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Great Wizard Transcendent RAW novel - Chapter 278
회귀로 초월하는 대마도사 279화
리처드 경이 눈을 뜬 것은 그리 긴 시간이 지나지 않았을 때였다.
대략 1시간 남짓한 시간.
아마도 평생 가족과의 재회를 바랐던 그에게 있어, 1시간은 마치 찰나와 같았으리라.
하지만 그걸로 충분했던 걸까.
눈을 뜬 그의 눈은 이전과는 다르게 꽤 맑아져 있었다.
망집이 보이지 않는다.
그는 한결 감정이 정리된, 고요한 눈으로 날 보고 있었다.
“용사님.”
그러곤 고개를 숙였다.
“정말 면목이 없습니다.”
“딱히 그러실 필요 없습니다. 깨달으셨다면 그걸로 된 거니까요.”
난 그렇게 말하며 가볍게 어깨를 으쓱거렸다.
그래, 깨달았다면 된 거다.
엄밀히 말하자면, 난 지금 리처드 경이 폭주하기 전에 조기진압을 한 셈.
그는 아직 ‘돌이킬 수 없는 일’을 벌이지 않았다.
“하지만 제가, 그렇게 민폐를 끼친 통에 용사님께서…….”
“아, 그건 상관 안 하셔도 됩니다. 어차피 별일도 없었고, 그냥 그거면 된 거예요. 그보다…….”
난 아까 전, 내가 후려쳤던 그의 머리를 가리키며 말했다.
“머리는 좀 괜찮으십니까?”
“머리, 라면…….”
내 말에 리처드 경은 잠시 눈을 동그랗게 뜬 채 날 보더니, 이내 너털웃음을 흘렸다.
“하하하! 예, 괜찮지요! 이보다 더 괜찮을 수는 없습니다!”
“그렇습니까.”
난 굳이 불필요한 말을 더 하지 않았다.
리처드 경은 그저 맑은 눈을 한 채 한참을 웃더니, 이내 깨달았다는 듯 말했다.
“아, 그렇군요. 지금 제가 용사님께 말씀드릴 건 ‘죄송하다’가 아니었어요.”
그러고, 그는 정중한 태도로 내게 고개를 숙였다.
“용사님께, 감사드립니다.”
많은 감정이 깃든 감사였다.
“그렇다면, 경이 품었던 증오는, 조금 사그라드셨습니까.”
“…….”
내 말에 그는 복잡한 표정을 한 채, 조용히 제 가슴에 손을 대었다.
무언가를 떠올리듯, 눈을 감은 채 잠시 말이 없더니.
“드라큘리온이라는 ‘괴물’에 대한 증오는 여전히 존재합니다.”
“…….”
“이 감정은, 아마 제가 평생을 안고 살아야 할 문제겠지요. 그건 자각하고 있습니다. 다만…….”
리처드 경은 고개를 들었다.
“……그건 어디까지나, ‘드라큘리온’이라는 괴물에 한해서지요.”
“…….”
“체페슈 경이나 다른 이들에게까지 같은 잣대를 들이미는 건 해서는 안 되는 일이었습니다.”
그는 담담히 자신의 실책을 고백했다.
“인정하겠습니다. 결국 제가 보였던 건 신념 같은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저, 증오였지요.”
“이해는 합니다. 사람이라는 게 감정으로부터 완전히 자유로울 수는 없는 법이니까요. 경 역시 그러했을 뿐입니다.”
“하, 하하…… 저도, 참 꼴사납군요. 이런 경험을 하고 나서야 그걸 깨닫게 되니 말입니다.”
그는 힘없이 그렇게 중얼거리고는 여전히 그 자리에 있는 무덤으로 눈을 돌렸다.
“저도 모르게…… 당당한 남편이, 자랑스러운 아버지가 되는 법을 잊고 있었던 모양입니다.”
“다 그런 거지요.”
늦게라도 깨달으면 된 거다.
세상에는 그조차 끝까지 깨닫지 못하는 이들로 가득하니까.
내가 바란 건 그가 좀 더 빨리 깨달아서 증오에서 빠져나오는 것.
이왕이면, 상처는 곪기 전에 소독하는 편이 좋지 않던가.
그런데 그때, 그가 바닥에 박아 뒀던 대검을 회수해서는 조심스레 내게 물었다.
“용사님, 혹시 맹세를 받아 주실 수 있겠습니까.”
“맹세라면…….”
“잊지 않기 위해, 강제력을 걸고자 합니다. 용사님께서 그 공증인이 되어 주셨으면 합니다.”
그렇게 말하는 그의 눈에는 일체의 흔들림도 없었다.
성기사의 맹세.
기사가 맹세에 자신의 ‘명예’를 건다면, 성기사는 자신의 ‘신앙’을 건다.
그렇게 건 맹세는 어기는 것이 그 어떤 경우에도 허락되지 않는다.
어기는 순간, 그 성기사는 신앙을 부정한 이단이 되니까.
“……괜찮겠습니까?”
“예, 부디.”
그의 각오는 확실해 보였다.
그는 검을 땅에 박은 채, 그 앞에서 조용히 무릎을 꿇었다.
그러고는 기도하듯, 두 손을 모은 채 ‘맹세’를 시작했다.
“헤카우시여. 신도, 리처드 크롤이 검과 방패, 그리고 당신을 향한 신앙에 걸고 맹세하오니.”
새하얀 신성력이 그를 감싸 안 듯 피어올랐다.
헤카우가 이 ‘맹세’를 지켜본다는 증거.
거기서부터 그의 삶에 대한 고백이 시작됐다.
마땅히 믿고 따르는 신의 앞에서 이어진 고백.
가족, 상실, 아픔, 증오…….
그리고 후회.
그는 담담히 자신의 일생과 그에 따른 실책을 입에 담았다.
다음으로 이어지는 건 맹세.
여태까지가 과거에 대한 고백이었다면 이건 미래를 향한 선언.
“그렇기에, 지금부터 이 검은 오로지 올바른 신념에 따를 것이며 마땅한 목적에 쓰이리니, 신이시여, 지켜보소서. 이 신념을…….”
이제 다음이 핵심이다.
천천히 그가 고개를 들며, 맹세의 마침표를……
“……용사, 미하일 발푸르기스에게 바치겠나이다.”
……예?
“아니, 잠……!”
그 순간, 빛이 번뜩였다.
내가 뭘 말릴 틈도 없이 리처드 경의 맹세는 끝이 났다.
화아악!
리처드 경을 감싼 빛이 번뜩이며 맹세를 잘 들었다는 듯, 타오르기 시작하더니…….
쿵!
이내 그의 가슴 한가운데, 날카로운 창이 되어 박혔다.
성기사의 맹세가 확실하게 맺어졌다는 증거였다.
“아니, 리처드 경!”
“예.”
“뭐 하십니까. 신념을 제게 바친다는 건, 충성 서약과 다를 바가 없단 말입니다!”
“예, 맞습니다.”
리처드 경은 허허 웃으며,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성기사의 맹세는 무겁다.
그가 그 맹세에서 날 말한 시점에서, 난 그의 ‘신념’을 판단하는 주체가 되었다.
즉, 내가 옳지 않다고 판단한다면, 그는 강제적으로 뭐든 멈출 수밖에 없게 됐다는 뜻!
이건 기사의 충성 서약과 다를 것이 없다.
아니, 오히려 그것보다 더 심했다!
“아, 필요하시다면, 제 단장직은 그대로 용사님께 반환을…….”
“아, 그건 됐습니다! 그보다 경, 이 맹세는……!”
“모를 일이잖습니까.”
리처드 경은 쓴웃음과 함께 내게 말했다.
“어쩌면, 당연히 지키리라 여겼던 이 ‘온기’마저 잊게 되는 날이 올 수도 있습니다.”
당연히 그렇지 않겠지만, 어쩌면 외부적 요인으로 인해 그리될 수도 있노라고.
“하지만 용사님께서는 늘 그대로 계시겠지요. 제게는 당신께서 어떻게든 ‘최선’의 결과를 내기 위해 노력할 것이라는 확신이 있습니다. 괜히 신께서 당신을 선택한 것이 아니니.”
그는 그렇게 말하며 눈을 빛냈다.
조금도 날 의심하는 기색 없이, 굳건한 ‘신념’마저 깃든 눈으로 날 쳐다보며 말했다.
“당당한 남편이자, 자랑스러운 아비가 되고자 합니다. 그리고 그걸 위해서는 이정표가 필요하겠지요.”
“……음.”
그는 정중히 고개를 숙였다.
“전 그 이정표를, 용사님께서 개척하실 미래로 삼고자 합니다.”
“후회하지 않으시겠습니까.”
“그랬다면 이런 선택을 하지도 않았겠지요. 다시는, 잘못된 선택을 하고 싶지 않으니…….”
“좋습니다.”
그의 뜻이 그러하다면 나야 받아들이지 않을 이유가 없다.
마스터의 절대적인 조력이라면, 어디든 쓸 데가 많으니.
“그렇다면 우선…….”
난 내게 신념을 맹세한 기사와 할 첫 번째 계획을 입에 담았다.
“머리 박으러 갑시다.”
그래, 이게 먼저지.
* * *
“……음.”
체페슈는 당장이라도 감길 것만 같은 눈을 억지로 뜬 채, 하늘을 쳐다보았다.
죽지 않는다는 몸은 참 편하다.
최소한 이렇게 미친 듯이 업무를 강행해도 과로사할 일은 없다는 뜻 아닌가.
‘좋은 거 맞나?’
아, 모르겠다.
좋은 게 좋은 거겠지, 뭐.
어쨌건 죽을 걱정은 없는 거니까, 사람에게 가장 중요한 걱정 중 하나가 없는 것 아닌가.
그래도 참 많이 발전했다 싶다.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그의 마음속은 짙은 자기혐오로 가득 차 있었으니까.
어찌 보면 당연했다.
아버지에 의해 인위적으로 뒤틀려 만들어진 불사의 육체.
한순간에 세간에서 말하는 ‘괴물’로 전락하고 말았으니까.
아주 오랫동안, 그는 정말 죽지 못해 살았다. 희망 따위는 사치라 여기며, 그냥 그곳에 있었다.
정신은 마모되고.
인간으로서의 자존감은 밑바닥에 내리꽂혔다.
그에게는 그 현실 자체가 지옥이었으니…….
하지만 그 모든 것은 용사가 찾아오며 바뀌었다.
기적같이, 그를 둘러싸고 있는 모든 비극이 해결된 것이다.
그래서일까.
– 결국 네가 괴물이라는 건 달라지지 않는다, 드라큘리온!
성기사단장에게서 그 말을 들었을 때도 그는 절망하지 않았다.
그저 그런 ‘입장’이 있을 수 있다 이해했을 뿐.
물론 그것과는 별개로 성기사단장의 적대라는 상황에 당황한 것은 사실이었지만, 그게 절망으로 이어지지는 않았던 것이다.
가능한 한 은인인 미하일의 귀에 이번 소식이 들어가지 않기를 바라기는 했지만…….
“……직접 나서기로 하셨다면, 어떻게든 해결은 되겠지.”
그는 작게 한숨을 쉬고는 자리에서 몸을 일으켰다.
해야 할 일은 많다.
예정된 재앙에 맞서려면, 악마 사냥꾼들의 육성이라는 과제는 끊임없이 이어져야 했으니.
수는 많을수록 좋다.
하지만 이들의 특성상, 마음에 커다란 병을 지닌 이들이 대부분인 것이다.
정신적으로 파탄이 나 있다고 할까.
그리고 그런 문제를 해결하는 게 자신이 할 일.
그럼 우선은…….
똑똑.
그때 들려온 노크 소리.
잠시 생각을 멈추고 그는 고개를 들자 문이 열렸다.
그러자 모습을 보인 것은 다름 아닌 문제의 성기사단장, 리처드.
그리고…….
“……용사님?”
용사였다.
옆에 성기사단장이 얌전히 있는 걸 보면, 이번에도 문제를 어떻게든 해결한 것 같은데…….
‘뭐지.’
뭔가, 느낌이 묘했다.
“무슨 일…… 있으십니까?”
“아, 여기 리처드 경께서 경에게 사과를 하고 싶다기에.”
미하일은 그렇게 말하며, 리처드에게 말했다.
“자, 리처드 경의 차례입니다. 물론 아까 전의 말은 어디까지나 비유였으니, 그냥 고개만…….”
“미안하오, 체페슈 경!”
콰직!
성기사단장이 머리를 박았다.
말이 채 끝나기도 전, 호탕하게 머리를 박은 리처드를 보며 미하일이 뒷말을 황망히 중얼거렸다.
“……숙이면 되는 건데?”
“…….”
“…….”
집무실에 이루 말할 수 없는 침묵이 감돌았다.
과로로 정신이 돌아버리기 직전의 체페슈, 머리를 박은 성기사단장, 그걸 지켜보는 용사…….
‘음, 개판이군.’
체페슈는 냉정한 표정으로 잠시 그렇게 생각했다.
* * *
리처드 경과 악마 사냥꾼 사이의 갈등은 그렇게 해결됐다.
리처드 경의 폭주를 사전에 차단했다는 건 확실히 적은 소득이 아니다.
지크프리트 녀석도 이번 기회에 확실히 ‘성장’했다는 게 보이기는 했고.
……음, 그래.
“음, 꼭 복귀해야 합니까?”
“…….”
야, 이 새끼야.
멀쩡한 표정으로 그렇게 말하는 녀석을 보며 난 조용히 이마를 손으로 눌렀다.
녀석은 그 말을 하는 와중에도 삽으로 땅을 파며, 식물을 심는 것에 열중하고 있었다.
“넌 또 왜 지랄이니.”
“아니, 그, 뭐라고 할까요…….”
지크프리트가 이래저래 복잡한 표정으로 날 보더니 말했다.
“사실 단장님 건도 있기는 했지만, 최근 제가 성기사라는 자리에 어울리는 건지 좀 확신이 안 서게 됐다고 할까요.”
“……흠.”
“미하일 님께서 가장 잘 아시겠지만, 제가 교국에 끼친 민폐가 있잖습니까. 과연 제가 그런 짓을 더 벌이지 않을지…….”
빌어먹을, 도대체 이놈이고 저놈이고 뭐 이리 속에 담고 사는 놈들이 많은 건지.
난 녀석을 보았다.
어깨는 축 늘어지고, 삽을 쥔 손에는 확신이 느껴지지 않는다.
뭐, 그래.
이런 생각도 하고 있었다는 건가.
스스로를 돌아보게 됐다는 걸 성장이라 해야 할지, 아니면 괜히 쓸데없는 게 늘었다고 봐야 할지는 모르겠지만…….
“그건 그래. 확실히 넌 용사에 어울리지 않았지. 그리고 그건 지금도 마찬가지다.”
“그렇, 습니다. 역시 전…….”
지크프리트의 눈동자가 어둡게 가라앉았다.
정면에서 다시 이런 말을 들으면, 당연히 그리 기분이 좋지 않겠지.
“하지만.”
난 녀석의 말을 중간에 끊은 채, 재차 말을 이었다.
“성기사로서는 나쁘지 않다.”
“……!”
“스스로에게 신념이 있으며, 그 신념을 위해 마땅히 손해를 감수할 수 있다는 것. 그건 네게 있어 확실한 성장이다.”
게다가, 이 녀석은 지금도 스스로를 끝없이 의심하고 되돌아보고 있다.
이래저래, 이 녀석도 성장했다.
“물론 네가 또 개짓거리를 할지도 몰라. 그건 아무도 모르지. 그건 나도, 너 자신도 모를 거다.”
“그렇겠지요.”
“그래도 괜찮다. 개짓거리를 하면 내가 뒤지게 팰 거니까.”
난 조용히 스태프를 들었다.
스태프를 본 지크프리트가 반사적으로 몸을 움찔거렸다.
“으, 음……!”
“그러니까 괜히 땅이나 파지 말고, 빨리 복장 갖춰 입고 리처드 경을 따라가. 너도 리처드 경에게 사과 받았잖아.”
“그건…… 그렇습니다만.”
지크프리트의 눈동자에 파문이 일었다.
녀석은 조용히 자신이 입고 있는 복장과 두 손에 쥔 삽을 보더니.
“정말…… 제가 성기사로서 다시 검을 쥐어도 되는 겁니까?”
“말했잖아. 또 삽질하면 내가 뒤지게 팰 거라고. 내 스태프에 좀 더 피가 늘어난다 이 말이지.”
“……요즘 들어 너무 자연스럽게 스태프에 피를 묻히고 다니시는 거 아닙니까?”
“아, 이게 우리 가문 평균이야.”
이제 해탈했어.
아무리 나라도 가문의 피에 거스를 수는 없는 법인가 보다.
뭐, 어쨌건.
“어쨌건 결론은 그거다. 괜한 궁상떨지 말고 가라고.”
“……알겠습니다.”
녀석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데, 미하일 님은 앞으로 뭘 하실 생각이십니까?”
“글쎄다.”
뭐, 일단 당장 내일 할 일은 정해져 있기는 한데…….
“일단은 반쯤 죽을 거 같긴 한데.”
“……예?”
어떻게든 되겠지, 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