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Great Wizard Transcendent RAW novel - Chapter 87
회귀로 초월하는 대마도사 87화
“미하일, 네 덕분이다!”
정신을 차리자 익숙한 폐허가 눈앞에 보였다.
하지만 펼쳐진 폐허는…… 조금 달랐다.
새카맣던 하늘이 맑게 개였다.
땅을 더럽히고 있던 마신의 잔재도 보이지 않았으며, 고통에 신음하던 사람도 없었다.
모두가 웃고 있었다.
허.
정말로, 해결됐다.
난 더듬거리며 믿을 수 없다는 듯 말했다.
“우리가…… 해낸 건가?”
“그렇지, 해냈네.”
수왕이 팔짱을 낀 채로, 활짝 웃으며 내게 답했다.
평소에 그렇게도 자랑하던 날카로운 이빨이 밝게 빛났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요정왕 지하드.
그 역시도 과거의 죄책감에서 벗어난 채, 그저 행복하게 웃고 있었다.
마침내 드디어 동족들을 향한 짐을 내려놓은 게 틀림없었다.
더욱이 지크프리트.
녀석은 여태까지 내 조언을 충실히 받아들였고, 용사로서 성실히 행동했다.
마신과의 마지막 전투에서, 녀석은 위태로운 순간에도 내 조언을 받아들였다.
녀석의 순간적인 판단도 빛을 발했으니, 정말 모두의 분투가 결실을 맺었다 할 수 있으리라.
그리고.
“해냈네요, 미하일.”
성녀가 활짝 웃으며 다가와서는 내 옆에 앉았다.
“꽤 힘들었어요.”
“그랬지요. 정말 힘들었습니다. 고생하지 않은 사람이 없었지만, 확실히…….”
“예, 모든 게 끝났네요. 정말.”
그녀가 말했다.
“아마, 미하일이 없었다면 제 동생을 구할 수도 없었겠고, 이렇게 마신을 쓰러뜨릴 수도 없었겠지요.”
“그건 아닙니다. 모두가 힘을 합친 결과지요.”
“후후, 그런가요.”
성녀가 밝게 미소 지으며 내게 감사를 표했다.
“고마워요, 미하일.”
“하하.”
그러고는 말을 이었다.
“정말, 지금까지 저희와 함께 해 주셔서 고마웠어요.”
“……!”
그 순간, 난 눈을 커다랗게 떴다.
이상한 말은 아니다.
언제가 됐건 나올 수 있는 말.
다만.
“……음? 어디 가시나요?”
“예, 아무래도 다시 돌아가야 할 것 같아서 말이지요.”
난 쓴웃음을 흘렸다.
정말이지, 벗어나고 싶지 않은 풍경이다.
내가 원했던 모든 것들이 실현된 세계…….
모든 게 있었다.
하지만 동시에 없기도 했다.
“그렇군요.”
성녀는 이해했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수고했어요, 미하일.”
“감사합니다.”
나 역시 성녀를 보며 웃었다.
이제, 끝낼 때였다.
“됐습니다.”
난 그것들로부터 등을 돌린 채 걸었다.
새파란 하늘.
마신으로부터 해방된 꿈.
그것들을 뒤로한 채, 난 이 모든 것들을 지켜보고 있었을 누군가를 향해 말했다.
“이걸로 충분합니다. 위안이 되었으니 그만 하시지요.”
「…….」
우뚝.
내 말에 세상이 멈췄다.
「조금은 편해져도 되는데.」
“힘들 줄도 알아야지요.”
마냥 편하게 생각하고 살 수 있다면 참 좋겠지만, 세상이 그렇게 돌아가지 않는다.
앞을 보았다.
환상들은 어느새 신기루처럼, 흔적조차 없었다.
대신 그 자리에 한 여성이 서 있었다.
자애로운 미소를 지은 채, 두 손에는 오브를 쥐고.
「곤란한 아이구나.」
“당신이군요.”
「그래. 내가 이 무덤의 신물을 맡고 있던 수호자…….」
그녀가 자신을 밝혔다.
「네프티스라 한단다.」
* * *
“세트는.”
「그 아이가 네 꿈을 보길 원하지 않잖니. 난 개인 사생활은 존중하는 편이란다.」
그래서 세트를 배제했노라고, 네프티스는 상냥하게 말했다.
「그건 그렇고…… 안타깝구나. 얼마든지 쉬어도 되는데.」
“아직 그럴 때는 아닌지라.”
그래, 아직 쉴 때가 아니다.
남은 것들이 많으니까.
“그보다, 제가 온 이유는 알고 계실 거라 생각합니다.”
「신물 때문이겠지.」
“그렇습니다. 게다가…….”
드라큘리온을 떠올렸다.
그 자의 아들인 체페슈가 이곳으로 날 데리고 왔다는 건, 분명 무언가 연관이 있다는 것.
“드라큘리온, 아시지요?”
「마지막 도전자였지.」
……마지막이라.
난 그녀에게 재차 물었다.
“아마, 그자 역시 지금 제가 보았던 것과 비슷한 꿈을 보았을 테고요.”
「그렇단다.」
깨고 싶지 않은 달콤한 환상.
때로는 상냥함 그 자체만으로도 가혹한 시련이 될 수 있다.
모든 게 이뤄진 세상을 뒤로하고, 다시 현실로 돌아가야 한다는 건 무척 힘든 일이다.
누군가는 그저 한때의 꿈으로 기억하고 벗어날 수도 있지만.
누군가는 아닐 수도 있겠지.
어쩌면 처참하게 무너지고, 결국 완전히 뒤틀려 버리는 이가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그는 현재 영지민들을 제물로 바치고, 완전히 괴물이 되었습니다. 그것도 아십니까.”
「……안타깝게도.」
무덤의 수호자가 바깥의 일을 알 리가 없다. 적어도 일반적인 경우라면 그러하겠지.
하지만 안다는 건.
지금 그녀가 처한 상황이 결코 일반적이지 않다는 것.
머릿속에 여러 생각이 오갔다.
난 드라큘리온의 영지에 아사르의 무덤이 있던 것이 결코 우연이라 여기지 않았다.
‘회귀 전, 우리는 아예 공략을 시도조차 하지 못했지.’
무덤은 결코 오는 이를 마다하지 않는다.
하지만 회귀 전, 무덤은 아예 외부인의 접근 자체를 거부했다.
즉, 무덤에 영향을 끼친 누군가가 있다는 뜻.
게다가, 방금 네프티스는 내게 말했다.
드라큘리온이 ‘마지막’ 도전자였다고.
그렇다면 결론은 하나뿐.
“여기 오기 전까지 생각을 꽤 많이 했습니다. 당신은 상냥합니다. 실제로 환상은 모두가 원하는 풍경을 보여 줬고요.”
「…….」
“죽는 그 순간까지 그렇게 원하는 풍경을 보여 주며 죽이는 방법도 있었을 겁니다. 하지만 당신은 그러지 않았지요.”
드라큘리온은 이 무덤에 한 번만 출입한 것이 아니다.
체페슈의 말에 따르면, 그는 무덤에 중독됐다 싶을 정도로 부지런히 무덤을 다녔다.
수없이 실패했을 것이다.
일반적인 무덤의 시련이라면 마땅히 실패의 대가로 그 생명도 빼앗을 수 있었을 터.
하지만 그녀는 그러지 않았다.
물론 결과적으로 드라큘리온은 그 상냥한 환상에 중독되었고, 인간으로서 어긋나고 말았다.
하나, 그게 그녀의 잘못인가?
애초에, 무덤은 시련을 부여하고 그것을 통과한 이들에게 신물을 전하는 장소.
그 상냥함이 가혹하더라도.
그게 시련의 일부라면, 네프티스의 죄라고 할 수는 없다.
헤어 나오지 못하는 쪽이 잘못이라 봐도 좋을 것이니.
다만 문제는 따로 있었다.
“당신의 상냥함은 분명 나쁘지 않았습니다. 당신이 선을 넘지만 않았었다면 말이지요.”
「…….」
“까놓고 말하겠습니다.”
난 아까부터 말이 없는 그녀를 쳐다보며 단호하게 말했다.
“이미 이 무덤은 공략되었습니다. 제 말이 틀립니까?”
공략.
즉, 네프티스가 지키고 있던 ‘신물’은 이미 주인을 찾았다.
“단순히 공략된 게 아니지요. 네프티스. 당신은 수호자로서 해서는 안 될 일을 했습니다.”
「…….」
이번에도 대답하지 않았다.
그저 자책하듯, 그녀는 고개를 숙인 채 조금 어깨를 떨 뿐이었다.
그리고 그 반응에 확신했다.
내 추측이 맞다고.
그래, 일반적인 공략이 아니었다.
드라큘리온은 실패했다.
그에게는 무덤을 공략할 자격이 없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그가 무덤을 공략했다면, 그 의미는 명백하다.
“당신은 감정에 떠밀려, 실패한 도전자에게 신물을 주었습니다. 제 말이 틀립니까?”
「……현명한 아이구나, 넌.」
그녀는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정말 이렇게나 빠르게 알 줄은 몰랐는데…….」
“알 수밖에 없지요. 신물 특유의 신성함이, 이곳에서 거의 나질 않았으니.”
방벽을 넘어 오염 지대에 도달한 이후부터 계속 신경 쓰였다.
무언가 익숙하면서도 불쾌한 느낌이라고 해야 할까.
그렇게 결론이 나니.
생각보다 가혹한 진실이 눈앞에서 모습을 드러냈다.
“당신의 그 값싼 동정으로 바깥에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알고는 계십니까?”
「그, 그건…….」
드라큘리온이 어떻게 그렇게 수많은 사람들을 집어삼켰는가.
아직 전부 확신할 수는 없지만, 어느 정도 추측해 볼 수는 있다.
사실 말이 추측이지 확신이라 해도 이상하지 않다.
“그 자는 수만의 무고한 이들을 집어삼켰습니다. 제가 아는 바로 그 정도의 만행을 가능하게 하는 건 하나밖에 없고요.”
「……!」
내 말에 네프티스의 눈동자가 거세게 떨렸다.
「……미, 미안하구나.」
다시 한번.
네프티스가 고개를 숙였다.
드라큘리온은 던전을 공략하기 위해 수도 없이 시련에 도전했을 것이다.
처음에는 도전이었고.
나중에는 점차, 중독됐을 터.
무한히 긍정하고, 잃은 것을 되찾아주는 환상 속에서…….
그리고 나중에 가서는.
그 환상을 실현하고 싶다는 욕망에 사로잡혔을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면, 그의 불사성에 대한 해석도 조금 달라진다.
불로불사는 목적이 아니었다.
그가 목표를 이루기 위한 과정에 불과했으며, 그의 진정한 목적은 아마도…….
“환상 속 풍경의 실현.”
「…….」
현실 조작이라 봐도 좋다.
정확히 신물이 어떤 힘이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그조차 가능할 정도의 강력한 힘을 품고 있는 것만큼은 사실로 보였다.
조심스레, 그녀가 물었다.
「날 벌할 생각이니?」
“그럴 생각은 없습니다.”
그녀를 벌하는 것은 그녀 자신이어야만 한다.
그녀가 명백한 잘못을 범했다는 것과는 별개로, 내게 그녀를 벌할 자격은 없다.
“하지만 저 역시 일단 공략에 성공한 것은 마찬가지.”
「그, 그건 그렇지.」
“그러니 저도 뭔가 받아가는 건 있어야겠습니다.”
신물을 온전한 과정으로 넘긴 것이 아니기에 전부 드라큘리온이 가져간 것은 아닐 터.
내 말에 무언가 떠올린 듯, 그녀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설마.」
“예, 지금 당신이 떠올린 그게 맞을 겁니다.”
난 주변을 둘러보며 말했다.
“전, 이 무덤을 원합니다.”
* * *
조금 시간이 지나, 뒤늦게 정신이 들기 시작했다.
막 잠에서 깬 것처럼 잠시 몽롱한 느낌이 몸을 지배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야, 야. 괜찮냐?!”
다급하게 어깨를 뒤흔드는 충격에 정신이 돌아왔다.
눈을 떠 보니, 리안이었다.
“괜찮으니까, 그만 흔들어.”
“……정말 괜찮은 것 맞나?”
체페슈가 조심스레 물었다.
“분명…… 무척 가혹한 시련이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만.”
“아마 가혹하다면 가혹하다 할 수 있었겠습니다만, 견딜 만은 했습니다.”
용사니까요, 라고 대답하며 어깨를 으쓱거렸다.
그때, 세트가 눈을 동그랗게 뜬 채 물었다.
[또 뭔가를 얻은 거니? 신물은…… 아닌 듯한데.]“신물은 없더라고. 그래서 다른 걸 선불로 받았지.”
그렇게 작은 목소리로 중얼거리고는 손을 뻗었다.
그러자 그 순간.
“허?”
주변의 풍경이 바뀌었다.
검게 죽어 있던 주변의 땅들에 새싹이 돋기 시작했고, 죽은 나무에 생명력이 돌아온다.
마치 무채색의 풍경에 색이 덧칠되는 것만 같았다.
“도련님, 이 무슨…….”
“간단히 말하자면, 지금 이 시간부로 이 던전은 내 소유가 됐다는 거지.”
내 말에 집사가 어처구니가 없다는 표정으로 날 보았다.
“……그 잠깐 사이에 또 이런 걸 받아서 오셨습니까?”
“손해는 안 보는 성격이라.”
일단 한 가지는 확실했다.
이번 무덤은 결코 일반적이지 않았으며, 우리가 지나왔던 이 숲들이 전부 ‘무덤’이었다.
즉, 오염 지대의 일부가 온전히 나의 것이 됐다는 뜻이다.
“이건 무척 유용하게 쓸 수 있겠군요. 어찌 보면, 드라큘리온의 영역을 빼앗았다 볼 수도 있을 테니.”
“그렇지.”
드라큘리온의 영역에 맞설 수 있는 힘을 얻은 셈이다.
놈이 봉인에서 풀려나면, 이 오염 지대는 말 그대로 늪이 된다.
언데드로 전락하는 늪.
그 늪에서 안전할 수 있는 공간을 손에 넣은 셈이니…….
“미하일 경.”
그때, 체페슈가 말했다.
“말해 줄 수 있겠나. 던전에는 정확히 무엇이 있었던 건지.”
꽤 간절해 보였다.
하긴 그렇겠지.
그의 입장에서 무덤의 정체는 반드시 알아야 할 것이었을 터.
“과거가 있었지요. 당신의 아버지, 드라큘리온은 어지간히도 과거에 갇혀 있던 모양이군요.”
“과거…….”
단어를 곱씹던 그는 이내 이해했다는 듯 쓴웃음을 지었다.
“……아아, 그렇군. 그랬나.”
“물론 이유가 어찌 됐건, 그가 저지른 악행이 정당화되는 것은 아닙니다.”
“알고 있다.”
체페슈는 무겁게 고개를 끄덕였다.
“아들로서, 아버지를 벌할 것이다. 그게 내가 아버지를 위해 할 수 있는 최선이겠지.”
“좋습니다.”
그의 눈빛에는 조금의 망설임도 느껴지지 않았다.
“그래서 당신에게는 가혹할지도 모르겠습니다만, 한 가지 역할을 부탁하고 싶습니다.”
“역할…… 이라면?”
난 그에게 말했다.
“잠시, ‘드라큘리온’이 되어 주셔야겠습니다.”