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Great Wizard Transcendent RAW novel - Chapter 119
회귀로 초월하는 대마도사 119화
거튼의 대족장, 카디움.
그는 명석한 자였다.
동시에 그 어떤 길잡이보다도 뛰어난 ‘축복’을 받아, 가장 강력한 힘을 지닌 존재.
모든 거튼의 길잡이들은 그런 대족장을 진심으로 따랐다.
그가 제시한 길은 옳았으며, 거튼을 크게 발전시켰으니까.
유능한 지도자.
발전하는 도시…….
모든 길잡이들은 카디움이 거튼을 올바른 방향으로 이끌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았다.
실제로 거의 옳기는 했다.
그날의 일이 없었더라면.
어쩌면.
위대한 거튼의 대족장은 절망하고 꺾이는 일 없이 자신의 뜻을 관철해 나갔으리라.
하나, 현실은 그렇지 못했다.
대족장은 현실에 꺾였다.
그리고 모든 의욕을 잃은 채, 몇 년이나 거처에 틀어박혔다.
기약 없는 권태의 시작이었다.
* * *
“……마리안.”
“예, 말씀하세요.”
대족장에게 ‘마리안’이라 불린 한 여자가 자애로운 미소로 답했다.
그녀의 눈빛 속에는 따뜻함이 가득했다.
끝없는 사랑과 배려.
대족장은 흐린 눈으로 무분별하게 그 모든 것들을 받아들였다.
진즉에 희망이 스러진 그는 더 이상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은 것처럼 보였다.
“분명…… 난 그 누구보다 노력을 했다. 그렇지 않나?”
“그랬지요.”
“거튼에 많은 이들이 찾아오게 했고, 풍족하게 만들었다. 길잡이들이 다양하게 제 소임을 다할 수 있게 만들기도 했지.”
천천히, 대족장은 자신이 해낸 업적들을 입 밖에 냈다.
자타가 공인하는 업적.
분명 그의 대에서 거튼은 부유해지고 발전했다.
지금은 이리 절망했지만.
한때, 그 누구보다 거튼의 미래를 위해 힘썼던 것이다.
그녀는 쓴웃음을 지으며 천천히 대족장의 머리를 품에 감싸 안았다.
마치 아이를 대하듯.
“당신은 아무런 잘못도 하지 않았답니다. 최선을 다한 것이…… 그러다가, 불합리한 일에 꺾인 것이 어찌 죄가 될 수 있을까요.”
“……그런가.”
“잘못은 교국의 그들이 한 거지요. 오히려 멋대로 신의 이름을 팔며 당신에게 불합리함을 강요한 것이야말로 그 무엇보다 불경한 행위…….”
마리안이 분하다는 듯 말했다.
“그게 이단이 아니면, 무엇을 이단이라 하겠습니까.”
“아아.”
그 말에 대족장이 눈을 질끈 감았다.
다른 건 모르겠으나, 지금 이 순간이 너무나도 포근하다 생각했다.
그는 교국의 한 대주교에게 들었던 말을 떠올렸다.
킬리언이라 했던가.
– 루트라는 이단을 믿는 집단인가. 정말 웃기지도 않는군.
이단.
대족장이 그리도 자부심을 가졌던 위대한 신이, 그 대주교의 눈에는 고작 ‘이단’으로 보였다는 말이다.
“……그래, 이단은 오히려 그런 편협한 생각으로 남을 폄하하는 자들을 말하는 거지.”
“그렇습니다.”
마리안은 그를 포근하게 감싸 안았다.
마치, 성모와도 같았다.
대족장은 눈을 감았다.
주변의 이들은 당장 그녀에게서 벗어나야 한다 말했지만, 그건 틀렸다고 생각했다.
그녀는 나쁘지 않다.
자신이 자괴감과 열등감에 눌려 미쳐갈 때, 자신을 감싸 안아 준 여인이 아니던가.
마리안이 자애롭게 속삭였다.
“제가, 위대한 루트께서 당신의 바람에 응하도록 도울게요.”
“아아…….”
“거튼의 성지. 제가 그곳에 접근할 수 있게 해 주신 은혜는 결코 잊지 않을 거랍니다.”
성지(聖地).
분명 어느 누구도 들이지 말라는 선대의 명이 있었던 것 같기는 하지만…….
‘무슨 소용인가.’
어차피 아무리 버둥거려도 바뀌는 것도 없건만.
그렇다면 이 사랑스런 여인에게 거튼의 미래를 거는 것도 나쁜 일은 아니지 않겠는가.
“그래, 당신이라면…….”
“예, 그거면 된답니다.”
안타깝게도.
대족장은 그녀의 품에 안겨 있었기에, 마리안의 표정을 볼 수 없었다.
보랏빛의 요사스런 안광.
‘아아, 정말.’
쉽네.
대악마, 메이릴이 웃었다.
* * *
쿰에게서 모든 사정을 들은 후, 잠시 리안과 집사의 분위기는 가라앉아 있었다.
“……늦었다는 소리군.”
“아무래도, 이쪽이 한발 더 빨랐던 모양이군요.”
집사는 얼굴을 찡그리며 주변을 둘러보았다.
겉으로 보기에 거튼은 언제나의 거튼이다.
최근 각광받게 된 관광지답게 외부에서 온 관광객들과 길잡이들로 붐비고 있었다.
어디에도 대악마가 거튼을 잠식했다는 위기감 따위는 없다.
“그보다, 도련님.”
“왜.”
“별일 아니라셨잖습니까. 별일인 정도가 아니라, 그냥 거튼이 작살 나게 생긴 것 같은데요?”
“짜잔.”
난 대충 두 손을 내보였다.
“절대란 없었군요?”
“그래, 그럴 거 같더라.”
리안은 슬슬 적응했는지, 해탈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내가 시발…… 뭔 복을 찾겠다고 너하고 다니는지.”
“대충 세계 평화를 위해서니까, 우리 그러려니 하자.”
“……아, 그래.”
신용이라고는 조금도 없는 눈으로 날 쳐다보는 리안.
이 새끼, 드디어 사람을 의심하게 될 줄도 알았구나.
“뭐, 어쨌건 아무리 봐도 좋은 상황은 아닌데, 이런 것도 예상하고 있었던 거냐?”
“당연하지.”
완전히, 자세하게 상황을 간파하고 있다면 거짓말이겠지만.
어쨌건 예상은 했다.
메이릴이 이미 거튼을 잠식하고, 제 입맛대로 굴리고 있다는 사실은 말이다.
“상급 길잡이, 쿰이 말한 대로 대족장은 완전히 메이릴의 암시에 잡힌 모양이다. 생각한 것보다 메이릴이 서둘렀어.”
“……그 대악마가.”
리안이 얼굴을 찡그렸다.
최근 1년간의 일들로, 집사와 리안은 메이릴에 대한 것을 꽤 많이 알고 있는 상태였다.
“질리지도 않는군. 아무리 부숴도, 부숴도 다시 돌아오니.”
“아마 이번이 마지막일 거다.”
난 단호하게 답했다.
메이릴은 여태까지 수많은 계획을 시도했다. 그리고 족족 그 계획들은 수포로 돌아갔고.
같은 대악마들 사이에서도, 이미 메이릴의 평가는 바닥을 치는 상황일 터…….
아마 이번이 마지막이겠지.
뒤처진 악마는 결국 동족의 먹잇감으로 전락할 뿐.
“그래서, 네 계획은?”
“우선은 그대로 두고 본다.”
“……음?”
내 말에 리안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집사 또한 마찬가지.
“잠깐, 그대로 두고 본다고요? 그 대악마의 계획을…….”
“그래서 그러겠다는 거야.”
“……예?”
“메이릴은 이미 내가 뭘 할지 예측하고 그에 맞게 준비를 해 뒀을 테니까.”
메이릴이 여기서 마지막으로 할 발악이라면 하나뿐이다.
무덤을 무너뜨려 내가 신물을 손에 넣지 못하게 하는 것.
동시에 거튼을 타락시켜 그것을 이용해 제 힘을 되찾을 셈이겠지.
분명 막아야 할 계획이다.
하지만 자신의 계획이 내게 있어 치명적이라는 사실 정도는 메이릴 역시 알고 있다.
당연히 내 대응을 예상하고, 그에 맞게 내게 역공을 가하기 위해 준비해 둔 것이 있을 터.
난 메이릴의 계획대로 움직일 생각이 없었다.
아니, 애초에.
“메이릴의 계획은 지체될 수밖에 없어. 아직은 모를 테지만.”
“……그게 무슨 말입니까?”
“그러니까.”
지금 생각하면 회귀 전, 결코 놓쳐서는 안 될 기회였지.
결과적으로 당시엔 놓쳤지만.
“메이릴은 거튼의 성지를 단기간에 해석할 수 없다는 소리다. 그 정도로 난해하거든.”
간단히 해결하는 법은 있다.
무덤이 인정한 ‘길잡이’를 대동하고 성지로 향하는 것.
하지만 현시점에서 메이릴은 그게 누군지를 모른다.
즉.
“못해도 며칠은 헤매겠지.”
“흠, 그러면…….”
리안이 내게 물었다.
“넌 그동안 뭐 할 건데?”
“뭐 당연한 걸 묻냐.”
모처럼 이 아름다운 관광지에 오지 않았는가. 남는 시간 동안 할 건 하나밖에 없지.
“간만에 관광이나 좀 해야지.”
“……뭐?”
“관광이나 좀 한다고.”
“…….”
집사와 리안이 조용히 날 봤다.
무어라 표현하기 힘든 침묵이 나와 둘 사이에 오갔다.
뭐, 어쩌라고.
“어…… 관광 말입니까?”
내 말에 쿰은 입을 벌린 채, 잠시 서 있었다.
“예, 거튼이 관광지로 유명하지 않습니까. 어차피 아직 대족장께서는 용사인 제가 거튼에 왔다는 건 모를 테니.”
“그, 가, 가능은 합니다만.”
쿰은 힘겹게 말을 이었다.
“그…… 거대한 악이 저희 거튼에 왔다 말씀하시지 않았습니까? 이런 말하기는 그렇지만 시간이 촉박합니다만…….”
“예, 촉박하긴 하지요.”
하지만 그런 걸 모르고 이런 말을 하는 것이 아니다.
“한데, 전 거튼을 완전히 알지 못하지 않습니까. 특히 이 미궁 도시는 ‘방향’에 있어 막대한 잠재력을 지니고 있습니다.”
“그렇지요?”
“거튼에 대한 자세한 지식이 없다면, 당연히 미리 도사리고 있던 악에 효율적으로 대항할 수도 없을 테지요.”
“아아, 즉…….”
“예, 관광보다는 조사라는 표현이 옳을지도 모르겠군요.”
그제야 이해했다는 듯, 쿰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시다면, 마땅히 제가 안내해 드려야지요. 그냥 거튼을 돌아보고 싶으신 겁니까?”
“우선은…….”
난 거튼의 풍경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정말 온갖 방식으로 교묘하게 꼬여 있었다.
하나의 생물처럼.
실시간으로 길이 달라지고, 풍경이 바뀐다.
하지만 난 이 거튼의 ‘진짜’ 정체를 알고 있다.
[미하일.]‘알아.’
세트의 말에 짧게 답하며, 쿰에게 말했다.
“쿰, 거튼에서 가장 위대한 절경으로 안내해 주시겠습니까?”
가장 위대한 거튼의 절경.
확신했다.
분명 내가 원하는 것은 그곳에 있으리라.
* * *
“공교롭군요.”
거튼에서 가장 위대한 절경.
거튼은 관광지로서 온갖 아름다운 풍경을 보유하고 있지만, 그중에서도 유독 뛰어난 장소는 있기 마련이다.
하지만 얄궂게도.
대부분의 관광객은 그 절경을 보지 못한다.
이유는 간단하다.
수많은 길잡이들 사이에서도 이 절경에 도달할 수 있는 이들은 한정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중 하나가 바로.
“지금 저희가 향하는 장소는 대족장께서 꽤 자주 들르셨던 곳이거든요.”
지금 날 그 절경으로 안내하고 있는 상급 길잡이, 쿰이다.
“그렇습니까.”
“물론 그분께서 그리되기 이전의 일입니다만.”
거튼의 대족장이 절망하기 전.
그걸 말하는 거겠지.
한때 그는 거튼의 역대 대족장 중에서도 가장 총명하고, 정의롭기로 유명했었으니.
[사람이라는 건 무척이나 쉽게 꺾이는구나. 안타까워.]‘그러게 말이다.’
나 역시도 가혹한 현실에 좌절하고 꺾인 이들을 수없이 많이 보았다.
회귀 전에는…….
대부분이 그러한 이들이었다.
결코 꺾이지 않을 것 같았던 강직한 영웅들 중에서도 많은 이들이 꺾이고, 무너져 내렸다.
그렇기에.
난 어느 정도는 대족장을 이해할 수 있었다.
대족장의 절망은 교국의 업보와도 꽤 관련되어 있었으니.
“한데, 쿰 님께서는 제가 밉지 않으십니까.”
“……예?”
갑작스런 내 질문에, 무슨 말이냐는 듯 쿰이 물었다.
“갑자기 무슨 말씀을.”
“대족장께서 그리된 이유를 알고 있습니다. 교국의 방만함이 그리 만들었지요.”
메이릴에 잠식되어, 교국을 망가뜨려놓았던 킬리언 대주교.
분명 그자 때문이었지.
오래전, 그자는 철저하게 대족장의 자부심을 무너뜨렸고, 멋대로 이단으로 낙인찍었다.
“과거, 저희 쪽의 대주교가 대족장께서 보는 앞에서 루트를 폄하하고 보는 앞에서 그 상징을 불살랐다 들었습니다.”
“…….”
한창 교국이 막나갔던 시기.
그리고 거튼은…… 성장했다고는 하나, 교국에 비하면 모든 것이 미비했었다.
“대족장께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으셨지요. 그분은 거튼을 짊어지고 계셨으니.”
“그건…….”
쿰이 잠시 머뭇거렸다.
한때 교국이 거튼을 핍박했던 시기가 있었다.
정확하게는, ‘킬리언 대주교’라는 이단이 교국의 껍질을 뒤집어쓰고 그리했다.
하지만 어쨌건.
결국 교국에서 비롯된 것.
거튼에서 그 교국이 선정한 용사인 나를 증오한다고 해도, 난 받아들일 수 있었다.
쿰이 걸음을 멈추었다.
“그때에는…… 용사께서 관련이 없던 시기가 아닙니까.”
“그건 그렇지요. 그 당시의 전 그저 발푸르기스의 후계자였을 뿐이니.”
하나.
“어쨌건 제가 현재 용사라는 건 달라지지 않잖습니까.”
“그건 그렇지요. 하나.”
쿰은 그렇게 말하며 잠시 걸음을 멈추고는 날 돌아보았다.
“전 제 눈을 믿습니다.”
“그 말씀은.”
“지금 제 앞에 계신 용사께서는 적어도 그날의 대주교와 같은 부류가 아님을.”
쿰이 ‘루트’에게서 받은 축복.
“제 눈은, 루트에게서 비롯된 것입니다. 그분께서 제게 세상의 사물을 판별할 자격을 주셨지요. 그렇기에 전 제 판단과 눈을 믿습니다.”
그는 그렇게 말하며 웃었다.
이렇게 하는 게 당연하다는 듯.
“루트께서는 지금, 제게 당신을 믿으라 하고 계시거든요.”
이 절경으로 향하는 인도조차.
그 루트의 뜻이라고.
무덤의 길잡이가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