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Great Wizard Transcendent RAW novel - Chapter 21
회귀로 초월하는 대마도사 21화
“의심하지 마렴. 이건 정말로 진품이 맞으니까.”
세트는 그리 말하며 가볍게 어깨를 으쓱거렸다.
“아무리 그래도 4관문까지 통과한 아이에게 가짜를 줄 정도로 양심이 없지는 않거든.”
“흐음…….”
그렇다면 이게 진짜라는 건가.
회귀 전, 우리가 손에 넣었던 ‘폭풍’은 모조품에 불과했고.
그렇다는 건,
처음부터 우리는 제대로 쓸 수 없는 물건에 헛된 희망을 품었다는 소리다.
멍청하게도.
“지금 화를 내는 거니?”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으로 세트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딱히 이상한 말은 하지 않았을 텐데. 어쨌건, 넌 훌륭히 4관문의 입구를 찾았고 시련을 통과해서 내게 도달한 거잖니.”
“그래, 그러기는 했지.”
하지만 어쩌라는 건가.
나조차 한번 시간을 거스르고 나서야 가능했던 일이다. 이걸 위해 수많은 이들이 희생됐다.
희생된 이들 중 어찌 악한 자들만 있었겠는가. 그렇지 않은 이들도 죽어 나갔다.
그리고 그 희생을 치르고 얻었던 게 모조품이라니.
……그렇기에, 조금 짜증이 치미는 건 어쩔 수 없는 일이다.
“그런데 내가 감정이 있는 사람이라, 좀 부아가 치미는 건 어떻게 할 수가 없네.”
“뭐, 그럼 화내려무나. 당연한 것까지 막을 이유는 없으니.”
세트는 상관없다는 듯 어깨를 으쓱거렸다.
난 그런 그녀에게 물었다.
“그럼 3관문까지 간 시점에서, 진짜 ‘신물’을 얻을 방법은 없었던 건가?”
“그것도 아니란다.”
세트는 말을 이었다.
“1관문에 열쇠를 둔 건 사실이지만, 3관문에도 구제책 정도는 마련해 뒀단다. 조금만 생각하면 알 수 있게끔. 하지만 그뿐이야. 눈치채지 못했다면…….”
“자격이 없다는 거군.”
“정답.”
입맛이 썼다.
그녀의 말대로라면 회귀 전, 우리는 자격이 없었던 셈이니.
물론 지나간 일을 후회해 봤자 돌아오는 건 아무것도 없다.
“쯧.”
“아무리 그래도 ‘신물’인데, 손쉽게 주어지는 것도 이상한 일이지. 적어도 그분과 우리는 그렇게 판단했었단다. 그도 그럴 것이…….”
그녀는 그렇게 말하고는 탁자에 놓인 ‘세트의 폭풍’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이게 그릇된 이의 손에 들어가게 된다면, 아무 의미도 없이 방치될 테니까.”
“그래서 신중한 이를 뽑고자 했다? 아공간 주머니는 그 수단 중 하나였고.”
“허, 그것도 눈치챘니? 너 굉장히 눈치가 빠르구나.”
그제야 이해가 됐다.
우리는 시련을 통과했다 여겼지만, 애초에 첫 단추부터 잘못 꿰었던 모양이다.
우리는 좀 더 신중하고, 현명하게 접근했어야 했다.
“후후, 나쁘지 않지?”
당시의 우리는 위기를 이겨 낼 만큼 신중하지 못했다.
그 결과, 많은 것을 놓쳤고 그것들이 마신의 승리로 이어지게 된 것이다.
‘그렇게 된 거였나.’
물론 그것만이 원인은 아닐 것이다. 많은 것들이 겹치고 겹쳐, 패배할 수밖에 없는 미래가 완성된 거겠지.
“좋아, 이해했다.”
이 정도 대화면 충분하다.
‘세트의 폭풍’도 확실히 손에 넣었겠다. 일단 1차적인 목표는 전부 이뤘다 봐도 무방하리라.
“이제 네 것이니 착용해 보렴. 그럼 바로 알게 될 거야.”
화악.
세트의 폭풍을 목에 걸자 자연스레 피부에 스며들었다.
“호오.”
“그건 단순한 목걸이가 아니란다. 네 영혼과 육체를 보호하는 고도의 결계지.”
‘무구조차 아니었나.’
따로 형태를 갖춘 게 아니라, 아예 결계라 이건가.
“하루 한 번 정도는 어떤 공격이건 널 지켜 줄 게야.”
“……한 번?”
“응, 한 번. 네 역량에 따라 달라지겠지만, 현 시점에서는 그 정도구나.”
즉, 세트의 폭풍 그 자체는 이미 완성된 무구지만 사용자 역량에 따라 그 가치가 달라질 수 있다 이건가.
“나쁘지 않군.”
절대 방어가 하루 한 번.
성장형 무구랍시고 제대로 써먹지도 못하는 것보다는 오히려 이쪽이 몇 배는 좋았다.
게다가 역량에 따라 달라진다고 했으니, 이 역시도 성장을 기대할 수 있고.
“후후, 그렇지? 내 신물은 무척 견고한 방어를 자랑한단다! 괜히 옛날에 ‘철벽’이라 불린 게 아닌 게야!”
“뭐, 좋아. 그건 그렇다 치고.”
“너무 건조한 반응 아니니?”
세트가 토라진 표정으로 뭐라 중얼댔지만, 그리 신경 쓸 건 아니었다.
난 조용히 그녀를 봤다.
조금씩 전신이 스러지고 있었다. 아까부터 꾸준히 그리되고 있었는지 벌써 희미해졌다.
“당신, 몸이 사라져 가는 거 같은데.”
“슬슬 갈 때가 됐으니까.”
그녀는 담담한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신물을 넘기면 내 의무는 다 한 것. 자연히 본래 그러해야 했듯 사라져야 하는 게지.”
“흐음…….”
즉, 무덤 전체를 감싸고 있던 시간 동결이 풀린다 이건가.
“사라지지 않아도 된다는 선택지가 있다면, 어떨 것 같나?”
“그럼 좋겠지?”
그녀는 어깨를 으쓱거렸다.
“좀 더 바뀐 세상을 본 뒤에, 이 세계가 완전히 바깥 세계의 위협에서 벗어난 걸 확인하면 좋을 것 같기는 해.”
“흐음…….”
“하지만 불가능한 일. 노후된 마법 결계를 보수하려면 못해도 9서클 급의 지식이 필요하지만, 너도 알다시피…….”
“그런 존재는 드물지.”
아니, 드문 정도가 아니다.
현 시점에서 세간에 알려진 9서클의 대마도사는 단 한 명도 존재하지 않는다.
“포기하렴. 혹시 내게 동정심을 품은 거라면 그럴 필요는 없어. 어차피 진즉에 사라졌어야 할 몸이거든. 그러니…….”
“이해했다. 그렇다면 마법만 정상화가 된다면 더 존재할 생각도 있다 이거군.”
“음?”
세트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거기에 대답하는 대신 곧바로 무덤의 시간 동결 마법을 손보기 시작했다.
‘마나는 근처의 마나석에서 끌어다 쓰는 거니 상관없고, 중요한 건 원본 마나 회로인데…….’
여기까지 오면서 봤던 무덤의 구조와 회귀 전에 보았던 2, 3관문의 구조를 떠올렸다.
그것들을 전부 머릿속에서 지도화한 후 마나의 흐름을 기반으로 회로를 재설계했다.
“흠, 그렇군. 그런 식으로 돌아가는 건가. 확실히 장기간 버티려면 이런 형태가 최선이기는 했을 텐데…….”
“뭐 하니?”
“뭐 하긴. 분석이지.”
9서클에 도달하기 위해 필요한 재능과 지식은 상상을 초월한다. 말이 마법사지, 세상의 어지간한 지식과 개념에 통달해야만 9서클에 도달하는 것이다.
공간지각 능력 또한 그 범주에 포함되어 있었다.
“흠, 확인했다.”
“확인이라니, 일단 좀 알아듣게 설명해 주지 않겠니? 아무리 내가 곧 소멸한다 해도 좀 기본적인 예의는…….”
“〈시간 동결, 개량식〉.”
말이 채 끝나기도 전, 세트의 몸이 빛에 감싸이기 시작했다.
“……어?”
다 스러져 가던 몸이 복구되고, 생기가 돌기 시작했다.
단순히 그것만이 아니다.
말 그대로 형태만 띄고 있었을 몸에 생기가 깃든다.
“어어어?!”
화아악!
빛은 점점 더 밝아졌다.
한참을 유지되던 빛은 점점 줄어들기 시작하더니, 이내 사라지며 세트의 모습이 드러났다.
“흠, 잘 됐군.”
결과물이 꽤 만족스럽다.
언제나 조금의 오차도 없는 내 계산 덕분인 걸까.
“어때, 꽤 만족스럽지 않나?”
[이…… 이게…….]고개를 숙인 채 제 팔과 다리를 쳐다보던 세트가 파들파들 떨더니 소리쳤다.
[이게 뭐야아아아아!]세트는 작아져 있었다.
정확히 내 손바닥 크기 정도로.
“좋아, 완벽해.”
[완벽하긴 개뿔?!]쿠오오오.
미니 세트가 서럽게 포효했다.
* * *
[…….]한동안 세트는 말이 없었다.
“작게 만든 건 미안하다. 일단, 시간 동결을 가능한 길게 유지하기 위해서는 최소화할 필요가 있었거든.”
[내, 내 아름다운 몸이…….]“딱히 아름다운 건…….”
[아름다웠거든?! 아담하고, 백옥과도 같은 피부가 내 자랑이었단 말이야! 그, 그런데 이런 짧은 팔다리라니……!]“귀엽고 좋은데.”
[귀엽기는!]파들파들 두 팔을 떨며, 세트가 분노를 터뜨렸다.
[나, 이래 봬도 옛 신을 모셨던 위대한 사도 중 하나거든? 그런데 그 내가 이, 이런……!]“방법이 그것밖에 없었어.”
[뭐, 뭔…… 아, 아니, 그보다!]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세트가 날 향해 소리쳤다.
[너, 대마도사였니? 그냥 대마도사도 아니고 9서클?!]“아니, 그건 아닌데.”
언젠가 되기야 하겠지만, 당장은 아니다.
내 대답이 믿기지 않는다는 듯 세트는 횡설수설했다.
[마, 마, 말도 안 돼! 9서클도 아닌 인간 아이가 시간 동결을 재구성했다고?! 이게 무슨?!]“그건 중요한 게 아니고.”
[중요하거든?! 이런 건, 아득한 옛날에도 없던 일이니!]그녀의 말에 난 작게 한숨을 쉬었다.
이미 신물까지 건넨 마당에 무슨 말인지…….
“난 천재다, 세트.”
[어, 그건 그렇겠지.]“그것도 세상에서 둘째라면 서러울 정도의 압도적인 재능을 가진 천재라 할 수 있지.”
[어, 음…… 그래, 확실히 그런 듯 보이기는 한데. 그래서?]“그게 이유라고.”
[…….]세트가 차가운 눈빛으로 나를 노려봤다.
하지만 뭐 어쩌라는 건가.
압도적 재능을 가지고 타고난 게 뭐 잘못된 것도 아니고.
의외로 재능은 핑계로 대기 딱 좋은 이유다.
특히 우리 가문이라면 더더욱.
[……뭐, 그래. 그렇다 치자꾸나. 내가 살던 때도 그런 것들이 없었던 건 아니고.]“그럼 됐군. 그럼 이제 진짜 본론으로 들어가자고.”
[본론?]“그래, 본론.”
고개를 끄덕이며 말을 이었다.
“이 무덤을 어떻게 할지.”
* * *
바깥으로 나오자 안개는 완전히 걷혀 있었다.
신물이 주인을 찾은 시점에서 더 유지될 이유가 없다는 듯.
“나왔구만!”
나오자마자 리안이 다급하게 내 쪽으로 달려왔다.
“야, 야. 뭔 일이 있었던 거야?! 안개는 뭐고, 넌 도대체 왜 갑자기 사라져서…….”
“공략하고 왔다.”
“……응?”
눈을 동그랗게 뜬 녀석.
“공략? 어, 그러니까…… 지금, 완전히 이 던전이 공략됐다고 말하는 거냐.”
“어, 맞아.”
“……나 아무것도 안 했는데?”
“내가 했잖아.”
내 말에 리안이 머리를 긁적였다.
“아니, 내가 생각한 던전 탐사하고 좀 다른데? 그, 막 위기도 넘기고, 피와 땀의 로망…….”
“응, 그런 거 없어.”
그렇게 만들 생각도 없고.
내 말에 녀석은 침울한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로망이 왜 로망인데…….”
그런 녀석을 내버려 두고 집사에게 다가갔다.
“집사, 별일은 없었지?”
“없었지요. 오히려 별일이라고 한다면…….”
집사의 시선이 내 목 쪽으로 향했다.
“……도련님께 있었던 것 같다는 생각이 드는데요.”
“당연히 있었지. 공략했다니까? 이게 큰일이 아니면 뭐야.”
“뭐, 그건 그렇습니다만…….”
집사가 은근한 웃음을 지은 채 내게 말했다.
“재밌는 걸 새기셨군요.”
“아, 보여?”
“정확한 정체는 모르겠습니다만, 분명 특별한 힘이겠지요.”
집사는 제 입을 두드렸다.
“아, 참. 전 아무것도 못 봤습니다.”
이래 봬도 집사는 입이 꽤 무거우니 신용할 만하다.
그럼 이제 남은 건…….
“리안, 따라와라. 보여 줄 게 있으니까.”
“뭐 대단한 게 있는 거냐.”
“어, 있지.”
씨익 웃으며 말했다.
“영지 하나는 거뜬히 부흥시킬 수 있을 만한 큰 게 말이야.”
* * *
‘시간이 꽤 지났군.’
파슬로프 백작은 팔짱을 낀 채 주변을 서성거렸다.
아들과 함께 미하일이 던전으로 향한 지 시간이 꽤 흘렀다.
걱정이 안 되는 건 아니다.
아들의 능력을 믿었기에 보냈지만, 혹시라도 잘못되는 것은 아닐지…….
‘어쩌면 터무니없는 제안을 멋대로 믿은 걸지도 모른다.’
미하일의 확신.
백작은 자신의 사람 보는 눈을 믿었다.
그라면 여태까지 공략하지 못했던 던전을 공략할지도 모른다고.
그렇게 생각했던 것이다.
설마하니, 그 망할 놈의 아들이 멋대로 따라갈 것이라고는 예상하지 못했지만.
“별일이 없어야 할 텐데…….”
그렇게 초조함에 연신 다리를 움직이며 얼마나 기다렸을까.
“백작님!!”
가신이 다급히 그에게 와서는 소리쳤다.
“나, 나와 보셔야 할 것 같습니다! 지금 바깥에……!”
“음……?”
백작은 고개를 갸웃거리며 그를 따라 나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