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Game's Top Troll RAW novel - Chapter 463
463화 엿 먹이기 (1)
세계수의 영면 이후.
저 멀리 흩어져 있던 8개의 대륙.
하지만 어둠에 잠식된 그녀를 구하고 나아가 힘을 회복시켜 준 모종의 사건 덕분에 그 조각난 대륙은 다시금 하나로 합쳐질 수 있었다.
세계수를 중심으로 완전히 하나로 통합된 거대한 대지.
판게아.
그 거대한 변화가 벌어진 이후로 수많은 혼란이 대륙 곳곳에서 벌어졌지만, 그중에서도 특히 해상무역을 중심으로 하던 도시들은 그야말로 혼돈의 도가니였다.
[이, 이게 도대체 무슨……?] [이럴 수가……. 바다가 완전히 뒤바뀌었어.] [육지……? 이게 지금 꿈을 꾸는 건가……?]아침에 창문을 열면 바다가 가득했던 풍경에서 어느 날 갑자기 드넓은 평야와 숲이 보이기 시작하고, 정체를 알 수 없는 거대한 대륙 하나가 떡하니 그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상황.
해상무역이 발달한 도시가 하루아침에 박살이 나고, 오랜 시간과 시행착오 속에서 겨우 만들어 낸 해도가 완전히 무용지물이 되어 버린 상황.
그리고 그러한 변화는 검은 해적단의 선장, 카를로스가 지배하는 자유와 혁명의 도시, 캐러비안조차도 피해 갈 수 없었다.
애초에 세계수가 있던 거점이자 중앙 대륙에 자리했던 캐러비안. 그렇기에 대륙 통합 이후, 이들이 주 무대로 활약하던 해안 지역은 하루아침에 거대한 대륙과 맞붙은 내륙 지역으로 변해 버렸다.
하지만…….
그럼에도 카를로스는…… 아니, 검은 해적단은 조금도 변하지 않았다.
[크크크……. 이름 모를 저 새로운 대륙에도 역겨운 위정자들과 그들의 밑에서 고통받는 이들이 가득하구나.] [검은 깃발 아래 모인 모두가 형제이고 자매이며 피를 나눈 동지다.] [모여라! 위정자들의 쇠사슬 아래 속박된 이들이여! 모여라! 자유를 갈구하는 자들이여! 이곳 캐러비안의 깃발 아래에서 그대의 두 손으로 직접 자유를 쟁취하라!]배는 그저 하나의 도구에 불과할 뿐.
이들이 가진 자유와 평등 그리고 혁명과 박애의 정신은 조금도 변하지 않았기에, 이들은 무기를 들고 모두의 앞에 천명했다.
신분도, 과거도, 성별도, 그 어느 것에도 구애받지 않고 모두가 동등하게 자유를 누리며 그 누구든 천대받지 않는 도시, 캐러비안으로 오라고 말이다.
그렇게 온갖 대륙에서 모여든 수많은 범죄자와 부랑자, 거지, 노예 출신의 주민들로만 구성되었기에 도시 전체의 분위기가 거칠고 무질서하고 온갖 사건 사고가 발생해서 조용할 날이 없었지만, 검은 해적단의 선장이자 캐러비안의 해방자, 카를로스의 막강한 카리스마 덕분에 도시의 기본적인 질서만큼은 어느 정도 유지가 되고 있었다.
물론, 그 질서도 계속해서 위태해지는 상황이었지만 말이다.
“끄응……. 선장님, 큰일 났습니다.”
“또 무슨 일인가?”
온갖 서류들과 씨름을 하는 와중에 또다시 두꺼운 서류를 가득 들고 집무실로 들어오는 카를로스의 수하. 그는 근심이 가득한 표정을 얼굴에서 지우지 못한 채 심각한 목소리로 말했다.
“식량 말입니다. 아무래도 올해 수확량을 봐서는 식량이 많이 부족할 것 같습니다.”
“뭐? 도대체 그게 무슨 말인가? 식량이 왜 부족해?”
비축된 식량은 이미 충분하다는 보고를 바로 몇 달 전에 받았던 카를로스. 그렇기에 그는 이전과 전혀 상반된 이야기를 하는 수하의 말에 황당한 표정을 지으며 되물었다.
“그게 말입니다…….”
자초지종 상황이 이 지경이 된 이유에 관해 설명하는 그. 그리고 그 이야기를 잠자코 듣고 있던 카를로스의 얼굴은 점점 딱딱하게 굳기 시작했다.
“그러니까…… 최근 대륙 전체에 벌어진 그 재앙인지 뭔지 하는 것 때문에 부랑자와 난민이 폭증했고, 그로 인해서 기존보다 식량의 소비량이 대폭 늘어났다…… 이 말인가?”
“예. 게다가 기존에 식량을 구매하기로 계약했던 상단들도 돌연 계약을 취소했습니다. 최근 대륙 정세의 급변 사태로 인해서 식량의 공급이 불안정하다는 게 이유이긴 했습니다만…… 운송망이 마비된 것이 주효한 이유인 것 같습니다.”
대륙 곳곳에 불어닥친 재앙의 여파.
그 어떤 게임보다 복잡하고 섬세한 경제구조로 돌아가는 아르카디아. 그렇기에 대륙 전체에 불어닥친 재앙으로 인해서 운송망을 비롯해 생산 소비의 순환 자체가 완전히 마비되어 있었기에 식량이 모자란 상황은 생각 이상으로 심각한 문제였다.
“으음……. 어떻게 방법이 없겠는가?”
“일단…… 백방으로 다른 상단을 알아보고는 있습니다만, 최근에 급등한 식량 가격 때문에 그들이 요구하는 수준의 시세를 맞춰 줄 수 있을지가 의문입니다. 현재 남아 있는 재정 상태도 솔직히 말씀드리자면 조금 아슬아슬한 상태이고요.”
“크흠…….”
이전과 같이 해적질이나 해상무역을 할 수 없기에 이렇다 할 만한 수익 창출 수단이 딱히 없는 캐러비안. 온갖 복잡한 문제들이 산재해 있었지만, 카를로스 역시 아무리 생각해도 뾰족한 수단이 떠오르지 않았기에 그의 침묵은 점점 길어질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그 순간. 다급한 얼굴로 검은색 두건을 쓰고 있는 한 어린아이가 헐레벌떡 그의 집무실 안으로 들어왔다.
“서, 선장님! 카를로스 선장니임!”
최연소 검은 해적단 정식 일원이자, 귀염둥이 막내 역할을 하는 한스. 안 그래도 심각한 이야기를 하고 있는 와중인 데다 문을 벌컥 열고 들어온 그의 무례한 행동에 카를로스는 순간 엄하게 그를 혼내려고 했지만, 이내 제대로 말조차 하지 못한 채 헐떡이며 호들갑을 떨고 있는 그를 보고 문득 호기심이 밀려와 부드럽게 물었다.
“무슨 일이길래 그렇게 호들갑이냐?”
“그분…… 그분이 돌아왔어요!”
“그분이라면…… 설마……?”
잔뜩 흥분한 어조로 소리치는 한스. 그런 그의 말에 카를로스는 잠깐 고개를 갸웃거렸지만, 이내 그의 말을 이해한 듯, 눈썹을 씰룩거렸다. 그리고 그는 이내 한스의 뒤를 따라 천천히 들어오는 재영을 보고는 경악한 표정을 지었다.
“여, 오랜만.”
이 도시의 절대자이자 군주인 그에게 하기에는 너무나도 건방진 인사. 하지만 카를로스는 그딴 건 전혀 상관하지 않는다는 듯 호탕하게 웃음을 터트리며 그에게 달려들었다.
“크하하하하하! 나의 친우여! 드디어 이곳에 다시 돌아왔군!”
반가움에 자기도 모르게 재영을 와락 안아 드는 카를로스. 잠깐의 회포를 풀고 난 이후, 그는 재영을 향해 눈을 빛내며 물었다.
“그래서…… 무슨 일로 돌아온 거지? 여기에 정착할 생각은 아닌 것 같고…….”
“부탁이 하나 있어서 찾아왔어.”
“부탁……?”
부탁이 있다는 말에 고개를 갸웃거리는 카를로스. 그리고 그는 이내 재영이 원하는 바가 무엇인지를 깨닫고는 곤란한 표정을 지었다.
“대륙의 동쪽 끝 해상으로 가서 신화 속의 바다 괴수를 잡아 달라…… 이 말인가?”
“맞아. 어떻게 상대해야 할지, 공략법은 다 생각해 둔 상황이니까 큰 문제는 없을 거야.”
바다가 주 무대인 동쪽의 재앙.
그러한 환경적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평생을 바다에서 살아오며 배가 집이나 다름없는 이들의 경험이 필수적이었다.
하지만, 그런 재영의 생각과 다르게 카를로스는 한참의 침묵 끝에 거절의 의사를 밝혔다.
“미안하지만…… 그 부탁은 들어주기 어려울 것 같네.”
그 말에 아무런 반응도 하지 않고 담담하게 그를 응시하는 재영. 그리고 이내 나지막한 목소리로 물었다.
“이유를 물어봐도 될까?”
거절의 이유를 추궁하는 재영. 그리고 그런 그의 물음에 카를로스는 평상시와 다르게 엄청나게 진중한 모습으로 온갖 이야기를 쏟아 내기 시작했다.
“자네가 이 도시를 해방시켜 준 이후로, 정말 많은 일이 있었네. 갑자기 어느 날 대륙이 움직이더니 바다가 거대한 호수로 변해 버리지 않나, 전혀 생판 모르던 대륙에, 돼지 같은 영주의 영지가 떡 하니 모습을 드러내지 않나. 아 그리고…….”
재영이 떠나간 이후, 캐러비안을 본연의 모습 그대로 유지하고, 지켜 내기 위해서 온갖 노력을 다해 왔던 카를로스. 그는 지금까지의 자신의 노고를 증명하고 싶은 것인지, 묻지도 않은 수많은 일들을 주저리주저리 이야기했고, 재영은 그것들을 묵묵히 들어 주었다.
“주인, 쟤도 생긴 거랑 다르게 말이 더럽게 많다.”
“조용해, 박쥐 새끼야. 넌 눈치도 없냐?”
“넌 뭔데 갑자기 시비야? 이 망할 치킨 새끼야.”
진지한 둘의 모습을 옆에서 바라보며 생각 없이 말을 던지는 탄과 그런 그를 즉각적으로 진압하는 엘. 그 둘이 툭탁거리며 또 한바탕 시끄럽게 소란을 피우고 있었지만, 재영은 그런 그 둘을 완전히 무시한 채 카를로스만을 바라보고 있었다.
‘역시…… 예상은 했지만, 대륙 통합 이후로 점점 무너져 가고 있었네.’
뱃사람들의 도시가 하루아침에 내륙 한복판의 도시로 바뀌어 버린 상황.
본래라면 이미 오래전에 이 거대한 변화에 적응하지 못해 사분오열하며 다른 해상 도시와 같이 자멸하는 수순을 밟아야 했었지만, 카를로스의 헌신적인 노력 덕분에 캐러비안은 아직까지 현재 상태를 유지할 수 있었다.
‘경제도, 기반 시설도 낙후되고…… 부랑자들이 대부분이라 인적 자원도 형편없고…….’
일반적인 도시와는 그 궤를 완전히 달리하는 캐러비안. 이전에는 해상에서의 패권을 이용한 약탈 경제로 어찌어찌 유지하고 있었다지만, 이제 그 방식은 통하지 않는 세상이었다.
“결론적으로, 현재 캐러비안은 그 어떤 출정할 수 있는 여력이 없다네. 자금도, 인력도, 그 무엇도 그런 거대한 출정을 하기에는 무리라는 거지. 이번 겨울을 지내기도 빠듯한 상황이라 농사에 파견된 인력을 차출할 수도 없는 노릇이네. 게다가 기존 함선들 전부 페이갈 호수에 묶여 버려 해상으로 나갈 방법조차 없는 상태이고.”
본래 해상에 정박해 두었던 수천의 함선 전부가 이제는 페이갈이라는 거대한 호수 안에 갇혀 버린 상황. 애초에 레비아탄이 있는 영역까지 이동할 경로 자체가 원천 차단되어 있는 상태였기에 재영의 부탁을 들어주려 해도 그 방법 자체가 없었다.
‘어쩐다…….’
머릿속에서 수많은 생각들이 스쳐 지나가는 재영. 당장 저 동부에 남아 있는 재앙을 물리치기 위해서 카를로스와 검은 해적단을 이용할 생각이지만, 지금 당장의 상태로는 답이 없다는 것을 깨달은 재영은 이내 심각한 표정을 짓더니 손가락으로 연신 책상을 두드렸다.
“…….”
“정말 미안하네, 나의 친우여. 마음 같아서는 날아서라도 해상으로 배를 옮길 수 있다면 그렇게 해서라도 자네의 부탁을 들어주고 싶네만…… 그럴 수 없는 것이 현실이네.”
은인이나 다름없는 재영의 부탁을 들어주지 못해 진심으로 미안한 듯 연신 사과하는 카를로스. 그리고 그의 아무런 의미가 담겨 있지 않은 수사적인 표현에 재영은 무언가가 머릿속을 번뜩 스쳐 가는 것을 느꼈다.
“그래……. 그러면 되겠네.”
“뭐가…… 말인가?”
“날아가는 거. 배 타고 날아가면 되잖아? 내가 왜 그걸 생각하지 못했지?”
“……?”
갑자기 혼잣말로 연신 이해할 수 없는 소리를 중얼거리는 재영. 그리고 카를로스는 미친 건 아닌가 걱정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물었다.
“자네…… 배는 하늘을 날 수 없다는 사실은 알고 있는 건가?”
애초에 물 위에 뜨기 위한 목적으로 만들어진 배. 그렇기에 하늘을 날아간다는 허무맹랑한 소리를 너무나도 진지하게 하고 있는 재영을 보며 카를로스는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아, 알지. 배는 하늘을 못 날아.”
너무나도 당연한 상식을 되뇌며 고개를 끄덕이는 그.
그리고 그는 묘하게 반짝이는 눈을 빛내며 의미심장한 말을 덧붙였다.
“그 대신, 하늘을 날게 만들어 줄 수 있는 사람들은 알아.”
“뭐……? 뭐라……?”
재영의 말을 듣고 ‘내가 제대로 들은 게 맞나?’ 하는 표정을 지으며 눈이 휘둥그레진 카를로스. 하지만 그는 너무나도 사악한 미소를 짓고 있는 재영의 얼굴을 보며, 가슴속 깊은 곳에서 밀려오는 형용할 수 없는 기묘한 감정에 자기도 모르게 몸을 떨었다.
“있어. 공돌이 같은 녀석들인데, 아마 또 이런 거 던져 주면 좋아라 하면서 만들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