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genius singer who returned from the sea RAW novel - Chapter 77
77화. 내가 아닌 나의 목소리.
서초역에서 빠져나와 예술의전당 쪽으로 걸어가다 보면 한적한 골목 인근에 작은 카페가 있다.
북유럽풍의 클래식한 샹들리에가 고풍스럽게 빛나고 아늑한 의자가 있으며 바흐의 교향곡이 들리는 곳이다.
그곳에서 나는 소미와 만났다. 이번 싱글 앨범 의 앨범 자켓을 맡기기 위함이었다.
“윤소미 작가요? 앨범 자켓 의뢰라면 전문가를 따로 구하는 게 좋을 텐데요.”
앨범 제작 담당 직원에게 앨범 자켓 외주 문의를 하자 들려온 답변이었다.
“제가 원하는 풍의 앨범 자켓을 그려줄 수 있을 것 같아서요.”
그렇게 나는 직원에게 소미의 작업물들을 예시로 보여주었다. 그 작업물들을 받아든 직원은 다음 날 정규 회의에 내 요청 건을 가져갔고, 다행히도 내부 직원들이 소미의 프로필과 작품들을 좋게 보았는지, 외주가 가능하다는 답변이 돌아왔다.
그리고 오늘, 나는 소미와 앨범 자켓에 관한 컨셉과 요구사항을 전달하기 위해 연락을 한 뒤 이렇게 카페에 오게 된 것이다.
이 카페는 소미가 자주 작업을 하거나 바이어, 혹은 외주 의뢰자들을 미팅하러 오는 곳이라고 했다.
“여기에서 너와 작업 이야기를 하게 될 줄은 몰랐네. 소속사는 어때?”
“아직까진 좋아. 내 요청도 잘 받아주고, 회사 시설도 좋은 것 같고. 매니저도···, 조금 이상하긴 한데 음악적으로도 도움이 되는 사람이어서 좋은 것 같아.”
“다행이네. 이번 오디션 프로그램 잘 봤어. 나 마지막에 문자투표도 했는데, 다행히도 우승했더라. 그래서 너무 기뻤어.”
소미는 내가 무대에서 보여주었던 퍼포먼스들에 대한 감상을 전했다. 소미는 비록 소리를 듣지는 못하지만, 무대 위의 연출들과 나의 가사, 그리고 음악에 집중하는 표정 같은 것들이 좋았다고 전해주었다.
“그럼 이제, 앨범 자켓 이야기를 해볼까?”
소미가 자세를 고쳐 앉으며 말했다. 순간 소미의 눈빛 또한 전문가의 포스를 풍겼다.
“생각해둔 구도는 있어? 혹은 오브제라던가.”
“곡 자체가 의 오마주이긴 하거든?”
“안드레 브루퉁 말이지?”
“알고 있구나. 그럼 거기에 수록 되어 있는 삽화들도 알아?”
“응, 개인적으로도 좋아하는 시인이라서 책도 원서로 찾아본 적 있어. 당연히 그 안에 들어 있는 삽화도 본 적 있지.”
“거기에 라는 작품이 있잖아.”
“그치.”
“그 물고기가 바다에 있는 구도를 생각 중이야. 해수면에 있는 게 아니라 깊은 심해 속에 있는, 그리고 그 심해에 빛줄기가 새어들었으면 좋겠어.”
“음···, 예시 그림 같은 건 있어?”
“없지.”
“완전히 내가 창작하길 바라는 거구나.”
“너라면 분명 좋은 구도를 만들어줄 수 있을 거라 믿으니까.”
내 말에 소미는 피식 웃었다.
“그럼 일단 노래를 좀 들어볼 수 있을까?”
“물론이지.”
물론 소미가 정말 노래를 들으려고 하는 것은 아니다. 소미가 말한 노래를 들어보겠다, 의 의미는 가사와 악보의 구조를 보겠다는 것이다.
소미는 내가 건네준 악보와 가사들을 유심히 읽더니 말했다.
“이 노래를 불러줘. 대신 소리는 내지 않고. 표정과 입모양만으로.”
“어려운 부탁이구나. 하지만 한 번 해볼게.”
나는 소미의 부탁대로 노래를 불렀다. 정확히는, 노래하는 연기를 했다고 보는 것이 맞겠다.
카페에는 여전히 바흐의 교향곡이 흘러나오는 중이었지만, 소미와 나 사이에는 아무도 모르는 소리 없는 노래가 함께 흘러나오는 중이었다.
마치, 심해 속에 흐르는 또 다른 바다 같은 느낌이랄까. 그건 이 세계에서 우리처럼 특수한 경우의 인간만이 관측할 수 있는 아름다움이었다.
소미는 나의 얼굴과 나의 입모양을 빤히 바라보았다. 나는 그것이 조금 부끄럽기도 했지만, 크게 개의치 않고 열심히 노래를 불렀다.
소리를 내지 않는 만큼, 발음을 담는 입모양에 집중하면서, 동시에 표정에 드러나는 감정선에 몰입하면서.
···(♪)···
노래는 진작 끝났지만, 소미는 여전히 나의 얼굴을 멍하니 바라보고 있는 중이었다.
‘끝난 줄 모르는 건가?’
내가 생각하고 있을 무렵.
소미는 슬며시 눈을 감았다. 그리곤 말했다.
“몇 개의 이미지가 떠오르네···. 잠시 그것을 좀 들여다보고 싶어서 눈을 감았어.”
그렇게 몇 분 동안 소미는 눈을 뜨지 않고, 자신의 뇌리에 스치는 이미지들을 천천히 조망하고 있었다.
5분 정도가 더 지났을까.
소미는 스르르 눈을 다시 뜨고는, 도화지를 꺼낸 뒤 연필 한 자루로 스케치를 하기 시작했다.
흑연 가루들이 하나의 선이 되고 형(形)이 되며 점차 상(狀)을 이루고 있었다.
“작업물을 완성한다면, 이런 느낌으로 갈 거야. 어때?”
소미는 자신이 스케치한 그림을 보여주었다.
그것은 비록 채색도 되지 않고 선들도 다듬어지지 않은 형태였지만, 이미 아름다움의 모든 조건을 갖추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내 예상을 아득히 뛰어넘은 아름다움이었다.
“좋네···, 너무 좋아.”
소미는 자신의 실력에 만족한 듯 웃음을 지으며, 자신 또한 마음에 드는 스케치였다고 전해주었다.
“작업은 일주일 정도 걸릴 거야. 완성 되면 다시 연락을 줄게.”
“그래 고마워.”
“나야 고맙지. 어린 작가들에게는 여러 방면의 경험이 중요하거든. 가요 앨범 자켓을 작업하는 건 이번이 처음인데, 이번 기회에 좋은 결과로 이어졌으면 좋겠네.”
“나도 마찬가지야. 나는 이번이 본격적인 데뷔가 될 테니까.”
“같이 파이팅 하자. 잘 될 거야.”
그렇게 나는 소미와 인사를 나누고, 식은 커피의 마지막 한 모금을 마신 뒤 자리에서 일어났다.
“나는 조금 더 작업을 하다 가려고, 잘 가.”
소미는 문 밖을 나서는 나의 뒷모습을 바라보다가, 이내 시선을 그치곤 자신의 작업에 열중했다.
나는 그런 소미의 모습을 유리창 너머에서 바라보았고, 조금은 존경심을 느꼈다.
집에 돌아온 나는 평소처럼 목욕을 했고, 다시금 멜로디의 변화를 들을 수 있었다.
문득 나는, 물속에서 스노클을 쓴 채로 소리 없이 노래를 불러보면 어떨지 하는 궁금증이 들었다.
오늘 낮에 소미와 함께 있던 카페에서 소미에게 그랬던 것처럼, 입모양만 뻐끔거리고 표정을 연습하는 건, 물속에서도 할 수 있지 않을까 싶었기 때문이었다.
새롭게 들려오는 멜로디를 연습할 수 있는 기회이기도 했다.
“음, 음.”
나는 목을 조금 가다듬은 뒤 물속에서 스노클을 쓴 채로 소리 없이 노래를 불러보았다.
그러자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분명 목에 힘을 빼고 소리를 내지 않았는데, 물로부터 들려오는 음악 사이로 나의 목소리가 함께 퍼져 나온다.
약간의 거리감을 둔 채로, 내가 아닌 누군가가 나의 목소리로 노래를 부르는 소리를 듣는 것처럼.
‘뭐지? 나는 분명···, 소리를 내고 있지 않은데?’
하지만 분명히 지금 들려오는 목소리는, 나의 목소리였다.
‘설마?’
나는 노래를 멈추었다. 정확히는 입을 다문 것일 뿐이지만, 입모양도 움직이지 않고 무엇보다 ‘노래를 하고 있다’ 라는 생각을 멈추었다.
그러자 목소리가 들려오지 않았다.
‘이게 무슨 일이지?’
다시 노래를 불러보았다.
그러자 다시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주 약간 멀리서, 그러나 선명하게 들리는 크기로, 나의 목소리가 나의 몸 바깥에서 들려오고 있었다.
그건 아주 이상한 기분이었다.
나의 도플갱어가 투명인간이 되어 나의 등 뒤에서 부르는 노래를 내가 듣고 있는 기분이라고 해야 할까?
하지만, 그 목소리와 물 속 음악의 조화는 무척이나 아름다웠다.
나는 그 아름다움에 빠져, 소리 없이 노래 부르기를 반복했다. 그러면 물속에서는 내가 아닌 나의 목소리가 계속해서 들려왔고, 멜로디가 변할 때마가 그것에 맞추어 변주를 하는 것은 즐거웠다.
이대로라면 하루 종일도 물속에서 노래를 부를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리고,
‘지금 이 소리들을 다른 사람에게도 들려줄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했다.
*
“이건······, 말도 안 되는데.”
“여태까지 실력을 숨겼던 거야? 그렇지 않고서야 말이 안 되잖아.”
승현과 예송이형이 감탄해하며 말했다.
내가 지난 밤 물속에서 연습했던 노래를 들려준 이후의 일이었다.
그들이 듣기에는, 물속에서의 연습 이후 나의 노래가 완전히 다른 차원으로 올라간 것 같다고 말했다.
물론 내가 이 연습을 물속에서 했다는 것은 몰랐기에, 그들은 나의 이런 비정상적인 발전이 어떻게 가능했는지를 궁금해 했다.
“무슨 일이길래 다들 이렇게 벙 쪄 있어요?”
도진권 매니저가 작업실의 문을 열고 들어오며 말했다. 그러자 승현이 내가 방금 녹음한 노래를 다시 재생시키며 말했다.
“이거 한 번 들어보세요. 율이가 방금 녹음한 거예요.”
뒤이어 작업실에는 나의 목소리가 울려 퍼졌고, 나는 문득 어제 물속에서 느꼈던 감각을 다시 한 번 느끼기 위해, 소리 내지 않고 노래를 따라 불렀다.
그렇게 내가 나의 노래에 빠져 있는 사이 도진권 매니저가 말했다.
“언빌리버블!”
그리곤 느닷없이 박수를 짝짝 치기 시작했다. 활짝 웃으면서 말이다.
나는 시끄러운 소리에 노래를 부르다 말고 눈을 떠 도진권 매니저를 바라보았다. 그러자 그는 어떤 경외심에 사로잡힌 채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이 앨범은 대박날 겁니다. 제가 보증할 수 있어요.”
나는 문득, 그래선 안 되지만.
‘이렇다 할 경력도 없는 양반이, 무슨 보증이야?’ 생각했다.
하지만 아주 의심되는 말은 아니었다. 나 또한 이 곡이, 내가 지금까지 부른 곡 중 가장 뛰어난 퀄리티를 보유하고 있다고 생각했으니 말이다.
무엇보다 가창력적인 부분에서는 기존과 차원이 몇 단계 달랐다. 스스로도 절실히 실감 될 정도로.
나도 나의 재능이 점점 무서워지기 시작했으니.
“이제 내일이면 첫 행사네.”
“벌써 내일인가?”
“응, 고등학교 축제야. 생각해보니 율이는 아직 나이로만 치면 고등학생이지?”
“그러게요. 행사 가면 다들 제 또래겠네요.”
“걔네들은 어떤 기분일까. 자기들은 아직 고등학교에 다니고 있을 뿐인데, 자기들이랑 같은 나이인 애가 오디션 프로그램 나가서 우승하고 자기네 학교에 와서 돈 받고 공연하고 있으면 말이야.”
“그건 저도 잘 모르겠네요. 하하.”
나는 문득, 지혜를 도와주기 위해 고등학교 축제 무대에 올랐던 때가 생각났다.
‘그때가 처음이었지. 수많은 사람들 앞에서 노래를 부르고 환호성을 들었던 건···.’
그러나 이제는 불과 몇 주 전에 8만 명 가량이 운집한 공연장에서 환호를 독차지 하며 우승한 가수가 되었다.
‘언젠가는, 또 다시 그런 무대에 올라볼 수 있겠지. 어쩌면 그보다 더 큰 곳에서도···.’
그렇게 생각하니, 이 여정을 걸어가는 발걸음이 문득 가벼워지기 시작했다.
들뜬 마음으로 하루가 지나고.
첫 행사 공연 날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