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genius decided to become a star RAW novel - Chapter 75
75. 예상외의 태풍
“안녕하십니까! PD님!”
갑작스러운 SBC 뮤직박스 PD의 등장에 세린의 대기실에 있던 가수들과 매니저들이 전부 긴장해서 벌떡 일어났다.
방송국 PD야 어디에서도 대부분 갑의 위치에 있겠지만, 음악방송 PD는 신인 아이돌들에겐 절대 권력자와도 같았다.
세린 같이 대형 기획사에 소속이 된 신인의 경우는 조금 다르지만, 중소 기획사 신인 아이돌이 지상파 음악방송에서 무대를 갖는다는 건 정말 쉽지 않은 일이었다.
그 기회의 카드를 오롯이 자신의 뜻대로 쥐락펴락 할 수 있는 게 바로 음악방송 메인 PD.
‘PD가 왜….’
지금 PD의 말 한마디면, 이 자리에서 바로 대기실 비우고 돌아가야 한대도 어쩔 수 없는 것이 이들의 입장이었다.
PD가 왜 갑자기 신인들이 모여 있는 이 대기실에 들어왔을까. 기대감보다는 혹시나 하는 불안감이 더 큰 출연자들이었다.
하지만 다행히도 PD의 시선이 머문 곳은 우진혁.
“진혁 군 반가워요. 뮤직박스 메인 PD 김상철이에요.”
“아, 네 PD님. 안녕하세요.”
연성훈이 자리를 비운 터라 진혁과 서연만이 PD에게 인사를 했다.
“여기가 민서연 양이죠?”
“네.”
고개를 끄덕인 PD가 말했다.
“지금 녹화 중에 와서 내가 시간이 없어요. 거두절미하고 얘기할게요.”
“네.”
“두 사람, 우리 프로에 깜짝 출연 좀 합시다.”
“……”
두 사람이 갑작스러운 PD의 말에 바로 반응하지 못했다. 진혁이 먼저 입을 열었다.
“깜짝 출연이라고 하시면….”
“아, 뭐 갑작스러운 부탁인데, 크게는 아니고요. 여기 연세린 양 응원하러 온 거죠?”
“네.”
“그러니까, 연세린 양 곡 소개할 때하고, 또 두 사람 예나 하고 같이 드라마 출연했었잖아요. 걔네 그룹 오늘 1위 후보니까, 거기 로즈블랙 소개할 때만. 어때요?”
음악 방송에서 객원 MC나 깜짝 게스트 출연은 종종 있는 일이었다. 두 사람을 축하하는 의미에서 잠시 출연하는 것이 썩 나쁘지 않은 제안이라 진혁은 생각했다.
진혁이 서연을 쳐다보았다. 진혁의 얼굴에서 긍정의 의미를 읽은 서연이 고개를 끄덕였다. 진혁이 PD에게 말했다.
“저희는 괜찮은데. 소속사와 얘기가 되어야 할 것 같습니다.”
“두 사람 매니저 같이 왔어요?”
“아. 같이 오긴 했는데. 이게 저희 개인 일정이라. 아마 근처에 있긴 할 겁니다.”
PD가 고개를 끄덕하더니 말했다.
“아, 그럼 소속사에는 내가 연락 넣으라고 할게요. 두 사람 소속사가 어디예요?”
“저는 WP엔터입니다.”
“저는 HC엔터예요.”
둘의 얘기를 듣던 PD가 웃음을 터트렸다.
“아니. 연세린 양 NTN 아니에요?”
“네. 맞습니다.”
“WP, HC, NTN 3대 기획사가 다 모여서 친구가 됐네요? 하하.”
정확히 말하면 친구가 흩어져 3대 기획사로 간 거지만. 아무튼 남들이 보기에도 재미있는 그림인 듯싶었다.
대기실의 출연자들도 뭔가 신기하기도 하고 부럽기도 한 듯 새삼 세 사람을 쳐다보았다.
“그러면 기획사에는 내가 연락 넣을 테니까. 하는 겁니다?”
“네. 알겠습니다.”
“하하. 고마워요. 우리 막내 작가하고 FD가 안내해 줄 거니까. 그대로 하면 돼요. 그럼.”
그렇게. 진혁과 서연이 지금 가볍게 내린 이 결정이 어떤 생각하지도 못한 결과를 초래할지도 모르는 채 PD와 인사를 나눴다.
***
“우진혁 씨가 이번에 연세린 씨의 뮤직비디오에도 함께 참여하신 거로 알고 있는데요.”
생방송 리허설.
아이돌 중심인 음악방송 특유의 통통 튀는 멘트. 남자 MC의 말을 그대로 받은 여자 MC가 더욱 상큼한 목소리로 멘트를 이었다.
“맞습니다. 그래서 누구보다도 곡의 의미에 대해 잘 아실 것 같아요. 우리 진혁 씨가 곡을 좀 소개해 주실 수 있을까요?”
“아, 이 곡은요….”
진혁이 어색한 듯, MC들의 통통 튀는 목소리와는 이질적인, 뭔가 굳은 표정과 목소리로 곡의 내용을 설명했다.
음악방송 MC 특유의 통통 튀는 멘트 형식이, 진혁에겐 어딘지 맞지 않는 옷처럼 부자연스러운 탓이었다.
조금 손발이 오그라들 것 같기도 하고…. 심지어 얼굴까지 살짝 빨개진 진혁.
언제 어디서든 여유가 있는 진혁의 모습과는 전혀 다른 모습이었다.
어색한 진혁의 멘트를 MC가 재빨리 받아서 다시 활기차게 분위기를 띄웠으나.
“네. 그렇군요. 정말 기대가 됩니다. 그러면 진혁 씨, 서연 씨 두 분이 우리 연세린 씨를 불러 주실까요?”
이번엔 진혁과 서연이 동시에 어색한 몸짓으로, 역시 반쯤은 국어책을 읽듯 번갈아 가며 말했다.
“몹.시. 기대되는 데뷔 무대입니다.”
“무대 위에서 노래하는 요.정.”
“미모만.큼.이나 매력적인 음색을 가진 연세린이 부릅니다. ‘시간 위.에.서.’.”
““그럼, 다 함께 보.실.까.요.””
두 사람이 약속이나 한 듯 뻣뻣한 차렷 자세로 딱딱한 손동작을 했다.
“큭.”
그런 두 사람의 모습을 지켜본 MC들이 웃음을 참느라 입을 가렸다.
“자, 여기까지요.”
PD의 외침에 진혁이 슬쩍 서연을 바라보았다. 서연도 역시 같은 생각이었는지 이미 진혁을 바라보고 있었다. 진혁이 말했다.
“역시 좀 아닌 것 같지.”
“너 얼굴 빨개진 거 연기할 때 빼고는 처음 보는 것 같아.”
그렇게 말하는 서연의 얼굴도 홍당무가 되어 있었다.
무대 아래 있던 조연출이 PD에게 말했다.
“아무래도 무리이지 않을까요. 몇 번을 해도 똑같은데요. 너무 어색해요. 무슨 로봇도 아니고.”
“음….”
PD가 뭔가를 잠시 생각하는 듯하더니 말했다.
“그냥 가자.”
“네?”
“어색한데, 화면으로 보면 둘이 어쩔 줄 몰라하는 표정이 제법 귀엽달까? 비주얼이 되는 애들이라 그런지.”
PD가 빙긋이 웃었다.
“어차피 MC 맡기는 거 아닌데 뭘. 배우들이 나와서 소개하는데 MC처럼 너무 능숙하게 하는 것 보다, 저런 모습도 나름 새롭고 풋풋하잖아? 하하.”
“하긴. 듣고 보니 그도 그러네요.”
PD의 말을 들은 조연출이 무대를 향해 말했다.
“네, 진혁 씨, 서연 씨, 수고했어요. 이대로 가겠습니다. 생방송 때도 잘 부탁드립니다.”
조연출의 말에 진혁과 서연이 동시에 고개를 갸웃하며 무대를 내려왔다.
그런 둘을 보고 무대 아래서 구경하던 안예나가 웃음을 터트렸다.
“아하하. 둘 다 귀엽다. 귀여워.”
귀여….
진혁에겐 두 번의 생을 통틀어 가장 충격적인 말 중의 하나였다.
우는 아이도 울음을 그친다는 죽음의 용병단, 최정예 중의 최정예인 수색대 대장에게 ‘귀엽다’ 라.
진혁의 충격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좋아 죽는 표정의 안예나가 말을 이었다.
“아니, 연기는 그렇게 잘하는 애들이…. 그냥 MC를 연기한다 이렇게 생각하고 하면 안 되는 거야?”
그러니까. 그게 연기가 아니니까.
진혁도 신기해하고 있었다. 만약 MC를 연기해야 했다면, 두 MC보다 더한 깨방정을 떨어야 한대도 분명 해냈으리라.
그런데 연기가 아닌 건 연기가 아닌 것으로 본능이 감각을 하는 건지. 아무리 연기처럼 해보려고 해도 되지 않는 몸과 마음.
신기한 건, 민서연도 진혁과 똑같은 증상을 겪고 있다는 것이었다.
“아하하. 세상 시크한 두 사람도 이렇게 흑역사를 한번 남기나?”
안예나의 예상은 적중했다.
세린의 데뷔 무대는 그야말로 아름다웠고,
안예나가 이끄는 로즈블랙의 1위 무대는 빛났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이날 SBC 뮤직박스의 최대 화제는 세린의 무대도, 로즈블랙의 무대도 아니었다.
– 뭐야! 우진혁, 민서연이 왜 여기서 나와!
– 꺅! 우진혁이 방송에 나왔다!
– 으잉? 예능에도 한번을 안 나오더니, 갑자기 음악 방송에 출연했네?
연세린의 곡을 소개하기 위한 첫 번째 등장에 인터넷 게시판이 난리가 나더니,
– 우리 진혁이 서연이 왤케 귀여워~
┖ 그러게 진혁이가 이런 면이 있었네요.
┖ ㅋㅋㅋㅋ
┖ 둘 다 얼굴 빨개진 거 봐. 귀여워. 귀여워.
┖ 로봇 MC 실화냐ㅋㅋ
┖ 그 와중에도 개 잘생겼네.
– 이런 진혁이와 서연이를 과감하게 생방송에 투입해준 PD에게 상을 줍시다.
┖ 앞으로 본방 사수로 혼쭐을 내줄까요?
┖ 투표도 잊지 마시고.
┗ 뮤직박스 게시판에 칭찬으로 혼쭐 내주고 왔습니다.
결국 방송의 끝에 진혁과 서연이 두 번째 출연했을 때, 순간 시청률이 뮤직박스 연중 최고치를 경신하고 말았다.
그리고.
“으하하!”
“……”
김용수 매니저가 폭소를 터트렸다.
“진혁아 너 도대체 무슨 짓을 한 거냐?”
진혁과 서연의 로봇 MC 동영상 짤이 온 인터넷 게시판을 도배하기 시작했다.
진혁의 뜻밖의 모습 때문이었는지, 하이스쿨2 때의 “좀 비켜주지” 짤은 저리가라 할 정도의 반응.
일명, “다 함께 보.실.까.요.” 짤.
발그레한 볼의 진혁과 서연 두 사람, 어색한 손짓, 하지만 어쩐 일인지 서로 맞추기라도 한 듯 칼처럼 떨어지는 동작.
“풉.”
김용수가 내미는 영상 짤을 보고 진혁도 웃음을 터트렸다.
벌써 몇 번을 봤지만, 자신이 봐도 웃기는 자기 모습이었다.
근데. 서연이 얜 또 왜 이러는 거야.
현장에서도 물론 느꼈지만, 영상으로 보니 새삼 어색한 서연의 모습이었다.
지이잉.
순간 울리는 전화에 김용수 매니저가 전화를 받았다.
“PD님 안녕하십니까!”
김용수가 상대가 보이지도 않는 전화를 두 손으로 깍듯이 받으며 연신 고개를 숙였다.
“아휴. PD님 그게 아니고요. 아니, 그게 출연을 하려고 한 게 아니라, 아시다시피 애들이 드라마 같이 찍었잖습니까. 그냥 축하의 의미로…. 네. 네. 맞는 말씀인데요.”
눈앞에 PD가 있는 듯 고개를 조아리며 읍소하는 김용수.
“아시겠지만, 진혁이가 아직도 정식으로 출연한 예능은 하나도 없잖습니까…. 네, 네. 그렇죠. 맞습니다…. 아휴, 그래야죠. 당연하죠. 꼭 연락드리겠습니다.”
겨우겨우 전화를 끊은 김용수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미치겠다. 진짜 아주 난리다.”
진혁이 생각지도 못한 음악방송에 등장하고, 진혁의 파트에서 SBC 뮤직박스가 순간 최고 시청률을 찍어버린 뒤, 각종 예능 섭외가 빗발치듯 몰려들었다.
“진혁아. 너 진짜 아무 데도 안 나가? KBC 대표 예능 한두 개라도 좀 나가면 안 되냐?”
특히 홍길동 전 촬영이 시작된 KBC 쪽에서 아주 난리였다.
– 아니, 드라마를 우리하고 같이 하면서 SBC 뮤직박스에 방송 첫 출연을 해버리면 어떡합니까.
정식 출연도 아닌 걸 모르는 바가 아니었으나, 호시탐탐 진혁의 출연을 노리고 있던 KBC 예능에는 아주 좋은 빌미였다.
게다가 통상적으로 드라마 방영을 앞두고는 주연급 배우들이 예능에 나가 드라마를 홍보하는 것이 관례라면 관례이기도 했는데.
“죄송해요. 형.”
드라마의 사실상의 두 주역, 우진혁과 정지안 둘 다 모든 예능을 고사하고 있었다.
정지안의 이유는 자신의 배역 때문.
피도 눈물도 없는, 광기 어린 원칙주의자 가짜 홍길동 역을 맡은 정지안.
그런 자신이 예능에서 실실거리는 모습을 보일 수는 없다는 이유였다.
진혁 역시 모든 에너지를 시작된 촬영에 쏟고 있었다.
물론 가장 큰 이유는 아직은 진혁이 예능에 나가고 싶은 마음이 없다는 것이었지만.
“우진혁 배우님. 촬영 들어가실게요.”
스태프의 호출에 진혁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지이잉.
때마침 또 울리는 김용수 매니저의 휴대폰.
“아이고. 또 섭외 전화다.”
김용수 매니저가 탄식과 함께 전화를 받아들고는,
“아! 네! PD님! 안녕하십니까!”
통화를 하며 한 손으로는 진혁에게 어서 가라는 신호를 했다.
진혁이 피식 웃고는 촬영장으로 향했다.
***
KBC 드라마 국장실.
“설상가상이네요.”
홍길동전 CP(총괄 PD)를 맡은 김영수 부장이 어두운 표정으로 국장에게 말했다.
“이거는 홍길동전 잡으려고 아주 작심을 한 거죠.”
지상파 3사 중 하나인 MBS에서 연초 깜짝 드라마 편성을 공개했다.
1월에 방영이 시작되는 홍길동전과 같은 시간대에 편성된 드라마는 MBS에서 야심 차게 기획한 사극 대작.
“위대한 나라”
국내 톱배우이자, 한류 배우 강중원을 전격 기용한 드라마로, 100% 사전 제작에 200억 이상의 제작비로 화제가 되었던 엄청난 대작.
“아무래도 우리 라인업 보고 해볼 만 하다고 생각한 모양입니다. 연초 기선제압은 중요하니까요.”
우진혁, 정지안이 아무리 젊은이들 사이에서 핫한 배우들이라지만, 전 국민적 인지도 면에서 톱배우들과는 격차가 있는 배우들이었다. 특히 진혁은 더욱더.
“상황이 이런데도 진혁이도 그렇고, 지안이도 그렇고, 예능 출연도 안 하겠다고 하니. 이거 너무한 거 아닙니까. 소속사에 좀 더 세게 푸쉬를 넣을까요?”
내심 눌러 두었던 김영수 부장의 불만이 터져 나왔다.
국장이 고개를 저었다.
국장은 어쩐지 얼마 전과는 달리 여유가 있는 표정이었다. 홍길동전 촬영이 시작되면서부터였다.
“김부장 님. 홍길동전 촬영장 안 가봤어요?”
“무슨 말씀이세요. 국장님하고 몇 번을 같이 갔잖습니까.”
“그러니까요.”
KBC 미니시리즈가 줄줄이 물을 먹은 상황이 상황인지라, 이례적으로 국장은 홍길동전 촬영장을 수시로 방문해 제작진들을 독려하고 있었다.
“우진혁하고 정지안 하는 거 봤잖아요. 걔들 보는 제작진들 분위기도 보셨고.”
“아, 그거야 그런데요. 그래도 걔들이 강중원하고는 무게감 자체가 다르고…. 또 드라마 자체도 규모가….”
국장이 빙긋이 웃었다.
“우리 ‘위험한 남자들’은 어디 배우 인지도가 없어서 망했습니까.”
“……”
톱배우 셋을 모아 놓고도 결국 한 자릿수 시청률로 마지막을 맞고 있는 드라마.
“지켜봅시다. 이번에는 내가 진짜 감이 좋아요. 우진혁하고 정지안 연기를 보면 볼수록, 이거는 안 될 수가 없어.”
그리고 그 둘을 기가 막히게 살려내는 한유경 작가의 극본과 정두일 PD의 연출.
이미 하이스쿨2에서도 진혁을 이슈메이커로 만든 두 사람다웠다.
외주 제작 드라마였던, 두 미니시리즈와는 달리, 홍길동전은 연출 PD, 각본가, 주·조연 섭외에까지 국장이 직접 손을 댄 오롯한 KBC 드라마국의 작품.
드라마를 속속들이 아는 만큼, 국장은 자신의 안목이 틀리지 않았음을 확신하고 있었다.
“대작일수록…. 거꾸러뜨리는 맛도 제법 있잖아요?”
“……”
“‘위대한 나라’를 무너뜨리는 ‘홍길동’ 한번 기다려 봅시다.”
역시 현역 PD 때의 전설을 간직한 국장 다운 안목이었으나. 그조차도 보지 못한 것도 있었다.
시대는 바뀌었고, 새 시대의 산물인,
“다 함께 보.실.까.요.” 동영상 짤의 위력은 생각보다 막강하다는 걸.
태풍은 이미 불어오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