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genius decided to become a star RAW novel - Chapter 225
외전4. 겨울, 세린의 크리스마스(4)
세린이 극악의 난이도를 자랑하는 박도형의 “부를 수 없는 노래”를 오디션 곡으로 고른 이유가 있었다.
청소년 가요제에서 부른 “크리스마스에 만나요.”는 딱히 기교가 필요하지 않은 담백한 곡.
게다가 진혁에게 맞춰줘야 하는 듀엣곡이었다. 때문에 세린이 자신의 실력을 오롯이 보여주기에는 한계가 있었다.
듀엣은 밸런스라는 게 중요했으니. 세린이 수위를 낮춰 맞춰주는 수밖에 없었다.
진혁이 아무리 천재라지만, 지금 상황에서는 세린과 비교될 수 있을 리 만무했다.
물론 나중에 가면 얘기가 달라지겠지만.
지금으로서는 진혁은 노래 경력이 일천한 고등학생.
세린으로 말하자면 빌보드 1위를 밥 먹듯이 점령하고, 살아있는 전설로 추앙받던 대가수였다.
이 오디션 무대는 청소년 가요제와는 달리 오롯이 자신만의 무대.
세린은 자신의 모든 실력을 아낌없이 보여줄 요량이었다. 단 백만분의 일이라도 오디션 실패 가능성을 허용하지 않도록.
“시작하겠습니다.”
세린의 말에 주희태 실장이 고개를 끄덕했다. 세린이 짧게 호흡을 들이쉬고는 첫 소절을 내뱉었다.
“이 노래가 끝나면 난 널 잊을 거야….”
딱 한 소절이면 충분했다.
이전 생, 빌보드 1위를 셀 수 없이 점령했던 대가수 연세린이 오디션장을 뒤집어 놓는 것은.
‘뭐, 뭐야. 이게.’
주희태의 눈이 튀어나올 듯이 커졌다. 다른 심사위원들도 마찬가지였다.
“이미 네겐 지워진 이름이 되었겠지….”
무반주로 부르는 노래였다. 하지만 목소리만으로도 노래를 꽉 채워버리는 말도 안 되는 퍼포먼스.
“바보 같은 내가 또 혼자 이러는 거겠지….”
이미 평가 같은 것은 무의미했다. 모두가 입을 떡 벌리고 감상 모드에 빠져들었다.
CD를 집어삼켰다는 말로도 부족할 완벽한 피치, 발성, 호흡, 그리고 무엇보다 말도 안 되는 곡 해석과 감성.
“……”
경악한 보컬 트레이너가 머리를 쥐어뜯고 있었다.
이미 오디션장에 있는 모든 이들의 호흡을 앗아가 버린 세린의 노래가 마치 이제 시작이라는 듯 가볍게 하늘로 비상했다.
극악의 난도를 자랑하는 “부를 수 없는 노래”의 고음 파트.
“워― 이 노래가 끝나면, 널 지워야 하기에― 난 아직도 노래를 끝내지 못하네.”
엄청난 고음 영역이었지만 세린의 보컬은 거침이 없었다.
저음 파트의 미치도록 섬세한 감성을 한 올도 흐트러뜨리지 않으며, 아무렇지도 않게 하늘을 내달렸다.
너무 가볍게 소화해내는 보컬 능력에 모르는 사람이 들으면 쉬운 노래처럼 들릴 지경이었다.
“부를 수 없는 내 노래―.”
그냥 내지르기도 힘든 초 고음 파트에 완벽하게 실어내는 감정, 호흡.
주희태 실장의 몸에 있는 모든 세포가 전부 노래에 반응하고 있었다.
이건 원곡 가수인 박도형이 와도 안 된다. 박도형도 라이브를 이렇게 부를 수는 없을 터였다.
슈퍼스타였다. 이미 슈퍼스타.
대가수의 가능성을 가진 천재가 아니라, 이미 대가수였다. 눈앞의 작은 소녀는.
“부를 수 없는 노래, 아니, 부르지 못할― 나의― 노래―.”
창공을 비상하던 세린의 목소리가 조금의 이질감도 없이 부드럽게 지상에 착륙했다.
“……”
오디션장에 정적이 감돌았다. 아무도 차마 반응을 할 수가 없었다.
이제 갓 18세가 된 소녀에게서 나오리라고는 감히 상상할 수조차 없는 퍼포먼스.
머라이어 해리? 휘트니 윈스턴? 셀린 다이언?
그들이라고 감히 지금 이 퍼포먼스보다 나은 모습을 보여줄 거라고 장담을 할 수 있을까.
규격을 잴 수 없는 크기의 이세계적 존재가 심사위원들의 눈앞에 있었다.
짝! 짝! 짝! 짝!
정적을 깨고 주희태 실장이 기립 박수를 치기 시작했다.
그제야 다른 심사위원들과 직원들이 모두 일어나 커다란 함성과 함께 힘찬 박수를 보냈다.
“와아!”
짝! 짝! 짝! 짝!
오디션이 아니라, 마치 시상식 같은 분위기.
만약 일반적인 참가자가 이런 경험을 한다면 좋아서 어쩔 줄 모르거나, 울음을 터트릴 법도 하건만.
눈앞의 소녀는 마치 이런 대우가 너무도 익숙한 듯, 편안한 웃음으로 한 사람 한 사람의 눈을 마주치며 인사를 하고 있었다.
마치 무대 위의 디바가 객석의 팬들과 눈빛을 교환하듯.
그리고 한 사람 한 사람을 향해 보내는 소녀의 미소엔 말로 다할 수 없는 매력이 넘쳐났다.
그런 사람이 있었다. 그저 가볍게 보내는 한조각의 미소도, 손짓하나, 눈짓 하나도 전부 매력으로 가득찬 사람.
그저 자연스러운 행동 하나 하나가 사람들의 눈을 전부 사로잡는, 그야말로 스타로 태어난 사람.
아름다웠다. 눈앞의 소녀는 정말로 아름다웠다.
소녀는 실력만이 아니라, 모든 면에서 이미 대스타였다.
“합격이에요.”
지금까지 주희태 실장이 이렇게 즉석에서 합격을 외친 오디션 참가자는 없었다.
주희태 실장은 혹 이견이 있는 사람이 있느냐는 눈빛으로 주변을 둘러보았다.
당연히 그런 건 있을 수가 없었다. 보컬 트레이너는 아주 혼이 나간 듯 세린에게서 눈을 떼지 못하고 있었다.
“가능하면 부모님께 얘기해서 오늘 당장에라도 계약을 하면 좋겠는데. 괜찮겠어요?”
“아.”
세린이 빙긋 웃으며 말했다.
“그건 조금 어려운데요.”
“네?”
“한 달 정도는 고민해 봐야 할 것 같아요.”
“하, 한 달이요?”
이, 이게 뭔.
어쩌면 당돌하기까지 한 소녀의 말에 주희태는 기분이 나쁘기보다, 오히려 마음이 다급해졌다.
“아니, 아니, 그렇게까지 오래 생각할 필요 있겠어요? 혹시 부모님 반대 때문에 그런 거라면 내가 부모님을 만나서 설득해 줄 테니 걱정 말아요.”
“아뇨. 그런 건 아니고요. 제가 다른 사정이 있어서요. 죄송합니다.”
상상도 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WP 오디션 지원자가 합격을 해놓고는 계약 여부를 한달 씩이나 기다려 달라 말하는 경우라니.
이유가 뭔진 몰라도 절대로 놓칠 수 없었다. 저 눈앞의 대스타에게 이미 영혼을 빼앗겨 버린 주희태 실장으로서는.
“그, 그래요. 그럼, 일단 오늘은 다른 오디션 참가자도 있고 하니까. 끝나고 연락할게요. 한번 얘기는 나눠 볼 수 있죠?”
“아. 네.”
세린이 밝게 웃으며 인사를 하고 나갔다. 다시 봐도 눈부시게 아름다운 소녀였다.
오디션장에 있는 모두가 세린의 뒷모습이 사라질 때까지 넋을 잃고 바라보았다.
“시, 실장님. 이게 지금 대체….”
보컬 트레이너가 아직도 이 현실이 믿기지 않는다는 표정으로 주희태 실장을 바라보았다. 주희태가 고개를 저었다.
“후― 내 마음이 그 마음이야.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한 건지. 하, 참….”
“실장님. 무조건 데려와야 합니다.”
“알지. 그걸 내가 왜 몰라.”
“생각해 보세요. 저 아이가 NTN이나 HC에 가는 날에는….”
“에헤이. 아니, 왜 그런 끔찍한 소릴 하나. 기다려 봐. 내가 삼고초려를 해서라도 무조건 데리고 올 테니까.”
주희태 실장이 입술을 꾹 하고 깨물었다.
***
“음, 그러니까 이 평행우주라는 게 말이야.”
아직은 웹툰 작가를 꿈꾸고 있는 도민우가 웹툰에 종종 등장하는 평행세계에 대해 침을 튀기며 설명하고 있었다.
“같은 시간을 공유하지만, 그 세계의 모습은 전혀 다를 수가 있는 거지. 그러니까 어떤 평행세계에서는 우리는 서로 남남일 수도 있다니까. 물론 뭐 상상일 뿐일 수도 있지만.”
진혁이 그저 빙긋 웃었다.
다른 사람이 되어 자신의 죽음을 목도한 다른 세계. 이건 결코 상상이 아니었다.
웃음이 나는 건 세린도 마찬가지였다.
평행세계에 대해 모르는 건 아니었다. 숱한 드라마, 영화를 보았고, 심지어 자신이 출연한 드라마 중에도 평행세계를 테마로 한 것이 있었으니.
다만, 이렇게 자신이 직접 겪게 될 줄은 생각도 못 했을 뿐.
“그래도 말이야. 그 세계가 어떤 세계든.”
도민우의 표정이 진지해졌다.
“이 햄버거는 있어야 될 텐데. 아, 이걸 맛보지 못한다는 건 정말 비극일 거야.”
도민우가 햄버거를 와락 베어 물었다.
“크―.”
세린도 햄버거를 한입 베어 물었다. 너무나도 오랜만에 접하는 추억의 맛에 눈물이 핑 돌 지경이었다.
‘서연이가 이 햄버거 진짜 좋아했는데.’
어쩔 수 없이 떠오르는 친구에 대한 기억. 하지만 세린은 곧 고개를 저었다.
자신이 기억하는 친구 서연은 이젠 가슴에만 있는 친구였다.
“그러면 이제 진혁이하고 세린이는 학원으로 가?”
진혁이 고개를 끄덕했다. 영준이 기대 어린 표정으로 말했다.
“와, 진혁이하고 세린이하고 하이스쿨2에서 어떻게 나올지 진짜 기대된다.”
“나도.”
민영도 햄버거를 오물거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잠시 후.
SH연기학원.
“자, 그럼 기획사 문제를 좀 마무리 지어볼까?”
연성훈이 진혁과 세린을 바라보며 말했다.
“일단, 진혁이 먼저. 어떻게 NTN 괜찮겠어?”
“아, 그게….”
진혁이 세린과 성훈을 번갈아 보고는 말했다.
“저는 WP로 가려고 합니다.”
“WP?”
연성훈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WP에서 연락이 왔었어?”
“네. 이승수 사장님이 찾아오셨습니다.”
세린이 익히 알고 있는 대화가 이어졌다. 이 세계에서도 WP 이승수 사장과 진혁의 연은 그대로였다.
“아, 그래. 그 정도라면 당연히 WP로 가는 게 맞지. 이승수 사장님이 직접 움직였다면, 그건 정말 보통 일은 아니니까.”
연성훈이 고개를 끄덕거리고는 세린에게로 시선을 옮겼다.
“그럼, 세린이는? 역시 가수를 하려면 NTN보다 나은 선택지는 없겠지?”
아빠 성훈과 연기자가 아닌 가수로 본격 도전해 볼 거라는 얘기를 마친 뒤였다. 하지만.
“아니, 아빠. NTN엔 가지 않으려고.”
“응?”
세린의 말에 성훈과 진혁이 동시에 그녀를 응시했다. 세린이 그런 두 사람에게 미소를 지으며 천천히 입을 열었다.
“나도 WP로 가려고.”
“뭐?”
연성훈이 무슨 소리냐는 듯 눈을 껌벅였다. 진혁이 고개를 갸웃하다가 입을 열었다.
“세린아. 괜히 나 때문에 그럴 필요 없어. 가수 활동을 하려면 NTN이 최고의 선택지일 거야. 장동수 실장님도 엄청난 의욕을 보이고 계시고.”
친구를 좋아하는 세린의 성격이 선택에 영향을 끼쳤다고 생각하는 것이 분명했다.
그리고 이런 중요한 선택은 친구 따라 강남 가는 식으로 해서는 안 된다는 생각도.
물론 세린은 이런 진혁의 생각을 이미 알고 있었다.
“아니, 꼭 진혁이 너 때문만은 아니야.”
세린이 빙긋 웃었다.
물론 WP 행을 선택하는 건 진혁 때문이 맞았다. 하지만 NTN이 최고의 선택지라는 진혁의 말은 틀렸다.
지금의 세린은 어딜 가도 그곳이 곧 최고가 되도록 할 자신이 있었으니까.
“나 벌써 WP 오디션도 봤어. 합격 통보도 받았고.”
“뭐?”
세린의 말에 연성훈이 또다시 놀라는 표정을 지었다.
“세린아. 너 언제 WP 오디션을 봤어?”
“아, 한 달 전쯤에.”
“이야. 딸 섭섭하다. 어떻게 아빠한테 말도 없었어.”
“미안. 아빠. 오늘 얘기하려고 아껴 뒀어.”
세린이 아빠를 향해 빙긋 웃었다.
“허 참. 그래서 진짜 WP로 가겠다고?”
“응. 아빠. 그렇게 했으면 해.”
“뭐, 아빠야 네가 좋다면. WP도 훌륭하지. 아니 훌륭한 정도가 아니지. 지금이야 음악사업부 쪽은 NTN이 조금 우세하다지만, 그건 뭐 언제 바뀌어도 이상하지 않을 판도니까.”
그렇게 진혁과 세린이 WP 행을 결정하고 있던 그 시각.
톡. 톡. 톡. 톡.
WP 주희태 실장은 요즈음 통 잡히지 않는 일손 때문에 애꿎은 책상만 손가락으로 연신 두드리고 있었다.
‘하. 어떻게 데리고 온다….’
몇 번을 연락해도 마찬가지. 다이렉트로 부모를 설득해 볼까도 생각했지만….
청소년기의 아이에겐 그런 방법이 오히려 역효과를 불러올까 조심스러웠다.
‘그래도 역시 부모에게 연락을 해야 하나.’
주희태 실장이 세린의 부모에게 접촉해볼까 생각을 하고 있던 그때였다.
“실장님. 실장님께 전화가 왔습니다.”
“전화? 누구?”
“아, 배우 연성훈 씨라고.”
“연성훈 씨? 그분이 왜?”
주희태 실장도 연성훈의 이름 석 자 정도는 알고 있었다. 하지만 개인적인 친분이 있는 것도 아니고, 무엇보다 자신은 음악사업부 담당.
친분도 없는 배우가 직접 연락할 용건 같은 건 떠오르지 않았다.
“그, 연성훈 씨 따님이 연세린 양….”
“뭐?!”
주희태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그리고는 번개같이 달려가서 수화기를 붙들었다.
“네, 전화 바꿨습니다. 주희태입니다.”
주희태는 두 손으로 전화기를 받았다. 그리고는 인사하듯 연신 고개를 숙이는 주희태.
“고맙습니다! 고맙습니다! 저희가 진짜 제대로 키워 보겠습니다. 맡겨 주세요! 네. 네. 그럼 곧 찾아뵙겠습니다. 조심히 들어가십시오!”
마지막까지 수화기에 대고 깍듯이 허리를 굽혀 인사를 한 주희태가 전화를 끊자마자 포효했다.
“으아아아! 만세!”
지나는 길에 그 모습을 본 이광수 실장이 물었다.
“주 실장님. 뭐 좋은 일 있어요?”
“아, 그럼요. 정말 기가 막힌 연습생 하나 데려오게 되었습니다. 이야, 제가 걔 데리고 오려고 연락을 몇 번을 했는지.”
이광수 실장이 고개를 갸웃했다.
“연습생 데려오려고 몇 번씩 연락을 했어요? 직접?”
“네네. 흐흐흐.”
안면 근육이 전부 풀어진 채 실실 웃고 있는 주희태를 본 이광수 실장의 얼굴이 살짝 찌푸려졌다.
“요새 우리 WP 분위기가 묘―합니다. 사장님은 고등학교 애 하나 잡겠다고 직접 찾아가시실 않나. 우리 주 실장님은 연습생 하나 잡았다고 만세를 부르시지 않나.”
이광수가 고개를 절레절레 젓고는 자리를 떠났다. 주희태는 그런 이광수의 뒷모습을 보며 생각했다.
‘실장님. 기다려 보세요. 아주 깜짝 놀랄 테니. 우리 음악사업부를 부러워하게 될 겁니다. 으하하!’
근데, 가만. 사장님이 고등학생을 직접 찾아가?
주희태가 이상하다는 듯 고개를 갸웃했다. 하지만 이내 다시 함박웃음을 머금었다.
우리 세린이를 보면 아마, 직접 찾아가야 할 사람은 따로 있었구나 하시겠지.
‘사장님 제가 대어를 낚았습니다! 으하하!’
주희태가 누가 보면 미쳤다고 할 웃음을 터트리며 작업실로 향했다.
***
하이스쿨2, 2012 홍길동전…. 전설은 이곳에서도 여전히 전설이었다.
장동수 프로듀서가 아닌 주희태 프로듀서 밑에서도 세린이 데뷔와 동시에 가요계를 석권한 건 말할 것도 없었고.
장동수 프로듀서가 진혁과 세린의 WP 행을 전해 듣고는 한 달 동안 술만 펐다는 소식이 이 바닥에 파다했다.
세린은 일부러 장동수 실장을 찾아갔다.
비록 지금 살아가고 있는 세계는 달랐지만, 어쩐지 조금은 위로를 해주고 싶었다.
‘실장님. 저 언젠가 꼭 실장님하고 같이 작업할 거예요.’
‘……’
‘정말이에요.’
이전 세계에서 장동수는 세린이 진혁의 회사 프렌드엔터로 이적하던 때, 함께 프렌드엔터로 이적했다.
사실 이적이라고 하긴 무색한 상황이긴 했다. 그 무렵의 장동수는 이미 은퇴가 얼마 남지 않은 형편이었으니.
하지만 은퇴가 얼마 남지 않은 백전노장의 프로듀서는 자신의 손으로 만든 최고의 디바 연세린과 함께, 그의 마지막 앨범 작업을 장식하고 싶었다.
‘말이라도 그렇게 해줘서 고마워요.’
장동수에게 세린의 말이 얼마나 위로가 되었는지 알 수 없을 일이었다.
하지만 세린이 할 수 있는 일은 여기까지. 사람은 누구나 각자 살아내야 할 삶의 몫이 있게 마련이니까.
“노래해 달라고?”
홍길동전과 고3 수험생활로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진혁이 세린의 연습실을 찾아왔다.
그리고 청한 노래.
“좋아. 진혁이 네가 듣고 싶다면.”
세린은 무슨 노래를 듣고 싶은지 묻지 않았다. 그녀는 너무나 잘 알고 있었으니까.
진혁이 청할 노래가 세린의 엄마 송하의 앨범 수록 곡 중 가장 좋아하는 “그 빗속에서, 그리움”이라는 걸.
세린이 짧게 호흡을 가다듬고 조용히 첫 소절을 내뱉었다.
“조금씩 지워지는 너의 기억―.”
진혁의 아름다운 눈이 커다란 곡선을 그렸다.
아마도 그가 생각하는 노래가 정확히 흘러나왔기 때문일 터였다.
그리고 조용히 감기는 진혁의 눈.
진혁의 귀로 전장에서 그의 영혼을 위로해주던 그 노래가 울려 퍼졌다.
조금씩 지워지는 너의 기억
빗속에서 흔들리던 너의 모습
잊었다 생각할 즘엔
어김없이 찾아오는 빗소리
되살아나는 그리움
다시 너의 이름을 부른다.
그리움이 너를 부른다.
빗속의 그리움이 너를 부른다.
잔잔하던 빗줄기가, 가슴을 쓸어내리는 소나기가 되고 다시 잦아들 무렵.
진혁이 눈을 떴고. 세린은 노래를 그쳤다.
짝! 짝! 짝! 짝!
진혁이 활짝 웃으며 박수를 쳤다. 박수 소리가 잦아들 즈음. 세린이 진혁에게 말했다.
“좋아해.”
“응?”
갑작스러운 세린의 말을 진혁은 알아듣지 못한 듯했다. 세린이 다시 한번 또박또박 말했다.
“나 너 좋아해.”
“……”
“아주, 아주 오래전부터.”
75년 만의 고백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