 귀찮다는 듯이 콧김을 내쉬며 손을 휘저었다. 그리고 그 순간, 하이머는 갑작스럽게 변화된 기류에 얼어붙었다.
“어떻게 여기에 들어오긴?”
아르카디아에서 특별한 업적이나 특이한 행동을 했을 때 무작위로 부여되는 칭호.
이러한 칭호들에는 부가적인 능력치들도 붙어 있었지만, 그것보다 더 중요한 기능이 있었다.
자신이 이룩한 업적을 NPC가 인식하게 하고, 그 업적을 모든 이들에게 알리고 떨치는 것.
그리고 지금 재영이 장착한 칭호가 그가 이룩한 위대한 업적을 강렬하게 알리고 있었다.
[드래곤 슬레이어, 덱스.]“어어어…….”
기괴한 침음성을 내며 얼어붙어 하염없이 재영을 쳐다보고 있는 하이머. 그런 그에게 재영은 사악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이제 여기 있는 건 다 내 거니까 들어왔지.”
* * *
한참의 시간이 지난 후에야 정신을 차린 하이머.
그는 재영에게 어떻게 드래곤의 레어를 얻을 수 있었는지 간략하게 이야기를 듣고는 경외감 넘치는 눈빛을 빛내며 탄성을 내질렀다.
“헤에……. 그러면 그 캐러비안을 해방했다는 모험가가 덱스 님이었어요?”
가엘 연방에서도 한동안 시끄럽게 들려오던 소문인 캐러비안의 이야기.
전 대륙의 모든 부랑자가 모여들고 있다는 이야기와 신대륙의 발견이라는 소식이 이미 한바탕 온 도시를 뒤집어엎었기에 하이머는 신기하다는 눈으로 재영을 바라보았다.
“그래. 사실 우리가 지금 있는 곳도 그 신대륙이야. 정확히 어디인지는 나도 모르지만, 용암으로 가득한 화산 지대로 추측하고 있지.”
너무나도 복잡하고 거대한 케르베니안의 레어. 재영 역시 레어 밖으로는 단 한 번도 나가 본 적이 없어서 잘 모르겠다는 듯, 어깨를 으쓱하며 말했다.
“에에……? 저, 정말이요? 가엘 연방이 아니에요?”
그 말에 화들짝 놀라며 이곳저곳을 두리번거리던 하이머. 그러고는 아직도 실감이 안 난다는 듯이 중얼거렸다.
“전 가엘 연방 밖으로는 나가 본 적이 없는데……. 이렇게 나가 보게 될 줄은 몰랐네요.”
“원래 있었던 곳으로 곧장 돌아갈 수 있으니까 너무 걱정은 하지 마.”
태연하게 말하며 계속해서 걸음을 옮기는 재영. 그런 그의 뒤에서 졸졸 따라가던 하이머는 이내 무언가 생각났다는 듯이 물었다.
“아, 그런데 여기는 왜 데리고 오신 거예요?”
가장 본질적인 질문.
마탑에 있는 마법 도서관에 가고 싶다는 자신을 밑도 끝도 없이 드래곤의 레어로 데리고 온 연유를 물었지만, 그는 무언가를 찾는 듯한 얼굴로 이곳저곳을 두리번거릴 뿐이었다.
“이상하다……. 분명히 여기 있었는데……?”
“뭐가……요……?”
온갖 반짝거리는, 딱 보기에도 심상치 않은 힘들이 깃들어 있는 것 같은 아이템이 가득 진열되어 있는 공간. 하지만 그게 아니라는 듯, 다시 한번 이곳저곳을 두리번거리던 그는 이내 큰 목소리로 소리쳤다.
“야! 황금 고블린! 이 자식 어디 있는 거야?”
짜증 섞인 목소리로 연신 투덜거리는 재영을 의아한 눈으로 바라보던 하이머. 하지만 이내 어딘가에서 불쑥 튀어나오는 샛노란 생명체에 경악할 수밖에 없었다.
“키키킥……. 부르셨습니까, 주인님.”
“고, 고블린?”
구부정한 허리에 작고 왜소한 외형. 툭 튀어나온 매부리코에 쭈글쭈글한 주름이 가득한 얼굴의 생명체. 하지만 그 추하고 못생긴 외모와 다르게 그의 피부는 너무나도 아름다운 황금빛으로 반짝이고 있었다. 그리고 그 생명체는 자기도 모르게 중얼거린 하이머의 말을 듣고는 이내 앙칼진 목소리로 땍땍거렸다.
“인간! 감히 누굴 보고 그 미개하고 저열한 고블린이라는 거냐!”
마치 어마어마한 모욕감을 느꼈다는 듯, 불쾌한 얼굴로 찢어 죽일 듯한 눈빛을 보내며 발끈하는 묘한 생명체. 하지만 그런 그의 격한 반응에 하이머는 당황한 기색으로 물어보았다.
“그, 그럼 누구신데…… 요?”
“이 몸으로 말할 것 같으면! 자랑스러운 탐욕의 일족! 위대하고 영광스러운 타락한 글러트니가의 크레비니안…….”
격양된 몸짓을 하며 자신을 소개하려던 생명체. 하지만 그 순간 갑자기 무언가를 깨달을 듯 멈칫하더니 이내 입을 닫고 눈을 굴리기 시작했다.
“네 이름이 뭐?”
너무나도 화사한 미소로 이 광경을 지켜보고 있는 덱스. 그런 그의 물음에 적잖이 당황한 듯 쩔쩔매던 그 생명체는 이내 말까지 더듬기 시작했다.
“주, 주인님, 그…… 그게…….”
“왜. 부담 없이 말해. 나도 네 이름 너무 길어서 까먹었거든. 네가 누구인데……?”
어디 한번 해 보라는 듯 손을 휘휘 저으며 재촉하는 재영. 그 생명체는 그런 그의 재촉에 이내 당황하더니 한숨을 푹 내쉬며 하이머를 향해 자신을 소개했다.
“주인님의 충실한 창고지기, 황금…… 고블린이다. 앞으로 황금 고블린 님이라고 불러라.”
“……?”
그게 뭐냐는 듯한 눈초리로 빤히 바라보는 하이머. 그런 그에게 재영이 추가적으로 말을 덧붙였다.
“그냥 이 드래곤 레어를 관리하는 창고 관리인 같은 거로 생각하면 돼. 뭐 필요한 것 있으면 이 자식한테 말하면 알아서 이 레어 안에 있는 물건이라면 가져다줄 거야.”
“아…… 네…….”
뭔가 어색한 분위기. 잠깐의 침묵 속에서 서로의 눈을 힐끗거리며 바라보다 이내 먼저 입을 연 것은 재영이었다.
“그보다…… 여기 있는 마법서들 죄다 어디로 갔냐? 분명 여기에 모두 보관하고 있던 거로 아는데 도대체 어디로 치운 거야?”
“아. 그거는 전부 32구역으로 옮겨 두었습니다. 다른 책들이랑 같이 합쳐서 보관하는 게 관리하는 데 편할 것 같아서 그랬습니다.”
“그래? 그럼 그곳으로 안내 좀 해.”
“킬킬킬. 알겠습니다.”
그 말에 폴짝폴짝 방정맞게 뛰며 어디론가 향하는 황금 고블린. 그런 그의 뒤를 자연스럽게 따라 걷는 재영을 보고 하이머는 연신 눈을 힐긋거리며 물었다.
“저…… 덱스 님?”
“응? 왜?”
“저기…… 저 고블린…… 도대체 뭐예요?”
본래 어린아이 수준의 지능을 가진 것으로 알려진 몬스터, 고블린.
군집 생활을 하며 늪지대나 깊숙한 숲속에서 둥지를 트는 것으로 알려진 이 몬스터가 이런 식으로 인간과 자연스럽게 대화를 나누는 것도, 그리고 저 독특한 빛깔의 피부색도 모두가 이상하고 특이했기에 하이머는 의아한 얼굴로 물었다.
그리고, 그런 그 물음에 재영은 피식 웃으며 답했다.
“아……. 그거? 보기에는 저래 보여도 저 녀석 상급 마족이거든.”
“아……. 네……?!”
상급 마족이라는 말에 더 화들짝 놀라며 얼어붙는 그. 하지만 재영은 별것 아니라는 듯이 말했다.
“전투 능력에 특화된 놈도 아니고, 그냥 가방끈만 긴 녀석이니까 그렇게 겁낼 것 없어. 누구 말로는 그냥 X밥이라고 하더라고.”
“그게 무슨…….”
마족.
전투와 투쟁만을 위해 살아가는 존재.
피와 죽음만을 갈구하며 모든 타락한 악의 근원이자 신의 저주와 버림을 한 몸에 받았다는, 인간의 영혼을 타락시키는 지옥의 악마들.
마주하는 것만으로도 죽음을 피할 수 없을 것이라는 그러한 공포의 존재가. 그것도 상급이라는 고위 악마가 이런 곳에서 상주하고 있다는 사실도, 일개 모험가의 말을 상급 마족이 고분고분 따르고 있다는 것도 도무지 믿을 수가 없었지만, 하이머는 차마 그런 의문을 입 밖으로 내뱉을 수 없었다.
“키키킥……. 여기입니다.”
“오……. 전부 다 모아 놨구나?”
펄럭.
“그렇습니다. 마법 말고도 다른 서적들도 많이 보관되어 있더군요.”
한쪽에 드리워진 거대한 천막을 걷어 내는 황금 고블린. 그리고 그 두꺼운 천들 밑에 숨겨져 있던 방대한 책장들이 그 모습을 드러내자 하이머는 턱이 빠질 것같이 입을 벌렸다.
“이, 이럴 수가…….”
지금껏 본 적 없는 거대한 규모로 빼곡히 채워져 있는 책장들. 수만…… 아니, 수십만 권에 가까울 것 같은 방대한 책들도 놀라운 일이었지만, 그 책들에 적혀 있는 제목들은 더욱 경악스러웠다.
[용언과 언령 마법의 차별점 분석.] [마나 축적을 위한 혁신적인 방법.] [마법 회로 집적 설계도.] [고대 마법과 현대 마법의 발전.]“이, 이게 도대체…….”
마법의 종주이자 초월종 드래곤.
그것도 극의에 달한 고룡급 드래곤이 직접 집필한 수많은 마법과 관련한 이론서들.
주체할 수 없는 떨림 속에서 하이머가 몽롱한 눈으로 자신의 눈앞에 꽂혀 있는 수많은 책들을 하염없이 바라보고 있는 그때. 그의 귓가에 장난기 가득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어때? 마탑 도서관보다 훨씬 낫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