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genius decided to become a star RAW novel - Chapter 3
3. 새로운 규칙
“저 나갔다 올게요. 엄마.”
엄마.
우진혁이 단 한 번도 불러본 적이 없는 생경한 호칭. 뭐라 설명할 수 없는 감정이 담기는 단어였다. 진혁에겐.
집에 돌아온 지 열흘 만에 엄마라는 말이 입에서 떨어졌던 순간, 진혁은 지금 자신이 발을 딛고 있는 현실이 얼마나 비현실적인지를 다시 한번 절절히 느꼈다.
궁금한 것들이 있었다.
2027년 전장에서 총에 맞은 우진혁 자신의 생사는 둘째 치고, 지금 이 세계에는 17세의 우진혁 자신이 있다. 지금쯤 용병 훈련소에 들어갔을.
어떻게 되는 걸까. 자신은 여기 이렇게 다른 우진혁이 되어 있는데. 17세의 자신이 같은 세계에 존재한다면.
당장에 뭘 어떻게 확인 할 수 있는 방법은 없었다. 생각해 보자면 굳이 지금 확인해야 할 필요가 있는 일도 아니었고.
그냥… 궁금했다. 그뿐이었다.
지금이라고 한다면, 정말 확인해보고 싶은 건 따로 있었다. 자신이 17세에 한국을 떠나기 전에 맺었던 인연들. 용병 생활 중에도 한 번쯤은 떠올랐던 얼굴들.
그리고. 그와는 다른 이유로, 꼭 한번은 마주 하고 싶은 인간들도 있었고.
하지만 그것도 당장은 아니었다. 일단은 지금 주어진 새로운 삶에 적응해야 하는 일이 우선일 테니까.
혼란스러웠던 마음이 정리되면서 우진혁은 자신이 해야 할 일에 대해 생각했다.
첫 번째 떠오른 건 이 불쌍한 부부의 진짜 아들, 아니 최대한 진짜 같은 아들이 되어주는 일이었다.
부모가 있어 본 적이 없는 그로서는 쉽지 않을 일이었다. 하지만 해야만 하고, 또 하고 싶은 일이기도 했다.
용기를 내어 ‘엄마’, ‘아빠’라는 단어를 뱉어내는 것이 그 시작이었다.
“진혁아. 아직은 너무 무리하면 안 돼. 알지?”
“네. 엄마. 조심할게요.”
그리고.
또 뭘 해야 할까.
이 삶이 언제까지 주어질지 모른다. 하지만 따지고 보면, 그건 누구라도 마찬가지였다. 내일을 장담할 수 있는 사람이란 존재하지 않으니까.
그건 이전 생의 우진혁이 가장 잘 알고 있는 일이었다. 전장에서 죽음이란, 늘 등을 맞대고 있는 친구가 아니었던가.
진혁은 일단 한 가지 원칙만 정하기로 했다.
이젠 살고 싶은 삶을 살자. 후회 없이.
더는 비참하게 살지 않을 것이다. 그저 살아 있기에 사는 삶도, 살아남기 위해서 사는 삶도 살지 않을 것이고.
자신이 져야만 하는 삶의 고통. 그 멍에가 있었다면, 그건 지난 34년의 지옥 같은 삶으로 충분하지 않았겠는가.
지옥의 유배가 끝난 이유가 있을 터였다.
그 정도면 충분했다고.
이젠 지금까지와는 다른 삶을 살아보라고.
우진혁은 하루씩, 한 걸음씩 자신이 원하는 삶을 온전히 살기 위해 노력할 참이었다.
“후―.”
심호흡을 했다. 한낮의 열기가 채 가시지 않은 도심의 공기를 한껏 들이켰다. 여름밤의 공기는 진혁을 기분 좋게 흥분시켰다.
운동을 하기 시작한 건 병원에서 돌아온 다음 날부터였다. 물론 진혁의 부모님은 가벼운 산책 정도로 알고 있었지만.
진혁은 원래 자신의 스타일대로 몸이 견딜 수 있는 한계까지 몰아붙이고 있었다.
이 몸의 주인은 기본적으로 집 밖으로 나가는 자체를 싫어했던 녀석이었던 듯했다. 일기를 보면 성격이 매우 사색적이고, 또 무척 내성적이었던 것 같고.
어쨌든 체력, 근력 모든 게 형편없는데… 아침부터 저녁까지 루틴을 잡고 운동한 지 20일. 놀랍게도 몸이 확실히 달라진 게 벌써부터 느껴졌다.
어린 청소년의 몸인 탓도 있겠고, 녀석이 워낙 약했던 터라 체력 상승 폭이 크게 느껴진 탓도 있을 것이었다.
하지만 그것만으로 설명할 수 없는 건,
꾸욱.
진혁이 주먹을 쥔 오른손에 힘을 주었다. 팔뚝의 근육이 보기 좋게 갈라졌다. 마치 용병 시절 자신의 몸인 양.
비쩍 말랐던 몸에는 살이 붙고, 날렵한 근육이 빠르게 자리했다.
창백했던 얼굴에는 건강한 혈색이 돌았고, 하얀 피부는 마치 광채라도 내는 듯 윤기가 흘렀다.
진혁은 생각했다. 자신의 영혼과 이 녀석의 몸이 합쳐지면서 이해할 수 없는 어떤 신체적 변화가 일어난 게 아닐까.
그게 아니라면 설명하기 힘들 만큼 우진혁의 몸은 짧은 시간 만에 가볍고 단단해졌다.
단 20일 만의 일이라고는 믿을 수 없는 변화였다.
스윽― 슥.
진혁은 잠시 서서 관절을 풀고는 천천히 뛰기 시작했다.
처음 운동을 시작했을 때와는 다르게 달리는 리듬에 몸이 익숙하고 편안하게 반응했다.
스쳐 지나가는 풍경이 빨라질수록 더 가쁘게 숨이 차올랐다.
커지는 심장의 박동. 하지만 진혁은 아직 충분치 않다는 듯 더욱더 속력을 내기 시작했다.
진혁이 반환점으로 삼은 건 집에서 버스로 두 정거장쯤 떨어진 공원. 공원을 돌아 집 앞 놀이터 근처에 도착할 때까지 진혁은 속도를 늦추지 않았다.
“후우―.”
놀이터 입구에서 뛰기를 멈춘 우진혁이 숨을 골랐다. 놀이터에서 근력 운동을 하고 귀가할 참이었다.
하지만 매일 텅 비어있었던 이 시간 즈음의 놀이터에는 먼저 온 손님들이 있었다.
“야. 내놔 보라고. 확! 그냥.”
“이야. 이거 뭐 딱 봐도 비싸 보이는데.”
“아, 안 돼. 이건.”
“야 이 시발 놈아. 안 되긴 뭐가 안 돼. 이거 안 놔? 놔. 이 새끼야. 뒈지기 전에.”
이 시간에 처음으로 본 녀석들. 유쾌한 놈들은 아니었다. 대충 우진혁 또래의 녀석들 넷이 한 꼬마를 빙 둘러싸고 있었다.
우진혁은 어떻게 해야 할지 선뜻 판단을 내리지 못했다.
물론 이곳이 전장이었다면 간단한 결정이었겠지만, 이곳은 진혁에겐 아직 낯선 일상의 세계였다.
“어? 언제 왔어! 이 새낀.”
꼬마를 둘러싸고 있던 녀석 중 하나가 진혁을 쳐다보았다.
“하. 시발. 뭘 그렇게 꼬나보고 있어. 일루 와 봐. 너.”
“……”
“안 들려? 일로 와 보라고!”
정말로 오랜만이었다. 우진혁이 일방적으로 오라 가라 명령하는 말을 들은 건.
진혁이 꼼짝하지 않고 서 있는 사이 말을 건 녀석이 다가왔다.
“하. 근데 이 새끼가. 뭐야. 쫄아서 발이 안 떨어지는 거야? 새끼야 누가 잡아먹냐?”
탁.
진혁의 뺨을 톡 치려던 놈의 손을 진혁이 가볍게 팔로 비껴냈다.
“어쭈? 막아? 하, 나, 이 새끼 봐라? 좋게좋게 얘기하니까 형님이 어떤 분인지 감이 안 오는가 봐?”
우진혁이 무표정한 얼굴로 말했다.
“그냥 가라. 저기 저 애는 놔두고.”
진혁이 민간인 양아치에게 해줄 수 있는 최대한의 친절이었다.
“뭐? 크하하! 야! 이 새끼 말하는 거 들었냐? 그냥 가란다 야! 와, 시발. 그럼 내가 ‘아 그냥 보내주셔서 졸라 고맙습니다.’ 해야 하나?”
놈이 얼굴을 일그러뜨렸다.
“하. 시발 내가 너무 친절했네. 일단 한 대 맞고 다시 얘기해 보자. 이 시발 놈아!”
말이 떨어짐과 동시에 놈의 주먹이 날았다.
순간 우진혁의 눈이 번뜩이고,
‘어?’
주먹을 날린 놈의 몸이 밤공기를 가르며 공중으로 붕 날아서는, 땅으로 내리꽂혔다.
“크억!”
순식간에 땅에 널브러진 녀석은 물론, 옆에 있던 다른 녀석들도 지금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는 표정이었다.
“뭐, 뭐야. 시발.”
겨우 이 정도로 놀란 토끼 눈이 되어 자신을 쳐다보는 꼬마 양아치들을 보자니… 우진혁은 픽하고 웃음이 났다.
귀엽네.
우진혁은 이런 꼬맹이들과 싸우고 싶은 생각이 조금도 없었다.
아니 싸울 수 없다는 게 맞는 말이었다. 지금까지 진혁에게 싸운다는 건, 곧 죽인다는 말과 다름없었으니까.
그 때문에 타격을 가하지도 않았다. 순식간에 균형을 무너뜨리는 기술이었다. 상대가 힘을 준 결대로 날아가도록 도와준 게 전부.
하지만 실소는 이내 씁쓸한 미소가 되어 진혁의 입에 걸렸다.
이맘때였다.
우진혁이 용병 훈련소에서 친구들과 서바이벌을 시작하게 된 때가. 그야말로, 살기 아니면 죽기의 결투.
100명은 50명이 되고, 50명은 25명이 되고, 25명은 다시 10명이 되어 마지막 5명이 엘리트 자원으로 선발되기까지.
격투에서 패하고 불구가 되거나, 심지어 죽어 나간 친구도 있었다.
가장 괴로웠던 건 격투의 공포도, 죽음에 대한 두려움도 아니었다. 살아남기 위해 친구를 쓰러뜨려야만 했던 비참함이었다.
낯선 이국땅에 끌려온 동병상련의 친구들이었다.
감당할 수 없는 불안과 두려움은 불과 얼마 되지 않는 시간에 서로의 마음을 끈끈하게 묶어주었다.
하지만 용병단이 키우려고 했던 건 겁먹어 서로를 의지하는 꼬맹이들이 아니었다. 지옥에서도 홀로 살아남을 수 있는 강력한 전사였지.
그렇게 친구를 하나하나 쓰러뜨렸다. 오직 살아남기 위해서.
진혁은 별로 유쾌하지 않은 기억을 떨쳐버리기 위해 고개를 짧게 저었다.
그리곤 씁쓸함이 가시지 않은 입안을 청소하듯 말을 내뱉었다.
“그만 가라.”
이미 ‘너희들의 상대가 아니다.’라는 힌트를 줬건만. 상대를 구별할 줄 아는 눈이라고는 쥐뿔도 없는 꼬마 양아치들은 이 정도로 그냥 물러설 생각이 없어 보였다.
“이런, 시이발!”
남은 세 녀석이 한꺼번에 달려들었다.
이곳은 전장이 아니었다. 싸움에 대한 새로운 정의가 필요했다. ‘죽음’ 대신, ‘교육’ 정도라면 적합하려나.
휘익!
첫 번째 녀석의 주먹을 가볍게 흘리고는 녀석의 발목 부위에 로우킥을 날렸다.
파악─!
녀석의 다리가 허공으로 치솟으며 저만치 나동그라졌다.
“크악!”
그리고 달려든 두 번째 녀석의 주먹을 왼손으로 쳐내며 복부에 묵직한 주먹을 꽂아 넣었다.
“허억!”
교육 효과가 확실했는지 녀석이 배를 움켜쥐고 데굴데굴 굴렀다.
세 번째 녀석의 주먹을 위빙으로 두어 차례 가볍게 피하면서 서너 발자국 뒤로 물러섰다. 교육 효과를 확인하기 위해서.
“더 할 거야?”
진혁이 무표정한 얼굴로 물었다. 아니, 기회를 주었다.
녀석이 주저주저하며 눈 깜짝할 새 나동그라진 친구들을 두리번거렸다.
“크아아! 아! 시발 나 발목 나간 거 같아!”
첫 번째 넘어진 녀석이 발목을 부여잡고 비명을 지르는 동안,
“우웨엑!”
복부를 가격당한 두 번째 녀석은 엎드린 채 구역질을 하고 있었다.
새파랗게 얼굴이 질린 마지막 녀석이 떨리는 목소리를 쥐어짜 내었다.
“이, 이, 이 시, 시발 새끼가! 뒈지려고!”
땡.
오답.
그렇게 쫄아서 욕을 뱉어봐야 효과는 쥐뿔도 없다. 오히려 죽음의 시간만 재촉할 뿐.
물론, 아주 다행히도. 이곳 세상에선 죽을 일은 없겠지. 고맙게 생각해라.
스윽―
진혁이 녀석의 앞으로 움직였다.
“이, 이, 시발!”
녀석이 겁먹은 표정만큼이나 위축된 주먹을 가까스로 뻗어 왔다.
휘익―!
진혁이 가볍게 피하고.
휙!
다시 가볍게.
휙! 휙!
몇 번인가를 더 피한 뒤에.
퍼억―!
교훈을 담은 주먹을 번개같이 복부에 꽂아 주었다. 그냥, 가벼운 교훈이었다.
“아오…”
배를 움켜쥔 녀석이 인상을 푹 쓰며 그대로 주저앉았다.
“아우… 시이발… 으어헝―.”
갑자기 녀석이 울음을 터트렸다.
뭐야. 운다고?!
우진혁은 당황스러웠다.
이런 미친. 싸우다가 우는 녀석이라니.
맞은 게 너무 아파서 우는 건지. 아니면 한 대도 때리지 못한 게 약이 올라서 우는 건지는 알 수 없었다.
어느 쪽이든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싸우다가 운다는 건. 우진혁은 어이가 없었다. 이 무슨 동네 애들 싸움도 아니…
… 애들 싸움이구나.
우진혁은 얼핏 기억의 존재조차 가물가물했던 어릴 적 보육원을 떠올렸다. 싸우고 터지고 우는 게 일상이었던.
피식. 실소가 터져 나왔다.
그사이 넘어져 있던 녀석들이 일어나 우는 녀석에게 주섬주섬 다가왔다.
더 해 보려는 건가 싶었지만, 그건 아니었다. 녀석들이 슬슬 우진혁의 눈치를 보며, 울고 있는 친구 녀석을 잡아끌었다.
“야. 가자.”
“으어엉―!”
“아 시발. 쪽 팔리게. 가자니까. 아, 가자고!”
눈물을 훔치며 여전히 걸음을 떼지 못하던 녀석을 다른 녀석들이 끌고 갔고. 한참을 물러선 녀석들이 뒤를 돌아보며 외쳤다.
“야! 이 시발! 너 뒤졌어! 두고 보자! 네 얼굴 다 기억했어!”
우진혁은 입가를 비틀었다. 부디 기억력이 좋지 않기를 바라주어야 했다.
같은 실수를 반복한다면, 아무리 어린 애라도 가벼운 교훈 정도로만 끝내 줄 수는 없을 것 같으니.
진혁이 주변을 둘러보았다. 괴롭힘을 당하던 꼬맹이는 기회를 틈타 이미 도망치고 없었다.
다시 고요해진 놀이터.
우진혁은 수풀 쪽을 잠시 응시했다.
“……”
그리곤 이내 아무 일 없었다는 듯 조용히 몸을 풀었다.
***
‘깜짝이야.’
수풀 뒤쪽에 숨어 있던 그림자가 가슴을 쓸어내렸다. 자신도 모르게 벌어진 입을 그제야 의식했다.
‘와… 이게… 말이 되는 거야?’
놀라서 동그래진, 그러나 조용한 시선이 그렇게 한참이나 우진혁의 움직임을 뒤쫓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